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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연장자의 다정한 대답 – 쿠라모토 소우

- AA

일본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는 종종 듣는다. 그때마다 묻는다. 드라마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를.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웃긴 거, 재밌는 거, 슬픈 거, 러브스토리, 잘 생긴 배우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추천하는 작품도 거의 정해져 있다. 재벌이나 출생의 비밀 대신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타쿠스러움이 담겨있되 일본색이 너무 짙지 않고 연출, 대본, 배우의 삼위일체가 어우러진. 19회 동안 이 코너를 통해 소개한 드라마들이 그렇다. 그런데 그동안 본인이 일본 드라마를 추천하며 설렜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드라마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물었을 때 어떤 이가 “사람 냄새”라고 대답했을 때였다. ‘시각적 질문에 후각으로 대답하다니 공감각적인데!’ 라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으며 그에게 작품 대신 작가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야마다 타이치와 함께 일본 드라마 작가계의 뿌리라 일컬어지는 각본가, 쿠라모토 소우(倉本 聰)다.

각본가 쿠라모토 소우의 빽빽한 필모그래피 중 그의 대표작이자, 그를 국민 작가의 위치에 올려놓은 드라마는 1981년부터 후지TV에서 방송한 <북쪽 나라에서>라는 작품이다.
도쿄의 주유소에서 일하던 평범한 가장, 쿠로이타 고로는 아내의 외도를 계기로 두 아이를 데리고 도쿄를 떠나 고향 홋카이도로 향한다. 홋카이도의 후라노, 그곳에서도 인적 없는 어느 산 속 깊숙한 곳의 폐가에 도착한 고로는 이곳이 오늘부터 새로운 집이라 아이들에게 말한다. 소풍 온 기분으로 들떴던 어린 아들 슌과 딸 호타루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다. 허름한 폐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자연 뿐이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인 슌은 아버지에게 대들듯이 묻는다.

“전기가 없다고요? 전기가 없으면 살 수 없다구요! 밤이 되면 어떻게 해요!”

그러자 고로는 당연하고도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밤이 되면 자는 거지요.”

고로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것, 바로 자신을 도구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나무를 베어 뚫린 벽을 막고, 잡초를 뽑아 밭을 만들고, 돌을 주워 모아 밭과 집을 두르고, 양동이에 강물을 길어온다. 그렇게 해가 떠 있는 동안에 자신들만의 손으로 새 터전을 만들고 밤이 되면 숲에 있는 짐승들과 똑같이 잠을 잔다. 그러한 하루가 쌓이고 쌓여 폐가는 눈보라 속의 아늑한 집이 되고 밭에는 작물들이 싱싱하게 자란다. 강에서 집까지 수로를 만들고 심지어 우물도 판다. 풍력발전기도 직접 만들어 전등을 켜던 날, 슌과 호타루는 기쁨에 차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엄마가 보고 싶고, 다음 스토리가 궁금한 TV 만화도 보고 싶고, 하나부터 열까지 있는 게 없는 이 시골에서 벗어나 다시 도쿄로 돌아가고 싶던 슌은 도쿄에 두고 온 여자친구(!)에게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과 그에 대한 심경을 수다쟁이처럼 편지를 쓰듯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이 슌의 나레이션으로 표현되는데 어린아이다운 시선이 담긴 슌의 나레이션은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큰 요소가 된다.

81년에 시작하여 82년, 24회를 끝으로 드라마가 일견 끝난 듯 보였지만 수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고 이는 곧 이 작품을 연장시키는 힘이 되었다. 결국 83년부터 2002년까지 8편에 걸쳐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드라마의 시작엔 초등학교 4학년으로 등장했던 슌이 장성한 청년이 되고, 종달새같이 쫑알대던 9살의 호타루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고 밭을 가꾸고 전기까지 만들어냈던 고로는 유언장을 쓰는 노인이 되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이가 등장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죽기도 했지만 고로 가족들은 마치 정말 존재하는 사람처럼 21년 동안 TV 속에서 그 인생을 지난하고도 꾸준하게 살았다. 슌과 호타루 역할을 했던 아역배우들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21년 동안 그들의 성장과 황혼을 고스란히 함께 했다. (슌 역할을 한 요시오카 히데타카는 실제 드라마 속 연인 관계였던 여배우와 결혼했다. 후에 이혼도 했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고단한 인생의 과정을 겪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때로 상냥한 꾸짖음으로, 다정한 위로로, 조용한 응원으로 그 손을 내밀어 TV 앞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배경이 된 홋카이도의 후라노에는 고로 가족들이 살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드라마를 위한 박물관도 있다. 방영 후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홋카이도의 명소이며, 드라마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2002년 <유언>편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1981년부터 함께 했던 제작 스탭들이 대부분 정년퇴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의 인생처럼 이 드라마는, 나이가 들었음에 억지를 부리거나 부정하려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여정을 마쳤다.

본인이 가장 아끼는 일본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된 작품이고 본편 24편에 특별편 8편까지 하면 총 32편이라는 장대한 분량이 나오기 때문에 선뜻 추천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서 쿠라모토 소우의 또 다른 대표작을 소개한다.

2005년 후지TV에서 방송된 <자상한 시간>은 역시 홋카이도의 후라노를 무대로 한다. 후라노의 숲 속에 있는 까페 ‘숲의 시계’는 손님들 스스로 핸드밀을 이용해 원두를 간다. 손님들이 건네는 원두가루로 커피를 내리는 마스터 와쿠이 유키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다정하다. 느릿느릿 하지만 또박또박 흘러가는 숲의 시간처럼 느긋해 보이는 마스터는 2년 전까지 대기업의 뉴욕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샐러리맨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가 죽은 뒤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의 고향이었던 홋카이도에 이 까페를 차렸다. 무슨 잘못을 해도 다 용서해줄 것 같은 마스터에게는 여전히 그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있는 아들 타쿠로가 있다. 아내의 죽음은 타쿠로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마스터는 아직 아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그 마음을 아는 타쿠로는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까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예가의 견습생 생활을 한다. 이웃의 단골은 물론 여정 중에 잠시 들러 본 여행자들까지 손님들은 카운터에 앉아 드르륵 드르륵 원두를 갈며 마스터와 이야기를 나눈다. 눈이 언제쯤 내릴까 하는 날씨 이야기부터 딸의 혼사, 가족의 병 등등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인 것처럼 그들 각각의 사연 역시 그러하다.

가장 주가 되는 마스터와 아들 타쿠로 부자지간의 이야기 역시 어느 가족에서나 있을 법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일에만 열심이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별다른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아들. 오랜만에 만나 다정한 말이라도 하려 하지만 아들은 아들대로 반항을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것이 못마땅해 다그치기 일쑤인 와쿠이 부자는 집안의 유일한 여성이자 둘을 연결해주었던 아내/엄마의 갑작스런 부재로 인해 일순 그 관계가 단절되고 어떻게 다시 연결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고통 속의 부자에게 길을 알려주고, 등대가 되어준 것은 자연 그리고 사람이었다. 매일 매일 전투를 치르듯 살았던 샐러리맨 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느낄 수 없었던 사람의 사랑스러움, 자연의 따스함이 천천히 부자의 마음을 자상한 색깔로 물들인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 아들 때문이라는 것에 분노하던 마스터는 자연과, 다정한 주위 사람들의 보통 인생 이야기에 둘러싸여 조금씩 아들을 떠올린다. 아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했을 때, 폭주족에 들어갔을 때, 아내의 장례식 때. 자신은 어떻게 했고 무엇을 말했는지. 자신은 어떻게 해야 했고 무엇을 말해주었어야 했는지. 아버지인 자신에 대해 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분노는 어느새 반성이 되기도 하고,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안타까움이 되기도 한다. 까페 ‘숲의 시계’에 걸려 있는 문구 “숲은 천천히 시간을 새긴다.” 처럼 끊어져 있던 부자는 서서히 서로를 향해 시선을 맞추고 상대를 맞이할 마음을 키워간다. 자연과, 사람에게 받은 구원으로.

쿠라모토 소우의 최신작은 올해 1월 1일, 일본 위성방송인 WOWOW TV 개국 20주년 기념으로 방송된 단편 드라마 <學> 이다.

카자마 이치로는 손자 가쿠를 데리고 캐나다의 로키 산맥으로 향한다. 캐나다로 가기 전 1년간, 홋카이도의 산 속에서 그는 손자에게 산에서 문명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아니 가르치려고 했다. 그 전까지 14살의 손자 가쿠는 뉴욕 주재로 가 있는 부모와 떨어져 도쿄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주 이웃의 초등학생 소녀가 자신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망치자 가쿠는 소녀를 죽이고 시신을 박스에 담아 쓰레기장에 버렸다. 세간에 화제가 된 이 사건의 여파로 가쿠의 부모, 즉 카자마 이치로의 아들 부부는 자살을 했고 가쿠는 할아버지에게 오게 되었다. 가쿠는 말을 하지 않았고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오로지 24시간 아이팟의 이어폰을 귀에 끼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이치로가 그런 가쿠에게 1년간 산 속에서 사는 법을 보여준 후 로키 산맥의 아시니보인산으로 향한 것은 손자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마지막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1주일 동안 둘이 함께 캠핑을 하겠다고 캐나다인 친구에게 말하고 산에 도착한 이치로는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온 몸에 암이 퍼졌음을 고백하고,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 결과이므로 이해해달라고 하는 내용의 편지를 다 쓰고 이치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자고 있던 가쿠는 일어나서 알게 된다. 사람이라고는, 문명이라고는 없는 이 산에서 할아버지는 일부러 목숨을 끊고 자신을 혼자로 만들었다는 것을. 사건 이후 처음으로 가쿠는 이어폰을 귀에서 뺀 후 주변의 소리를 듣고,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소년은 당연한 듯 살았던 하루의 이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일들을 모두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대신 해줬기 때문이다. 이제 전기를 쓸 수 없으니 스스로 불을 피워야하고, 내비게이션이 없으니 별자리를 보며 방향을 가늠해야 하고, 식당이 없으니 스스로 동물을 잡아 손질해 먹어야한다.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살기 위해 가쿠는 할아버지와 보냈던 1년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별을 어떻게 보라고 했는지, 위험한 짐승에게서는 어떻게 도망쳐야 한다고 했는지, 몸에 탈이 났을 때 먹는 풀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혼신의 힘을 다해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들을 기억해내며 가쿠는 할아버지가 남긴 수첩과, 할머니에게 보내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마을로 향하는 산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과거 간단하게 어린 소녀를 죽이고 평온한 얼굴로 시체를 방치했던 소년 가쿠는 자신이 살기 위해 잡아먹은 다람쥐 같은 짐승들의 무덤을 하나하나 전부 만들며 짐승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이 죽인 소녀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생명은 소중한 것인데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쳤다. 할아버지의 그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 그런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것은 가쿠에게 있어 유일한 보답이자 의무가 되고 그러기 위해 가쿠는 살고자 한다. 온 힘을 다해서.
걸인보다 심한 차림으로 원시인처럼 불을 피우고 짐승을 잡고 나무에 올라가는 가쿠의 모습은 우리가 늘 말하는 ‘인간적인 삶’과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더 인간적이다. 문명과 과학, 자본이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에서 벗어난 가쿠를 보면서 진짜 인간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소개한 세 드라마 외에도 쿠라모토 소우의 드라마들의 전반적인 공통점은 사람, 그 중에서도 특히 부자(父子)의 관계가 중심이라는 것과 화려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 혹은 수수한 거리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풍경컷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특히 풍경컷은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임을 힘주어 강조하듯, 그저 장면의 전환용이 아니라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매 컷마다 정성과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오늘 소개한 세 편의 드라마 외에도 <바람의 정원>, <친애하는 아버님> 등이 그렇다.
그의 드라마 속 아버지로 표현되는 어른들은 언제나 아들에게 인간의 길과 그 인생을 가르쳐주고자 한다. 재산과 같은 물질적인 풍요를 대물림하고자 하는 재벌 아버지 대신, 쿠라모토 소우의 드라마 속 아버지들은 그저 고단한 인생의 길을 먼저 걷기 시작한 선배의 모습이다.

조금 머리가 굵어진 아들의 눈으로 보면 날고뛰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에 그저 묵묵하게 걸어갈 뿐인 대단할 것 없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다. 성장하면서 때로는 좀 더 아버지가 근사한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며, 각박한 소시민의 삶 대신 화려한 인생을 꿈꾸는 어린 마음은 하루를 보내고, 나이를 먹다가 문득 깨닫는다. 자글자글한 주름으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노인들이 그저 나이만 먹은 늙은이가 아니라,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거치면서도 살기를 포기하지 않고 버틴 대단한 이들이라는 것을. 비록 그들에게 빛나는 업적이 없다 하더라도 삶을 살아내는 그 자체가, 그 주름이 소박한 훈장이라고 생각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과, 그만큼의 굴곡이 요구된다. 혈기 넘치는 젊은 날을 보내고, 나이를 먹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자 했던 쿠라모토 소우는 그런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부자도 가난한 자도, 남자도 여자도, 강자도 약자도 상관없이 공평하게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마지막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므로 자연과 생명을 지배하려들지 말기를, 그리고 마지막 결승점에 도착했을 때 진정 중요한 것은 손에 쥐고 있는 물질이 아닌 어여삐 여기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과 사랑임을 이야기한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랑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서로 끝없는 순환을 통해 무한의 탄생을 품고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쿠라모토 소우는 올해 우리 나이로 78세, 곧 팔순을 바라보는 그가 TV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것은 1959년이니 단어 그대로 반세기를 각본가로 살아왔다. 여전히 1년에 한 편씩이라도 대본을 쓰는 이 노작가도 인생이 무엇인지, 사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생각의 결과가 바뀌는 과정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연약하지만 강하고, 흉측하지만 사랑스러운 생명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나이가 들며 바뀌는 가치와, 절대 바뀌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자신이 일평생에 걸쳐 그린 인생의 지도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자신의 인생을 대가로 얻은 사람과 삶에 대한 정의를, 수수하고 묵직한 아버지들의 뒷모습 같은 단어들로.

쿠라모토 소우는 77년부터 홋카이도의 후라노를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삼은 뒤 그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를 이루는 작가와 배우의 양성을 위해 ‘후라노주쿠’를 세워 수많은 후진들을 배출했다. 이 후라노주쿠는 그가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생각이 그저 말 뿐이 아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후라노주쿠의 수업료는 전액 무료. 대신 봄과 여름에 근처 농가의 농사를 돕고 겨울에는 매년 연극제를 열었다. 학생들은 모두 일년에 한 번, ‘원시의 날’을 보내며 전기, 가스, 수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두 손을 이용해 생활한다. 후라노주쿠는 2010년 쿠라모토 소우 개인의 건강 문제로 26년 만에 폐교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2006년부터 후라노의 폐쇄된 골프장에 나무를 심어 원래의 자연으로 돌리고자 하는 운동을 주도하며 살고 있는 이 노작가는 지금도 매일,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대본을 쓰고 있다.
그의 대답. 수많은 젊음들이, 인생들이 방황하고 힘겨워하며 돌림노래처럼 읊조리는 질문에 대한 노작가의 상냥한 대답은 최신작인 <學>에서 이치로의 목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인생은 길단다. 빛나면서 긴 것이 인생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멋진 일이야.
언젠가 만약 네가 나이를 먹어 너의 아이나 손자들이 너에게 인생의 고민, 인생의 괴로움, 그런 것에 대해 물어보거든 대답해주거라.
의연하게, “혼자서 살아 보거라.” 라고.
아무도 없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자기 밖에 없어서 사소한 하루 그 이상은 바라지 않고

먹고 자고 만들고 사는 것을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며 자신의 손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때 너는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친구란,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머지않아 산다는 게 무엇인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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