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두 개의 문을 보고..

- 지오

<두 개의 문>을 봤다. 유가족들의 비통함이 얼마나 절절할 것인지 남의 고통을 들여다봐야 하는 불편함에 미리부터 잔뜩 움츠렸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날 있었던 사건을 전달하는 데 충실했다. 유가족들의 비통함이나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망루에 올라야 했던 농성자들과 명령이었기 때문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경찰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했다.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에는 불이 왜 났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왜 망루에 올랐고 또한 그들은 왜 무리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을까. 비통함이 없어 흡족했으나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고 난 후 마음은 더없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동성애자다. 영화를 볼 당시 나는 이 사실에 과도하게 골몰하여 모든 장면들을 내 문제와 연결시켰다. 커밍아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내가 당면한 문제였다. 망루에 오른 농성자들의 권리주장이, 자신의 진술을 정정한 B팀장의 용기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모두 다 내게 커밍아웃을 종용하는 듯 느껴졌다. 커밍아웃을 결심하고 영화와 연결하여 글을 썼다. 글을 본 몇몇 지인들의 반응에 좌절했다. 커밍아웃을 정당화하려는 내 방어기제가 과한 탓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잃을 것도 없는데 커밍아웃이 왜 그렇게 두려운 거냐고.

타인의 소수성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자신의 소수성을 인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 잃을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선입견이 무서운 거다. 나를 소수자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누군가에게 이해받아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두려웠다. 나 스스로를 약자의 위치에 놓는 게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이해나 배려,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늘 불쾌했었다. 내가 그런 대상이 된다는 게 싫었다. 내 안에 작동하는 강자로의 욕망, 권력의 힘이 느껴졌다.

영화 말미, 경찰 쪽 증언이 쏟아진다. 검사가 누구의 책임인 것 같냐고 묻는다. 짧은 침묵 뒤 농성자들이란 답이 들려온다. 혹자는 저 침묵 안에 진실이 있다고 말한다. 한편 B팀장은 사건 당일 “다 죽어”라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았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 의미는 “모두 죽어버려”인 듯했다. 하지만 법정에 선 B팀장은 그 의미가 “이렇게 가다가는 모두 다 죽게 된다”는 우려였다고 증언했다. 변호인이 왜 그 때는 ‘모두 죽어버려’로 읽히도록 진술했느냐 묻자, 당시에는 경황도 없고 적개심 때문에 그렇게 썼었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뜻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자신의 진술을 정정한 것이다.

영화를 본 직후에는 농성자들과 진압경찰 뒤에 숨은 자본과 권력을 봤었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이 우리 안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선입견이 무섭다고 했을 때 그것은 관계가 끊어질 것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지속하는 데 따르는 불안이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조직에서 사회에서 살고 싶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이다.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전처럼 자연스럽게 대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 같이 있는 사람들을 신경 쓰게 만들고 불편한 존재가 될 거라는 불안은 타인에게 비난당하고 남들과 다른 인간으로 구분되어져 차별받을 것에 대한 불안으로 점점 부피를 늘려갔다. 그리고 내 주변인들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곤경에 빠지고 그로 인해 나는 미움을 사고 결국 홀로 남겨져 이 사회에서 온전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공포로까지 조장되었다. 경찰의 침묵에 진실이 있다면 그에게도 이와 비슷한 불안이 작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공포는 사실 내가 만든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면 굶어죽게 될 거라는 우려와 비슷하다. 그동안 나는 내가 만든 이 실체 없는 공포에 휩싸여 입을 닫고 살았다. 내가 만들었다지만 시스템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 사회가 그런 공포를 조장하도록 종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궁금해졌다. B팀장은 왜 진술을 정정했을까. 어쩌면 그는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말할 수 없게 하는 공포의 허상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B팀장의 용기를 통해 그동안 휩싸였던 공포가 내 안에서 조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 실체 없는 공포를 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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