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밀양의 전쟁 – 밀양 송전탑 투쟁현장 방문기 (상편)

- .

– 세운, 이경, 로자

한 달 전, 우연치 않게 ‘전교조 탈핵버스’에 동행해 한전과 싸우고 있는 밀양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었다. (참고:http://suyunomo.jinbo.net/?p=10227) 지난 1월 한 어르신의 죽음을 통해서야 알게 된 밀양 송전탑 투쟁. 하지만 그 뒤로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달, 직접 농성장을 방문해서 그분들이 용역들과 맞서 지키려했던 벌거숭이 땅을 보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한참이나 어린 용역들에게 “워리워리”라고 개처럼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용역들을 쫓아가며 지키려한 나무들은 한 그루도 살아남지 못했다.

용역을 앞세운 한전과 국가의 위압적인 힘 앞에 평생 농사 밖에 지을 줄 몰랐던 어르신들은 무력했고 의지할 때라고는 서로의 늙은 몸뚱아리 밖에 없었다. 그분들이 지금까지 버텨 온 것만으로도 기적 같아 보였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수유위클리>에 밀양소식을 알리고 싶다고 부탁했고, 친구들과 바자회를 열어 모은 푼돈을 밀양으로 부쳤다.

그리고 다시금 밀양으로 갈 채비를 했다. 그때 뵌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다시 간다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안 될 것이다. 그래도 꼭 다시 가야만 했다. 그분들의 외로운 싸움을 조금이나마 외롭지 않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더 이상 죽음의 도미노는 안 됩니더

▲ 지난 1월 16일,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송전탑 문제를 끝내기 위해 제 몸에 불을 붙였다. 보라마을 입구 논에 아파트 40미터가 넘는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 지난 1월 16일,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송전탑 문제를 끝내기 위해 제 몸에 불을 붙였다. 보라마을 입구 논에 아파트 40층이 넘는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7월 2일 밀양역에 도착하자마자 산외면 보라마을로 향했다. 우리의 방문소식을 전해 듣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신 법성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보라마을은 지난 1월 16일 故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한 마을이다. 보라마을 진입로에는 아직도 분신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1월 16일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신 날은 우리 마을에 용역이 처음 들어온 날이었습니더. 새벽 4시부터 용역이 에쿠스 같은 비싼 승용차를 끌고 떼지어 나타났는데…. 어르신들은 그 젊은 용역들한테 매달려서 그 어둠 속에서 싸우고… 완전 아비규환이었습니더.”

스님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듯 했다. 몇 달간 공사 인부들을 맨몸으로 막아선 주민들이었지만 건장한 수십 명의 용역들 앞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학생들. 우리한테 왜 이라노, 우리 땅인데….”

파헤쳐지는 땅을 무력하게 바라보며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이 울부짖었다.

“그런데 용역들이 어르신들에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할머니 돈 주소. 돈만주면 우리가 반대로 한전 막아 주꾸만.” “야야, 그거 얼마면 되는데?” 상상도 못할 액수를 불렀다 안합니꺼. 그래서 할머니들이 “그 돈이 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안싸우제. 제발 공사 좀 하지 마래이….” 이러고 그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논에 엎어지고 매달리고….”

▲ 송전탑은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에서 출발해 울산, 양산, 밀양, 창녕을 거친다. 161기의 765kv 초고압 송전탑 중 총 69개가 밀양에 들어설 예정이다. (그림 출처: 시사IN)

▲ 송전탑은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에서 출발해 울산, 양산, 밀양, 창녕을 거친다. 161기의 765kv 초고압 송전탑 중 총 69개가 밀양에 들어설 예정이다. (그림 출처: 시사IN)

그렇게 자기 가족의 땅이 무참하게 파헤쳐지는 꼴을 하루종일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 없었던 어르신의 마음속에는 얼마만큼의 억울함과 분노가 쌓였을까.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휘발유를 뒤집어쓴 채 수백 미터를 뚜벅뚜벅 걸어간 이치우 어르신의 마지막을 그려본다. 도대체 지난 7년 동안 밀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보라마을의 작은 암자 약산사의 주지인 법성스님은 주민들과 함께 오랫동안 송전탑 반대투쟁을 해온 분이다. 스님 또한 맨몸으로 공사를 막다가 갖은 욕설에 성폭력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에 부채감이 남달랐다.

“저도 죽으려는 준비 다 되어 있어요. 이 송전탑이 한 사람의 참사는 더 있어야 끝날 것 같아애. 산외면에 공사가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더. 휘발유도 준비했습니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죽음의 도미노처럼 되면 안되지애. 자연사 하셔야지…. 차라리 내가 부처님께 소신공양하는 마음으로 가더라도….”

스님은 너무 자주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포크레인을 막아서다

다음날 아침 스님을 따라 뒷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108번과 109번 송전탑 예정지로 명명된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가파른 임도를 10분가량 차를 타고 올라간 후 다시 30분간 도보를 재촉해서야 108번 송전탑 예정부지가 나타났다. 수풀을 헤치고, 가파른 산을 타야만 하는 길이었다.

▲ 108번 송전탑 공사 현장. 어르신들은 공사현장에 움막을 짓고, 추운 겨울에도 공사를 막기 위해 포크레인 주걱에 교대로 들어가 지켰다.

▲ 108번 송전탑 공사 현장. 어르신들은 공사현장에 움막을 짓고, 추운 겨울에도 공사를 막기 위해 포크레인 주걱에 교대로 들어가 지켰다.

▲ 108번 송전탑 공사 현장. 어르신들은 공사현장에 움막을 짓고, 추운 겨울에도 공사를 막기 위해 포크레인 주걱에 교대로 들어가 지켰다.

▲ 108번 송전탑 공사 현장. 어르신들은 공사현장에 움막을 짓고, 추운 겨울에도 공사를 막기 위해 포크레인 주걱에 교대로 들어가 지켰다.

“이게 원래 길이 없었어애, 할매, 할배들이 매일같이 다니다보니까 길 비스무리하게 된거지애. 어르신들은 점심 도시락 싸갖고 여기 도착하면 아침 7시.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최소 1시간 40분이 걸린답니더.”

“그렇게 와서 나무 꼭 껴안고 인부들이 벌목 못하게 밤까지 싸우다가 또 몇시간 걸려서 내려가는 거지예. 그걸 지난 겨울 내내 했어예. 이치우 어르신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 그대로 길을 간다기보다 산을 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젊은 우리가 오르기에도 산은 가팔랐고 위험했다.

108번 예정지는 이미 완벽하게 벌목이 완료된 후였다. 잘려나간 나무들 사이로 송전탑의 거대한 다리가 세워질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송전탑 높이는 약 100미터. 아파트 40-50층의 높이다. 1999년 한국에 도입된 765kv짜리 거대 송전탑이 이곳에 들어선다. 송전탑의 혐오스러운 위용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자파다.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주민들에겐 은행의 모든 대출이 정지됐다. 용회마을에서 만난 어르신이 해준 말이다.

“은행에 딱 가니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출이 안 된데. 예전에는 1천만 원, 3천만 원 쉽게 빌렸는데, 이젠 송전탑 때문에 안 된데예. 은행 직원이 나한테 그라데예. “어르신, 정부랑 싸워서 못 이깁니더.””

“내 땅을 팔라케도 아무도 안 산다 아입니꺼. 계약을 딱 하려고 하다가도 송전탑 온다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갑디더.”

주민들의 땅은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돌던 7년 전부터 담보가치를 잃었다. 송전탑 인근의 땅은 아무도 사려하지 않고 담보조차 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된다. 그런데 한전은 땅값의 극히 일부만을 보상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오로지 직접 송전탑이 들어서고 송전선이 지나갈 부지만을 보상해준다. 그러니 주민들은 평생 피땀 흘려 모은 땅과 재산을 모두 날려버릴 처지가 되었다.

토지소유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전이 강제로 땅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원개발촉진법이 박정희 시절에 제정되었다. 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렇지만 무척이나 합법적으로 송전탑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한전은 가졌다. 거기에 맞선 주민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쫓겨나거나 아니면 맨몸으로라도 공사를 거부하기. 주민들은 후자를 택했다. 그래서 추운 겨울을 밤낮으로 이 송전탑 부지를 왕복할 수밖에 없었다.

▲ 공사를 막기 위해 포크레인 강철주걱에 주저 앉은 스님.

▲ 공사를 막기 위해 포크레인 강철주걱에 주저 앉은 스님.


▲ 어제 막 헬기로 옮겨진 포크레인으로 부지를 고르게 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109번 송전탑 예정지. 시공사 측은 공사장 근처의 모든 주민들을 채증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다가가자 “학생은 들어오지마, 들어오면 부모님한테 벌금 갈거야.”라고 말하며 동영상을 찍고, 녹음을 했다. 이날 우리와 동행한 상동면 옥산마을 이장님들은 우리가 돌아간 뒤에도 김밥으로 한끼를 때우며 날이 샐 때까지 공사장 인근을 지켰다.

▲ 어제 막 헬기로 옮겨진 포크레인으로 부지를 고르게 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109번 송전탑 예정지. 시공사 측은 공사장 근처의 모든 주민들을 채증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다가가자 “학생은 들어오지마, 들어오면 부모님한테 벌금 갈거야.”라고 말하며 동영상을 찍고, 녹음을 했다. 이날 우리와 동행한 상동면 옥산마을 이장님들은 우리가 돌아간 뒤에도 김밥으로 한끼를 때우며 날이 샐 때까지 공사장 인근을 지켰다.


108번 부지에서 다시 20여분을 더 올라가면 109번 부지가 나온다. 막 109번 부지에 가까워졌을 때 “윙, 두두두두”거리는 중장비 소리가 들렸다. 스님의 발걸음을 빨라졌다. 줄이 삥 둘러쳐진 공사현장 안에서 포크레인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스님이 우리가 뭐라할 새도 없이 움직이는 포크레인 앞을 막아섰다. 바로 멈추지 않는 포크레인을 옆에서 지켜보던 현장소장이 세웠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립된 산 속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촉측발의 상황이었다. 어젯밤, 죽어도 송전탑과 함께 죽겠다고 말했던 스님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밀양은 지금, 전쟁 중이었다. (하편에 계속)

응답 1개

  1. […] | 동시대반시대 | 밀양의 전쟁 – 밀양 송전탑 투쟁현장 방문기 (상편)_.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