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집단자살의 공포를 그린 사회극 <연가시>

- 황진미

<연가시>가 45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어매이징 스파이더맨>이나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크게 밀릴 거란 예상을 깬 흥행이다. 평단의 반응도 좋지 않았다. 재난영화에 가족신파를 뒤섞인 상투적인 구성에, 공포물로서의 완성도도 높지 않다는 평가였다. 뜻밖의 흥행에 추측도 분분하다. 3-4년 전부터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했던 ‘곱등이-연가시’ 괴담이 주효했으며, 개봉에 앞서 ‘연가시’ 웹툰이 공개된 것이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전 연령대를 포괄하는 관객 중, 청소년관객이 눈에 띄었다는 사실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연가시>의 흥행에는 그보다 본질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영화가 말하는 공포의 핵심이 한국사회의 정신적 상태를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 관객들의 심리상태와 공명했다는 사실이다. <연가시>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1. <연가시>에 대한 오해?

<연가시>에 대한 평단의 평가를 짚어보자. <연가시>가 재난영화와 가족신파가 뒤섞인 상투적 구성을 갖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해운대>에서도 그랬듯, 중년관객을 모으는 요소로 작용했다. 수작으로 꼽히는 <괴물>역시 가족신파의 요소가 강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한국 블록버스터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공포물로서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을 세분하면, 연가시의 징그러운 모습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거나,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파가 없어 감염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지점에서 공포가 반감된다거나, 특효약을 찾은 이후에는 액션으로 장르가 바뀐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연가시>의 장르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 말들이다. <연가시>가 징그러운 기생충이 신체를 파고드는 장면 등을 넣지 않은 이유는 등급을 고려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괴수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가시>에서 진짜 공포를 일으키는 요소는 징그러운 기생충이 아니라, 감염자들의 광기이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감염자들이 집단자살로 내달리는 광경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포의 핵심이다. 확산되는 것은 기생충이 아니라, 자살충동으로 들끓는 전사회적 공황상태다. 특효약이 발견된 이후의 장르는 액션이 아니라, 사회극으로 보아야 한다. 요컨대 <연가시>의 장르는 집단자살의 공포를 그린 사회극이다.

2. 연가시가 그리는 사회상은?

박사이지만 주식으로 재산을 날리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주인공(김명민)에게 가족은 먹여 살려야 할 입이다. 영화의 첫 장면, 주인공은 놀이공원에서 머슴처럼 착취당한다. 병원 원장의 가족들에게 감정노동을 하다가 집에 가니, 진짜 가족들이 놀이공원에 가자고 한다. 짜증을 내고 돌아서니, 가족들은 아귀처럼 먹어댄다. 그가 짜증내는 이유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금융자본에 저당 잡히고 소외된 노동으로 감정착취를 당한 그에게 가족과 친밀감을 나눌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먹어대는 것은 감염 때문이다. 감염자는 엄청난 식탐에 시달리다가 연가시가 몸 밖으로 나올 때쯤 극심한 갈증을 느끼다 물로 뛰어든다. 이때 연가시가 빠져나오면 감염자는 완전히 고갈된 상태로 죽는다. 기갈(飢渴)은 해소되지 못한 욕망의 표현이다. 참을 수 없는 욕망의 결핍에 시달리다가 그 욕망에 완전히 잠식당해 죽음으로 뛰어들고, 앙상한 시체로 남는 것.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조연을 통해 암시된다. 주식으로 빚을 졌으면서도 계속 주식을 하기위해 애인에게 빚을 내라고 닦달하는 형사. 그는 돈에 기갈이 들고, 돈의 욕망은 결국 그를 집어 삼킬 것이다. 변종 연가시가 외국의 ‘먹튀’ 자본과 제약회사의 음모로 씨가 뿌려졌다는 설정은 사실적일 뿐 아니라 필연적이다. 거대자본이 한축에 있고, 그들이 뿌린 씨로 욕망의 기갈에 시달리다 집단자살로 내달리는 한 축에 있다.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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