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역삼역 빨간조끼 빅판아저씨를 만나다

- 구름

역삼역엔 하루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오고간다. 대부분이 금융권회사건물이기에 3~40대 직장인들이나 그보다 조금 나이가 있으신 보험 아주머니들을 주로 볼 수 있다. 무심하게 높이 솟아 있는 잿빛 건물들, 제복이나 무채색의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 비슷한 색깔,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늘 무언가에 쫓기듯 자기 갈 길만 바쁘게 오고가는 곳이 바로 역삼역이다.

2011년 여름, 무채색의 역삼역 사거리에 빨간색 조끼를 입은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났다. 홀쭉하다 못해 표주박처럼 움푹 들어간 볼과 눈, 까무잡잡한 피부와 선명한 주름살의 그는 한 손엔 잡지를 들고 한 손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노숙인의 자활을 지원하는 잡지 빅이슈 입니다. 직접 당당하게 잡지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주말엔 홍대, 평일엔 역삼역의 빅판(빅이슈 판매원의 줄임말)으로 일하고 있는 박종환 아저씨다. 종종 주말의 홍대에서 마주치던 아저씨를 2011년 어느 날 역삼역 근처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나오던 길에 마주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 단골이 되었다. 아저씨의 출근시간은 오전 7시 30분. 평균 출근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다. 그때부터 야근하는 사람들의 퇴근 시간인 10시, 11시까지 역삼역 출구를 지키기에 따로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잡긴 어려웠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는 2시부터 4시까지가 비교적 한가하다기에 월요일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저씨를 찾았다.

아저씨와 인사를 하고 새로 나온 6월 두 번 째 호를 훑어보고 있는데 간호사 한 분이 오셨다. “아저씨, 준비 다 됐으니 이따 오셔요.” 선약이 있으셨나? 무슨 일인가 싶어 아저씨를 쳐다보니 씨익 웃으며 말 하신다.

“내가 여기 앞니가 하나 없잖아요. 이도 고르지 못하고, 굉장히 약하거든. 요 앞에 치과 하는 분들이 잡지살 때마다 내 이빨을 보면서 걱정하더라고. 다른 이도 아니고 앞니다 보니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고 하니까. 어느 날 인공 치아를 해주고 싶다 하더라고. 그동안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몇 번을 망설였나봐. 내가 부탁해도 모자랄 상황인데 저쪽에서 오히려 굉장히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거지. 마음이, 그 마음이 너무 예쁜 거야. 사실 예전에 회사(빅이슈를 발행하는 빅이슈 코리아를 말한다)측에서 하는 건강 진단 받을 때도 이빨 해준다고 했는데 내가 안 한다 그랬어. 목 뻣뻣하게 세우고 앉아 있는 의사들을 보니까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 내가 만약 그렇게 해서 이빨 치료 받으면 그냥 저들 병원 홍보시켜주는 거밖에 안되잖아. 그 사람들은 우리를 이용하는 거라고. 그런데 저 사람들은 그런 게 아니었거든. 정말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나한테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말이야, 그 마음이 너어무 고맙고 예뻐서 간 거야.”

# 자격지심은 버리고 자존심만 남겨 두었다. 나중을 위해 잠시 묻어두었을 뿐

아저씨는 자존심이 강한 분 이었다. 2004년, 기존 사업 확장과 동시에 웨딩홀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사기를 당했다. 불행은 한 번에 온다고 했던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집이 압류되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주민등록까지 말소되었다. 남은 건 어마어마한 빚뿐이었다.

“일을 구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웨딩홀을 했으니까 그쪽 일을 하려고 가보면 젊은 사람들만 뽑고, 노가다를 하려고 건설현장에 가면 또 거긴 그 일에 익숙한 사람들만 뽑고. 내가 이렇게 딱 보면 왜소해 보이니까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는 그런 일 다 할 수 있거든? 그런데 거기선 그냥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노숙생활을 시작한 아저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데서나 자거나, 노숙을 하니 더럽고 냄새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살진 않았다. 종교나 봉사 단체에서 하는 노숙인 무료 급식소도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에게 제일 기본적인 식욕을, 배고픔을 어떻게 억누를 수 있었냐고 물었다.

“공짜, 그게 무서운 거야. 한 두 번이라 해도 그렇게 뭔가를 공짜로 얻게 되면 나중엔 자기도 모르게 기대란 걸 하게 되는 거지. 자립(自立)이라는 말이 뭐에요. 혼자, 스스로 일어선다는 거거든. 그런데 노숙인은 늪에 빠진 사람들이야. 늪에서 혼자 빠져나오려고 하면 끝이 없어. 허우적대고 빠져나오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고. 도움이 필요하지. 그런데 그런 무료 급식 먹고 온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게 뭔지 알아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얼굴을 확 찌푸리면서 밥을, 국을 퍼준다는 거야. 그런 동정, 일시적인 도움, 공짜 같은 거 필요 없거든. 자존심 다 버려가면서 공짜 밥 먹다보면 자꾸 기대하고 뭔가를 기다리게만 된다고. 그런 사람들이 빅판 하면 오래 못해. 그리고 무료 급식, 건강 검진 이런 것들보다 필요한 게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건데. 그런 사람들을 동정하고 불쌍하니 돕자는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거지. 진짜 자립을 위해 돕고 싶다면 동등한 위치에서 파트너라 생각하고 같이 뭔가를 해야지. 빅이슈 코리아 국장도 말이야. 직업은 목산데 밥 차 운영하는, 무료 급식 하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박종환 씨, 박종환 씨 부르는 거야. 대학까지 나왔다는 사람이. 그래서 내가 또 뭐라고 했어. 나는 여기서 나오는 잡지를 파는 판매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 밑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우리는 서로를 돕는 파트너 이니 앞으로 선생님이라 불러달라고. 그 다음부터 선생님 이라 부르더라고. 나는 자격지심은 버렸어. 자존심만 갖고 하는 거야.”

그렇지만 그 자존심마저 나중을 위해 지금은 깊이 묻어두었다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라고 했다.

# 아저씨만의 진짜 소통

무슨 얘기든 아저씨는 항상 이렇듯 길고 세세하게 해주신다.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으리라. 잡지 10권을 들고 처음 역삼역 앞에 섰을 땐 입을 떼려 하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한때 번듯한 사업가였던 사람이 스스로 노숙인임을 밝힌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막다른 골목에 있었다. 그런 아저씨를 지탱한 힘은 가족뿐이었다. 나중에 누가 묻는다면 “가족만을 생각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 스스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5월 아저씨는 드디어 임대주택에 가족들과 합류하여 입주했다. 빅이슈 창간 멤버이기도 한 아저씨가 빅판으로 일한 지 약 22개월 만이다. 그동안 자신을 믿고 잡지를 사간 한 명, 한 명의 독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회사에 알릴까 생각 했지만 그렇게 하면 특별한 성공모델로만 비춰질 것 같아 싫었다. 다른 빅판들이 한다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도 하지 않는 아저씨였다. 고민 끝에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고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출력해서 빅이슈를 올려놓고 파는 임시 가판대 위에 붙여놓았다. 잡지 안에도 메시지를 넣었다. 오며가며 단골독자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입주했다고 써 붙인 뒤에 처음 보는 어떤 남자 분이 사러 왔더라고. 내가 창간호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데 그동안 눈 길 한 번 안주다가 이번에 임대주택 써 붙인 거 보고, 아 이 아저씨 여기 서서 정말 열심히 일 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어서 처음으로 사러 왔대. 그렇게 솔직하게 말 안 해줘도 괜찮은데(웃음)”

한 단골 고객은 몰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아저씨의 임대 주택 입주 소식에 대한 트위터는 리트윗으로 퍼지고 퍼져 300건 정도가 되었다.

“만날 사람들이 소통, 소통 외치는데 진짜 소통은 이런 거구나 싶었어. 항상 내 자리에 서서 적극적으로 외치고, 진심을 전달하려 하고, 정말 열심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 진심이 전달되었다면 그게 소통이 아니고 뭐겠어. 트위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근처 회사에서 문서 배달 알바를 하는 한 청년이 있어요. 그 친구를 만날 보는데 어느 날 나한테 트위터는 왜 안 하냐고 그러네. 트위터 하면 아저씨가 원하는 소통도 더 쉽게 할 수 있고 잡지도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주 혼을 내줬어. 나도 언젠가 트위터는 할 거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잡지를 많이 팔기 위해서 할 건 아니거든. 그건 그냥 상업적 메시지 일뿐야. 그런 게 소통이야? 매일 적어도 한 두 개씩 독자들이 보낸 문자가 와요. 힘내라는 문자, 아저씨 보면서 오히려 힘을 낸다는 문자. 내가 노숙인 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에게 자기 번호 찍고 문자 보내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보내주더라고. 난 그런 게 바로 소통이라고 생각해.”

일을 하면서 일일이 답장을 보내긴 힘들었다. 아저씨는 고민 끝에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디서 좋은 시구, 명언을 베껴서 쓰는 게 아닌 자신의 생각을, 힘이 되는 메시지를,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쓰고, 읽고, 여러 번 고치고 또 고친 글을 깔끔하게 출력해서 잡지가 들어있는 비닐 봉투에 함께 넣어준다. 아저씨는 아저씨만의 방법으로 진심어린 소통을 하고 있었다.

나 같은 학생들이 인터뷰 요청을 하면 대부분 응해준다고 했다. 공부하랴 취직 준비하랴 힘든 학생들이 인터뷰를 하고 자기 방식대로 그 이야기와 느낀 점을 풀어내고 나누면 그거 또한 소통이며 누군가는 힘을 얻기 때문에.

“얼마 전 회사에서 설문조사를 좀 해달라는 거야. 무슨 설문조산가 하고 보니 사회학 대학 교수가 논문 자료로 쓰기 위해 돌린 거래. 그런데 내가 또 거절을 했어.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논문 자료로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한다는 사람 질문 수준이 아주…. 응? 질문 내용? 노숙생활 할 때와 지금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 앞으로의 계획 이런 걸 묻고 있어. 아니 종종 인터뷰를 하러 오는 학생들 질문 수준보다도 못해. 그게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물을 내용인가? 그렇게 겉핥기 식 질문을 하는 거. 그런 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상처 주는 거야.”

나의 인터뷰 질문들이 그 교수의 것보단 괜찮을까. 민망한 마음에 괜히 날씨 이야기를 꺼냈다. 날씨가 너무 덥지만 햇빛이 쨍쨍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고. 아저씨는 다행이긴 한데 구름 잔뜩 낀 하늘을 보면 언제 비가 내릴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보통 빅판들이 서 있는 곳 주변에는 빅샵이 있다. 빅샵은 빅판의 물품을 보관해주고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엔 잠시 몸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게를 말한다. 아저씨의 판매 장소는 그 흔한 편의점도 골목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주변에 있는 거라곤 회사 건물뿐인 역삼역인지라 비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역 안으로 들어가면 되지만 비가 그치면 바로 내보낸다. 나가서 다시 가판대를 펼쳐놓고 있으면 금방 또 비가 내린다. 역삼역에 양해를 구했지만 역장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그때마다 처음부터 설명해줘야 하고 언성을 높일 때가 많다. 그렇게 목소리 좀 내고 나면 역 사람들과 친해지고 편하게 비를 피할 수 있지만 금방 또 역장이 바뀌기 때문에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내가 역삼역에 민원 좀 넣어도 괜찮을까요, 하니 “나 여기 좀 있게 한다고 역 직원들이 불이익 당하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하면 내가 그래요. 만약 당신이 정말 불이익 당한다면 우리 독자들이 인터넷에 항의 글도 올려주고 할 거라고.” 은근히 돌려 말하는 아저씨 귀엽다. 내가 꼭 민원 넣겠다고 했다.

아까 간호사 한 분이 다녀가신 후로 아저씨가 오지 않자 다른 간호사 분이 왔다. 짐과 가판대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얼른 다녀오시라고 했다. 아저씨는 그럼 부탁 좀 하겠다고, 잠깐 앉아 있으라며 낚시용 의자 같은 작은 의자 하나를 펴 주고 건너편 치과 건물로 뛰어 갔다. 잠시 후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돌아왔다. 오른 쪽 앞니가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이고, 만날 뚫려 있던 곳이 막혀 있으니 좀 어색하네. 가족들한테 말도 안했는데 오늘은 집에 들어갈 때 치~즈 하면서 들어가야겠어.”

# 문제 해결은 바닥에서부터

아저씨는 보통 한가한 2시에서 4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다. 항상 라면만 먹었는데 이러다 정말 몸 상하겠구나 싶어 요즘은 근처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킨다. 오늘은 치과 갔다 와서 먹으려고 아직 안 먹었다는 말에 같이 식사 하시자고 했다.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시켜 먹어야 하니 나보고는 집에 가서 편하게 밥 먹으란다. 같이 시켜 먹자는 말이었는데 말이다. 다시 말 하려다 그만 두었다. 가판대 옆에 대충 자리 잡고 앉아 빨리 먹고 이 닦고 원위치 하실 텐데 내가 옆에 있으면 괜히 신경 쓰일 테고 그러다 체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한가한 시간에 알아서 밥 시켜 먹으면 되는데 여기 있는 다른 노점상들은 그러지도 못해. 왜 지난번에 왔을 때 내 옆에 있던 노점상 말이야. 어디 보자 저기 건너편에 있구만. 저 사람은 감시 나오는 시간대에 짐 싸서 식사하러 가고 다시 와서 짐 풀고 물건 팔고 그래. 오늘은… 벌써 밥 먹고 온 모양이네. 그런데 여기 겨울에 호두과자 파는 거 본 적 있지? 그 사람들은 상납을 해. 그래서 여유만만이야. 웃기지. 같은 노점상인데도 누구는 돈을 내고 편하게 있고 돈도 잘 벌고. 누구는 만날 마음 조리며 서 있고 말야. 나도 처음 여기 있을 땐 아무리 설명해도 쫓아내려고만 하더라고. 회사에서 공문 보낸 뒤부턴 나도 여유만만이야. 하여튼 시스템이 문제야 문제. 공무원들도 문제고. 좋은 대학 나오고, 사회학, 복지학 같은 거 배우면 뭐해. 책으로 배운 것들, 누가 가라고 해서 봉사활동 한 사람들은 그냥 거기까지 거든. 불쌍하니 돕고 내가 저 사람들보다 배운 사람이니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거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해, 시스템이. 저 바닥부터 바뀌기 시작해야지. 보이는 것만 바꾸는 게 아니라.”

# 열심히 일한 당신, 그 다음은?

아저씨는 지금 그 누가 봐도 열심히 살고 있다. 안타까울 만큼, 내 하루를 반성하게 될 만큼 열심히. 열심히 살아왔다. 한 순간에 사업을 잃고, 집을 잃고, 돈을 잃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열심히’와 지금의 ‘열심히’는 무엇이 다를까.

“그땐 앞이 보였지. 미래를 보면서 살았어. 안정된 직장과 내 집이 있었지만 더 먼 미래를 보면서 그야말로 경쟁 속에서 산거지. 지금은…. 지금이야 희망을 보고 산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나는 늘 불안 속에 살아. 내가 하는 말들은 다 불안 속에서 나오는 거야. 내가 빅이슈를 팔면서 외치는 말들, 새로 들어온 빅판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면서 해주는 말들 다 불안 속에서 나오는 거거든. 말을 하면서 결국 내 자신과 싸우는 거지.”

평소 이야기를 나눌 때나, 인터뷰 할 때는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씀 하시던 아저씨. 그런 아저씨의 눈이 초점을 잃고 먼 곳을 향했다. 움푹 들어간 두 눈, 몇 가닥 없는 속눈썹과 연한 갈색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저씨에겐 한가하다는 시간이었지만 역삼역 4번 출구 앞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우리가 서 있던 가로수 아래 담배꽁초를 던지면서, 길가다 받은 전단지나 휴지를 버리기도 하면서. 다들 자기 갈 길만 보며 재빠르게 걷고 있었다.

“이젠 보이지 않는 먼 미래를 쫓기보단 그냥 작은 행복을 보려고 해. 내가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알아요? 밤에 옆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그때. 코고는 소리 듣는 게 그으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역시 아저씨의 가장 큰 힘은, 원동력은 가족뿐인가 보다. 금방 웃음을 되찾았다. 3시 42분. 4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밥을 먹지 않으면 아마 저녁까지 먹지 않고 서 계실 게 분명했다. 수첩과 펜을 집어넣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감히 말씀 드렸다. 내가 글쓰기 수업에서 배운 것을. 책에 나와 있는 문장을 해석 없이 인용만 하거나 다른 지식인의 언어를 갖다 쓰는 게 아닌 자기 언어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글쓰기 하기. 전태일과 프리모 레비가 그랬던 것처럼 글을 쓰는 것. 힘들고 피곤해도 시간 날 때마다 짧게라도 글 쓰는 거 계속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저씨의 짧은 글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기 때문에. 무엇보다 아저씨 스스로에게 말을 건넬 수 있기에. 아저씨는 꼭 그렇게 하겠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아프다. 고작 2시간 정도 서 있었으면서 말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이런 내가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감히 ‘열심히’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저씨의 ‘열심히’가 나를 부끄럽고 슬프게 한다. 그 부끄러움 속에서, 불안 속에서 힘내라고 힘내자고 말한다. 아저씨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응답 3개

  1. 수사말하길

    세심하고 사려 깊은 시선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지금도 열심히 꾸준히 글을 쓰고 계시길 빌어봅니다.

  2. 지나가다말하길

    참, 듣기 힘든 목소리, 잘 읽었습니다.

  3. 송이말하길

    지하철역 앞에서, 집근처 우리은행 앞에서
    빅이슈를 파시는 아저씨를 종종 봅니다.
    늘 같은 분이 계셔서
    라는 말을 듣거나, 보게되면
    그 아저씨의 “빅이슈입니다”라고 외치시는 그 아저씨의 목소리가 생각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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