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독일 공연을 다녀와서.

- 김융희

2012년 7월 12일 12시 40분, 인천공항에서 뮌헨을 향해 루프트한자는 힘차게 이륙했다.
나는 지금 “Noah Choir” 남성 합창단의 일원으로 초청 공연을 위해 독일행 여객기를 탄 것이다. “노아 남성 합창단”은 ‘경동교회’ 교인들이 중심인 65세 이상 남성들의 합창단이다. 우리는 일 주일을 동독지역인 베를린, 라이프치히, 드레스텐, 바이마르, 바이젠 지역을 순방하며 세 차례의 공연을 한다. 이번 초청은 성 토마스 교회로 우리의 메인 공연이 될 것이다. 첫 공연은 14일 저녁에 베를린의 “루드비히 대성당”이며, 두 번의 공연은 라이프치히의 ‘한인 교회’와 “성 토마스 교회”이다. 그리고 공연을 마치면, 여행 일정은 지역의 역사 문화 답사로 짜여있다.

우리 일행의 제1 진은 뮌헨행이며, 제2 진은 두 시간후에 프랑크푸르트 행으로 나뉘어 출발했다. 마침 피서철에 올림픽을 앞둔 피크 때를 맞아 항공사의 사정으로 예정과 달리 일행이 함께 동행을 못한 것이다. 굉음과 더불어 이륙한 여객기는 금방 서해를 지나 중국 대륙을 거쳐 아스라이 내려 보인 몽고의 펼쳐진 초원이다. 초행의 먼 길 여행에 들뜬 나는 꽉 매운 여객들 틈사이의 비좁은 의자에서 몇 시간을 베기며 견디려니 마음은 더욱 초조하여 심란하다. 비행은 시속 800km 속도로 계속 쉼 없이 날고 있지만, 시베리아 벌판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아스라한 지상의 모습이 깔린 구름에 가려 보이는 것이란 창공뿐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무미 건조한, 재미 없는 것이 항공 여행이다. 그래서 나는 해외 여행을 바라지 않으며, 국내인 제주도 관광도 배를 탄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항공 여행을 즐기는 것이 나는 이상하다. 관광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외국 관광이 나는 정말 싫다. 즐거운 것이 관광일진데, 우선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아 그렇게 답답할 수 없으며,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불편하다. 아무리 호텔이래도 비좁은 내 집보다도 잠자리는 훨씬 부자유스럽다.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도대체가 힘든 것이 외국 관광이다. 더구나 우리집 개새끼도 싫어하는 목줄을 메고 따라다니는 것 같은 페키지 여행은 한사코 싫다. 어떤 관광보다도 국내 여행이 나는 좋으며, 특히 정다운 이와 함께 대화하며 조금은 외롭고 쓸쓸한 시골을 찾는 것이요, 홀로라면 호젖한 정취의 사로(思路) 여행이 연분이다.

그럼에도 이번 먼 길 여행은 나에게 아주 의미있는 특별한 여행이 되리란 기대로 부푼 마음이다. 우선 동네 노래방을 나서기도 주저한 내가 아주 특별한 곳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는, 어쩜 생의 가장 영광된 기회의 여행인 것이다. 더구나 공연 장소는 대 악성인 “바흐”가 평생을 바쳐 음악 무대로 활동했던 800년 전통의 “성 토마스 교회”이다. 그러나 공연만을 위한 여행이라면 이번 결단을 쉬이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즘 한가한 여행에 틈을 낼만큼 여유롭지 않다. 이번 공연이 나에겐 아주 의미있는 일이지만, 나의 내심은 그곳이 독일이란 의미가 더욱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어렸을 적 독일에 대한 기억은, 2차 대전과 히틀러의 전쟁 이야기와 함께, 국민들이 성냥개비 하나도 아껴 함부로 쓰지 않으며, 빨리 닳는 팔굽과 무릎 부분의 옷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을 붙여 입는다는 철저한 근검 절약 정신이다. 아직 철도 들기 전인 어린 시절에 있었던, 혹 전쟁이야기라면 몰라도, 어떻게 근검 절약 정신에 대해 그토록 관심을 가졌을까 싶다. 아마 철이 들고서 떠오른 생각이 차차 물산이 풍성한 산업사회가 되면서 흥청거리며 바뀐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흥청 망청은 드디어 소비가 미덕이라는 고상하고 화려한 경제 용어로 변하는 세상을 맞았다. 나는 이같은 사회를 저주한다. 있는 물건을 억지로 써서라도 계속 많이 만들면서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경제 논리를 나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짖거리가 무엇을 위한 산업 발전이며, 누구를 위한 생산이란 말인가? 덜 깨인 초부의 생각D론 그렇다!

아무렇게나 함부로 쓰고 버리는 소비가 공장을 돌리고, 그래서 공장의 일터를 늘리는데는 필요할련지 모르겠으나 결코 미덕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정성껏 만들어 아끼며 알뜰하게 쓰는 것이 힘써 장려해야 할 바른 미덕일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들었던 독일 사람들의 아끼는 마음을 길이 기억하며 그려왔던 것이다. 우리가 경제 발전을 지상 과제로 산업 발전에 매진하면서 더이상 소비 절약의 미담보다는 소비 미덕을 내세워 흥청 망청거림의 일등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같은 변화속에서 어릴 때 들었던 향수가 나를 더욱 자극했다. 일찍이 순수 이성을 앞세워 합리적인 사고로 지상에서 가장 선진화 대열의 독일과 그의 현장 모습을 보고 싶었다. 특히 현실과 현장을 보면서 지금 독일에서의 변화를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칸트를 비롯한 오늘의 독일 정신을 일으킨 수많은 인물들이 부러웠다., 어릴적 밤을 지새며 읽었던 ‘젊은 벨텔의 슬픔’의 괴테를 그리워하며, 지금은 특히 그토록 이질적 조건이면서도 애틋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배풀며 교유했던 괴테와 쉴러의 삶의 현장인 작으면서 아름다운 도시 바이마르를 들러 두 문호의 아름다운 우정의 발자취를 밟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답사 코오스로 모두가 우리 여행의 일정에 들어있었다. 또 바이마르라면, 1919년에 그로피우스가 당시의 첨단 기술과 예술의 통합을 꽤하여 기능미와 조형미를 목표로 설립한, 그래서 건축, 일용품, 가구, 조명, 회화등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그 바우하우스의 탄생지이다. 21세기의 현제도 세계의 미술, 디자인과 건축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은 내게 여러 행운이 겹친 것 같다. 특히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의 기치를 올렸던 개신교의 발상지로써 개신교의 성지가 된 뷔템베르그와, 종교 제판으로부터 파문을 당한 루터를 보호하기 위해 프리드리히의 현자가 그를 납치해 숨겨주었던 바르트부르그성을 방문하여, 비좁은 공간에 숨어 10개월만에 당시 라틴어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성경의 대중화와 종교 개혁을 완성할 수 있었던 루터의 행적에 대한 생생한 보존 기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다. 한국의 분단과 관계가 있는 포스탐을 지나면서도 바쁜 일정으로 들르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독일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것으로 특히 이번 여행중 빠뜨린 것이라면, 희망사항으로 나는 유서깊은 독일의 대학 캠퍼스를 거닐어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대학 캠퍼스 방문’을 말할때면 모두가 냉담했던 것도 기억한다. 환락가를 능가하는 한국의 대학가를 보면서, 세계에서 가장 권위로 상징된 독일의 대학가는 일반 주택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분위기라는 그 정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독일의 대학촌은 걷는 일반인들도 학생처럼 느껴진다는데, 한국의 대학촌은 학교 관계자도 학생들도 가게 주인이나 술집 종사자로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어데서 듣는 것 같다. 나도 학생처럼 느껴지는 독일의 대학가를 걷고 싶었는데 무척 아쉽다.

전혜린의 글을 읽으며 그토록 절절한 뮨헨의 분위기를 맛보지 못했던 것도 아쉬웠다. 뮨헨은 도중 기착지로써 잠시 머무는 여유로 공항의 광장에서 그 유명한 뮨헨의 흰소세지를 안주로 뮌헨의 맥주를 마셨지만, 옥토바 페스티벌에 참석은 아닐지라도 대중으로 꽉 메운 왁자지걸의 광장 분위기에서 밤세워 마셔보는 그 보드라운 뮨헨의 맥주맛이 아쉬웠다. 귀국길에 모두를 배제하고 뮨헨의 식품점에서 캔맥주와 캔으로 된 소세지를 사와서 서울에서 친지들과 분위기를 잡아 보았지만 아쉬움만 더했다.

작년 후구시마의 지진으로 인한 원전발전소의 사고로 전 지구촌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와 배제가 뜨거운 이슈이다. 필요함으로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석유가 전혀 없는 우리로써 대안이 없는 에너지 문제를 무조건 반대의 주장만 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대안을 찾자. 우리의 종말을 부를지도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구원을 찾아야 한다. 그래 이번 독일 여행을 하면서 특히 독일이 원전 없는 미래를 공약했음을 나는 주시했다. 그랬다. 우리는 지금까지 풍차라면 네델란드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번 여행중 독일의 가는 곳곳마다 풍차가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산이 없는 그 곳엔 대부분이 평편의 들판에 새워졌다. 풍차는 산등성이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우리는 전국 어데나 산등이요 오름이다. 그래 풍차가 대안이다. 우리도 과감하게 원자력 발전을 버려야한다. 필요하다고 위험 천만의 원자력 발전으로 우리의 종말을 담보삼을 일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서두에 독일인의 합리적인 사고에 가장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 도중을 줄곧 그들의 합리성을 일상에서 찾을려고 시종 노력했다. 우리에 비하면 그곳의 모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대체가 눈에 거슬린 것을 찾기는 더욱 어려웠다. 결국 합리성을 찾기 보다는 비합리적인, 그래서 눈에 거슬린 것을 찾는 것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런데 그마저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포기하고 말았다. 있기는 있을 것인데, 둔한 내 머리가 작동을 멈춘 것일 터.

그래 있었다. 화장실, 그 공중화장실이 모두가 유료이다. 그것도 5불, 우리 돈으로 700원이 넘는다. 공공 장소는 물론 ‘손님은 왕이라’는 유명한 쇼핑몰에서도 화장실은 예외없이 돈을 받았다. 사람이면 누구나 반드시 있는 것이 하루에도 몇 차례의 배설 작용이다. 어데서 어떻게 발생할지 전혀 예측 불허의 배설을 유료화하여 자유스럽지 못하게 함이 과연 합리적인 일일까? 그럼 돈이 없는 경우는 어떡하나? 나는 갑작스런 궁금증에 실험이라도 해야겠다. 드레스텐의 중심에는 매우 화려한 고급 쇼핑몰이 있었다. 그곳 역시 유료로 화장실 입구에 여인이 돈을 받고 있었다. 나는 서툰 영어로 급한데 돈이 없다며 생때를 부렸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에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차츰 짐작이 간듯 안된다고 한다. 나는 더 급박하게 다구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로 알고 안심하며 일을 보고 나오는데 또다시 돈을 요구한다. 인제는 아쉬운 것이 없어서 큰 소리를 쳤더니 고개를 돌려버린다.

우리처럼 단체 여행객들의 이동때면 돈의 액수도 만만찮다. 그래서 어떤 곳에선 한 번 돈을 넣고 셋까지 들어갈 수 있는 그 방법을 활용도 했다. 우리 같은 나라에서도 화장실은 쉽게 눈에 뜨이도록 표시를 했고, 모두가 무료로 개방하는 공중변소를, 매사 합리적인 이곳에서 돈을 쓰며 쇼핑을 하려는 영업장소까지도 예외없이 화장실 이용에 돈을 받는 일은 지금도 수긍할 수 없는 궁금증이다. 마시는 물도 어디에서나 예외없이 돈을 내어 사먹어야 한다. ‘목마른 자 샘 판다’처럼 마시려면 돈 내서 사 먹고, 막상 돈이 없으면 갈증을 참아야 한다. 그런데 배설물 배출은 참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될 수도 있기에 딱하여 더욱 궁금하다. 어떻든 그들의 비합리성을 찾아서 다행이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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