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농민의 마음

- 이계삼

6월 28일 일어난 일이다. 그 전날, 마흔 한 번째 촛불집회 때, 상동 총무님이 이야기를 전했다. 밀양시청 허가과로 한전의 적치장 및 진입로 허가 신청이 접수가 되었다고. 허가가 떨어지면 곧장 공사가 들어오는 것이다. 서서히 올 것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양시청을 향해서 정당한 의사 표시는 해야겠다는 생각 정도 했다. 대책위 회의에서‘내일, 시간 되는 대로’ 시청에서 모이자, 이런 정도로 결의가 되었다. 아홉시 조금 지나 시청에 도착했는데, 벌써 시청 앞에 경찰차량이 진을 치고 있어서 일이 벌어졌구나 싶었다. 2층 시장실쪽으로 올라가니 주민들이 엄청 모여 있었다. 100명은 너끈히 되어 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벌써 그렇게 연락이 되었구나, 놀라웠다. 하긴 이른 주민들의 놀라운 자발성은 내가 이 싸움에 함께 한 지난 6개월여 시간동안 언제나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이백명이 넘는 이들의 식사를 순식간에 뚝딱 차려놓고 치우는 놀라운 속도며, 서울 시청앞 집회든, 부산역앞 집회든, 고리핵발전소 기자회견이든, 어디든 주민은 예상치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참여하는 열성이며, 밥상을 차리는 일이든, 집회장을 꾸미고 치우는 일이든, 일이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은 그 놀라운 속도와 헌신의 모습들은 언제나 감탄스러웠다.

꽤 오래전부터 몸싸움이 시작되었는지 어르신들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내일 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상동면 총무님은 오늘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셔야 할 텐데, 또 몸싸움을 하고 계셨다. 부북면 할머니들도, 용회동 사모님들도 시장실 앞을 막아선 젊디젊은 시청 직원들과 남녀대항 줄다리기를 하는 듯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커진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 밀양시청 공보실의 계장이라는 분이 어느 인터넷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주민들, 전자파 어쩌고 하지만, 다 보상금 더 받아내려고 하는 수작”이라고 말한 것이 보도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울고 싶은 놈 뺨을 때려 준’ 그 기사 때문에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나중에 해당 공무원은 그 언론의 악의적인 오보이며, 정정보도 기사가 나왔고, 물의를 끼쳐 주민들에게 유감이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왔고, 여러 경로로 사과했다). 어쨌든 그날, 여섯 시간 동안 주민들은 농성했다. 백명이 넘는 주민이 시청사가 떠나가라고 “시장 나와라, 허가 내 주지 마라, 인터뷰한 그 공무원 무릎 꿇고 주민 앞에서 사과해라”고 외쳤던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전교조 일을 하면서, 그리고 지역 활동을 하면서 시청에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시장이든 누구든, 공무원들과의 면담을 끝내고 나면 나는 그때마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배회하곤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세금을 내서 왜 이 사람들을 먹여 살려줘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와 열패감과 박탈감으로 오랫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저들은 지금껏 몇십년동안 저러고 살아왔을 것이다. 아니, 조선 후기부터 몇백년동안 저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농성은 오후 세 시가 넘어 끝났다. 부시장이라는 이가 나와서 유감을 표명하고, 진상을 알아보겠다, 최대한 인‧허가 건을 지연시켜보겠다는 답변을 받아 내고서야 농성을 풀었다.

몸빼 바지 입고 흙 묻은 장화신고 시청으로 달려간 주민들의 마음을 저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물장화 신은 채로 점심으로 급히 사온 김밥을 잡숫고는 피곤해서 시장실 앞 복도에서 꾸벅꾸벅 조시던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복도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 다리 위를 양치 컵을 들고 사뿐사뿐 넘어가는 여직원을 향해 한 할머니가 분통을 터뜨리셨다. “할매들이 이라고 있는데, 너거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더나!!!” 움찔 놀라던 여자 공무원의 그 어리버리한 표정이란.

나는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서 그 사이 이 싸움의 경과를 짧게나마 밝힌 바 있다. 분신 사태 이전까지 내가 이 싸움에 끼여들지 않았던 것은 이 싸움의 주된 방향이 ‘한전과의 보상 협의’라는 식의 악선동을 나 또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싸움에 끼여들면서 확연하게 깨달은 것은, 절대 다수의 주민들의 바람이란 결코 ‘보상’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예전처럼, 살던 그대로, 살다가 죽게 해 달라는 것, 오직 그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

그것은 전세계 어디든, 토착 민중들이 개발과 독재, 세계화의 논리에 맞설 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표현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

어르신들은 우정과 환대의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한전 직원만 아니라면 그 누구가 찾아와도 그들은 따뜻한 식사를 대접한다. 이날처럼 시시때때로 무슨 상황이 생기면 그들은 동네를 불문하고 차를 모아 타고 서로 지원을 나간다. 그리고, 금세 뭉쳐버리고, 서로가 고립되지 않도록 함께 돌본다.

나는 그들의 높은 인간적 자존감에 슬픔과 함께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시청 농성 다음날인 6월 29일에는 신고리핵발전소 5~6호기 주민 공청회가 있었다. 밀양 주민들은 70여명이 버스를 타고 새벽밥 먹고 그곳으로 향했다. 공청회장 밖에서 기자회견을 마쳤지만, 진입을 거부당했고, 우리는 내내 세시간 동안이나 몸싸움과 농성을 해야 했다. 끝내, 그 지역 청년회 젊은 남정네들과 몸싸움을 하다 두 분 아주머니가 쓰러지고 말았다. 한 분은 실신했고, 다른 한 분은 울부짖다 기력이 다해 쓰러졌다. 한 분은 병원에서 깨어나는 순간, 눈물부터 흘렸다. 소리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오전까지 하루 내내 말씀이 없으셨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넘어졌던지라 나는 어디가 잘못 되었나 싶어 내내 두려웠다. 그날 공권력이 보여준 말할 수 없이 비겁한 태도, 공청회장 진입을 막아서던 지역 청년회를 보호하고, 그들의 완력행사에 대해 항의하는 우리들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묵인하던 그들의 행태, 청년들의 폭행에 항의하자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다’며 발뺌하던 한수원 관계자들, 결국 온갖 욕설과 폭력 속에서 진입을 저지당했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을 때, 그때의 육체적 고통(온 몸이 멍투성이였다)과 실신해서 깨어났을 때부터 다가온 인간적 모멸감, 서글픔이 그 분의 묵언과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에 담겨 있었다. 친구가 쓰러지자 함께 쓰러져 깨어난 분은 ‘다 죽이라’고 울부짖다 끝내 기력이 다해 쓰러졌고, 다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며칠 뒤, 상동면 109번 송전탑 부지에 공사가 강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트럭을 몰고 현장으로 달려가던 상동 총무님(쉰 일곱의 아주머니다)이 전화를 받다 핸들을 잘못 조작해서 차가 전복이 되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아찔한 순간이었다. 소식을 듣고, 경남 고성에 있던 나는 아내와 함께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내가 도착할 무렵에야 의식이 겨우 돌아온 모양이었다. 덥썩 손을 잡았더니, 눈물을 흘리신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다들 미안하다. …… 차(트럭)한테도 미안하고.’ 우리한테 미안할 것도 없지만, 폐차가 되어버린 트럭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잔잔한 목소리에 나도 마음이 일렁이었다. 고추 하우스 농사일의 가장 좋은 동지였던 총무님의 트럭, 상동면 열 개 부락을 누비며 온갖 서명지와 유인물을 나르던 그 트럭이 졸지에 뒤집혀져 폐차가 되게 되었다. 트럭한테 미안하다고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자 마자 뇌까리는 그 마음이 바로 우리 총무님의 마음이고, 이 싸움을 7년껏 이끌어온 농민들의 마음이다.

물론, 스물 두개 마을 모든 주민들이 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싸우고 계신 것은 아니다. 마을마다 조금씩 온도차가 있고, 상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어떤 마을에는 여전히 싸움 자체를 두려워하며, 이 거대한 기관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지역의 정서이기도 한,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싸움 자체를 경원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집회든 어디서든 만나는 주민들의 얼굴은 참 맑고 깨끗하다. 그들의 얼굴 속에, 절박한 투쟁의 열기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금전에 오염되지 않은, 일생토록 땅을 지켜온 농민의 감수성이며, 자신의 삶터를 스스로 지켜내고자 하는 인간적 자존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응답 2개

  1. 지나가다말하길

    농민분들의 마음이 넘넘 짠하고, 그분들의 강인함에 고개숙여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탄원서 폭풍감동입니다.

  2. […] | 동시대반시대 | 농민의 마음_이계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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