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비노동과 생존의 정치

- 와타나베 후토시(커먼즈대학 사회학)

일본사회는 1990년대 초 거품경기1가 무너지고,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이라 부른 장기적 불황을 겪었다. ‘비용 삭감’, ‘합리화’라는 외침 속에서 제일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해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젊은이들이었다. 1994년경 ‘취직 빙하기’라는 말이 나돌았고 얼마간의 부침 속에서 젊은 실업자층이 늘고 파견업이나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었다.

거품경기로 흥청댔던 1980년대 후반, 아르바이트 정보잡지 따위에서 ‘프리터’(Free+Arbeiter의 조어)라는 말이 나돌 때, 정규직이 아닌 파트타임은 활기차고 화려한 모습으로, 회사에 발 묶이지 않는 자유롭고 거침없는 직업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불황이 이어지며 프리터의 모습은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한 일하기 방식으로 평가되었다. 프리터로 일하는 젊은이2들은 앞날을 내다볼 줄 모르고 어디 한 곳에 머물 줄도 모르면서 내킬 때만 일한다고 비판받았다.

한편 1990년대 후반부터 자기 집이나 방에 틀어박혀 다른 사람과 만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현상을 사람들이 점점 관심 갖게 되었고, 2000년대 몇몇 사건을 겪으며 언론도 이 현상을 주목하게 되었다. 은둔형 외톨이는 곧잘 전형적인 ‘잘 사는 사회의 병’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집에 틀어박혀 끝내 굶어죽는 경우도 있다. 대개 은둔하는 사람은 남성이 많은 편이며, 일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거꾸로 사회적 관계도 다 끊은 채 살고, 그러다 과로사 하기도 한다.

집에 틀어박혀 있지는 않지만, 일하지 않거나 일거리를 찾지 않는 젊은이의 경우 사회는 이들을 ‘니트(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라 부른다. 2004년쯤 언론에 화제가 되어 다양한 니트 대책사업이 노동정책으로 시행되었다. 그때 한 방송에서 니트 청년이 “일하는 건 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발언해 주목 받았고, 니트를 경멸하는 말들이 언론과 인터넷에 퍼졌다.

프리터, 니트, 은둔형 외톨이는 찬밥신세다. 찬밥신세를 넘어 사회는 이들은 한 데 이용한다. 프리터는 저렴하고, 말 잘 듣고, 내치기 쉬운 노동력이니까. 은둔형 외톨이, 니트도 군소리 없는 소비자이며, 무너지는 경제성장신화에 산 제물 신세가 된다.

임노동과 자본 체제 안에서 이미 일과 삶은 단절되어 있다. 일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말도 이제 틀렸다. 과로사, 과로 자살, 노동 재해와 그에 따른 사고사. 풀타임으로 일해도 근근이 살수밖에 없는 임금.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계약. 일하지 않으면 살 수도 없지만, 일해도 잘 살 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프리터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일하지 않는 니트나 은둔형 외톨이는 살 자격이 없다고 매도된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살 자격을 매기는가?

코먼스commons대학에 모인 사람들은 일하기 싫다, 직장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디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이들을 향해 노동자의 대우 개선을 외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혼을 내고, 사회정책이나 노동경제를 연구하는 학자는 냉대하고, 정규직은 업신여긴다. 그러나 얼핏 노는 것처럼 보이는 실업자나 니트도 그 나름 살기 위하여 일한다. 무엇으로 일한다/일하지 않는다를 가르는가?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가? 일본의 장애자운동단체 <푸른잔디모임>(아오이시바노카이,青い芝の会)은 “일어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기저귀를 갈 때, 애써 허리를 들려고 노력할 때 그들은 바로 그들의 중노동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3며 문제를 제기했다.

일하지 않는다고? 그런 당신은 일하고 있나? 일거리를 내놓아라, 일하기 싫다, 이미 지긋지긋하게 일하고 있다, 바로 이 삼위일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1.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고가 발생, 수출산업의 타격을 피해 일본은행은 저금리정책을 택했다. 그러나 결과 투기열이 들끓어 잉여자본이 땅과 주식에 투하되어 지가와 주가가 끝없이 상승, 거품경제가 되었다. 또한, 엔고에 따른 해외여행, 해외 브랜드상품 구입 등 개인소비도 늘어나 소비사회의 꿈이 일본을 뒤덮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금융상품이 팔리고, 사람들은 디스코에서 흥청망청 춤추었다. 땅값이 뻥튀기처럼 튀어올라 폭력적인 가격 상승이 발생했고, 도심부에 사는 빈민의 땅을 앗아갔다. 성탄절 호텔의 식당은 미어터졌다. []
  2.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은 젊은이만이 아니지만,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의 정의에 따르면, 프리터는 15살에서 34살이다. 프리터는 곧 젊은이라는 인상은 오늘날도 뿌리 깊다. []
  3. 요코즈카 코이치(横塚 晃一), <<어머니여! 죽이지 마라>>(母よ!殺すな), 生活書院, 2010년, 56~57쪽. []

응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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