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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농사 일지, 여섯 째. -이웃 노초부의 사연-

- 김융희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 닷새동안을 줄곧 내리고 있다. 특히 지난 18일에 내렸던 비는 어쩜 비가 아닐 것 같았다. 마치 하늘에 댐이 있어 제방에 구멍이라도 뚤린 듯, 쏟아 붓는 ‘국지성 호우’가 그토록 무서운 것임을 이번 새삼 알게 됐다. 비는 지금도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다. 가을 채소 파식이 정말 걱정이다. 아직도 얼설킨 잡초를 제거하지 못해 파식을 못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고 순조롭게 파식을 끝낸 곳에도 계속 내리는 호우에 묻히고 페여 유실된 모종의 피해가 많다.

비를 맞으면서라도 풀뽑기 작업을 해야겠는데, 계속된 장대비를 무릅쓰고 작업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그치면 조금씩 하는 작업, 그 기회마저 많지를 않아 도대체 진척이 없다. 저녁나절에야 비가 멈추고 날씨가 반짝해 장포에서 한참 땀을 흘리고 있는데, 이웃의 갑장이 갑자기 할 이야기가 있다며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다. 이웃해 살고 있지만, 그동안 술잔을 나누며 한담을 나눈 적은 별로 없었는데, 오늘 술병까지 들고 찾아온 것을 보면서 공연히 불안했다.

주로 막걸리를 드는 내 술의 기호를 알면서도 소주병을 들고 온 것을 보면 집에 소주밖에 없었을성 싶다. 짐작이 않되는 내용으로 궁금증이 여전했다. 김치 안주에 가져온 소주를 따랐다. 그는 타는 속을 달래려는 듯, 거푸 두 잔을 비웠다. 나는 지켜보면서 말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한 잔을 더 비우고 나서야 그는 말을 꺼냈다. 조금 전에 서울 자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또 깊은 한숨이다. 이제야 자식과의 불편한 가정의 문제임이 짐작된다.
부자간의 불화려니 싶은 생각에 궁금증이 오히려 싱거워진다. 요즘 가정의 늙은 부모들, 자식과의 갈등 문제는 길거리 꽁초보다 더 흔한 일이다. 예사 일처럼의 그런 가정 문제를 갖고 분주불가(奔走不暇)의 사람을 붙드는 처사에 나의 속내는 불쾌했지만, 어쩌랴 싶었다.

그가 들려준 사연이다.
[지난 주에 모처럼 큰아들의 식구들이 교회로 찾아 왔었다. 마침 점심 때가 되어, 아들, 며누리, 그리고 남매의 손자들과 함께 식당에 갔다. 모처럼 손자들과의 식사로, 그들이 좋와하는 것을 사주고 싶었다. 무엇을 먹을까 물었더니 모두가 냉면을 들겠단다. 가까운 곳에 값은 좀 비싸지만 꽤 유명한 냉면집이 있다. 날씨가 몹시 덥기는 하지만, 어린 초등학생 손자들이 냉면을 들겠다니 싶다. 그래 다짐 확인을 했지만 역시 냉면이란다. 그래도 미심적어 냉면과 만두를 같이 시켰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이제 일학년인 손자놈은 아직 어려서 대화가 간단하지만, 오학년이 되어 부쩍 커버린 손녀의 근황이 궁금했다. 특히 중학생이 가까워진 그의 학교 생활, 취미, 교우 관계, 독서의 경향 등….
관심이 가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말을 건네는데, 그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싶다. 처음엔 그러려니 생각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태도가 여간 부실하다. 아예 할아버지 말에 늘상 관심과 반응이 없다. 그게 아니다 싶어, 지금과는 달리 좀 정색을 하며 타일렀다. ‘할아버지가 말씀을 하면 얼굴을 보면서 잘 들어야 한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지 않겠니. 할아버지가 묻는 말에 전혀 대답도 하지 않고, 말을 해도 관심없이 외면하면 할아버지는 섭섭해 화가 나는거다.’라는 말의 반응이 겨우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면 안된다는 주의를 주고는 끝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는 매우 명랑하고 똑똑한 아이였는데, 지금은 그 얼굴이 전혀 아니다. 우선 말이 줄었고, 우울해 보이며, 주위에 관심이 없고 자기 생각에만 더 매달린 것 같았다. 문제가 느껴졌다. 그러나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싶다. 우선 조금 전에 타일렀던 분위기를 바꾸어 부드러운 말씨로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늘 명랑한 어린이가 되라,고 했다. 그런데도 역시 그의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이번엔 손자놈이다. 처음 냉면을 맛있게 먹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냉면과 만두를 앞에 놓고서 해찰만 부리고 있다. 장난기에 몰두가 아니라 먹고싶은 땡긴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원래 행동도 식욕도 씩씩한 놈이었는데, 음식이 마음에 안 들었거나, 평소의 잘못된 식사 습관에서 올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의 누나는 더 엉망이다. 그렇다면, 식사 습관의 잘못으로 믿어진다. 그래서 그에게 좋은 식사 태도를 갖도록 조심스럽게 당부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어, 손을 흔들며 우리는 또 만나자며 해여졌다. 그날 혹시라도 마음에 걸린 것을 더 생각해보라면 해어지면서 손녀에게 “항상 활짝 웃는 얼굴로 지내기”를 바라는 나의 당부였다. 그것 뿐이었다. 정말 그랬다. 물론 웃으면서 부드러운 말씨로…
그런데 오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통화를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문제가 될 일도,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 일이라, 그 통화는 잘 끝냈다. 그런데 미리 오해 없기를 바란다면서, 자식놈이 새삼스럽게 드릴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괜찮다고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란 “이번 만났을 때처럼 손주들에게 타이르는 일이 앞으로 없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 갑장은 끓는 마음을 못참겠는지 또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민망스럽게 나를 쳐다보면서 나의 의견을 구한다.]

평소에 보면 그는 없는 일을 있다고 우기거나,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는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인격을 갖춘 지극히 사려깊은 사람이다. 오늘처럼 술병들고 무례한 행동을 할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 술병을 들고 나타난 그를 보며 내가 의아했고, 불안했던 것이다. 늙은이에게는, 이같이 가족과 자리를 함께해 음식을 들며 서로의 근황에 대한 안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은 무척 크다. 행복을 느끼는 매우 바람직스런 일이다. 특히 떨어져 사는 할아버지의 손자를 만나는 재미란, 얼굴만 봐도 즐겁고,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한 것이다. 더구나 모처럼의 만남이요 외식이여서 이번 더욱 즐거웠었다.

그는 오늘의 이런 전화를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며 탄식한다. 그러면서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지”를 되내였다. 다시 술잔을 비운다. 가지고 온 술병을 혼자서 다 비웠다. 새롭게 술병을 따는데도 사양의 기색이 전혀 없다. 주량을 알기에 망설여졌다. 취한 그는 이제 넉두리이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지! 그렇기에 말만 꺼내면 싫어하는 그놈을 알기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하고싶은 말을 삼갔는데… 만나것 조차 어색해하며 자제하여 지냈고, 그토록 바래는 즐거움도 외면해 왔었는데… 이번 모처럼 만나서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데…
그래 자식을 이기는 애비는 없지… 혼자서 몽롱해 넉두리더니, 이네 인사도 없이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어쩜 나의 넉두리처럼 들렸다. 가정마다 문제가 없는 집은 없나보다.

또 너그러운 여러분의 이해를 구해야겠다. 별로 유쾌한 일도 아닌, 지금까지의 내 일도 부족해 남들의 넉두리까지 소개하는 염치 없는 짖에 깊이 사죄하며, 내 이웃인 노초부의 하소연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다. 나는 도대체 몰겠다. 너무도 당연한 일들이 이처럼 어이없이 자꾸 꼬여 돌아오는 지금의 사회를 전혀 몰겠다. 내가 돌아버린 것만 같다.

응답 2개

  1. 미셸 푸코말하길

    장유유서의 미덕이 사라져가고 있지요. 나이 따위는 아주 우습게 아는 세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지식’만을 숭상하고 ‘지혜’를 멀리하는 태도인 것이지요. ‘지혜’는 세월의 축적과 삶의 경험에서만 숙성될 수 있는 것일진대… 이것은 명백히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2. 콩콩말하길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양쪽 다 이해가 가긴 합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어른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드릴수가 있는가 싶고, 어르신은 또 오랜만에 보니 더 나누고 교감하고 싶은데 자제분이 오히려 간섭말라 그러는게 속상하실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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