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1) 수행 가능성 탐색하기
홍아야, 한번 만들어진 컴퓨터의 운영체계는 인간의 도움 없이 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수가 있니 없니. 운영체계가 뭔데? 컴퓨터에는 운영체계 또는 운영체제가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프로그램을 가리킨대. 이 가장 기본적인 프로그램은 응용프로그램이 작동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의 자원을 제공하고 다른 진행프로그램과 작업이 얽히지 않도록 응용프로그램들의 정보를 교통정리 해주며 작업을 방해하는 다른 프로그램의 접근을 차단하고 보호한대. 그리고 컴퓨터 사용자가가 작업을 쉽게 빨리 선택하여 목표에 도달하도록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작업들을 체계적으로 배열한 시스템이래. 그래? 어렵네. 어떻든 컴퓨터가 스스로 운영체계의 성능을 더 높일 수 있다면 컴퓨터는 스스로 진화해서 인공지능을 넘어서 초능력을 가진 신이 될 텐데 그건 말도 안 돼.
그럼, 인간의 운영체계는 어떨까? 인간의 운영체계? 인간에게 그런 게 있어? 아, 그럼, 있고말고. 그게 뭐야? 각자가 타고난 본능이지. 타고난 본래적인 능력 말이야. 그게 뭐하는 능력인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무조건 반사로 우리의 생명을 이끌어가고 조건 반사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타고난 능력 말이야. 우리는 단세포시절부터 축적된 모든 진화적인 경험들의 총화를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났어. 그게 어디에 들어있어. 각자의 유전자에 입력되어 있지.
그럼 하버지, 인간의 운영체계는 다 같은 거야 다른 거야. 타고난 가능성의 차이점만 세밀하게 따지고 든다면 다 다르다고 말할 수 있고 차이를 버리고 대범하게 공통점만 찾으려든다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 인간이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 다른데 다른 것으로만 본다면 이 모두가 본능이라는 운영체계가 다르기 때문이야? 아니, 타고난 또는 본래적 능력인 본능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모두 결정하는 것은 아니야. 만약에 본능이 모든 걸 결정한다면 일란성 쌍둥이는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리 다른 환경에서 자라도 판박이와 같이 키와 체중 그리고 생각과 행동이 똑같아야 하지만 그렇지는 않잖아. 유전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실현돼.
그래?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면 현재의 모습을 결정하는데 유전이나 본능보다는 환경이 훨씬 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뜻이네? 그것도 아니야. 원숭이로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원숭이를 벗어나지는 못하잖아. 아무리 인간의 생활양식을 가르쳐도 원숭이가 본래적인 능력의 차이 때문에 사람으로 살지는 못해. 우리는 다만 원숭이가 가진 가능성 안에서 환경에 따른 차이를 볼 수 있을 뿐이야. 우리는 하나의 종이 환경에 따라 이미 획득한 경험 가능성 즉 본능을 어떻게 달리 실현하여 행복하게 사는가를 살펴보려는 거야.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선택이 아무리 많이 쌓여 차이점이 많아지더라도 유전자가 같다는 이유로만 설명될 수 있는 공통점이 훨씬 더 많아.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타고난 가능성 즉 본능이 같지만 환경에 따라 조금이라도 다르게 실현된다고 한다면 본능이란 게 대체 뭐야. 있으나마나네. 본능을 ‘억제하기 힘든 충동적인 감정’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데 그건 아주 좁은 뜻이고 하버지는 제일 넓은 뜻으로 ‘유전된(타고난) 또는 본래적인 능력’이라는 뜻으로 쓰고 있어. 너는 일란성 쌍둥이는 본능이 같다고 해놓고 왜 두 쌍둥이든 네쌍둥이든 환경이 다르면 본능이 둘도 되고 넷도 될 수 있다고 하느냐고 묻고 있어.
네 말대로 서로 다른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이 쌓여서 나타난 차이점들로 본다면 일란성 쌍둥이가 타고난 본능이라는 것이 오로지 하나의 선택지만 있는 필연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 그러니까 네 질문에 대답이 되도록 다시 정의하자면 본능은 개체가 환경에 맞추어 실현할 수 있는 타고난 가능성임을 알 수가 있어. 본능이라는 것은 환경에 맞추어 개체가 선택하여 실현할 수 있는 유전자들의 조합의 수야. 그러니까 본능의 현실성 즉 현재에 실현된 모습은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야. 따라서 우리가 본능이라고 말할 때 이미 실현된 하나의 현실성을 말하지만 그 현실성은 언제나 가능성의 하나였음을 잊지 말아야 돼.
본능의 가능성과 현실성이란 말이 어렵워요. 추상적으로 말고 생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 글쌔 내가 생물학 특히 유전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잘 몰라. 컴퓨터에서는 정보 하나를 입력하면 반드시 결과 하나를 출력하는데 생명의 정보인 DNA 정보는 컴퓨터와 달라서 정보와 결과가 1 대 1로 대응하지는 않는대.
가장 단순한 특성인 눈동자 색깔조차도 하나의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유전자가 함께 작용한대. 유전병처럼 특정한 하나의 유전인자 결함으로 병이 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대. 질병은 대개 수십에서 수백 또는 수천 개의 유전자가 네트워크(협동작업 체제)를 이루어 작용한대. 당뇨병은 1천개 이상의 유전자가 관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렇다면 당뇨병에 걸린 유전적인 요인을 찾으려면 백만 개 이상의 경우의 수들을 가능성으로 검토해야 될 거야.
하버지, 본능이 타고난 가능성이라는 것을 알겠어. 그럼 어떤 사람의 유전정보를 알면 그 사람의 본래적인 가능성 즉 본능을 얼마나 타고 났는지 다 알 수도 있겠네? 2001년에 완성된 개놈지도는 사람 DNA의 물리적 지도, 즉 4개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가의 순서를 알아낸 것뿐이지 3만2천 개의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밝혀낸 것은 아니래. 하나의 염색체 속에 수천의 유전자와 그 속에 수 만개의 염기서열을 밝힌 것이니까 빗대자면 소설 한 권에서 한글 자모 10 억개의 순서를 밝혀낸 것일 뿐이래.
책으로 말하자면 개체 생명체를 한 권의 책으로 비유할 때, 그 책은 몇 번째 염색체라는 소제목에 따라 23 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서로 다른 수천 개의 단락이라는 유전자가 들어있고 단락마다 수십 개의 문장이 있고 각 문장에는 네 개의 염기가 하나로 묶인 낱말들이 수천 개가 들어있다는 거야. 그런데 어떤 하나의 능력이나 형질을 발현시키는데 몇 개의 유전자가 어떻게 협동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거야. 그 말은 각각의 낱말의 의미도 아직 모르며 더구나 그 낱말들이 모여 만든 구나 절 또는 문장이나 단락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 유전자가 어떻게 생명을 설계하고 운영하는지 아직 모른다는 거지.
다만 알려진 것은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유전 정보는 전체 유전정보의 1~2% 정도래. 유전자는 35억 년 전 단세포 시절의 경험부터 모든 진화과정의 경험을 축적한 역사적인 존재이면서도 지금 살아있는 생명의 설계자이고 운영자래. 우리가 사용하는 1~2%의 정보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정보겠지. 만약에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들 즉 유전 정보들을 다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인간을 넘어선 거의 신적인 존재일 거야. 이를테면 지금은 쓰지 않는 유전 정보지만 그 정보를 활용하여 우리 몸의 등 부분을 거북이처럼 파충류 시절의 딱딱한 등껍질이나 비늘로 보호했다고 생각해봐. 우리는 스핑크스와 같이 이 기묘한 존재를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본능이란 것이 현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모든 사람의 타고난 가능성이 같은 건지 사람마다 다른 건지 그리고 같거나 다르다면 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홍아야, 네가 앞에서 인간의 운영체계가 다 같은지 각각 다른지 물었어. 나는 미세한 차이로만 본다면 다 다르다고 말했고 대범한 공통점만 본다면 다 비슷하다고 대답했고. 타고난 가능성 즉 본능의 차이도 똑같이 말할 수밖에 없구나. 운영체계가 곧 본능이니까.
인간의 본능은 현실성으로 본다면 현재의 생명체를 설계하고 또 운영하고 있는 운영체계야. 그러나 본능이라는 이 현실성은 보편적인 가능성이 실현된 하나야. 타고난 가능성이 환경에 따라서 달리 실현되듯이 본능은 보편적인 인간의 가능성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에 따라서 달리 실현된 것이야. 어떤 능력과 형질은 더 많이 그리고 어떤 능력과 형질은 더 적게 타고난 현실성이지만 여전히 선택 가능성이란다. 그러니 일란성 쌍둥이 말고는 타고난 가능성이 똑같은 경우란 있을 수가 없지. 본능은 보편적인 인간의 가능성과 구체적인 개체의 현실성 사이에서 놓여 있어. 그러니까 인간의 보편적인 가능성에 비하면 현실성이고 개체의 구체적인 현실성에 비하면 가능성이라는 말이야.
하지만 난 아직도 인간성이라는 보편적인 가능성에서 어떻게 개성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성이 생기는지 잘 모르겠어. 보편적인 인간성의 예시로 언어 사용, 사회생활, 문화 창조, 유희를 즐김, 도구제작, 불의 사용, 직립보행, ······ 등을 들지. 인간의 보편성 즉 인간성은 진화과정 중에 획득한 능력 중에 하나라도 빠진 인간성은 보편적인 인간성이 아니야. 또 인간 개체에게 한 번도 실현된 일이 없는 어떤 다른 종의 성질이 그 안에 들어 있어도 그것은 보편적인 인간성이 아냐. 보편적인 인간성이란 진화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능력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망라하되 아직 획득하지 못한 어떤 특성도 섞이지 않은 오로지 인간만의 가능성의 총화이어야 돼.
그러나 개체의 가능성이 인간의 보편적인 가능성의 하나이기 때문에 현실성을 지닌다고 말한 것은 상대적인 의미야. 이미 실현된 구체적인 현실성 즉 개성과의 관계에서는 본능은 여전히 가능성이야. 본능은 진화과정에서 앞 세대가 이미 획득했던 능력이 정보라는 가능성으로 전해진 것이니까 어떤 개체도 환경이 뒷받침하고 본인이 노력한다면 전해진 정보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실현할 수 있어. 그러니까 모든 개체들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성들은 본래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가능성의 예증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의 본능적인 가능성의 예증이랄 수 있어.
만약에 유전 정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다면 그 정보량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유전 정보에는 단세포 시절에서 어류나 양서류 파충류 시절의 진화과정에서 획득한 능력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대. 그러나 우리의 경험 대부분이 무의식에 가라앉아 있듯이 지금 영장류의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대부분의 정보들은 발현되지 않은 채 기록으로만 보존 되고 있을 거야. 철자의 배열 순서를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철자들의 조합에 따라 생기는 낱말이나 문장의 의미를 읽어내듯이 몇 개의 유전자들의 조합이 어떤 능력이나 형질로 발현될 가능성을 가졌는지 밝혀내야 될 거야. 진화과정의 모든 경험과 현재 생명의 설계와 운영에 대한 모든 유전 정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서 책으로 낸다면 몇 권의 책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 몇 십만 권이나 되어야 다 담을 수 있을까?
전체 유전 정보 중에 인간으로 태어나고 살아가는데 활용되는 1~2% 정도의 본능으로 타고난 정보조차도 환경이나 습관이나 우리의 마음먹기에 따라 활용정도가 달라진대. 마음먹기에 따라서 세포핵 속의 유전자 조절 단백질에게 보내는 신호가 달라질 수 있대.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따라서 세포핵의 염색체에 담긴 정보코드가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 대. 마음먹기에 따라서 활용되는 유전 정보가 달라진다는 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의 결과가 마치 유심론자들의 주장과 같아 흥미롭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