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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어르신들의 외침 – 밀양 송전탑 투쟁현장 방문기

- 이경

밀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도 낯선 지역이다. 어떤 이들은 영화 ‘밀양’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대구와 부산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지역으로 밀양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영화 ‘밀양’은 알지만 밀양이 어디에 있는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더불어 서울에서 밀양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없는 건 오가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밀양에 관심을 갖는 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보다 무려 1.3배나 큰 이 도시의 인구는 고작 10만 명이 조금 넘는다. 서울보다 넓은 이곳은 공장도, 큰 문화시설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인이 밀양에 문상이 있어 갔다가 택시에 올라타 높은 빌딩 하나 없이 확 트여 산과 들, 강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참 좋다고 하자 택시기사가 이렇게 말했단다. “밀양 참 좋지요. 큰 공장이 있어 공기를 더럽히나요, 큰 학교가 있어 젊은이들이 많길하나요. 아무것도 없는 곳이 바로 밀양이지요.”

아무도 돌보지 않은 7년

밀양은 ‘시(市)’지만 시내 한복판을 지나는 버스가 느릿느릿 걸어오는 어르신을 기다려 줄 만큼 ‘읍내’의 풍경도 함께 지니고 있는 여유로운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끄러울 것 하나 없는 이곳에서 7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무려 6년 간 한국전력과 용역들에 맞서 투쟁하고 있었다. 이젠 7년째다. 한평생 땅만 보고, 땅만 일구던 70세가 넘은 어르신들 그리고 부산 등 외지에서 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밀양으로 넘어오신 60세 이상의 분들께서 ‘송전탑 OUT’을 외쳤다. 핵에너지를 서울로 옮기는 송전탑이 마을에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난생처음 용역들에게 쫓기고, 듣도보도 못한 쌍욕을 듣고, 성적 추행까지 당하기도 했단다. 울기도 하고, 집회도 열었지만 관심 가져주는 이들은 없었다. 아무도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지난 1월 16일 송전탑이 들어서기로 예정되어있던 산외면에서 한 어르신이 제 몸에 불을 붙였다. 일흔이 넘은 이치우 어르신께서 한전과 용역들과 대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으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동안 밀양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무려 6년이라니. 그 누구도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 작년 3월 후쿠시마 지진으로 핵발전소의 위험과 그에 대한 무지함에 몸을 떨었건만 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몰랐다. 보이지 않았다.

밀양의 지난 6년간 일들은 아래와 같다.

“2005년 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76만5000볼트 송전탑 공사 계획이 발표되었다. 논 한가운데에 높이 1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철탑이 박히게 되었다. 이 끔찍한 고압전류 아래서 농사를 짓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 그들은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 69개의 철탑이 지나가는 밀양지역 5개면 해당 주민들의 사연이 대개 그러했고, 그 삶들이 지난 6년간의 싸움으로 파탄이 났다.” (한겨레 신문 <송전탑 분신 자결의 진상> 이계삼, 2012. 1. 26)

765가 온다면, 원자탄이 내려오는 것

밀양으로 간 날 마침 서울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이 가족과 함께 ‘탈핵버스’를 타고 오셨다. 이분들과 함께 ‘송전탑 반대 고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안내를 받아 송전탑이 들어설 지역과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밀양의 4개 면 –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단장면 -에서 많은 어르신들께서 손님맞이를 하기 위해 마을회관에 계셨고, 송전탑이 들어서는 곳 근처로 가자 어르신들은 비빔밥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마치 멀리서 온 손주에게 밥을 해주듯이 손수 꺾은 나물과 정성껏 담근 고추장을 따끈한 밥에 얹어 내주셨다.

밥을 먹고 129번 철탑이 세워질 예정인 곳에 올랐다. 나무가 잘려나간 채 밑둥만 남아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곳이 눈앞에 펼쳐졌다. 76만5000볼트의 전류를 흘러 보내 서울로 도달캐 할 송전탑을 짓기 위해 산을 헤집어 놓은 흔적이었다. 폭격을 맞은 듯 산 중턱이 텅 비어있었다. 몇 달 전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으로 온 사람들이 심어 놓은 새빨간 꽃나무가 막 질 무렵이라 더 휑했다.

박정선 할머니께서는 용역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려고 매일 그들을 쫓아다녔다고 한다.

“아침에 갸들이(용역들이) 조회를 합니더. 다 들려요. 뭐라카냐면, 할머니들 다섯바쿠 돌리라고 하는 소리가 다 들렸십니더. 갸들이 이쪽 나무 베려고 하면 쫓아가고, 또 다른 나무에 가면 쫓아가고. 젊은 사람들이 욕하는 것도 듣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애. 결혼하고도 이렇게 안 울었는데. 나는 공부도 못했지 아무것도 못했습니더. 그냥 힘으로 밖에 할 수 없어애. 이 송전탑 69개가 밀양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765가 온다면 눈으로 보이는 원자탄이 내리는 겁니더.”

어르신들이 쫓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이 산에 있는 나무는 몽땅 베어져 이미 송전탑이 지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어진 나무 밑둥 아래 작은 소나무 새순이 올라온 모습을 보고 다들 그곳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착찹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라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우린 생명을 내놓고 싸운다, 그래서 우리가 이긴다

그 뒤 이동한 곳은 송전탑을 막기 위해 어르신들께서 직접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겨울을 난 127번 현장이다. 움막은 한전 측의 포크레인과 마주하고 있었다. 포크레인이 절대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어르신들은 움막 안에서 추위와 두려움과 싸웠다. 기본적인 집기만 있고 난방도, 아무런 시설도 없는 이곳에서 말이다. 움막을 지나니 외로운 투쟁을 겪은 어르신들께서 멀리서 온 손님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송전탑 투쟁을 하며 주민들 사이에서 ‘경찰서에 가장 많이 다녀온 인물’로 유명해진 윤여림 어르신께서 먼저 인사말을 해주셨다. 무려 9번이나 경찰서에 다녀오셨고, 젊은 용역들과 싸우다 전기톱에 다리도 잘릴 뻔 하셨다고 한다. 뒤를 이어 여러 할머니와 주민분들의 목소리가 산을 울렸다.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 토백이 입니더. 지진도 나고 땅도 좁은 이 땅에 왜 핵발전소를 짓습니까. 핵발전소에 온갖 비리들도 많다고 하는데애. 지금 한국에 핵발전소가 21개 돌아가고 있는데 더 이상 지어지면 안됩니다! 고리 5, 6호기 승인도 안 났는데 강행하고 있는겁니다. 국책사업이라고 합니다. 국민의 세금 한 푼 줄여서 세금을 써야 하는데 송전탑이 돌아서…. 고리 5, 6호기 안 지으면 송전탑 지을 필요도 없어애.” (영자 총무님)

“송전탑은 안 보이는 원자탄입니더” (밀양으로 와 건강을 회복한 할머니)

“보상금 받을라꼬 하는 게 아니라, 내 땅 내가 지키려는 겁니다” (어느 아저씨)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거기 때문에 우리가 이깁니다” (어느 할머니)

“내 소원은 송전탑 저거 안 들어오는 깁니더.” (어느 할머니)

밀양 대책위에는 ‘운동의 달인’ ‘집회/투쟁의 달인’은 없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나고 자란 땅, 자식들이 다시 가꿔야 할 지역,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마을이 있다. 어르신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국가 사업에 반대하고, 집회를 열고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쑥스러운 할머니들께서는 한 마디만 하고 자리에 앉으시곤 했는데 그 한 마디가 나를 울렸다. 특히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는 어느 할머니의 말씀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연신 서울에서 온 우리에게 고맙다고 손을 잡고 눈을 맞추셨다. 70세의 할아버지가 ‘청년회장’으로 추천받고, 40대는 ‘알라(어린애)’로 보는 이곳에서 젊은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잠깐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 밀양으로 오는 모습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단다. 어르신들의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20대인 나와 친구들도, 40대가 훌쩍 넘은 전교조 선생님들도 어르신 말씀을 잊지 않겠다, 다시 꼭 오겠다는 말만 되뇌며 다시 서울로 출발했다.

지역이슈가 아닌 ‘핵발전소’의 문제

송전탑 문제는 밀양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는 지역 이슈가 아니다. 즉 이치우 어르신이 몸에 불을 붙이고 목숨을 내 놓고 송전탑을 막은 이유는 밀양의 송전탑 때문만은 아니다. 송전탑은 밀양뿐 아니라 광양, 당진 등 전국 각지에서 건설될 예정이다. 고리 핵발전소, 영광 핵발전소 등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한다. 정작 에너지의 대부분을 쓰는 서울에는 발전소가 없다. 서울 및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지역 주민들과 생명들이 내쳐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에 대한 불안도 송전탑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작년 여름, 전국적으로 순차적 정전이 일어난 일이 있다. 뉴스에서는 전력 부족의 이유를 들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른 더위로 전력량이 증가하고, 언론과 정부에서는 전력 부족에 대한 뉴스를 연신 알려준다. 여기선 마치 원자력 발전소가 없으면 석유 고갈 시대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뉘앙스도 풍긴다. 전력이 부족하면 불철주야 일하는 구조를 조정하거나,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 패널티를 주는 등 다양한 방법을 짤 수도 있을텐데 정부가 내놓는 대답은 원자력 발전소의 계속된 건설이다. 후쿠시마의 무서운 재앙을 보면서도 이는 바뀌지 않는다.

밀양 송전탑 문제의 핵심은 ‘핵발전소’이다. 핵발전소는 전세계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고,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 사태로 위험성과 불안정성이 여실히 확인되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핵발전소를 지으려 하고,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력을 실어나르기 위해 이토록 많은 이들의 삶을 빼앗아야 하는가. 밀양 어르신들을 비롯해 송전탑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여줬으면 한다. 핵발전소에게 어르신들의 삶이 더 이상 뺏기지 않도록 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녹색평론》제123호 2012년 3-4월호 www.greenreview.co.kr
<누구를 위한 송전탑인가>, 이승희

응답 4개

  1. 개구리아빠말하길

    꼭 승리하세요.
    아무리 물질만능시대라지만 마침 나라일이니 무조건 밀어 붙이려는 한전의 행태에 개탄하는 바입니다.

    공사시기에 맞춰 지중화를 준비 했어야 되는것 아닌가요?
    이제와서 시간이 없다니…
    그런 이상한 철학은 어느나라 헌법에 있나요.
    아마 북한에도 없을걸요.
    저는 심지어 합의도 안했는데도 만들더라구요(송전탑)

    자연 경관도 문제지만 인체에 크게 무익하건만 왜 지중화를
    하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2. […] | 동시대반시대 | 밀양 어르신들의 외침 – 밀양 송전탑 투쟁현장 방문기_이경 […]

  3. 이계삼말하길

    이경 님, 좋은 글 고마워요. 그날 상황을 이렇게 생생하게 옮겨놓으니 다시 그날의 기억이 나네요. 연대의 힘을 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저희들은 씩씩하게 잘 싸우고 있습니다. 어제는 4개면 주민 노래자랑 대회도 하고, 함께 ‘두개의 문’도 보았어요.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그 마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주민들끼리 아주 평화로운 단결의 밤을 보냈지요. 평안하시길..

    • 이경말하길

      그날 바쁘신 와중에도 안내해주셔서 감사해요 ^^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어르신들 말씀 중 많은 이들에게 받은 관심을 다시 베풀고 싶다, 투쟁이 잘 끝난 후 지역모임을 만들고싶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때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우와~! 노래자랑대회 일정을 알았으면 가는건데~아쉽네요. 어르신들의 노래솜씨 듣고픈데 ㅎ.
      그때 밀양 갔던 친구들 중 몇몇이 7월에 밀양을 또 가려구해요. 여비도 마련해두었답니다 ^^ 큰 도움이 안될지라도.. 농사일도 거들고, 어르신들이랑 수다 떨러 갈게요. 그때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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