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하여!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인터뷰(1)-

- 정정훈(수유너머N)

한국 정치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만큼 오랫동안 논의되고, 또한 강렬하게 추구되었던 정치적 가치가 있었을까? 오직하면 한 시인은 민주주의라는 이름 ‘타는 목마름’으로 불렀겠는가? 그러나 군부독재가 물러가고 소위 민주화 세력이 집권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민주주의는 ‘타는 목마름’을 불러일으키는 이념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MB정권 출범 이후 우리는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듣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대로된 대의체제의 부실, 즉 정당 정치의 부실에서 찾으며 민주주의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이에 맞서 사회운동으로 대표되는 인민의 능동적 힘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령임을 주장하는 논자들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다.이런 이론적 상황에 더하여 최근 불거진 통합민주당 부정경선사태와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는 진보진영, 혹은 좌파진영 내부의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란 무엇을 뜻하며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정치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한국 사회의 해방을 목표로 활동해왔던 진보적 정치세력 내부에서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한국 정치의 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 연구해 왔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실천을 위해 애써온 조희연 선생님을 만났다. 그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게제한다.

정정훈 (이하 정) : 오랫동안 민주주의 연구를 해 오셨다. 하지만 80년대에는 맑스주의적 변혁론의 문제의식이 강했다고 한다면, 90년대 이후에는 진보적 시민운동의 맥락에서 작업을 하신듯 하다. 하지만 MB정권 출범 이후에는 다시 좌파적 입장에서 민주주의를 강조하시는 것 같은데 이런 지적 흐름에 대해서 스스로 어떻게 자기 정리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조희연 (이하 조) : 저한테도 흥미로운 질문이다. 넓은 의미에서 80년대 민중운동 혹은 진보적인 좌파적 학술진영의 내부에서 활동하던 상황하고, 80년대 후반과 90년대 후 민주화 이후 국면이 열리던 시기의 학술적, 실천적 활동하고, 최근 민주정부를 거치고 민주정부 이후 시기, 즉 포스트 민주화 시기에 있어서 나 자신의 지적, 실천적인 작업이 변화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급진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통해서 가능하면 우리의 80년대 변혁적 좌파적인 정신과 지향을 성찰적으로 계승하면서도, 90년대와 2000년대 활동의 경험들, 즉 시민사회운동에의 개입과 FTA 반대 투쟁이나 부시 낙선 운동 등 글로벌 반세계운동에의 참여라는 경험들을 급진민주주의 속에서 결합하려는 생각을 해 왔다.
지금도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시민사회 좌파적인 지적 실천적 활동이 갖는 합리적 핵심들을 좌파이론의 풍부함 속에서 담아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존의 좌파 진영 혹은 맑스주의 진영에서는 시민사회에 대한 외재적인 이데올로기 비판, 시민사회의 한계들을 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반해서 내가 주목해온 그람시의 이론 안에는 시민사회 내의 변혁적 개입이라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러한 문제의식에는 단순히 변혁적 실천의 외연 확장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시민사회 그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고민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또 민주주의와 연결되는 것 같다.
근대적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국가와 시민 사회의 분리에 위에 서있다. 국가로부터 시민사회의 분립이라는, 다시 말해 국가가 모든 권력을 담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사회, 시민권, 개인의 자유와 같은 문제들과 관련되는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좌파가 어떻게 대면할 것이냐는 문제가 이 전제와 관련된다. 좌파는 시민사회라는 문제를 외재적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서, 즉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외피라고 비판하는 방식을 통해 기각해 버렸는데, 지금 우리가 좌파적 논의들을 새롭게 풍부화할 때는 그 문제들을 끌어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굉장히 급진적으로 끌어와야 하는 것 같다.
90년대 박원순 변호사와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원래 문제의식은 시민사회의 변혁적 개입이라는 것이었지만, 일단 시민사회 내부의 실천이 되는 순간 ‘시’민이라는 프레임 내부에 유폐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시민 사회 운동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좌파적 입장에서 시민사회를 존재론적으로 긍정하고, 변혁적 시민사회 운동을 하고자 했을 때 문제의식을 계승한다고 했을 때는 훨씬 더 급진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시민사회에 개입하고, 시민사회의 경계를 넘어서고, 시민사회의 경계를 해체하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80년대 변혁적 좌파적인 논의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고, 90년대 중반~2000년대의 시민사회의 좌파적 개입이라는 문제의식을 급진 민주주의 속에서 결합해내는 것이다. 현대 사회주의 이론, 맑스주의 이론의 혁신도 그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당환원론과 운동중심주의의 이분법을 넘어서

정 : 급진민주주의론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조 : 급진민주주의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우선 장훈교와 같은 내 학생이나 이승원, 서영표 손우정 등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의 동료들에 의해 추동된 면이 적지 않다. 후배들에 끌려 온 것이다. (웃음) 이론적, 정세적 차원에서 보자면 민주정부 중기에서 말기는 민주주의를 다시 문제 삼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민주주의를 형식적 차원에서 보면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었고, 아시아에서 비교해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공세 속에서 민주주의가 허구화되는 상황, 민주주의를 담지한다는 민주정부의 대중적 기반이 균열되어 가는 상황, 신보수세력이 헤게모니를 가져가는 그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의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같이 했던 것 같다.
그 속에서 최장집 선생님의 논의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지게 된 것 같다. 사실은 최장집 선생님과 가까운 사이다. 최장집 선생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와서 지금의 진보적 좌파적 학술 진영에 착근하게 된 것은 ‘조희연 탓이 크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상황이고, 저도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많이 배움을 받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론적 차원에서는 좀 다른 지점은 분명히 있다. 노무현 정부 중후반의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최장집 선생님의 입장이 굉장히 정당에 대한 강조로 경도되었던 것 같다. 초기에 그것을 정당한 문제의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좋은 정당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거리의 투쟁이 소모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좋은 정당, 진보적 정당, 사회운동 정당의 필요성이 큰 것이다.
그런데 최장집 선생이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반운동적인 정당 강조론으로 가시는 경향이 생기더라. 그 경향이 촛불시위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드러났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강화되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시민운동이건, 민중운동이건, 노동운동이건, 진보정당이라는 것은 사회운동 정당이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최장집 선생님이 입장, 즉 반운동적인 좋은 정당론은 좌파적인 관점에서 수용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7년 1월의 진보 논쟁에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당연히 전제했다. 그때 최장집 선생의 논의는 두 축으로 전개되었던 것 같다. 하나는 운동적 역량을 정당으로 수렴하지 못했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세력이 신자유주의적으로 경도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좀 고민을 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대해 돌 던지기 방식은 너무 편한 방식이다. 그리고 노무현의 캐릭터 문제, 노무현의 계급적 사회경제적 본질의 문제로 환원해서 비판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던 것 같다. 내가 노무현 정부의 위치에 있다면, 진보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베네수엘라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베네수엘라는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것을 느꼈다. 친차베스와 반차베스로 양극화되어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그 두 진영의 전선을 해체하면서 중간지대를 획득해내는 헤게모니 전략이 아니었을까? 특정 공간에서 형성된 제한적인 계급적 힘이지만 그 힘을 실제로 더 확장하면서 실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종의 확장적 헤게모니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객관화된 계급적 정치적 힘으로만 환원하지 말고, 확장적 헤게모니나 축소적 헤게모니로 작동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도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떠냐. 그런 식의 문제설정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 최장집 선생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환원주의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정당 중심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내가 더욱 급진민주주의론을 고민하게 된 중요한 맥락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런 문제의식이 결과적으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연결되는 것 같다. 만일 단순히 힘의 무게로만 정치를 사고한다면 헤게모니를 얘기할 필요가 없다. 힘의 무게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영역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헤게모니라는 영역일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일종의 헤게모니 전략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만약 노무현 정부가 헤게모니 전략을 통해서 자신의 제한된 역량들을 확장적 헤게모니로 전환하면서 실천하면서 친보수정권의 헤게모니를 막는 경로는 불가능했는가, 이런 고민을 개인적으로 하게 됐다.
실제로 지금도, 진보당도 그렇고, 진보 세력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는 중도개혁자유주의세력이었는데 그 세력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계급적, 정치적 역량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조건 속에서 훨씬 더 제약되어 버렸다. 이미 막강해진 한국의 자본권력과 시장 권력이 있다. 막강한 조중동 보수 미디어 권력이 있다. 전세계의 모든 진보 세력이 직면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국제적 조건, 강력한 자본권력, 시장권력, 보수미디어 권력 속에서 우리가 전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의 제한된 힘을 확장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직 공백은 많지만 급진민주주의의 내포적 구성요소들이 우리 속에서 구체화되지 않았을까.

정 :선생님과 선생님이 참여하고 계시는 ‘급진민주주의 연구모임 데모스’의 급진민주주의론은 거리의 정치, 혹은 운동의 정치를 정치의 중핵으로 삼는 입장에도 일정하게 비판적임과 동시에 최장집 선생 그룹의 정당 민주주의 진영의 입장과도 긴장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최장집 선생 그룹의 민주주의론은 어떻게 보시나?

조 : 우리가 논문 쓸 때도 그렇지만, 가설적으로 최장집의 민주주의 민주화론과 차별화시켜보자고 생각하니까 아무래도 최장집 선생님의 입장에 비판적으로 사고가 전개된 것 같다. (웃음)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근대민주주의라는 것이 정당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로 인식되고 있지만 근대 이후 민주주의 혹은 넓은 의미의 정치가 한 번도 정당민주주의나 의회민주주의로 일체화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당민주주의는 출발 당시부터, 민주주의적 정치가 정당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괴리를 가지고 원래 출발했던 것이 아닐까. 그 갭을 사회주의는 직접민주주의라는 말로 표상했던 것이다. 파리 코뮨에서 민중의 직접정치라는 모델로 생각했던 것 말이다. 현대의 하버마스의 숙의민주주의 같은 것도 그 공백을 정당민주주의와 구별되는 민주주의적 기제들을 확장해보려는 문제의식이라고 할 때, 결과적으로 정당민주주의로 환원하는 것은 원래 민주주의론의 역사적 기원으로 봐서도 정당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정당은 국가기구인데, 특정한 사회적 지형 내에서 대중의 지지 혹은 대중의 정치적 선호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기구다. 운동은 그 사회적 지형을 바꾸려고 하는 집단적 실천인 것 같다. 이 두 가지가 상당히 상호작용을 하고, 특히 한국처럼 정당의 사회적 지형 자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해체되면서 재구성되는 상황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정당과 운동의 관계에서, 정당만이 정치의 중심이거나 운동만이 정치의 중심이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처럼 역동적으로 정치의 지형 자체가 변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정치를 분석하기 위해서 정당과 운동의 상호작용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후 한국 사회의 질서를 틀지운 53년 체제로부터 87년체제를 거쳐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 까지 정치, 경제, 사회의 관계가 상호 작용하면서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고, 민주화 이후에 경제와 정치와 사회의 역동적 관계가 이미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온전히 고려하면서 분석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정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협의의 제도 정치의 몫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급진민주주의의 실천방식으로서 사회운동정당

정 : 일반적으로 그람시의 헤게모니가 90년대에 논의될 때는 시민사회의 맥락이 중요했다. 그 논의의 핵심은 시민사회에 다양한 진지들을 쌓아서 헤게모니를 구축하자는 진지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람시의 사상 중에서 또 다른 중요한 축은 현대의 군주라고 불리는 정치정당론이다. 시민사회 뿐만이 아니라 정치정당이 헤게모니 전략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사회운동정당이라는 것은 헤게모니 전략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인가?

조 : 사실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쓸 때, 너무 확장해서 쓰는 것이 아니냐고 우리 팀에서 나에게 비판을 하곤 한다. 헤게모니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웃음) 그람시는 사회구성론적 변화과정에서, 특히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지배계급이 변하는 거시적 사회구성적 변화의 맥락에서 역사 블록을 이야기하고, 현대의 군주를 이야기하고,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이야기했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사용하다 보면 확장이 불가피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원래의 사회구성론적 전환의 맥락에서 헤게모니 개념 보다 더 확장적으로 나는 사용하는 편이다. 헤게모니라는 것이 두 개념으로 번역된다. 패권이라는 의미와 지적 도덕적 문화적 리더십이라는 의미. 후자의 견지에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단지 사회구성적 전환의 맥락이 아니라 모든 정치적 시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개념으로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비판을 받을 지점이기도 하고 딜레마이기도 하다.
두 번째, 그람시를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할 것이냐 하면, 시민사회적 실천 속에서 헤게모니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당의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헤게모니를 이야기할 수 있는 맥락이 있다. 헤게모니 개념을 최장집 선생도 사용하고 우리도 사용한다. 당적 실천에 있어서도 헤게모니적 실천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 시민사회 내에서 진지전적인 차원에서도 헤게모니를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람시는 변혁정당의 헤게모니라는 맥락에서, 변혁정당의 실천 속에 연결되는 시민사회의 헤게모니적 실천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람시는 레닌주의자적인 얼굴도 있고, 공장 평의회주의자의 얼굴도 있고, 탈레닌주의자의 얼굴도 있는 것처럼 여러 얼굴이 있어서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당의 실천의 풍부화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이야기된 지점이 있기 때문에, 최장집 선생님의 좋은 정당은 꼭 변혁정당으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적 실천과 헤게모니를 연관시켜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도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 거리의 운동 정치와 정당 정치의 양자 중에 하나를 강조하는 입장에 대해서 선생님은 사회운동정당이라는 기제를 들고 나오신다. 사회운동정당일라는 것을 통해서 한 쪽만 강조하는 양자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보시는가? 급진민주주의에서 사회운동 정당의 의미는 무엇인가?

조 : 정당민주주의로 정치가 왜소화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정치의 진정한 장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저도 가끔 사회적 정치로 얘기해 보려는 지점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상황, 쌍용자동차의 노동자 22명이 자살하는 상황,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상황은 사회의 위기인 것 같다. 공동체로서의 사회의 위기라는 측면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적인 논리로 작동하는 조건에서는 사회의 위기는 항상적이다. 사회의 위기를 담아내는, 위기 속에서 사회와 소통하는 정당이어야 한다. 그 위기 속에서 새로운 저항성, 저항적 정치가 움트는, 새롭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사회와 소통하는 정당이 불가피하게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에 정당민주주의의 제도 모형 자체를 급진적으로 사고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대의민주주의의 대의 형식도 여러 가지가 있다. 결사의 자유는 헌법적 권리니까, 다양한 사회적 결사가 다양한 정치적 대표될 수 있는 제도 모형으로 짜면 어떨까 싶다. 요즘 정세적 판단 속에서 간혹 ‘연합정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예 정치를 항상적인 연합정치로 사고하면 어떨까 생각도 든다. 지금은 패권적인 두 정당의 문제다. 그래서 소수자 운동 혹은 소수자 세력이 자기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매우 제약되어 있다. 2% 이상의 정당 지지를 얻는 정당만이 정치적으로 대표성을 갖는 제도 모형인 것이다. 양원제로 바꾸던지 해서 손쉽게 다양한 사회적 이해가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기존의 보수양당 정치의 독점성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제도 모형을 짤 수는 없을까?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어떤 정당도 일정하게는 사회적 정당일 수밖에 없다. 어떤 정당도 변화하는 사회와 연결되지 않는 정당은 없다. 대중의 지지와 정치적 선호가 변하니까. 그게 단지 4년이나 5년마다 이뤄지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호로만 표현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대중의 의사가 제도에 일상적으로 투영되는 기제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에는 IT가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 심지어 국민 투표, 국민 발의권, 국민 소환인 직접민주주의적 모델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본다.

정 : 정당이 사회 세력과 소통한다는 것과 정당이 사회 세력을 대의한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

조 : 변화하는 사회적 지형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데, 고정된 사회적 지형에서 표 경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사회적 지형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일정 측면에서는 기존의 정치가 대의하지 못하는 집단이 있고, 이 집단이 두 정당에서 단순 표의 합산으로 대표되는 방식을 넘어서야 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쉽게 이야기하면 진보 정당이 더 대표되어야 하고, 녹색당도 나와야 하고, 해적당도 나와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정당은 정책 변화를 통해서 대중의 지지를 습득한다. 기존의 정당은 그대로 있고, 정책 변화를 통해 지지를 흡수, 획득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대의 민주주의에서 딜레마다. 포괄위임이냐, 제한위임이냐. 한번 뽑고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지점이 있지 않나? 급진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민주주의는 부단히 기존하는 권력들에 의해서 식민화되는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기존의 민주주의 혹은 그 민주주의의 일부로서 정당이 탈식민화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그것은 결국 사회운동적인 힘, 사회의 힘을 통해서 식민화를 견제하는, 자본권력과 시장권력과 같은 기존의 권력에 의해서 민주주의와 정당이 식민화되는 것을 상쇄할 수 있을 때, 그 공간만큼 소수자가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민주주의를 문제시 삼아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재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는 식민화될 수밖에 없다. 돈 나오는 곳은 대기업이다. 미디어가 있다. 우리는 추상적으로 기존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나 정당이 식민화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삼성은 돈의 힘으로 386 정치인들을 장학생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식민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민주주의나 민주주의적 정치에는 배제된 전제들의 이해가 실제 이상으로 반영되기 어려운 것 같다. 식민화의 권력이 사회 운동적인 힘에 의해서 상쇄되어야만 정당이 일정하게 한계 속에서 대표성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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