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1. 달라이라마의 행복 철학

“우리가 시간을 잘 사용한다는 것, 우리가 잘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생명을 더 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계 못한다면 .해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 철학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달라이라마는 그의 말대로 잘 살리기 위해서 아주 잘 살고 있는 사람이야. 그는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기보다 불행하다는 사람들의 불행을 듣고 그의 지혜로 그 불행을 던져버리게 하거나 덜게 해주니까.

그는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인간도 잘 사는 것 즉 행복이 생명의 목적이래. 그리고 그는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인간의 바람직한 가능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 인간의 선한 가능성을 실현해서 잘 사는 것 그래서 행복해지는 것이 그의 철학이고 그가 말하는 수행의 목적이야. 생명의 목적은 그 생명이 가진 경험 가능성을 실현하여 잘 사는 것이라는 하버지의 믿음과 어쩌면 그렇게 일치하니.

이러한 달라이라마의 철학과 행복론으로 행복해지려면 먼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 대. 왜냐하면 그 선한 성품을 밖에서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서 더욱 밝혀야 하기 때문이래. 그러나 인간이 자유로운 만큼 선과 악 양쪽의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하버지의 인간 이해와는 달랐어.

그는 인간의 인지능력 즉 지능이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 같아. 분노나 공격성은 지능이 있기 때문에 생긴대.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비로운 존재였으나 지능 때문에 분노나 공격성이 생겼으므로 분노나 공격성은 이차적이고 표면적인 마음이라는 거야. 그러나 자비심이 지능과 균형을 찾게 하며 수행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야. 이러한 인간 이해는 진화과정을 거꾸로 적용시키는 같았어.

그는 자기 마음속을 속속들이 다 털어서 내보여줘. 그래서 감추고 숨기는 것이 없는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해. 그는 도덕적이고 상투적인 설교를 하지 않아. 그는 어떤 마음이 행복에 도움이 되는가. 왜 그런가. 그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이치대로 설명해. 부정적인 마음을 쓸어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거야. 그게 수행이라는 거야. 여기서 긍정적인 마음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랑과 자비심은 남을 잘 살게 하려는 마음 이래. 그리고 자비와 사랑을 가지려면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

그의 행복론과 철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하버지와 달랐으나 하버지의 신념들과 놀라울 정도로 같았어. 그래서 하버지의 신념들이 옳았음을 그에게 인정받는 기분으로 그의 책을 읽을 수 있었어. 그리고 행복을 찾는데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말하고 있어. 그렇다고 해서 시중에서 흔히 팔리고 읽히는 행복론처럼 결코 싸구려 행복이 아니야. 나는 그가 위대한 인류의 스승 중에 하나라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아.

2. 수행

어떤 심리학자들은 일란성 쌍둥이는 따로 떨어져 자라도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로 보아 태어나면서부터 행복을 느끼는 기본 수준이 두뇌에 새겨져 있다고 믿게 되었대. 그러나 또 다른 심리학자들은 마음, 즉 우리의 경험체계이며 해석체계를 변화시키면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고 있어.

우리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살아남으려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생존에 필요한 기본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뇌세포들끼리 배선되어 있대. 그러나 그 배선이 생존 욕구 즉 본능에만 따르도록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래. 아니, 우리 뇌는 경험에 따라 재구성 되는 창조적인 것이래.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그것에 맞추어 새로운 행동을 설계한대. 아니, 배선이 바뀌는 것이 새로운 행동의 설계지. 그래서 새로운 배선에 따른 전기신호로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된대.

뇌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변화능력을 적응능력이라고 하며 이 적응능력 때문에 마음 수양이 가능해진대. 한 번의 깨달음은 새로운 신경 연락망을 만들고 깨달음을 계속 되새기면 고속도로와 같이 소통이 원활해지지만 되새기지 않으면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된대. 그러니까 수행은 깨달음으로 부정적인 경험체계를 긍정적인 경험체계로 바꾸려고 뇌세포의 회로를 바꾸는 것이며, 또 깨달음을 더 깊이 더 넓게 만들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노력이래. 그래서 수행은 행복하려고 그리고 성숙하려고 경험체계를 바꾸는 집중적인 노력이래.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미국의 일리노이 주에서 복권 당첨자들과 영국에서 축구 도박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을 조사했대. 횡재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지만 기쁨이 차츰 줄어들어서 마침내 일상적인 행복을 느끼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거야. 또 다른 연구 사례는 중풍이나 암이나 실명 따위 비참한 일을 겪은 사람들도 일정한 적응기간이 지나면 일상에 가까운 행복의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거야.

이 두 사례가 말하는 것은 행복이나 불행이 외적 조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야. 사람마다 일상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수준이 다른데 이 수준은 본인의 일상적인 마음가짐에 달려 있대. 이 두 사례는 마음가짐, 마음먹기 즉 수행의 가능성과 함께 필요성을 보여주는 거야.

마음의 수행이란 긍정적인 생각을 키우고 부정적인 생각을 물리치는 집중적인 노력이래. 우리가 긍정적인 경험체계와 해석체계를 가져야 행복해질 수 있대. 우리가 누군가에게 나쁜 마음을 가지면 그 마음이 남을 해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먼저 해치기 때문이래. 그러나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남들이 해쳐도 우리의 마음은 행복을 잃지 않는대.

나쁜 마음은 독성이 강한 신경전달 물질이 나오게 만들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고 그것이 온몸에 퍼져 우리의 뇌파와 심장 박동과 호흡을 흐트러뜨리고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대. 반대로 좋은 마음은 세라토닌을 비롯한 좋은 신경전달 물질이 나와서 행복한 마음을 만들고 신체의 모든 리듬을 안정시키고 생리현상에 활력을 주며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대. 그러니 우리는 긍정적인 마음,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애써야하는데 그게 바로 수행이라면 수행은 가능하고도 필요한 거야.

긍정적인 경험체계로 바꾸는 일은 많은 노력을 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린대. 수행이란 운동선수가 운동을 연습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대. 축구 선수가 어떤 기술을 몸에 익혀서 실제 상황에서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오랫동안 수많은 연습을 해야 하잖아. 수행자도 어떤 하나의 긍정적인 마음을 생활화하려면 한 번 크게 깨달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래. 오랫동안 실천하면서 깨달음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야 실제 상황에서도 저절로 그 마음으로 그렇게 행동하게 된대. 뿐만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까닭은 가져야 되는 긍정적인 마음이 한두 가지가 아니래. 그래서 수행에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자기를 완성하여 행복해지기가 어디 쉽겠어.

분노나 미움은 낚시 바늘같이 미늘이 있어서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대. 그러니 수행자는 분노와 미움을 꾹 눌러 참는 것이 그 미끼를 물지 않는 거래. 분노나 미움을 누르면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를 알고 나서 그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이 성숙해야 한대. 그를 설득하려고 지혜를 짜내는 것이 나의 성숙 과정이래. 만약에 그를 조금이라도 설득시켰다면 바로 그만큼 내가 성숙한 거래.

그런데 정말로 까닭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설득이 전혀 불가능하다면 그를 우리의 인내심을 단련시키는 스승으로 생각하고 받들라는 거야.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고 긍정적인 경험체계를 완성하는데 그가 수준 높은 과제를 제시하여 도움 주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라는 거야. 운동선수가 비지땀을 흘리며 힘들게 연습해야 기술과 체력을 키울 수 있듯이 수행자도 괴로운 일에서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을 씨앗을 찾아내려면 오랫동안의 힘든 수행과정이 필요하대. 이른바 우리의 적들이 우리의 스승이 되어 우리를 단련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유치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대.

그러나 하버지는 히틀러와 같은 사이코패스가 인류를 전쟁으로 몰아넣어 멸망의 위기가 닥쳐오는데도 히틀러를 나를 단련시키는 스승으로 받들어 섬길 수 있는지 묻고 싶어. 이런 상황에서 그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려 행복을 추구해도 멸망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야. 본 휘퍼라는 독일의 목사는 미친 기관사를 끌어내려야 한다며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처형되었어. 하버지라면 이 경우 본 휘퍼의 정의로운 살인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달라이라마는 어떤 경우라도 살인은 안 된다고 하겠지만 하버지는 옳고 그름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를 둘러싼 상황이 결정하는 거라고 믿어. 사회적인 행복을 추구하는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의 이러한 한계는 알고 가자꾸나.

우리의 마음, 즉 경험체계이며 해석체계는 우리에게는 만물을 비춰주는 안경이야. 그 안경을 우리는 관점이라 하지. 만약에 우리의 안경 즉 관점이 일그러져 있거나 먼지와 때가 끼어 있거나 여러 색깔이 뒤섞여 칙칙하다면 우리는 사물을 엉뚱하게 받아들이고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얽어 짠 경험체계, 해석체계로 살아가야 해. 그것은 어리석음의 악순환이야.

수행하는 우리가 괴로움에서 언제나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될 만한 근정적인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려면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야만 해. 우리의 마음, 즉 경험체계이며 해석체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현대 신경과학이 뒷받침하고 있어. 그러나 어떤 일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부정적인 경험체계 해석체계를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경험체계이며 해석체계로 바꾸려면 굳은 결심과 많은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달라이라마가 강조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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