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캠프를 다녀오다

- 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

캠프를 다녀왔다. 동건씨와 동건씨의 체험홈에 함께 살고 있는 장애인 분과 그의 활동보조인과 함께 다녀왔다. 금요일 아침에 일찍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목요일 밤을 그의 집에서 보내야만 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다음날 오전 7시로 장애인콜택시를 예약한다. 금요일 6시에 일어나 전날 준비해둔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씻고,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린다.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늦어 장애인 콜택시는 7시 30분쯤에 도착한다. 모임 시간은 8시다. 콜택시가 예약시간 보다는 늦었지만, 때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캠프는 매년 여름에 장애인들이 모여 여행을 가는 캠프였고, 동건씨와 또 다른 장애인분도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었다. 동건씨는 이 캠프를 기대했는지, 한달전부터 일찍이 나에게 같이 가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참가비를 자신이 내주겠다고 했다. 참가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차등을 두었는데, 장애인은 7만원이었고 비장애인은 10만원이었다. 동건씨는 이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나의 참가비를 포함한 17만원의 캠프 참가비를 지불했다. 누군가는 왜 활동보조인의 캠프 참가비를 활동보조인이 내지 않고 경제적 사정도 어려울 장애인 이용자가 내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에게 캠프는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참 좋은 이용자를 뒀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가 당연히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따라갈 이유가 없어진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고, 최저임금에 준하는 급여를 받는 입장에서 10만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서야 노동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밑지는 장사다. 대게는 이러한 이유로, 영화관이나 기타 등등의 문화시설을 이용할 때에는 동건씨가 이러한 비용을 부담한다. 동반1인에 대한 무료혜택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동건씨는 비장애인들보다 더 비싼 비용을 들여야만 어떤 누림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돈이 동건씨에게도 부담스러운 비용인 것은 자명하다. 동건씨는 강력한 지불의사로 자신의 참여의사를 밝혔다. 동건씨에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로 느껴지는 듯 했고, 망설임도 있었지만, 동건씨에게 아주 특별한 일이리라는 생각에 나에게 예정되어 있던 일정들을 취소하고 그와 캠프에 참가하기로 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생소한 버스가 눈에 띄었다. 장애인 전용 관광버스였는데, 차 가운데에 휠체어를 올릴 수 있도록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휠체어 이용자가 앉을 수 있도록 가운데 공간이 비어있는 구조였다. 차 앞부분과 뒷부분에만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캠프에 이용될 버스의 수는 3대였다. 수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의자에 앉았고, 비어있는 가운데 부분에는 전동휠체어가 9대가 들어갔다. 하지만, 리프트로 타고 오르내리는 것에는 시간이 제법 들었고, 모든 사람이 승차하기까지 한 시간 조금 덜 되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숙소는 경주에 있었다. 갈 곳은 청남대, 누리마루, 해운대, 불국사 정도였다. 서울에서 청남대까지 가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자유롭게 관람할 시간은 삼십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에서 타고 내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뿐더러, 식사를 할 장소로 예정되었던 곳은 청남대 옥상이었다. 고작 3층인 옥상이었지만, 그곳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여럿이 이용하려다 보니,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곳에서 또 경주까지 버스가 이동해야 했으니, 그곳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경주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방 배정과 간략한 소개들을 한다. 다음날도 이동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일찍 움직여야 한단다. 아침 식사 시간은 7시 10분. 이용자를 깨우고 준비시키려면 6시에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동건씨는 방 사람들과 술을 마시길 원한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는 잠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1시. 나는 그때까지 그의 활동보조를 해야 했다.

둘째 날도 사정은 비슷했다. 버스에 타는 시간과 내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누리마루에 방문하여 그곳을 둘러볼 시간은 40분가량 주어졌다. 다시 버스를 타고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는 횟집으로 갔다. 횟집 앞에 도착해서 앞자리에 있던 전동휠체어들이 빠지는 동안에 나는 동건씨 옆자리를 지켜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학부모께서 나에게 왜 앞서나가 휠체어를 빼는 등등의 일들을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실 활동보조인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자원봉사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장애인관련 행사에 참가할 때면, 항상 나의 근처에 있던 장애인들은 내가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요청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활동보조인은 이용자에게 고용되어 있는 입장이다. 다른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를 해준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자원봉사를 해주는 것이 된다. 하지만 활동보조인들은 그 장소에 자원봉사를 하러 간 것이 아니다.

그 장애인 학부모 또한 나에게 자원봉사자만큼의 열정과 열심을 요구하고 있었다. 다른 봉사자들은 담당이 아닌 사람들의 휠체어까지 미리 내어주는 등 일을 열심히 하는데 왜 당신은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좀 도와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나는 내가 활동보조인이며 열정과 열심을 갖고 하지 않을 거라 말했다. 그 학부모에게 간섭받아야 할 이유 없으며, 다른 분들이 동건씨의 휠체어를 미리 빼놓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열심을 요구하시겠다면, 그것을 그냥 두라고 말했다. 나는 동건씨를 활동보조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노동하겠노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학부모님은 기분이 상한 듯 보였고, 나도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그것은 장애인 활동보조인 그 자체의 정체성에서 나오는 물음이라기보다, 아름다운 어울림과 함께함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반응된 물음일 것이다. 대상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지주의 입장에서 넓은 평야는 부의 원천이겠지만, 소작농의 입장에서는 일궈야 할 땅이고 노동의 대상일 뿐이다. 나에게 장애인은 끝없이 수고를 요청하는 존재들이다. 그것이 그들을 돕는다는 의미에서의 수고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윤리적 요청을 거절해야 하는 수고를 나는 거듭 해야만 한다. 여러 장애인을 돌보는 노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그렇게 노동해야 한다면 나는 활동보조인을 그만 둘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몸을 못 쓰게 되어 그만둘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장애인 학부모들처럼 헌신적인 사람이 아니며, 가끔 하는 자원봉사자들 처럼 선택적으로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이런 캠프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을 도와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요청들 때문에 활동보조인들은 장애인관련 행사들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주최측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구하거나 활동보조를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을 고용하게 된다. 자원봉사자들과 활동보조인은 또 다시 구분되지 않아, 활동보조인들을 자원봉사자 대하듯 하게 된다. 한 번 이를 경험해 본 활동보조인들은 다시 장애인 행사에 활동보조를 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없는 활동보조인의 수만큼이나 자원봉사자를 더 구해야만 한다. 악순환의 구조다. 나는 사람들이 보다 활동보조인을 노동자로 이해해야 하고, 윤리적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활동보조인임을 표시하는 표식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횟집은 7층이었고, 휠체어 이용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데에는 시간이 또 한참 걸렸다. 밥을 먹고 내려와서는 해운대 해수욕장엘 간다고 한다. 동건씨는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이것은 또 더한 수고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동건씨에게 국가가 모래사장에 장애인용 리프트를 설치해 주면 생각해 보겠노라고 말했다. 장애인이 접근 불가능한 곳에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당위 때문에, 그런 조건들은 활동보조인이나 자원봉사자들의 인력으로 메워진다.

다행히 해양경찰들이 도와주려고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때에도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수고가 필요한지 계산하고 있었다. 4명의 해양경찰들이 전동휠체어를 앞뒤로 들고 모래사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저 해양경찰들의 허리가 걱정되었다.

동건씨 또한 해양경찰들의 도움으로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은 바닷물이 조금 차가웠다. 하지만 그는 들어갔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나와 샤워장으로 가는 동안 그의 몸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샤워장에 누이고 그를 씻겨주는 동안에는 들어붙은 모래에 괴로워했다. 딱딱한 샤워장 바닥 위에 잘고 딱딱한 모래들을 등으로 버텨내고 있었으니, 그의 살갗이 고통스러울 만 했다. 그렇게 그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버스에 태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얼마간 장기자랑 시간을 가진다.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나는 다른 활동보조인에게 동건씨를 부탁하고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1시까지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경주에서 열기구체험을 하고 불국사를 다녀왔다. 동건씨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다. 나의 노동시간은 금요일 19시간 토요일 18시간 일요일 13시간이다. 하지만 이를 전부 결제하면 월말에 동건씨는 바우처가 부족해서 활동보조인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에 12시간씩 결제하기로 한다. 나는 이번 캠프 기간동안 14시간, 돈으로는 87,150원에 해당하는 자원봉사를 했다.

윤리적일 것이 요청되는 자리에 계속적으로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장애인활동보조인들의 고난이 아닐까 생각한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윤리적일 것이 요청되는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활보 노동자의 고난이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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