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만필

독일 공연을 다녀와서 (2)

- 김융희

한때는 우리에게 희망의 나라로써, 독일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멀면서도 가까운 매우 특별한 관계의 나라이다. 패전의 고통을 극복하면서 경제를 일으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그들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비젼을 갖고 “한강의 기적”을 외치며 헐벗고 굶주린 속에서 허리띄를 졸라 맺던 것이 아직도 엊그제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의 광부들은 지하 1000m의 땅굴에서 석탄을 팟고, 간호원들은 알콜을 묻힌 거즈로 시체를 닦는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병원의 일을 도우며, 받는 월급을 담보로 우리는 차관을 얻어 공장을 짖고 산업 기반을 위한 자금을 마련했던 것이 우리였다. 당시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원들의 피 땀 흘려 벌어온 임금으로부터 한국의 근대화는 시작된 것이다.

서로의 사정과 입장은 달랐지만, 국토 분단의 아픔을 함께 경험했으며, 그 분단으로부터 독일은 지금 통일을 이루었고, 우리는 아직도 분단된 채, 통일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 처지로써,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갖고 관계를 가져야 할 나라이다. 아주 특별한 계기로 특별한 인연의 나라에 나는 지금 가는 것이다. 그동안 충분한 연습도 없이 막상 나서고 보니,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우리는 내심 염려로 불안이 앞섰다. 오직 믿는 것이란 가는 곳이 교회요. 믿음의 형제로써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었다. 장시간의 긴 비행으로 뮌헨을 거쳐 베르린에 도착, 자정이 가까워서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원래는 도착 다음날 공연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비행기 사정이 바뀌어 하루 휴식의 기회가 주어졌다. 호텔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과 편의를 제공하며 도와준 베르린의 “한국 문화원”의 고마움에 특히 감사한다. 우리에게 아주 적절한 휴식 공간으로 “한국 문화원”에서 시차의 컨디션을 조절하며 조심스럽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저녁 공연장인 “루드비히 대성당”으로 갔다. “루드비히 대성당”은 베르린의 중심가에 위치하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큰 성당이었다. 신도들의 저녁 미사가 끝나고 우리의 공연이 있었다. 미사가 끝나며 반 이상의 듬성한 뜬 자리가 좀 아쉬었지만, 우리는 준비한 최선의 공연을 했다.

‘루드비히 대 성당’의 공연을 마친 우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버스로 독일이 자랑하는 아우토반을 이용해 라이프치히로 달렸다. 여행을 할 때면 늘 시간을 아껴야 한다. 저녁 늦게 이동하여 숙소에 드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의 하나이다. 라이프치히 노보텔에 투숙하여 아침 늦게까지 휴식을 취했다.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조심하여 몸 관리를 잘 하고 있는 우리는, 이곳 한인교회에서 낮 예배에 참여하여 교민들을 위한 노래를 선물했다. 우리는 단순한 여행객이 아니다. 중요한 초대를 받아 음악 공연을 앞두고 있다. 저녁 공연을 위해 가벼운 마음 유지에 힘쓰며 보내야 했다.

드디어 기다리는 우리의 공연 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두어 시간 먼저 공연장으로 갔다. 바뀐 장소와 분위기에 맞춰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전혀 상상도, 볼 수도 없는 규모와 장식의 아름다운 교회였다, 평소에도 일반을 위해 항상 개방된 교회 내부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내부 공간의 규모와 형태, 배치의 새로운 분위기와 환경은 전혀 다르다. 낮고 평범한 공간을 이용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넓은 공간에 높은 아치형 천정의 내부는 소리의 적응도 달라야 한다. 피아노로 연습했던 우리는 오르간의 반주로 공연을 해야 한다. 얼른 한 번이라도 적응을 위한 연습을 해보려 했으나 그럴 여건이 안된다. 교회에서 만든 프로그렘은 벌써 짜여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공연을 위한 내부 위치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오늘의 공연은 “성 토마스 교회”의 800주년 기념 행사의 일부로 새롭게 창단된 브라스 벤드 합주단의 축하 예배에 우리가 참여한 것이다. 드디어 브라스 벤드의 합주로부터 예배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공연은 짜여진 순서에 의해 예배의 후반부에 있다. 공연은 ’채문경‘ 교수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와, 합창으로 ‘김성균’ 곡의 “주님의 택함이었오”를 시작으로 ‘백경환’ 작곡의 “나 깊은 곳에서” 그리고 ‘J. S. Bach’의 “주께서 축복 주시니” ‘F. Schubert’ “거룩하신 주“ ‘L. V. Beethoven’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미국 성가중 ’D. Beseg’ “이 믿음 더욱 굳세라“ ‘H. Shelley’ “내 목자는 사랑의 왕”을 불렀다.

나는 지금 일생 처음 관중 앞에 섰다. 그것도 800년 역사의 유서깊은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이다. 가능한 관중을 외면하면서, 두려움과 긴장으로 들뜬 감정의 호흡을 조정하며, 악보와 지휘자의 손끝만 주시하면서 준비했던 곡을 모두 부르고 정신 없이 자리에 앉았지만 불안은 계속되었다. 우리 교회의 ‘박종화’목사님의 설교가 있었고, 축도와 함께 에배가 끝났다. 함께 동행한 일행들이 감격하며 달려왔고, 자리를 지킨 많은 청중들이 달려나와 환호했다. 그리고 이곳 교회의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관계자들도 우리를 반겨 주신다. 정말 뜻밖의 환호와 호응이었다. 정말 멋있었다며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비로서 안도했다. 실수는 없었나 싶다, 그럼 다행이다.

‘성 토마스 교회’엔 건물위 천정이 아닌 가장 높은 곳에 ‘파이프 오르간’이 두 대가 놓여 있다. 하나는 ,’바흐‘가 사용했던 ‘바흐’를 기념한 것으로 지금은 사용치 않는 전시용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예배와 연주에 쓰이고 있는 세계적 명품으로, 채문경교수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문외한인 내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아쉽다. 세계적 오르가니스트인 채문경님께서도, 그토록 연주를 해보고 싶었던 그 유명한 ‘성 토마스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이번 연주를 하게 되어 소원을 이루었다며 감격해 했다.
우리가 공연을 했던 장소는 특별한 교회의 배려로 평소엔 전혀 출입이 금지된 ‘성 토마스 교회’의 성역인 “바흐”의 묘지에서 였다. 우리는 800년 동안 이 교회를 지켜온 목사님들의 초상화가 걸려 지켜보는 가운데, 악성 “J. S. Bach”의 묘지에서 “바흐” 작곡인 “주께서 축복 주시네”를 불렀던 그 기회와 감동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축복은 놀랍고 지대했다. 공연이 끝나며, ‘성 토마스 교회’의 목사님께서 특별 제작한 800주년 기념 스카프를 일일이 우리에게 걸어 주시면서, 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할 때의 감격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이번 공연의 참여를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나는 참 많은 자랑을 했다. 조롱거리의 얼띤 짖을 의식적으로 서슴없이 반복했다. 오죽했으면 새 옷까지 동원하면서 자랑을 일삼았겠는가. 이실직고 하거니와 처음엔 꼭 꿈같아서 시험 삼아 자랑으로 현실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는 자랑을 삼가자. 모두가 현실로 잘 끝났으니 보다 겸손하여 체신을 되찾자. 그럼에도 이번 공연에 대한 결과는 정직하게 전해야한다. 베르린의 “루드비히 대성당”에서의 있었던 일로 이번 공연의 반응을 대신했으면 싶다. 미사가 끝나면서 참석했던 반 이상의 많은 교인들이 자리를 떳고, 우리는 아름답고 큰 성당의 조촐한 청중앞에서 준비한 곡을 불렀다. “루드비히 성당”의 공연에 우리의 큰 바램은 없었다. 그런데…

나의 바로 앞에는 조금 전 미사를 집전했던 주교 신부님이 청중과 함께 앉아 계셨다. 처음 신부님은 전혀 우리에게 관심 없는듯 의례적인 자리로 앉아 계심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한 곡이 끝나고 두 곡, 세 곡, 노래가 계속되면서 점점 냉담했던 눈빛이 반기는 눈빛으로 변했고, 드디어 함께 박수까지 보내며 만면의 기쁨이 넘쳤다. 음악회가 열광으로 끝나면 당연히 앵콜을 주문하는 박수가 쏟아진 것, 그 박수중에는 처음에 냉담했던 신부님도 함께였었다. 전혀 기대 밖의 사태에 어리둥절, 이제는 우리들이 당황했다. 장소가 성당이요 교회이고 보면 앵콜은 없으려니 생각하여 특별히 준비한 곡도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자랑이 아닌 확실한 사실임을 우리 목사님께서 확인해 주셨다. 신부님의 말씀이 처음엔 우리의 공연을 우연히 거친 행사려니 여기며 관심도 없었는데, 정말 이번 공연에 너무 감동을 받아 고맙다는 말을 강조하시더란다. 나의 안전에서 직접 확인했던 사실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의 공연도 거의 이와같은 분위기였다면 지나친 자찬일까? 잘 몰겠다. 그러나 좋게 받아 주시길 바란다.
노래를 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감동해 눈물이 났다. 청중인 많은 교인들의 열열한 반응에 감격했다. 우리 일행인 여집사님들도 너무 잘했다는 찬사였다. 중후한 남성의 톤이 웅장한 내부 공간의 에코와 화음을 잘 이루어졌던 것 같다.

제일 아쉬었던 것은 ‘한인 교회’의 공연이었다. 원래는 베르린의 ‘한국 문화원’에서 교민들과 어울려 보자는 취지로 문화원에서 열기로 했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피서철에 주말이라 차라리 교회가 좋겠다며 추천해준 곳이 라이프치히의 “한인 교회”였다. 100여 명이 넘는 꽉찬 교민들, 젊은 청년 학생들로 분위기도 좋왔다. 나이든 몇 분들의 반기는 모습도 있었지만, 목사의 너무도 의례적인 태도가 아쉬웠다. 환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어쩐지 좀 섭섭한 여운은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는 그들의 반가운 손님일 수도 있었는데 전혀 아닌 목사의 태도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든 두려움 속에서 그토록 들떠 기대했던 공연을 대과 없이 잘 마쳤다. 우리는 이번 공연을 위해 맥주의 본고장에 와서 마음 놓고 맥주 한 잔을 나누지 않고 지금까지 지내왔다. 이제부터는 뜻있는 여행을 즐겨보자. 우리는 라이프치히의 중심가에 있으면서 중후한 멋의 인테리어에 수백 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유명한 관광 식당, 괴테도 늘 이용했고 바흐도 자주 찾았다며, 지금도 세계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즐겨 찾고 있는, “아우어박스 켈러”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계속…)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