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가지 궁상이몽

레디메이드 시대의 재테크

- 오곰이

어느 서점에서 노동자를 주제로 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상담코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한 달 월급이 100만원이 채 안 됩니다. 그렇지만 재테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재무설계사는 이렇게 말했다. “월 소득이 100만원 이하인 분들은 재테크라고 부르기도 힘들지만… 자산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 뒤에는 보험과 적금 등에 ‘계란을 나눠 담고’ 가계부를 쓰라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저소득 활동가를 위한 뭔가 특별한 재테크 방법이 있나 싶어 책을 펼쳤건만 맥이 빠진 채 이내 덮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한 바구니에 계란을 동시에 담지 말라, 복리가 적용되는 예금이나 적금에 들어라, 실비보험은 꼭 들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이렇듯 대부분은 돈을 굴리는 기본적인 정보와 기술이 있다. 헌데 왜 재무설계사나 펀드매니저와 같은 직업이 생겨나는 걸까. 아마 많은 이들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길 바라기 때문일테다. 밥은 하루에 열 끼를 못 먹어도 한 끼에 100명에게 밥을 살 수 있는 돈은 왕창 벌었으면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일테다. 아이패드 100대는 필요없지만 아이패드 100대를 살 수 있을만큼 돈이 생겼으면 하는 화폐적 욕망이 이 시대의 재테크 붐을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 1천 원 하던 주식이 갑자기 10만 원이 되면 성공한 재테크일까? 대출 받아 집을 마련한 후 그 집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세로 준 뒤 매년마다 전세금을 올리고, 정작 자신은 저렴한 집에 세들어 살면 영리한 재테크일까? 물론 돈이 늘어난 만큼 노후자금도 안정되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진다. 무엇인가를 살 수(buy) 있는 자유가 늘어나면 그만큼 삶도 윤택해지고 발걸음도 당당해진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지지리 궁상이 되고, 할 수 있는 것도, 살 수 있는 것도 줄어들게 되면서 내가 사는(live)것도 쪼그라든다고 생각한다. 헌데 정말 그럴까. 꼭 돈을 늘리고, 굴리는 것만이 이 시대의 바람직한 재테크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의 돈 굴리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궁상맞은 재테크, 재무설계사도 난감해하는 저소득자의 돈 굴리는 기술이다.

궁상맞은 재테크 방법 1. 괜찮은 은행에 투자(?)하기

1930년대 조선이 일본에 강제 지배를 받고 있을 당시 한 소년은 ‘경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는 돈 모으는 것이고, 그러니까 경제학이면 돈 모으는 학문이지요” 경제학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내는 것을 연구하는 것으로 선택의 효율성에 대해 여러 수식과 복잡한 이론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어렵고 전문가만 다룰 수 있는 학문으로 인식되곤 하는데, 지금의 경제란 소년이 이야기한 것과 같다. 불필요한 낭비를 삼가라, 악착같이 돈 벌어보자! 사회운동을 하던 삼촌뻘 되는 아저씨가 소년에게 그런게 경제학이 아니라고 하자 이 소년은 또 반문한다. “아니 그렇다면… 대학교 잘못 다녔소. 경제 못하는 경제학 공부를 오 년이나 했으니 그게 무어란 말이요? 아저씨가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경제 공부를 하구도 왜 돈을 못 모으니 했더니, 인제 보니깐 공부를 잘못해서 그랬군요!”(채만식 <치숙> 中)

마치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경제학과를 4년이나 다녔지만 신용카드 하나 없고, 재산이라고는 세계여행 한 번 간신히 다녀올만한 정기예금과 매월 적은 금액을 붓고 있는 적금 그리고 여기저기 통장에 들어있는 푼돈 뿐. 이것도 자린고비처럼 쓰고 있어서 간신히 유지 정도만 하고 있다. 맑스 그랬던가. “자본가는 합리적 수전노이고 수전노는 미친 자본가”라고. 아마 난 후자일테다. 아마 이 돈도 여차하면 몇 달 만에 다 써버려 빈털터리가 될 수도 있겠지…….

벌어 놓은 게 얼마 없고, 벌 수 있는 것도 얼마 없어 수전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수전노에게도 돈은 굴려야 하는 대상이다. 허나 수전노는 아무 은행이나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기존 은행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넣어두고 현금지급기를 이용한다. 그렇지만 재테크의 고전인 ‘적금’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은행에 넣지 않는다. 제 배불리기에 급급하고, 받은 만큼 예금주와 지역에 베푸는 게 없는 은행이 얄미웠다. 또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최근의 저축은행 문제를 보면서 얼마 없는 나의 돈이지만 그들의 돈 먹고 돈 버는 데 주기에는 아까웠다.

나의 얼마 안 되는 자산은 영등포에 위치한 비인가 은행에 투자(?)된다. 은행의 이름이 참 귀엽다. 은행은 ‘다람쥐회’라는 이름으로 통장을 발급하고, 대출도 한다. 다람쥐는 양볼이 빵빵해지도록 먹이를 물고 땅에 숨기지만 금세 숨겨둔 장소를 까먹어 다른 동물들과 숲의 영양분을 제공해준다고 한다. 각자가 가진 돈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다람쥐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투박한 디자인의 통장. 필체 좋은 직원분이 통장 커버에 직접 이름을 적어준다.

투박한 디자인의 통장. 필체 좋은 직원분이 통장 커버에 직접 이름을 적어준다.

통장 속표지. 적금을 기입하는 칸이 마련되어 있고, 입금이 확인되면 도장을 찍는다.

통장 속표지. 적금을 기입하는 칸이 마련되어 있고, 입금이 확인되면 도장을 찍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다람쥐회의 적금 통장을 보여주니 기겁했다. 특히 엄마는 볼펜으로 액수를 적는 은행이 어딨냐, 이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통장을 툭하고 바닥으로 던졌다. 그래도 난 ATM기도 없고, 예금을 보호받지도 못하는 은행이 지금의 다른 큰 은행보다 믿음직스럽다. 그 이유는 다람쥐회의 괜찮은 이자율도 있지만, 돈을 쓰는 방식 때문이다. 1960년 말, 급속한 경제성장의 그림자로 도시빈민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한칸 마련하기 힘들었다. 그들과 함께 협동경제체를 만들기 위해 다람쥐회가 만들어졌고, 1972년에는 최고의 신용협동조합이 되었다. 신협이 해산되는 등 정치적 굴곡을 겪었지만 다람쥐회에 지역 사람들이 돈을 꾸준히 모은 결과 많은 이들이 제 집 보증금을 만들었고, 소비자협동조합, 의료생협 및 지역 시민단체를 만드는 데 주춧돌이 되고 있다. 그들은 규모가 작고 세련되지는 않아도 적어도 예금주에게 뻥튀기 보험 상품을 팔지 않고, 조합원들의 삶과 활동을 지지한다.

올해 2월부터 매월 5만원 씩 적금을 넣어 이제 7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에 적은 금액으로 적금을 넣기 시작했지만, 은행과 보험에 대해 공부할수록 다람쥐회에 대한 믿음은 커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달 부터는 좀 더 큰 금액의 적금을 넣으려 한다. 시중은행에 묵혀두었던 내 쌈짓돈도 영등포의 지역 금고에 부으려 한다. 한 은행에 별 다를 것 없는 적금을 두 개 넣는 건 돈 굴리는 기술로 보면 빵점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는다. 내가 넣은 돈을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데 쓰이는 둥 허투루 쓰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궁상맞은 재테크 방법 2. 서로를 위한 돈쓰기

궁상맞은 재테크 방법 두 번째는 서로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다. 외로운 청춘들 대 여섯 명이 서로를 위로하며, 서울 이곳저곳을 헤매며 루쉰, 노자를 읽는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서로에게 더 책임감을 갖고, 서로를 위해 돈을 써보자며 옥탑방에 첫 둥지를 틀게 되었다. 다섯 명이 50만원씩 출자했고, 매월 5만원씩 송금해 월세를 부담했다. 그리곤 각자 관심 있는 모임들을 꾸렸다. “돈 때문에 고민해 본 사람,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화폐(돈), 자본, 노동에 대해 수다를 떠는 <화폐반>이 문을 열었다. <화폐반>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 궁리를 해야 할 텐데, 돈을 잘 ‘벌기’보다 돈을 잘 ‘쓰기’ 위해 돈에 대해서 공부했다. 또 <녹색평론>을 같이 읽고 <여성의 몸> 모임에서는 토요일마다 모여 산에 가고, 20대 후반 여성들의 여러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하는 등 여러 모임이 헤쳐-모였다. 1년 후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놓이자 이런 저런 인연으로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하나 둘 씩 출자를 선뜻 해주었다. 적게는 20만원부터 많게는 50만원씩 각자 형편에 따라 출자를 시작했고 200만원으로 시작한 종자돈은 1천만 원으로 불어났다.

2009년부터 공간을 만들어 지내면서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삶을 꿈꿀 수 있는 벗들이 생겼다. 한 달에 3만원에서 5만원 정도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보험이라 할 수 있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상황 때문에 자주 오지 않는 친구들이 더 늘긴 했다.(ㅜ_ㅜ) 그럼에도 아직 모임을 꾸려나가는 나를 포함한 소수의 친구들은 매월 3만원을 매월 초에 송금한다. 100만원의 출자와 매달 내는 월세는 친구와 배움, 맛있는 밥으로 돌아온다. 투자대비 꽤 괜찮은 수익이 아닐까 ^^

복지 국가로 가자는 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사보험이 넘친다. 물론 이는 그만큼 사람들의 삶과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허나 은행과 보험사들이 펼치고 있는 자본에 대한 줄다리기는 과연 옳은가싶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보험 가입자들의 불안을 담보로 보험금을 적립하는 것이 선순환 고리일까. 많은 불안의 요소들이 내 앞에도 펼쳐져 있다. 결혼 자금, 주택 자금, 아이를 낳게 되면 갑자기 불어날 지출, 아이가 아플 때 드는 병원비, 나 또는 가족이 병이 들 확률,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을 경우 등등. 이런 불안을 사기업에 몇 만원씩 내는 보험에 가입하거나 수익률 높은 상품에 기대면 되는 걸까.

계속 고민해보련다. 비슷한 삶을 강요받는 레디메이드(기성품) 시대에 어떤 재테크를 해야 하는지. 20대부터 노후를, 아니 노후자금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더 재밌게 돈을 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말이다.

응답 1개

  1. 그러게요말하길

    은행 문제 많죠… 보험도 필요하고.. 돈은 안 모이고 어찌 살아야할지.. ^^;; 새로운 재테크가 필요한데 어렵죠.. 뭐라도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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