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필독靑年筆毒

카카오톡

- 김민수(청년유니온)

“망중립성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현재 시대에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공공성의 문제이며 통신재벌들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는 국민들을 시름케 하는 주범중 하나이다. 이에 오늘 기자회견에 참가한 우리들은 향후 망 중립성 확보와 서민들의 수준에 맞는 합리적 통신비 책정, 그리고 통신재벌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나갈 것을 밝히는 바이다. ”

지난 6월 13일, 을지로에 위치한 SKT 본사 앞에서 통신재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자회견에는 청년유니온, 청년을 위한 경제민주화 운동본부(준),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 등 청년당사자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땡볕 내리쬐는 을지로 앞마당에서 이들은 왜 플랑을 휘날리며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는가. 그 주인공은 저기 있다. “카톡왔숑”

지난 6월 4일, 카카오톡은 자체 음성채팅 시스템인 ‘보이스톡’의 시범 서비스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한다. 카카오톡 개발진들은 이 서비스가 한국 사회에 가져올 돌풍을 예상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이 충격적인 발표 이후 대한민국 여론은 ‘보이스톡’을 둘러 싼 쟁점으로 깔대기 되었다. 비슷한 시기 연이어 출마선언을 발표하는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당연하게도 과점시장인 통신망 장사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던 통신재벌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보이스톡 서비스로 통신사 매출이 떨어지면 향후 투자가 줄어들어 소비자의 편의가 떨어진다느니, 현재 통신가입자 약관 상 데이터패킷을 이용한 음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느니, 보이스톡을 서비스 하려면 막대한 돈을 내놓으라느니… 어쨌든 결론은 ‘보이스톡 꺼져’인 듯 하다.

통신재벌의 몽니로 카톡을 위시한 이용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번 카카오톡 사태(?)를 중심에 둔 ‘망 중립성’ 토론회에는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자리에서 카카오톡의 공동대표는 mVoIP(보이스톡의 서비스 기반이 되는 통신망)를 둘러 싼 쟁점들과 통신사들의 기만을 일목요연하게 해설하여 관심을 샀다. 이 자리에서는 이동통신사에서 보이스톡의 서비스 품질을 고의로 떨어뜨리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 참석자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보이스톡 서비스가 시행되더라도 통신사의 매출액 감소를 1%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거늘, 이분들, 왜 이러는걸까요-

이러한 흐름에 ‘애플’ 또한 본의 아니게(?) 가세하여 통신사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발표를 낸다. 아이폰의 새로운 버전의 운영체제에서 3G망에서도 페이스오프라는 이름의 영상통화가 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점입가경이다. 그야말로 통신망을 둘러 싼 ‘서비스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따른 이용자의 선택권과 통신망을 점유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통신재벌의 줄다리기는 어떻게 결론이 날 것인가.

그나저나 방송통신위원회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조율’하라는 요구에 대해서, “시장 자율의 원리에 맡길게염. 뿌잉뿌잉” 이런 뻘소리를 남기다니. 시장을 갑으로 모시는 주류경제학에서도 ‘과점시장’에서는 반드시 실패가 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이럴 때는 정부가 개입하는 등 무슨 방법을 써서 실패를 막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던가. 자유시장 신봉하고 주류경제학을 바이블로 삼는 인간들이 왜 이럴 땐 ‘니나노~’하고 계신지 참…

“통신사가 보이스톡 서비스 이용하려면 카카오톡에서 돈을 내라고 하더라? 미친거 아니냐. 우리들이 모금해서 카카오톡에 전해줘야 하는거 아닌지 모르겠어.”

커피숍에 앉아 있다가 옆 테이블의 대화를 엿들은(!?) 내용이다. 앞서도 주절주절 거렸지만 카카오톡을 둘러싼 일련의 쟁점들은 소위 ‘권’ 들에게만 유통되는 국지적 이슈가 아니다. 대한민국 스마트폰 이용자 절대다수의 공통관심사이다. (사람마다 온도차는 있겠으나) 이들은 과점체제 속에서 과도한 통신비를 삥땅 쳐 온 통신재벌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있고, 이번 카카오톡 사건을 계기로 봇물처럼 여론을 형성했다.

이번 카카오톡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진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시장경제에 대한 재벌의 무분별한 착취를 규탄하며 ‘경제 민주화’에 대한 구호를 소위 ‘진보진영’이 내건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여론을 모아 낸 사건이 있었던가.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외쳤던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보다, ‘보이스톡’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이 청년들을 ‘통신재벌에 대한 분노’로 이끌었다. 이런 단상들을 보고 있자면 삶의 변화는 정말로 예기치 못한 곳에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우리가 그렇게 주장할때는 듣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일어나네?’라는 식의 결론을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는 ‘나꼼수’ 열풍 당시에도 진보진영이 비슷하게 느끼던 열패감 아니던가. 나꼼수가 되었든 카카오톡이 되었든 진보진영 입장에서는 유리한 지형을 맞이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고, 곗돈을 주은 것이다. 이 국면에서 어떠한 의제와 이슈파이팅으로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자력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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