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비옷

- 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

오늘은 동건씨를 만나러 가는데,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버스를 타기 직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버스에서 내리고 동건씨가 사는 곳 골목으로 다가서니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동건씨 집에 들어가니, 동건씨는 저녁을 먹고 몸을 씻고, 신발까지 신고 휠체어에 앉아 외출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바깥에 비가 많이 내린다. 동건씨는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바깥으로 나가자고 한다. 동건씨는 수동휠체어를 쓰기에 손이 놀지 않는다. 비오는 날 외출을 하려면 비옷이 있어야 하는데, 비옷이 없다. 나는 장애인이 비오는 날에 외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를 맞으면서 휠체어를 밀고 싶지는 않다. 동건씨에게 비옷을 사야 한다고 말 한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그 비옷 얼마나 한다고 네 돈 주고 사라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평소에 비옷을 입는다면 모를까, 활동보조를 하지 않을 때 비옷 입을 일이 없음에도 내 돈으로 사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그는 외출을 빨리 하고 싶어 씻는 것을 생략하기도 한다. 씻을 시간에 차라리 외출을 빨리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출욕구가 크다 보니, 필요한 것을 미리 사둔다거나, 전자기기 수리를 맡기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동건씨는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특별히 영화에 취미나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딱히 그것 외에는 할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문화바우처를 받기 위해서는 은행에 들러야 하는데, 당장에 영화를 봐야 하는 욕망이 크기에 문화바우처는 충전되지 못한 채 벌써 몇 달이다.

냄새나는 그의 몸, 혹은 미리 준비되지 않는 그 무엇들. 오늘은 그 무엇이 바로 비옷이다. 그는 한 시간동안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창밖만 바라본다. 빗줄기가 얇아진 틈을 타 강력하게 외출을 주장한다. 나는 그의 휠체어를 밀고 길을 나선다. 하지만 길을 가는 도중에 빗방울이 굵어진다. 결국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중간에 멈춰 떡볶이와 순대를 사먹기로 한다. 순대와 떡볶이를 먹고 집으로 들어온다.

이제 곧 장마철일 텐데 그는 나의 비옷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라고 나의 비옷을 신경 쓸 이유는 없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빗속에서 그의 휠체어를 밀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밀어야 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한 상황이 닥쳐온다면 수긍해야 하고 수긍하겠지만, 내가 부러 그러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아마도 다음에 또 비가 올 때 동건씨가 외출을 요구하면 나는 다시 비옷을 핑계로 집에 있자고 설득할 것이다. 나는 그를 돌보지 않는다. 그의 활동을 보조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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