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죽음의 기지가 된 섬나라들 그리고 제주—미국 해군기지의 역사 (2)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식민지에 어김없이 들어서는 군사기지는 건설 첫 단계인 정지작업에서부터 해당지역을 밀어버리며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 공동체의 물리적 기반을 완전히 파괴시켜 버린다. 그리고 부대가 들어서면 훈련과 포격 등으로 인한 엄청난 소음과 물리적 위험 그리고 재산 피해는 물론, 중금속과 독극물, 발암물질, 나아가 심하면 핵폐기물로 만든 열화우라늄탄 등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의한 심각한 오염에 고통 받고 성매매와 성폭행 등의 범죄도 기승을 부리게 된다. 그러면서도 군부대에 기생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기형적 경제구조에 종속되어 삶의 선택권과 주도권을 갖지 못한 채 군사기지가 그어준 선 안에서 그들에게 기생하며 사는 길 뿐이다. 설사 군부대가 떠난다 해도 주민들은 부대가 남긴 죽음의 흔적들—오염된 땅과 망가진 공동체를 떠안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종종 마약중독에 비유되곤 한다.

그리고 좀 더 큰 틀에서 군사시설은 존재 자체가 자신의 필요성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자기실현적 존재다. 기지의 존재는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군비증강을 유도하며,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미국의 오키나와 공격이 보여주듯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공격의 목표물이 된다. 다시 말해 군사기지는 국방을 위해 필요하다고 선전되지만 실은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위협을 확대재생산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동시에 그로 인해 공격의 대상이 되는 역설적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설적 죽음의 공간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은 그것이 ‘죽음의 장사꾼’들이 공포를 조장해 남의 고통과 죽음을 팔아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자신을 제외한 전 세계 군사력을 합친 것만큼의 거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150여 국가에 1000개가 넘는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제국’인 미국이 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일까? (미국의 군사력은 전 세계 군사력의 약 45%이며 군사기지의 수는 ‘기지’의 정의에 따라 유동적. 2011년 기준.) 얼마나 더 큰 군사력과 패권을 가져야 위협과 공포의 조성을 멈출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지역 공동체와 삶이 망가지고 자연환경이 오염되고 파괴되어야 그들이 원하는 세계가 될까?

3.

지금 제주 강정에서는 주민들과 운동가들의 지속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에 걸쳐 위법과 탈법, 거짓말과 술수가 난무하며 해군기지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구럼비 바위로 상징되는 소중한 자연환경을 완전히 파괴하고 많은 이들의 삶에 깊은 생체기를 남기며 강행되고 있는 이 기지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정책을 반영하는 그들을 위한 전진기지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누가 어떤 말로 부인해도 상당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고 군사적으로 속국을 자처하는 남한에서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한 명시적 승인 내지 지지가 없이 그런 대규모 군사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급히 강정 해군기지를 이름도 해괴한 ‘민군복합관광미항’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들이밀었지만 역사상 전무후무한 군사-민간 공용 단일항을 만든다는 허황된 얘기는 그저 공사를 강행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환경을 분석해보면 미국이 다음에 어디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은 9-11로 계획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2001년 4개년 국방정책 검토보고서(QDR)>에서 제시된 대로 전략의 중심을 대서양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옮기고 이 지역의 해군을 강화하는 정책을 최근 다시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처럼 중국을 가장 큰 경쟁자로 인식하고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영향력을 억제하는데 동아시아 정책을 맞춰왔고 여기에는 중국의 완충국가 역할을 하는 북한까지 포함된다. 미국이 경제난으로 군사비를 대폭 줄이면서도 해군에 들어가는 돈은 줄이지 않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핵심적 거점은 당연히 일본 그리고 한국이다. (미국이 육해공군 기지를 모두 주둔시키고 있는 나라는 이태리 외에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을 더욱 압박하려는 시점에서 일본 내 다른 기지는 물론 동아시아 전략에 가장 핵심적인 기지들이 들어서 있는 오키나와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부대를 확장하기는커녕 현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오키나와 부대의 일부를 재배치할 곳을 물색해왔고 내부 식민지 괌으로 해병대 기지를 포함 기지의 약 1/3을 이동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 재정 악화로 괌 기지 건설이 잠정 중단된 상태로 괌 내에서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데모크라시 나우’의 “하와이, 괌, 오키나와 평화운동가 들과의 인터뷰“ 참조) 그런데 문제는 괌은 이차대전 당시 대일본 작전의 핵심역할을 하기도 한 태평양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이긴 하지만 중국을 대상으로 상정하면 오키나와가 가진 전략적 위치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는데 있다.

따라서 괌으로의 부대 재배치 이외의 다른 전략적 전진기지를 요구한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제주도는 중국의 핵심부를 위협하는데 오키나와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고 격렬한 대규모 반대도 아직은 없다. (이제까지 오키나와 기지 반대운동에는 수 만에서 십 만에 이르는 주민들이 모였다.) 강정 해군기지는 이런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의 보수세력과 남한의 친미세력이 합작하여 내부 식민지였던 제주를 하와이나 오키나와와 같이 재식민지화 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렇게 ‘죽음의 장사꾼’들 벌이는 국제 살상 비즈니스의 하청업체가 되어 국가 재정을 쏟아 붓고 환경을 파괴하며 해당 지역 주민들을 몰아내면서 삼성과 같은 토건세력과 방위산업체 그리고 군부와 친미 권력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패권을 떡고물로 챙기는 것이다. 군사적 투자는 일자리와 투입대비 이익 창출이라는 면에서도 최악의 투자라는 연구결과가 보여주듯이 그 자체로도 효율이 아주 낮은 투자인데도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이 어려운 시기에 그런 대규모 낭비성 프로젝트를 고집하는 것은 이런 연유이다. (“군비지출과 가계소비의 고용효과에 대한 분석” 참조)

오키나와의 전략적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에 제주도의 전략적 위치를 더한 지도. 오키나와에서 베이징 그리고 상하이까지의 거리는 각각 1800km와 800km. 괌에서는 무려 12000km, 13000km에  이른다. 제주도로부터는 950km와 500km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며 블라디보스톡까지 위협할 수 있는 위치다. 미국이 접근 가능한 지역가운데 중국을 대상으로 이보다 더 좋은 전략적 위치를 가진 지역은 없다.

오키나와의 전략적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에 제주도의 전략적 위치를 더한 지도. 오키나와에서 베이징 그리고 상하이까지의 거리는 각각 1800km와 800km. 괌에서는 무려 12000km, 13000km에 이른다. 제주도로부터는 950km와 500km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며 블라디보스톡까지 위협할 수 있는 위치다. 미국이 접근 가능한 지역가운데 중국을 대상으로 이보다 더 좋은 전략적 위치를 가진 지역은 없다.

강정에서 중국의 심장부를 겨누고 중국 주변국에 해군을 배치해 중국의 해상로를 장악하고 중국과 주변국 사이의 영유권 분쟁과 같은 충돌에 개입하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도를 확실히 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냉전체제에서 일관되게 적대국 특히 소련에 취했던 ‘봉쇄정책’( containment policy)과 동일한 조취로 냉전과 탈냉전 사이의 이 연속성은 주목할 만하다. 냉전은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고 주적도 사라졌지만 미국이 대외정책은 다시 주적을 만들고 냉전 시기와 동일한 압박정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패권주의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고 그 시스템은 과거와 같이 적대적 관계와 그로 인한 군사적 긴장과 충돌에 의지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미국은 잠재적 위협에 대한 당연한 자위 차원의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만약 중국이 쿠바, 멕시코, 남미와 밀접한 군사적 관계를 맺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며 잠재적 위협에 대한 대응조치라 선언하면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장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함대파견하고 난리가 날 것이다.

중국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단 기지가 들어서게 되면 이에 어떤 식으로든 군사적으로 대응할 것이고 북한도 역시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다시 이를 명분으로 제주를 제2의 하와이, 제2의 오키나와로 활용하려 들 것이 자명하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제주도에는 또 다른 군사기지나 군사시절이 들어설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강정에는 이지스함, 핵잠수함이 들락거리고 재배치를 하네 마네하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전술핵무기를 위시한 다른 공격무기들이 배치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원할 때 제주도는 물론 남한 전체가 꼼짝없이 볼모가 되어 엄청난 재앙을 당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그저 가상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1994년 클린튼은 북한 폭격명령서에 서명을 하고 폭격을 위한 초읽기를 하고 있었고 부시는 9-11 이후 이라크 다음의 침공 대상으로 북한을 점찍어 두고 있었다.

4.

현재의 사태를 이념적 잣대와 같은 근시안적 시각이 아니라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이유다. 미국이 근대의 폭력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근대의 선한 적자로 스스로 자리매김한 그들의 폭력성은 근대 폭력의 실체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들에게 상대가 원주민인지 아니면 다른 피식민지인이나 제국주의자인지, 아니면 파시스트인지 공산주의자인지는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죽음을 매개로 한 지배와 패권이며 이것을 적절히 발명된 이념으로 합리화하고 설득해온 것이 역사가 증거하는 미국의 폭력성이다. ‘정의로운 전쟁’과 ‘자비로운 제국주의’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여기서 근대적 폭력이란 근대와 더불어 등장한 ‘죽음의 공동체’인 국가를 단위로 지배의 욕망과 ‘죽음의 논리’에 기반을 둔 실천을 일컫는 것으로 푸코가 말하는 규율과 통제를 내면화한 근대적 폭력과는 다르며 국제정치학 차원의 군사적 폭력성을 의미한다. 군사기지란 이 근대적 폭력의 준비와 실천을 위한 최전선에 위치한 파괴와 죽음의 공간이다. 이를 대변하는 군산복합체란 군사적 긴장과 공포를 빌미로 먹고 사는 공포 장사꾼, 안보 장사꾼, 국방 장사꾼, 전쟁 장사꾼, 즉 ‘죽음의 장사꾼’의 다른 이름으로 공포와 군사적 긴장을 만들어 내고 증폭시키며 내부와 외부의 식민지에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의 수호자이자 수혜자인 것이다. 물론 이렇게 조성된 군사적 긴장을 핑계로 더 많은 무기, 더 파괴적인 무기를 팔아먹으며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국이야말로 근대의 폭력성을 가장 성공적으로 발휘하며 세계를 지배한 제국으로서 그들에게서 이념을 뺀 폭력성을 보면 근대 폭력의 맨살이 보인다.

이제 우리는 다른 존재양식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고 이 일은 아직도 철지한 냉전과 분단 그리고 매카시즘에 고통 받고 있는 우리가 앞장서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 우리의 삶을 계속 죽음의 공동체와 근대적 폭력에 기반을 둔 세력에 맡겨 놓을 것인지 아니면 죽음이 아닌 삶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존재양식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새로운 삶의 방식의 창조는 점거운동이 보여주듯이 기존의 삶과는 다른 다양한 형태의 삶을 크고 작은 여러 단위에서 실험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고 이는 우선 기존의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제주도 강정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경찰과 대치 중인 어느 노신부. 노순택 작품 (http://suntag.net)

제주도 강정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경찰과 대치 중인 어느 노신부. 노순택 작품 (http://suntag.net)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은 이러한 군사 패권주의의 확산을 막고 근대적 폭력위에 세워진 세계 질서와 삶의 양식에 제동을 거는 운동이다. 한반도와 아시아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모색하는 물꼬를 틀 것인지 아니면 근대의 폭력에 굴복해 파괴의 삶을 지속할 것인지를 시험하는 기로에서 일어난 하나의 중대 사건인 것이다. 주민들과 열성적 운동가, 종교인들이 경찰, 해경, 용역들의 협박과 폭행은 물론 부상과 연행 그리고 투옥까지 견디며 헌신적으로 평화적 반대운동을 이끌어 왔지만 강정의 상징물인 구럼비 바위는 이미 폭파되었고 기지건설 공사는 더욱 박차를 가해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것을 저지할 공식적인 통로는 다 막혀버린 절박한 상황이다. 언론들마저 외면하고 있는 지금 사제들이 공사를 막고자 힘겹게 노상미사를 올리고 공사 트럭 밑에 드러눕거나 레미콘 트럭위에 오르는 등 말 그대로 온 몸으로 공사를 저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싸움은 소수의 헌신에 내맡겨 두기에는 너무도 중요하고 절박한 근대 폭력과의 투쟁이다.

관련자료:

미국 역사 시기별 영토지도
http://en.wikipedia.org/wiki/File:Non-Native-American-Nations-Territorial-Claims-over-NAFTA-countries-1750-2008.gif
<2001년 4개년 국방정책 검토보고서(QDR)> http://www.defense.gov/pubs/qdr2001.pdf
군비지출과 가계소비의 고용효과에 대한 분석 http://www.peri.umass.edu/fileadmin/pdf/published_study/PERI_military_spending_2011.pdf
(데모크라시 나우) 하와이, 괌, 오키나와 평화운동가 들과의 인터뷰 “From Japan to Guam to Hawai’i, Activists Resist Expansion of US Military Presence in the Pacific” http://www.democracynow.org/2010/5/24/from_japan_to_guam_to_hawaii

강정 관련: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커뮤니티 공식 웹사이트 http://cafe.daum.net/peacekj
강정마을 http://www.gangjeong.com/
제주를 지키는 번역자들의 모임 http://twitaddons.com/group_follow/detail.php?id=48845
제주해군기지 문제 총정리 http://www.youtube.com/watch?v=uZxowhiVRZg&feature=youtu.be
뉴스타파 강정 특집 (영어 자막) http://www.youtube.com/watch?v=YnclnLDG8FY&feature=youtu.be
Story in Jeju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Z2pmX_0CEag
제주도 구하기 해외 사이트 (Save Jeju Island) http://www.savejejuisland.org/
Global Network Against Weapons & Nuclear Power in Space http://www.space4peace.org/
제주-오키나와 평화연대를 위한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 성명 http://tiny.cc/okwafw
하와이 평화운동 DMZHawai’i/Aloha ‘Aina 웹사이트 http://www.dmzhawaii.org/
하와이 평화활동가 카지히로씨 인터뷰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70531120555&sect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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