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핵발전소는 왜 필요할까요? – 홍대 길거리에서 묻고, 듣다

- 이경

밀양에서 돌아온지 2주 후, 홍대로 나섰다. 송전탑을 막기 위해 7년째 싸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허울 좋은 서울 살이, 늘 바쁜 서울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본 후 ‘뭐라도’ 해야 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밀양을 다녀온 서울 뜨내기들은 주위 사람들을 통해 안 입는 옷과 물건, 책 등을 모아 거리로 나섰다. 겉으로는 벼룩시장이지만 물건을 팔기 보단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핵발전소는 왜 필요할까요?”를 묻는 토론장이었다.

“핵발전소는 왜 필요할까요?”

▲ 홍대 거리에서 펼쳐진 벼룩시장. 옷가지들과 책 등을 펼쳐놓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핵발전소는 왜 필요한가요”를 물어보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홍대 거리에서 펼쳐진 벼룩시장. 옷가지들과 책 등을 펼쳐놓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핵발전소는 왜 필요한가요”를 물어보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거리로 나서면 우리만의 리그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더불어 집회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위에 우리편, 내편이 없다. 이곳에선 여러 사람들의 온갖 생각들을 여과 없이 듣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겁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대답이 나올까 기대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예전에 수차례 벼룩시장을 열어 ‘강정마을 해군기지’ 사태를 알릴 땐 국가 경쟁력 강화와 안보의 문제가 붉은발말똥게의 멸종이나 주민들의 분열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했다.

이번엔 ‘핵발전소’라는 의견이 분분한 주제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지인에게 잔뜩 받아온 옷과 그 전에 벼룩시장을 열고 남은 옷가지들과 책들을 진열했다. 그리곤 미리 준비해온 피켓과 질문판을 앞에 비치했다. 마침 뒤편에 자리한 인디밴드의 통기타 듀엣 덕에 분위기도 좋았다. 노래 소리가 울리고, 옷과 온갖 물건들이 깔리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물건을 산 뒤 핵발전소에 대한 의견을 적는 사람들

▲ 물건을 산 뒤 핵발전소에 대한 의견을 적는 사람들

▲ 물건을 산 뒤 핵발전소에 대한 의견을 적는 사람들

▲ 물건을 산 뒤 핵발전소에 대한 의견을 적는 사람들

우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핵발전소(원자력 발전소)가 왜 필요한가요?” 총 68명이 대답을 들려주었다.

1. 필요없다! 아끼자, 덜 일하자! (31명)
2. 석유고갈 무서워~ 대체에너지로 최고 (11명)
3.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야 하니까 (7명)
4. 경제발전~! 공장가동! (6명)
5. 선진국 도약 (4명)
6. 야근해야하니까 (3명)
7. 기타의견 (6명 – 핵무기 생산, 주적 북한 OUT, 다른 에너지 등)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 특성 탓인지 “필요없다”라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리에서 만난 많은 외국인, 한국인들은 핵발전소에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대체에너지, 경제발전 등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아들을 데리고 홍대에 나온 한 아저씨는 볼멘소리로 이야기를 건넸다.

“원자력 발전은 ROI가 좋아, (그게 무슨 뜻이에요?) ROI 사전에서 찾아봐요. 원자력 발전은 ROI가 좋지. (ROI는 투자대비 수익이라는 뜻이었다)”

또 몇몇은 이렇게 말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죠.”

▲ 다른 의견을 적는 칸에 한 커플은 "핵무기 생산"과 "주적 북한 OUT"을 나란히 썼다.

▲ 다른 의견을 적는 칸에 한 커플은 "핵무기 생산"과 "주적 북한 OUT"을 나란히 썼다.

한 커플이 ‘기타 의견’에 나란히 적은 대답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커플이 사이좋게 적은 대답은 아래와 같다.

“핵무기 생산” 그리고 “주적 북한 OUT”

조선일보식 논리를 일반 시민에게 확인하는 그 순간,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하며 웃음도 났지만 이들과 어떤 대화를 더 이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핵발전소’라는 단어를 지적하는 분도 계셨다.

“주체측의 의도가 너무 드러나는데요? 원자력 발전소를 핵발전소라고하면 당연히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겠죠. 원자력 발전소라고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원자력 발전소가 핵발전소에요? 왜??”

또 많은 분들이 ‘핵발전소’라고 하면 멈칫하다가 원자력 발전소라고 설명을 해주면 그제서야 “아~”하며 질문판에 다가섰다.

현장에 가지 못해도…

겉보기에는 보통의 벼룩시장 같지만 가까이 다가오면 질문을 던지는 장터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어디서 나온 사람들이냐며 의심의 눈초리까지 주는 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의 대답을 듣는 건 많은 부분의 ‘깨짐’을 경험하게 한다. 경제, 안보, 먹고사는 문제 등이 더 중요시 된 현재의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고, 또 나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공장이 24시간 가동되고, 경제가 발전하면 좋은 거 아냐?”,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게 너도 편하지 않아? 왜 반대를 하는거지?”
무엇보다 길에서 장터를 열고, 이렇게 행동하는 건 현장에 가지 못하는 미안함과 현장에서 직접 만난 어르신들에게 들은 이야기와 그분들과 주고받은 눈빛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 때문이다. 국가와 맞서는 당당히 맞서는 어르신들에 비해 겁쟁이에다, 물러서는 것에 더 익숙한 서울 풋내기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돈도 별로 없어 후원도 크게 하지 못하고, 변호사나 학자 같이 번듯한 직업인도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으려 하고, 그것이 바로 벼룩시장을 가장한 모금 행사와 길거리 토론회다.
벼룩시장에 참여하는 친구들끼린 이를 ‘액션포럼’이라고도 부른다. 앉아서 말만하는 포럼보다 직접 움직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열린 포럼을 만들어보자는 뜻이다. 지역에 직접 가서 몸으로 막고, 그곳에서 함께할 수는 없지만 있는 자리에서나마 밀양 송전탑의 소식을 알리고, 다른 이들의 생각도 같이 듣는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도 늘 하지만 그래도 짬을 내서 돗자리를 들고, 트렁크에 옷과 책을 담아 또 길거리로 나서보련다.

요즘엔 아이들 옷이 많이 생겨서… 다음번 액션포럼은 서래마을이나 서초예술시장에서 하려한다. 참고로 수익금은 모두 현장으로 전달한다. 혹여나 이쁘지만 자주 안 입는 옷, 서가에 꽂히지 못한 채 방치된 책 등이 있다면 manhang@googlegroups.com으로 연락주세요 ^^

<밀양 송전탑 사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6년 간 고립된 채 외롭게 송전탑 투쟁을 해오신 어르신들께선 외부에 밀양의 이야기가 알려지는 것이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또 적은 수라도 외부세력들(?!)이 밀양에 꾸준히 와주면 공사를 중단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고 전해주셨습니다.

1. 밀양 송전탑 관련 기사나 소식을 트위터 및 SNS로 알리기
2. 밀양 방문하여 응원하기
3. 밀양지역 초록 농활단 꾸리기
4. 멀리서나마 힘 보태기 – 후원하기
765kV 송전탑 반대 故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
후원계좌 (농협 이계삼 815-01-227123)

응답 3개

  1. 낙타말하길

    이경님,

    어제는 도쿄에서만 17만명이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답니다!
    밀양에 힘이 되는 소식이길, 화이팅!

  2. ㅂㅂ말하길

    이전에 부산 희망버스에 내려갔을때 행진하는 사람들을 두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거리에서 토론이 이어지는 걸 봤어요. 물론 ‘저게 무슨 몰상식한 방식이야!’ 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 무엇이 이런 행진을 만들었는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어요. ‘액션포럼’ 옷보다 더 귀한 것들이 오가는 장이 네요. 아오, 멋져라! 나도 이렇게 놀고 싶다!

    집에 바퀴가 하나 빠진 트렁크가 있는데 그것도 유용하게 쓰일까요? 잘 안 입는 옷들 담아 보낼께요. 그리고 다음 액션포럼은 언제 어디서 하는 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 이경말하길

      안녕하세요 ㅂㅂ 님. ‘ㅂㅂ’는 어떤 단어의 줄임말일지 궁금하네요 ㅎㅎ

      부산 희망버스.. 저도 2차 때 한번 타봤는데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오고, 먹을 걸 나눠먹고.. 낯선 지역에서 함께 행진하고.. 함께 밤을 새고..다른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폐를 좀 끼쳐도,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집에 안 입는 옷들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
      작은게 모이면 크게 되더라구요~~!

      내일 친구들 만나는데, 일정이랑 장소 정해지면 댓글로 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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