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공방 통신

[5호] 달팽이공방의 보물들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달팽이공방의 보물들

설 떡국은 맛있게 드셨나요? 3월부터 시작될 ‘제비꽃빵집 우리밀홈베이킹 워크샵 시즌3′의 레시피연구를 핑계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제비꽃달팽이입니다(절대로 홍보맞습니다, 워크샵문의는 수유너머N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_+). 이번호에서는 달팽이공방이 굴러가게끔 만들어주는 공방의 귀중한 보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그 전에 설을 맞이하여 떠오른 기억이 있는데요. 세뱃돈을 꼬박꼬박 받던 시절, 명절 한 번 세고나면 큰댁에서 얻어온 부침개와 나물들, 선물로 들어온 과일들이 집안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명절 음식을 좋아하는 저는 흐뭇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지요. 하루 이틀정도 먹다가 실수로 냉장고에 넣지 않은 나물은 쉬어버리고, 부침개들은 맛있는 것만 다 빼먹고 맛없는 것들은 냉동실 한켠에서 빙하기를 맞이하고, 그러는새 과일들은 조용히 푸른 곰팡이를 피우며 미래의 발견자를 놀래킬 준비를 합니다.

이것이 2000년대 한국에서 살아가는 핵가족에게 들어오는 명절음식들의 일대기죠. 이는 명절음식들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홈쇼핑에서 주문한 요구르트 발효기계나 튀김기, 중국 갔다온 친구가 선물해준 보이차도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집에 들어온 몇달은 열심히 사용하고 먹다가, 어느새 찬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의 머리에속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달팽이공방의 물건들은 대부분 이러한 일대기를 거친 것들입니다. 제비꽃빵집에서 쓰고 있는 가스오븐레인지는 10만원 가량의 중고오븐레인지로, 졸린달팽이와 사루비아달팽이가 가내수공업비누를 만들어 번 돈으로 선물해준 것이고, 키친에이드반죽기(키친에이드반죽기는 홈베이킹하는 사람들의 로망이죠!)는 현재 제비꽃빵집워크샵을 하고 계신 cosmic님께서 ‘좋은 반죽기인데 쓰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며 장기대여해주셨습니다.

빵집 책들과 도구들을 수납중인 10년은 더 되보이는 고풍스런 찬장은 비자리오님께서 책장 용도로 연구실에 가져다주신건데 주방에서 찬장으로 잘 쓰고 있구요, 갖가지 차와 커피, 빵집에서 만든 빵과자를 올려두는 원목테이블은 용산참사대책위의 사랑방이었던 까페 레아에서 받아온 것입니다. 이 외에도 재봉틀, 핸드밀, 커피드리퍼, 빵틀, 컵 등. 일일이 다 나열하기 힘든 많은 선물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대부분 선물을 주는 이에게는 충분한 것들, 사용가능하지만 주인의 흥미를 잃은 것들, 원래 있던 자리에서는 더 이상 유용함을 가지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달팽이공방으로 오면서 선물이 되고, 그러한 선물은 받는 달팽이들의 활동 의욕을 북돋아주며 달팽이공방 물건들을 생산하는데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보물이 됩니다.

졸린달팽이와 사루비아달팽이의 선물, 중고오븐 / cosmic님이 선물해주신 키친에이드 반죽기

용산참사대책위 레아에서 받아온 테이블 / 은영님이 선물해주신 부라더 미싱기

이처럼 ‘안쓰는 물건에서 선물이되고, 그것들이 달팽이공방활동에 없어서는 안될 보물이 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의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혼자 홈베이킹을 하려면 홈베이킹을 위한 기본 물품들을 구비하는 데에만도 많은 돈이듭니다. 기본적으로 오븐과 틀이 필요하고, 좀 더 욕심이 생기면 반죽기, 핸드믹서, 여러가지모양의 틀 같은 것들이 사고싶어지지요.

게다가 요즘 버터값을 비롯한 빵과자재료들이 금값이라, 홈베이킹을 즐기는 본인이 든든한 돈벌이가 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후원자(돈 벌어다주는 가족)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달팽이공방의 경우 베이킹을 위한 기반 도구들은 선물로 받은 것이 대부분이고, 빵집에서 만든 빵과자를 연구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사먹음으로써 재료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됩니다. 돈이 없어도 친구들이 있으면 많은 일들이 가능해지지요.

우리밀통밀 머핀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난한 달팽이들은 우리밀로 빵과자를 굽는 고상한 웰빙 달팽이로 거듭날 수 있게됩니다. 아, 좀 전에 오븐에 넣어놓은 우리밀 머핀이 다 구워졌나봅니다. 우리밀통밀의 구수한 냄새가 솔솔 풍겨오네요. 구수하고 달콤한 빵과자를 드시고 싶거나, 달팽이공방의 친구들과 보물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을 보고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달팽이공방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찬장 한구석에서 잊혀져가는 물건을 갖고오셔서 그것이 보물로 변하는 과정에 직접 동참하시면 더욱 좋구요:)

– 제비꽃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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