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여강만필

두 번째 농사 일지.

- 김융희

지난 주, 나의 개으름 피우는 이야기를 보고서, 몇 분의 가까운 이들께서 밭을 그냥 비워 두었느냐는 염려스런 궁금증을 보여왔다. 원, 천만에이다. 아무렴 나의 소중한 텃밭을 그 무슨 일로도 그냥 비워둘 수는 없다. 다만 그간 즐겨 심어왔던 야채류를 이번에는 심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배추, 고추, 가지, 대파, 오이, 호박등, 찬거리의 기본이 되는 것들은 모두 빠뜨리지 않았다. 호박은 마디호박과 둥근 호박을 함께 심었고, 오이도 마디와 노각을 나눠 심었다. 고추도 일반 고추는 물론, 청양과 꽈리, 그리고 오이고추까지 고루 심었다.

그런데 애태워 기다리는 비는 아직도 깜깜인 채, 삼십 도를 오르내리는 여름 날씨에 강한 햇빛이 내려 쪼이고 있다. 강물도 말라들어 고인 물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직 식수는 딸리지 않아, 작물들과 겨우 나눠 먹고 있다. 힘든 내 정성을 아는 듯, 고추가 하얀 꽃을 피우며, 고추를 계속 달고 있다. 아직은 잘 자라주고 있는 대파가 계속 신경이 쓰인다. 묘판의 아저씨께서 약을 치지 않음 완전 수확이 어려울 것이란 말이 늘 맘 속을 맴돈다. 씩씩하게 잘 자랄것 같은 대파가 의외로 병충해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도 조와하는 물이 흡족치 못해 갈증을 느낄 것 같은 마디 오이는 마디 마다 줄줄이 오이가 열려 자라고 있다. 쑥쑥 자라며 뒤엉키기를 좋와한 완두에게 물주기를 더뎠더니 아담한 채, 나비가 내려 앉은 것 같은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참외는 줄기를 뻣치지 못해 자꾸 줄어들고 있는 듯 싶다. 장마 철 오이요, 가믐의 참외 맛이란 말이 무색하다. 가믐에 달고 잘 자라는 참외이지만, 그것도 줄기가 다 자란 이후의 말인 것이다. 자기의 불리한 악조건에 잘 적응하는 생명의 신비를 배운것 같다. 나는 이제야 처음 알았다.

알 수 없어 궁금하다. 장마철이면 비에 녹아 없어진 상추를 생각하며, 작은 하우스에는 상추씨를 뿌렸었다. 열심히 물을 뿌리고 있다. 그런데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도 싹이 보이질 않는다. 일반 노지에 같이 뿌린 상추는 벌써 싹이 자라서 뜯어먹고 있는데도 아직 하나의 싹도 보이지 않는 그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어 무척 궁금하다. 나 모른 사이에 막 싹을 틔우면서 높은 기온에 어린 싹이 타 죽어버린 것일까? 아무리 그런 악조건에서도 전멸이란 없는 것이 모든 생명체임을 보아왔고 그리 알고 있기에 더욱 궁금하다.

씩씩한 배추가 무성하게 자라, 멀리서 바라보아도 흐뭇하고 든든하다. 가믐을 잘 견뎌주어 고맙고 기특했다. 모든 작물들이 비가 오지 않는 기간을, 더도 말고 모두 배추처럼만 버텨달라고 기원했다. 그런데 배추밭을 둘러보고선 나는 깜짝 놀랐다. 좀 떨어져 있어 그냥 멀리서 풍채만 보며 잘 자라고 있으려니 생각 했던 것의 불찰이었다. 배추는 속이 튼실해야 하는 것인데, 부족한 수분으로 속을 키우지 못하고 있었다. 든든해 기특했던 배추가 이제는 미워졌다. 내실보다 외화에 치중한 건전치 못한 건 동식물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외에도 우리 집을 찾는 여러 손님들에게 대접할 시골의 먹자꺼리들, 도마도 옥수수 딸기참외들이 잘 자라고 있다. 우리 집 손자들과 어린이들이 특히 좋와한다. 특히 참외와 옥수수는 어른들도 맛있어 해 좋고, 도마도는 우리 집에서 좋와한다. 얼갈이와 열무가 없어 시원한 말이국수를 못들고 있다. 하지에 수확하는 감자도 맛있겠다 싶다. 된장국에 쑥국만 끓이다보니 근대와 아욱국이 자꾸 생각난다. 내 년엔 놓치지 않고 모두 꼭 심어야겠다.

얼마 전까지도 텅 빈채 였던 들판이 어느덧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있다. 앞으로 열흘도 안넘겨 벼는 짙푸른 무성함으로 변할 것이며, 백 일도 안되서 황금 물결의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질 것이다. 먼 산자락의 콩밭은 아직 싹도 틔우지 않았는데, 텃밭에 감자는 한창 꽃을 피워 수확이 임박했다. 바빠서 심지 못한 채 놓친 감자가 부럽다. 보내주기로 한 고구마 순이 아직까지 소식이 없어 전화했더니 거기는 아직 더 있어야 한단다. 이곳과의 기온차 때문인 것이다. 이처럼 자연은 뒤죽 박죽인 채, 또 질서 정연하게 자신을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꼭 요즘 메스컴 특히 TV의 저녁 프로그램처럼, 농사 일지가 모두 먹자꺼리 이야기 일색이다. 살기 위해 먹는다기 보담 먹기 위해 사는 삶이 현대인들에게 더 어울린 말일 것 같다. 삶의 기본 요소인 의, 식, 주에도 식이 으뜸의 요소가 아닐까? 농사란 먹자꺼리의 생산이다. 그래 농사는 중요한 것이요,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 했을터. 이제는 그런 농업도 없고, 천하지대본도 아닌 산업화가 대본으로 둔갑한 현실에서 농사의 쓸거리가 뚜렸이 있으랴 싶다. 오늘 서울의 강남 코엑스 주변을 다녀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뒤엉켜 심란의 마음이다.

응답 2개

  1. Beilang말하길

    마치 작물들과 연애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연애는 조급하지 않고 배려을 잃지 않는 궁극적인 생산활동이기도 하지요. 아마 농사의 이런 서두르지 않는 배려의 마음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데 필요한 소중한 덕목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 말하길

    봄가뭄이 심합니다. 덕분에 가물 때의 작물 생태에 대해 두루두루 배웠습니다. 일전에 박워순 시장이 올해 시행한 ‘노들섬 도시농업공원’ 선포식에 대해 언론에서 300억 들여 조성한 땅에 농사짓는 게 말이 돼냐며 힐난하더군요. 농사에 대한 무시와 증오가 가슴 아팠습니다. 부디 그런 증오에도, 이 가뭄에도 농작물이 튼튼히 자라주길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