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농사 일지, 네 번째. – 타는 목마름으로 S.O.S.

- 김융희

나는 지금까지 물의 중요성을 그저 생각만으로 예사롭게 여겨 왔던 것 같다.
“목마른 고통이 배고픈 고통보다 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뜻을 새겨 듣기 보담 그냥 있음직해서 하는 말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인간이 달을 정복하면서 그 곳에 생명체가 존재하느냐의 관심에서도, 먼저 그 곳에 물의 존재부터 확인하려드는 저의를 이제는 알겠다. 생명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가 아닌 “물은 생명 그 자체”임을, 나는 지금 실존적 현장체험으로 절감한다.

결코 짧지 않는 생애에서 나의 가믐의 경험 또한 적지 않게 있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지금의 가믐이 아무리 극심해도 내 체험의 고통으로 따지면 옛에 비해 별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지금은 댐에 물을 담아 잘 관리하는 수리시설의 혜택으로 옛 기억도 잊혀지고 있어 새삼스럽다는 느낌마저 없잖다. 물론 그 때는 지금처럼 잘 살 때가 아니라, 직접 생산하지 못하면 식량을 구할 길이 없었다. 지금처럼 수입해오면 되는 시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근을 면하려 송기죽에 쑥밥으로 연명했던 옛 경험이 새롭다.

옛날엔 꼭 흉년이 아니었더라도 먹거리가 없어서 주위에 부황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흔했다. 철저하게 자연에만 의지하여 천수답에 농사를 짖고 살 적에는 보름만 비가 내려주지 않음 쩔쩔 메다가, 한 달만 넘으면 모든 농작물을 포기해야 했으며, 그 대가는 기근에서 아사까지 이어지는 재난이었던 것이다. 그런 가믐의 피해가 빈번했던 시절이 엊그제였던 것 같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 대부분이 춘궁기를 비롯한 배곺은 설음이 지겹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은 먹고 살 뻬는 일이 큰 부담이 되고 있으니 정말 격세지감이다.

나의 지금까지 물에 대한 관심을 철저하게 반성한다. 생명 그 자체며 절박한 실존적 체험까지 생생한 내가 그동안 너무 물의 존재를 망각했다. 우물을 이어준 식수관이 노후해 조금씩 세고 있음에도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방치해 두었다. 그런데 요즘 가믐으로 우물물이 딸려서야 이제 비로소 수리를 했다. 그동안 세나간 물의 낭비와 전기 소모를 대수롭게 여기다가 바로 닥친 고통을 면하려고 겨우 서두른 것이다. 이처럼 물을 소흘히 여겼던 것이다.

제법 현명한 것처럼 여겨온 우리이지만, 정말 그럴까? 당연히 지킬 수 있는 건강도 외면하는, 예를 들면 요즘 흡연자들을 보면서도 상하가 아닌 좌우의 고개를 흔들게 된다. 매일 그것도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하며 지내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보면서 지금 이 착잡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전국이 타는 목마름의 극심한 한해(旱害)로 뭇 생명체들이 고통을 겪고있는 지금도 우리들의 물의 관심과 관리를 보면서, 보다 더욱 현명한 관심이 절실하다.

이는 결코 나의 지나친 엄살도 과장된 표현도 아니다. 또한 나의 우둔인가? 여린 심성인가?라는 한가한 소리가 아니다. 지금 현장에서 겪는 절박한 생명체의 긴급 에스오에스이다.
우리 집은 도로곁에 있고, 도로 아래에 400여 평의 텃밭이 있다. 이 텃밭에는 예부터 식수를 제공해 온 샘이 있고, 바로 곁으로 칠팔 미터 강폭의 내가 흐른다. 개천의 수량이 그리 많치는 않지만, 이곳 우물은 동내 식수를 충분히 공급했던 풍부한 수량의 샘으로 가믐을 모르는 지금까지 대한불갈(大旱不渴, 대단한 가믐에도 물이 마르지 아니함)의 환경이다.

지난 겨울에는 눈다운 눈이 거의 내리지 않고 겨울을 넘겼다. 그런데 봄을 맞아 지금까지 비다운 비가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 생애에 그동안 수차례의 가믐을 겪었지만 거의 반 년의 대한(大旱), 이같은 경험은 처음이다. 처음은 비실거리는 작물을 샘물로 달래며 비를 기다렸다. 그런데 샘물이 자꾸 줄어든다. 결국 샘물을 아끼려고 냇물을 퍼올려서 뿌렸다. 매일 반복해서 해야하는 고통은 컸지만, 곧 비가 와 주겠지… 기대하며 힘들었지만 계속했다.
그런데 기다리는 비는 내리지 않고 날씨는 여름이다. 매일 맑은 하늘에 찌는 더위로 정말 힘들다. 소흘하면 맥없이 주잕은 농작물이 안쓰럽다. 그런데 예사가 아니다. 강물이 계속 말라 간다. 벌써 흐르는 물이 끊긴지는 오래 전이다. 이제는 웅덩이에 고인 물을 떠와야 했다.

더욱 힘들지만 웅덩이의 줄어든 물을 지켜보는 마음은 더 고통이다. 웅덩이로 모여든 고기들의 안절부절한 모습은 정말 안타깝다. 자란 물고기들은 돌속에 숨어 보이지 않지만, 아직 속없는 어린 치어들의 철없이 노는 모습이 안타깝다. 간혹 물통에 따라온 어린 것들 때문에 퍼올린 물을 다시 옮겨 웅덩이에 쏟을 때면 짜증도 난다. 그러나 어린 생명체의 안타까움에 참고 했던 애쓴 보람도 없이, 그 웅덩이가 지금은 말라 물도 고기도 없다. 이제 규모 큰 웅덩이 한 두 개에 겨우 물이 있어 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물마저 수량이 계속 줄고 있다.

물이 남아있는 웅덩이엔 물보다 고기가 많다. 그 많은 고기가 먹을 것인들 벌써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시시각각으로 줄어들고 있는 물을 퍼 올려, 가꾼 작물에 계속 뿌려야만 한다. 이제 샘물은 식수로 겨우 쓰일 정도이기에, 농작물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웅덩이의 물을 퍼 올려야겠다. 줄어든 수량을 보며, 노니는 어린 치어를 보면서, 참아 물을 뜰 수 없어 돌아서기도 했지만, 또 고개 숙여 시들은 작물을 보며 다시 웅덩이를 찾는 것이다.살기위해 버티고 있는 어린 고기때들이다. 나는 지금 이 갈등속에서 매일을 지내고 있다.

제발 비가 내려 주었으면 싶다. 밭아가는 물에 먹이도 없이 버티고 있는 웅덩이의 고기들이다. 작물에게 물을 뿌려보지만, 작물에게도 큰 도움은 안되나 보다. 성장도 결실도 더디고 비정상이다. 물을 사이에 두고, 사투를 벌이는 고기때와 타는 작물들 사이에서, 별로 도움도 안되는 일로 고통까지 안기면서 내가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심신이 괴롭고, 모두가 힘들다. 자연의 위력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그동안 농사 일지를 안써 왔다., 마침 시작은 십여 차례를 쓰려 했는데, 이쯤으로 좀 미뤄야겠다. 쓸거리가 없다기 보담, 마음 감당이 힘들다. 지난 주에도 착잡한 심사로 머뭇거리다 원고를 놓친 듯 싶다.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지만 물이 밭은 웅덩이에 그 많은 고기들의 형체가 눈에 뜨이질 않는다. 모래 속에 숨었을 것 같다. 제발 이제라도 비가 내려서 그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빈다. 잘 까꾼 배추가 어지간히 물을 주었는데도 모두 옹그라들고 퍼져 버렸다. 하나를 뽑아보니 온갖 벌레들의 아파트가 되어있다. 서툰 농사꾼은 푸른 하늘을 떠가는 무심한 구름을 바라보면서, 이만 농사 일지를 마친다. 다시 즐거운 농사 일지 쓰기를 기대하면서….

응답 1개

  1. 말하길

    ‘갈수’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어린 치어들의 생명수와 농작물의 생명수가 겹쳐질 때 한 쪽으로 기울 수 없는 마음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제 내린 비로 목이나 축였을라나. 조만간 또 한 차례 비가 쏟아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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