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치유의 영화들

- 황진미

최근 심리치유를 품은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했다. 자살한 소년이 자기 문제와의 정면 대결로 갱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컬러풀>, 우울증을 병이 아닌 ‘존재의 힘’으로 파악하는 <멜랑콜리아>, 치유란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데인저러스 메소드> 등. 각기 빛나는 이 영화들은 하나의 별자리처럼 문양을 만든다. 별자리 이름은 ‘치유의 영화들’이다.

1. <컬러풀> 자살자의 갱생

일본 애니메이션 <컬러풀>은 시작과 함께 천사가 나타나 전생의 죄로 소멸될 운명인 ‘나’의 영혼이 막 자살한 소년의 몸에 들어가 살며 전생의 죄를 기억해내면 윤회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코토로 환생한 ‘나’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가정의 소년이 왜 자살했을까 의아해 한다. 그러나 엄마의 불륜, 형과의 대화단절, 학교 왕따, 짝사랑하는 후배의 원조교제 등을 알고 경악한다. ‘나’는 마코토가 속으로만 삭이던 고민들을 분출한다. 어차피 한시적인 남의 삶이라 생각하니 못할 것도 없다. 마코토는 미처 알지도 못했던 친구들도 눈에 들어온다. 최악의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한 가지 색이 아닌 다양한 색이었으며, 그 속에 정붙이고 살 여지가 있다. 왕따 소녀는 내가 버팀목이었다고까지 말한다. 바로 그때, ‘나’의 전생의 죄가 떠오른다. 나는 나를 죽였다. 나는 자살한 마코토의 영혼이다!
<컬러풀>은 환생의 우화와 반전의 형식을 차용해, 자살시도자의 심리치료 과정을 보여준다. 텍스트전체를 상담자인 천사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삶을 ‘남’의 시각에서 중립적으로 다시 보고, 그라운드제로에서 새로 세팅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소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자기치유과정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남의 삶 인양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은 심리치료의 방법이자 중증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하다. 불량배들에게 털리는 것 또한 자기처벌의 욕구를 외화시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속으로만 삭이던 말을 내뱉어 가족 간의 대화를 텄던 것처럼, 격렬한 증상의 발현은 치유의 단초가 된다. <컬러풀>은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 (‘성격개조 세미나’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 삶이 지닌 다양한 색체들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한시적인 ‘홈스테이’인양 여기며 살아내면 된다고 충고한다.

2. <멜랑콜리아> 우울증자의 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는 초현실적인 정지화면으로 지구박살을 미리 보여준다. 첫 번째 저스틴 편. 성대한 결혼식이 펼쳐지는 동안, 신부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불안과 냉소의 표정이 스친다. 신부는 행복의 절정을 상연해야 할 순간에 결국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결혼식을 망쳐버린다. 키스를 퍼붓는 신랑을 밀어내고, 처음 보는 남자를 덮쳐 성관계를 하고, 하객으로 와 승진을 발표해 준 사장에겐 악담을 퍼붓는다. 이게 웬 미친년이냐고? 미친 건 아니다. 중증우울증이다. 우울증자는 자아의 상실감으로, 자기비난과 자기처벌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축복받는 자신을 견딜 수 없다.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꼴좋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며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고 벌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 클레어 편은 우울증의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결혼식후 우울증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저스틴은 언니 클레어의 집에 와 보살핌을 받는다. 행성이 지구에 다가오지만 충돌은 없을 거란 과학적 예측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는 종말의 불안감을 느낀다. 행성이 크게 보일수록 언니의 불안감은 커지지만, 동생은 행성 월광욕을 즐긴다. 가장 합리적인 이성의 소유자로 보이던 형부는 종말이 현실화되자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 언니는 우왕좌왕한다. 행복의 상연을 못견뎌하는 우울증자만이 재난 앞에 초연하다. 우울증자들은 현실의 냉혹함을 더 잘 알고 있으며, 자아가 이미 상실되어 버렸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애착이 없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았던 감독은 <멜랑콜리아>를 통해 우울증의 내적 재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외적재난 앞에서는 오히려 우울증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함을 보여준다. 우울증자는 세상을 비이성적으로 비관하는 어리석고 약한 존재들이 아니라, 냉철한 시각으로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 결혼식 따위의 자기기만으로 위로받지 못하는 비범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3. <데인저러스 메소드> 교정이 아닌 개성화

크로넨버그의 <데인저러스 메소드>는 융의 전기 영화이다. 영화는 융의 환자이자 정부이자 후배의사였던 슈필라인이란 실존인물을 통해, 융이 자기 내면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정신병에 대한 독자적인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을 삽화적으로 보여준다. 융이 존경했던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정신병에 관한 개념 차이였다. 융은 과거의 잘못된 원인을 찾아 교정하는 프로이트 식 치료가 아니라, 내면을 탐색하여 자기를 발견하고 인격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치유로 생각했다. ‘자기실현’ 혹은 ‘개성화’라 불리는 이 과정은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 욕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나답게 사는 것’을 뜻한다. 이는 <컬러풀>의 소년이 겪은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색이 한 가지가 아님을 인정하고, 때로 증상을 분출하여 대화를 개진하고, 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서로 지탱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이것이 정신과클리닉을 찾는 것보다 더 긴요한 자기치유의 묘책이다. 우울증자 역시 자신을 환자가 아닌 예지자로 긍정할 지어다. 곧 종말의 날에, 인류최후의 힘을 발휘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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