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모처럼의 새 옷.

- 김융희

오랜만에 두 개의 드레스 셔츠와 리본 타이를 갖춘 정장을 구입했습니다. 생애 동안 정장 일체를 한껍에 구입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나는 그동안 십 년이 넘도록 하찮은 옷가지나 손수건 하나도 구입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내가 세련된 칼라의 셔츠에 처음 메어본 나비넥타이라니, 어린애처럼 들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옛 아이적인 설날에나 얻어 입게된 때때옷의 감격처럼 말입니다. 늙은이가 새옷 자랑이라니! 나에게는 그럴 만도 합니다. 망팔의 철따구니 없는 망골에 여러분의 아량을 바랍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을 나는 어떤 옷가지 하나도 새 옷을 손수 구입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있는 옷에다 그때 그때 마련된 헌옷을 이용해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낸 그동안이 벌써 십삼 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백화점을 비롯한 화려한 옷가게들, 시장에도, 길거리에도, 쌓인 옷더미들을 보면서, 얼핏 떠오른 생각은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느 전문가의 말씀이, 지금 모든 공장이 새 옷을 일체 만들지 않더라도, 쌓인 제품의 재고만으로도, 온 국민이 앞으로 십 년을 넘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재고에도 불구하고 유행의 선도 상품인 옷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을 우려하는 그 전문가의 투정어린 말씀에 공감이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 옷들만을 대충 흩어봐도 그 말씀이 별로 틀린 것은 아니란 생각을 했습니다. 어렷을 적 헤어진 옷을 더덕 더덕 꾸며 입었던 그런 형국이 아니면서, 지금 옷장에 갖춰진 몇 벌의 옷만으로도 몇 년은 너끈히 입고 지낼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나는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선언했습니다. 앞으로 내 생애에 돈 주고 새옷을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의는 물론 양말 손수건까지도….

살펴보니 생활의 기본인 의, 식, 주에 식과 주에 비해 의(衣)의 편파적 혜택이었습니다. 형평을 위해서라도 옷의 낭비를 막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 결심이 벌써 십삼 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런데로 잘 지켜왔습니다. 뭐, 대단한 결단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꺼리는 아닐듯 싶습니다. 더욱이나 자랑꺼리는 아니었음 싶습니다. 짧지 않는 동안 잘 지켜온 결단이 깨지는 아쉬움을 계기 삼아 그동안의 옷에 대한 얽설켰던 이야기를 잡담삼아 해보자는 의도였음에도 어쩐지 좀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옷은 입으면 닳기 마련입니다. 계속 닳아질 소모품을 공급없이 지탱할 수는 없는 일이고 보면, 더군다나 옷은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일상에서 항상 함께 해야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벌거벗고 살 수는 없는 것, 더군다나 떨어지고 뚫어지면 깁어 입는 것도 쑥스럽고 별스러운 일인데, 십 년토록 어떻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처음부터 필요없는 옷을 얻어 입겠다는 속샘으로 “새옷을 안 산다”를 강조했고, 헌옷을 입는다며, 부러 자랑삼아 열심히 광고를 했습니다. 의중의 계산은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맵시도 내면서 옷으로 인한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지금도 나는 많은 옷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돈 주고 사지 않아도 얻어 입고 주워 입는 옷들이 많습니다. 그 많은 옷들로 아나바다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필요한 이웃에게 직접 나누는 실천도 했습니다. 인제는 주위가 다 알고 있어서 정말 많은 물량으로 오히려 넘침니다. 꼭 헌 것만도 아닙니다. 정말 나에게 과분한 아끼며 함부로 입을 수 없는 고급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나도 잘 몰겠습니다. 좋은 것을 아끼며, 아무렇게나 헌 것을 먼저 입고 지내는 습성은 계속됩니다. 글쎄 좋은 양말은 아끼며 헌 양말을 골라 먼저 이용하다보니 계속 헌 것만 신게되어 십 년전 좋은 양말은 지금도 눈요기로 계속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런 짖거리는 옷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식료도, 특히 과일을 사다보면 신선도가 제각각인 경우에도 나는 꼭 금방 상할 것 같은 것만을 계속 골라 먹습니다. 어쩌다 보면 싱싱도가 지나쳐 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싱싱하고 좋은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짖인데도, 알면서 아직도 매번 그렇습니다.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행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서 남에게 내놓으며 나눌 때면, 한사코 좋은 것이 아까워 선뜻 내 놓지 못하는 심보는 무엇이며, 이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짖인지…

오랜만에 새옷을 샀습니다. 맵시있는 건사한 옷입니다. 그러나 새 옷이 입고 싶고 좋와서 구입한 것은 아닙니다. “내 생애동안 새 옷을 사지 않는다”는 선언에 문제가 생긴것은 더구나 압니다. 앞으로 더욱 철저히 결단을 지킬 것입니다. 이 달에 남성 합창단인 우리 “노아 콰이어” 합창단이 독일에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800년이 넘는 역사의 바하가 있었던 “성 토마스교회”를 비롯한 몇 차례의 공연을 독일에서 하게 됩니다. 그 공연을 위해 구입하게된 단복입니다. 단체에서 공동 목적으로 함께 맞춰 구입하는 경우로, 다만 이번만을 예외로 나도 어쩔 수 없었을 뿐입니다. 어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옷도 좋습니다만, 공연이 자랑스러워 이처럼 자랑 엄살을 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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