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돌봄과 만듦의 현장’

- 박카스(수유너머R)

* 현장이란?

현장인문학이라는 인연장으로 사람들을 만나 공부하고, 연극을 만들며 살고 있다. 나는 ‘현장’이라는 인연장에 끌린다. 현장(장애인노들야학과 구로청소년 공부방을 지칭)에 오는 사람들은 공부하며 살고 싶어서, 또는 다르게 살고 싶어서, 또는 갈 곳이 없어 그곳을 찾는다. 현장에는 학문이나 교양을 쌓기 위해 온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는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없고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도 따로 없다. 오히려 우리는 책의 내용보다 서로의 사는 이야기, 삶에서의 답답함을 주제로 말을 나눌 때가 많다. 현장을 찾는 사람들은 텍스트를 통해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공유할 때 보다 ‘나도 이런 적 있어.’ ‘아, 나도 그거 알아.’ 라고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고, 나누며 더 크게 웃곤 한다. 현장에서 ‘제발 텍스트 이야기를 하라고!’라는 말은 누구도 꺼내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책의 말이 삶으로 번역되어 말해진다. 현장에서는 그 소리들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입이 있어야한다. 나는 현장이 주는 이야기와 요구를 좋아한다.

노들야학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호식형(뇌병변장애1급)은 나에게 니체가 말하는 심연이 ‘무’라는 것과 연관이 깊은 것 같다고 말한다. 호식형은 니체가 말하는 심연이 어떻게 자신에게 다가왔는지 형의 삶 동안의 눈물과 고독의 경험을 통해 전한다.

호식 : 니체가 말하는 심연은 ‘무’ 가 아닐까 싶다. 없음을 아는 것이랄까? ‘무’ 라고 말할 때는 그냥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없음을 안다는 것이지.

(…)

박카스 : 그럼, (심연에 있어서) 형이 말하는 무는 희생과 달라요?

호식 : 희생은 무가 아니지. 희생은 봉사정신으로 저 사람이 잘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흡족하다는 것이지. 봉사는 저 사람한테 잘 해줄 때 저 사람이 잘 될 것을 알고 흡족한다. 무라는 것은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면서 하는 거지. ‘그냥’ (나한테) 공부가 그래. 머리 빠지게 공부해봤자, 약삭빠른 사람 못 쫓아가. 무라고 생각했을때 약삭빠른 사람 상관없이 뭘 할 수 있어. 나는 그래.

“30년동안 방구석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며느리 욕하는 것만 들었어. 할머니는 사람은 공부를 해야한다고 말하면서는 나를 학교에 안 보냈어. 사람이 공부를 하고 살아야하는데, 문득 형이 술 먹고 때릴 때, 번뜩 독립해서 살아야겠다고, 공부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더라. 할머니가 사람은 공부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생각났고.”

‘심연, 무, 그냥 하게 되는 거야. 그거.’

내 마음 속의 바다 깊은 곳의 말을 함으로 끄집어내려는데 필요한 고독을 형은 삶의 경험으로 나에게 설명해준다.

한편, 현장에서는 학원, 대학과 달리 ‘왜 공부해야하는지?’ 에 대한 설명을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입시나 취업, 학위라는 근거를 이곳에서 댈 수 없다. 그래서 현장은 나에게 ‘소화된 말’, ‘기쁨으로 다가온 앎’을 전하라고 말한다. 니체, 루쉰, 맑스의 말이 내게 다가와 어떻게 세상과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었는지, 다르게 이 세상에 대해 묻게 하고 있는지, 어떤 귀와 눈을 선물받았는지 전하라고 말한다. 나에게 소화된 말을 전할 때에야 ‘왜 공부해야하지? 이 어려운 것을 왜 해.’ 대신 ‘알고싶다.’ ‘나 역시!’ 라는 앎의 의욕과 삶 속의 기억들이 재구성을 이루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다. 현장은 말을 삶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라고 말하는 동시에 앎을 삶을 통해 이야기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소화된 말은 전하고 들려진다.

박카스 : 호식형, 루쉰은 아Q정전에서 아Q 를 통해 패배를 정신승리법으로 씹어삼키는 자신의 한 모습을 드러내고 대결하고 있어요. 아Q는 노예근성의 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요. (한 동안 침묵…)

형, 저도 이런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얘들이 키가 작다는 이유로 막 놀리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나는 좀 더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이니까. 하고 씹어삼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꼭 한꺼번에 이상하게 터진 적이 있었죠.

호식형 :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어. 그래서 그런지 은근히 아Q한테 애정도 가. 웃기기도 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동네만 나가면 동네 꼬마들이 웃고 난리인거야. 처음엔 애들이니까 했는데 나중에는 성깔이 나서… 깡패처럼 굴었지.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쌤은 루쉰의 자서를 읽고, 다음과 같은 자서를 쓰고 발표했다.

교장쌤 : 장애를 얻어 몇 달간 루쉰의 적막과 같은 ‘무감각’ 속에서 골방에 틀어박혀 살았다. 그러곤 못 살겠어서 장애인도 사람이라고 외쳐댔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아무리 외쳐도, 찬성도 반대도 아닌 적막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절망의 바닥까지 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그동안 노들 친구들과 함께한 외침이 용맹한 것인지, 슬픈 것인지, 가증스러운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없는 길을 만들며 조금 더 나아가지 않았냐.”라고 말하고 싶다.

교장쌤의 눈물, 적막이 담긴 이야기는 나에게 어떤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맞아. 나도 고시원에서 밖에 못 나갔을때, 잠시 ‘무감각’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지.무감각.. ”

루쉰이 적막을 딛고 꺼낸 말이 교장쌤에게 전해져 삶의 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세상 다 그렇지 뭐’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누군가가 꺼낸 외침이 삶의 기억들을 통해 말해질때, 현장의 우리는 여기에 어떤 ‘눈물, 고통, 적막’이 있음을 나눈다. 그렇게 자신이 이 체제에서 못 견뎌왔던 것을 드러내며, 나누며, 고립되지 않고 존재들의 존귀함을 이어가고자 하는 힘들을 나눈다.

주말에 함께 책을 읽는 호식형에게 ‘현장인문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카스 : 형, 현장이 뭐라고 생각해요?

호식형 : ‘현장인문학은 철학공부 안하던 사람들을 공부에 빠지게 만드는 거지. 공부하면서 살도록 만드는 거지.’

박카스 : 대학과 노들야학(현장)이 다른 게 뭔데요?

호식형 : 잘은 모르겠고, 나한테 노들야학에서 하는 철학공부는 일종의 활력소라고 할까!

* 현장에서 연극 만들기

노들과 함께하는 현장인문학에서 루쉰 세미나 때부터 연극을 만들기 시작했다. 연극 만들고 하는 것을 좋아해서 노들야학친구들에게 ‘별 뜻 없이’ 같이 하자고 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도 선뜻 좋다고 하여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좀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고민도 하고, 다른 시도도 해보았다.

루쉰 세미나 때는 루쉰의 ‘광인일기’를 ‘광어일기’로 고쳐서 연극 공연을 했다. 광인일기에서 루쉰이 고발하는 중국의 식인풍습의 상황과 그로 인한 한 개인의 자폐증상을 횟집 어항 속에서 죽을 날 만을 기다리는 물고기로 비유하여 연극대본으로 쓰고 만들었다. 시설에 갇힌 채 지내는 장애인의 삶의 비극을 직접적인 말로 하지 않고, 극적 상황을 통해 전하고자 했다. 연극을 만들면서도 즐거웠고, 공연 하는 이, 보는 이 모두 즐거웠다.

그리고는 루쉰 세미나 이후 활동보조를 하면서부터 호식형과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형, 4대강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한진 중공업 희망버스 다녀온 거 어땠어요?’ 등등 우리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서로 대화 나누게 되었다. ‘잘 모르지만.. 나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우선 반감이 있어..’ ‘김진숙지도위원이라는 사람, 얼마나 괴로웠으면 거길 올라갔을까.’ 형은 다른 사람들의 삶, 여기의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표정이 좋았다.

그래서 <비극의 탄생> 쫑파티 공연 때는 장애인의 삶의 고통 이야기 보다 4대강개발사업,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제 3세계 사람들의 상황을 이미지와 연극대본을 통해 표현하고, 공연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비극의 탄생> 쫑파티 공연을 하고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도 연극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그 문제 문제마다에 깊이 있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비극의 탄생> 세미나 때는 쫑파티 외에도 매주 모두 배우와 연출이 되어 짤막한 공연들을 만들었다. 각양각색의 색깔로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하는 모습에서 나는 즐거운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는 혼자 대본을 짜고, 연출을 맡을 것이 아니라 현장인문학 공부를 하는 모두가 연출, 작가가 되어 자신의 시선과 관심을 다양한 방식의 표현들로 엮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로 청소년 공부방에서는 카프카와 카프카 소설을 강의가 아닌 연극으로 전하고자 했다. 연극공연을 통해 카프카를 좋아하게 하고, 그의 소설에 관심이 가게 하고싶었다. 물론 내가 연극을 많이 하고 싶었기도 했다. 집중의 효과는 좋았지만, 카프카와 그의 소설에 대한 토론, 이야기를 끌어내진 못했다. 오히려 공부방 친구들에게 연극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는 있었다. 그리고 이후 구로청소년공부방 친구들과는 직접 쓴 대본을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어서 재개발 철거투쟁이 있던 마리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은 4대강 개발사업 등 기업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한 개발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를 담았다. 힘겹게 준비했고, 공연을 올려냈다. 다만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해진 시간에 집중된 연습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마리의 상황을 충분히 공유하지 못해서 공부방친구들이 마리에 도착해서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본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직접 현장에 다녀왔던 것이 좋은 경험이 되었다. 공부와 다른 삶에 관심을 이끌어내기, 그것을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열띤 공부와 함께 충분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함을 느꼈다. 한편 현장인문학이라는 이름 이외의 만남으로 함께하는 시간과 활동들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들야학에서 공부를 하고 연극을 만들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정기적인 모임이었다. 활동가들은 활동가들대로 바빴고, 노들야학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수업, 투쟁, 인권교육 등으로 일정이 바빴다. 인문학공부, 투쟁, 각자의 일상을 돌보며 거기에 연극을 만들기에는 절대적 시간 여유가 부족했다. 하루 전에야 연습에 함께 할 수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지금도 여기에는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투쟁과 공부, 퍼포먼스가 교차점을 이루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리고 현장 인문학에서 만드는 연극은 ‘작품’이 아닌 ‘파티’를 만드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먹을 것을 나눠먹고 앎을 통한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선물로 만들어 내는 시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현장인문학이라는 인연장이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가난한 청(소)년들과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가 함께 공부를 통해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는 돌봄과 만듦의 작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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