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수유너머문의 여름나기.

- 최진호

수유너머 문에서 보내는 여름은 조용하고 시원합니다. 더 나가 약간 심심하기까지 합니다. 편집진은 재미있게 써달라고 하는데, 사실이 이렇다보니, 재미있게 쓰는 것은 역부족입니다. 여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없습니다. 여름인데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은 아니고요, 다른 코뮤넷처럼 여름 강좌나 특별세미나를 만들고 싶어도 아직 역부족입니다. 특별할래야 특별할 수가 없네요. 수유너머문의 친구들은 특별나지 않게 진행해 오던 세미나를 하며 여름을 보낼 것 같습니다.

물론 여름에 맞춰 시작된 세미나도 있습니다.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시간이 맞았네요. 그 세미나는 [그리스 로마의 사유를 읽는다 시즌3-자기배려와 정치]입니다.
시즌1과 시즌2에서는 ‘자기배려와 윤리’ 문제를 함께 공부했습니다. 후기 푸코가 던진 자기배려 문제를 길잡이 삼아, 그리스와 로마에서 ‘윤리’가 어떤 장치들을 통해 표현되고, 그것이 어떤 형태였는지를 들여다봤습니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체와 만나는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와 농도가 변해가듯 그리스․로마 사유 역시 무수한 크기와 밀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자기배려가 공부의 중심축입니다. 이 축 위에서 ‘정치’의 문제를 고민할 예정입니다. 이번 주제는 (조금 과장하면) ‘스릴’넘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기획의 주요 저자인 플라톤의 모든 정치 기획은 ‘반-민주적’ 논쟁으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기획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사유의 깊이는 쉽게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새롭게 ‘정치적인 것’을 상상하고 산출하기 위해서라도 ‘위험한 사유’를 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의 최장수 세미나인 동아시아 근대도 새롭게 시즌을 시작합니다. 이번 시즌의 주제는 감각입니다. [감각으로서의 근대-근대 동아시아를 읽는다 시즌4].
근대는 구성하는 것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우리는 ‘근대’에 형성된 감각을 통해 동아시아 근대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가령 근대 동아시아의 시작이 『해체신서』로 대표되는 서양의학서의 번역이었던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새로운 의학 기술의 수입은 세계관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해부를 통해 몸 안을 살펴보는 새로운 시선은 기존에 보이지 않던 영역에까지 눈을 돌리는 것이자, 모든 것을 가시화하고, 내부를 균질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크게 보자면 시공간의 변화이자, 감각의 변화, 세계관 자체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공간은 철저하게 구획되고, 가시화되고, 균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서 감각들 역시 변화하고, 사유의 에피스테메 역시 변화합니다. 그것이 바로 근대가 가지고 온 세계관의 변화의 핵심일 것입니다. 이 시기를 본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의 감각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올 여름 덥다는 감각조차 새롭게 느끼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물론 아무리 근대적 감각의 탄생을 안다고 해도 여름 더위가 쉬 가시지는 않겠죠. 이런 분들에게는 [데리다 세미나]를 추천합니다! 덥고 힘든 여름을 이 유령의 사상가와 함께 하는 것. 현대 철학의 한 흐름으로 알려진 데리다의 사상은 아직 우리에게 모호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현상학과 언어철학, 니체, 맑스에 이르는 사상의 괘적과 그의 여정은 알제리계 프랑스인이자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그의 삶의 지층만큼 깊고 풍부합니다. 그의 심연 속에서 해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그에게 정치와 삶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요? 항상 논란이 되었지만 모호하게만 파악되었던 데리다의 텍스트를 탐구할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은 해체와 정치를 주제입니다.

이외에도 미남 번역가와 함께 하는 [일본어 세미나문], 진지한 20대들의 모임인 [철학 세미나]등도 함께할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수유너머문의 활동은 조금 심심해 보이기도 하네요. 그래도 화기(火氣)가 충천한 여름을, 심심한 친구들과 함께 보내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 아닐까요? 심심한 친구들과 함께 더위를 함께 할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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