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밀양의 전쟁 – 밀양 송전탑 투쟁현장 방문기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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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운, 이경, 로자

▲ 용회마을 어르신들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일을 하다가도 낯선 사람이나 크레인이 들어오면 일을 내팽겨치고 마을 입구로 모인다고 한다.

▲ 용회마을 어르신들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일을 하다가도 낯선 사람이나 크레인이 들어오면 일을 내팽겨치고 마을 입구로 모인다고 한다.

돈 있는 자, 돈으로 위협하다

단장면 용회마을 진입로에는 수십명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오두막에 앉아 진을 치고 있었다. 입구에 둘러쳐진 쇠사슬이 보였다. 마을로 진입하는 차들을 어르신들이 한 대 한 대 검문하고 있었다. 우리가 탄 차가 다가가자 쇠사슬이 내려왔다. 주황색으로 맞춰 입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의 티셔츠에는 ‘765kv OUT’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쓰여져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 용회마을에도 고소장이 날라 왔다. 이미 고소를 받은 부북면에 이어 두 번째였다. 한전이 앞으로 공사를 방해하는 주민 각자에게 하루 100만원씩 벌금을 물리겠다는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이었다. 정부는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나선 주민들에게 대화는 커녕 고소고발로 맞받아치기로 작정한 듯 했다. 하루 100만원이라는 금액은 평범한 농사꾼이거나 은퇴자가 대부분인 이곳 주민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한전이 저희들 기를 죽이겠다는 속셈이겠지예. 근데 저희는 물러설 곳이 없습니더. 어차피 송전탑 지어지면 다 잃는 마당인데. 끝까지 해 볼 겁니다.”

살면서 처음 법원의 등기를 받아 봤을 주민들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호기롭게 얘기하는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또 어떤 분은, 눈동자에 깃든 답답한 심경이 완전히 숨겨지지 않는 그런 분도 있었다. 손가락이 뭉뚱그려 지도록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분들인데, 국가는 왜 이들을 적(敵) 대하듯 하는 걸까.

초전도 지하매설 아니면, 백지화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부북면이었다. 부북면은 밀양의 송전탑 경과지 네 개면 가운데 한전과 가장 극렬하게 부딪혔던 곳이다. 부북면의 어르신들은 이제 활동가가 다되었다.

“여서 12시간 이상 지킵니더. 여 와 있다고 돈 주는 사람 아무도 없십니더. 보상 더 받으려고 한다고예? 우리는 돈 필요 없습니더. 내 땅 내 자슥들한테 전자파 없는 깨끗한 땅 물려주려고 내가 지키는 겁니도. 초전도 지하매설 아니면 백지화가 우리의 요구입니더.”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백발이 성한 이장님이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있었다. 한전이 부북면 주민들에게 건 소송 때문이었다. 한전은 부북면의 주민 3명에게 10억 손해배상을, 7명의 주민들에게는 하루 100만원씩의 벌금을 매기겠다는 손해배상청구소장을 법원에 냈다. 말하고 있는 이장님 또한 당사자이다. 다들 알고 있었다. 왜 한전이 이들만 콕 집어서 소송을 했는지 말이다. 좀 더 젊은 남성이나 주민들 앞에 자주 나서는 분들 앞으로 등기가 날라왔다.

▲ 부북면 어르신들이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부북면 어르신들이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싸움을 그만두면 법적으로 아무 손해가 없을 거라고 하데예. 하지만 여기서 절대 그만 둘 수 없습니다. 돈 따위로 우리를 위협하려는 술수에 넘어가지 않고 더 열심히 막아낼 겁니다.”

회의장에 모인 할머니들은 자기들 대신 소송을 당한 거라며 안쓰러워하고 또 분노했다. 10억이라는 벌금에 움츠러들기보다 끝까지 가보자며 서로 격려했다.

부북면에 있는 126번, 127번, 128번 송전탑 예정지에 가려면 세 번의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승용차가 다가오면 주민들이 길을 막고 “어디로 가십니꺼.”라며 물어본다. 언제 또 공사를 강행할지 모르는 한전을 막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산에 구경 온 사람들이려니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까지 의심한다는 게 슬프지예.”

이곳엔 밀양의 이름난 등산로 중 하나인 화악산이 있다. 예전엔 주말마다 이곳 경치를 보기위해 많은 등산객들이 다녔다. 주민들은 그런 방문객들을 자부심을 갖고 맞았다. 하지만 이제, 이런 관계는 사라졌다. 오로지 남은 건 적과 아군의 구분뿐이었다.

▲ 송전탑 반대를 위한 수요 촛불 집회 현장(7월 4일). 송전탑 공사를 막고 있는 네 개의 면이 서로의 상황을 교류하고, 765kv 송전탑 반대 故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에서 신고리 원전 공청회 소식과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했다.

▲ 송전탑 반대를 위한 수요 촛불 집회 현장(7월 4일). 송전탑 공사를 막고 있는 네 개의 면이 서로의 상황을 교류하고, 765kv 송전탑 반대 故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에서 신고리 원전 공청회 소식과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했다.

누가 이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하루 동안 세 군데의 송전탑 예정지를 다녔다. 그곳들을 잠시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그날따라 뜨거웠던 뙤약볕 때문일까. 머리를 식힐 겸 잠깐 부북면 농성장을 빠져나와 걸었다. 길을 걷다 마을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을 발견했다. 냇물에 발을 담그니 하루 종일 쌓였던 열이 내려가는 듯 했다. 그때의 고요함이란. 잠시만 송전탑 부지를 벗어나도 이토록 평온한 마을인데, 누가 이곳의 주민들을 투사로 만든 걸까.

어르신들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전과 정부에 그동안 너무 많이 당했다고 했다. 얼굴을 마주하면 다들 고향가는 길 어디선가 한번쯤 뵌 듯한 평범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인데, 어쩌다보니 평생 처음으로 “데모질”을 나가고 농성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지난 7년간의 시간이 있을 테지.

우리가 밀양을 방문한 날은 마침 대학생 농활단이 마을에 머물고 있던 시기였다. 약 2주 동안 서울과 부산 등에서 100여명의 대학생들이 송전탑과 싸우는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 외부자의 시선이 두려워서 인지 그 2주 동안은 큰 충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도, 대학생들도 그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7년간의 싸움이, 그토록 외로웠던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싸움이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밀양을 떠나는 길,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다시금 지독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어르신들. 그분들의 싸움을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 어떻게 지켜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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