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전세계에 레게음악을 전파시킨 밥 말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말리>

- 황진미

<말리>는 자메이카의 레게음악을 전 세계에 알린 밥 말리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밥 말리는 1945년 자메이카에서 50대 백인 아버지와 10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떠났고, 흑백 혼혈인 말리는 흑인사회에서 배척당했다. 수도 킹스턴의 빈민가 에서 음악을 접한 그는 17세에 그룹 ‘웨일러즈’를 결성한다. 1962년 자메이카가 영연방에서 독립하자, 가장 자메이카적인 음악을 찾던 사람들에게 1964년 웨일러즈의 곡 ‘시머다운’은 큰 인기를 얻는다. 말리의 음악은 자메이카 댄스음악인 스카의 비트를 느리게 바꾼 레게리듬에, 라스파타리교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라스파타리교는 기독교를 아프리카 흑인중심으로 재해석한 종교로, 흑인의 정체성과 60년대 흑인민권운동과 연관이 있다. 1974년 음반 ‘내티 드래드’가 크게 성공하고, 리메이크 등으로 말리의 음악이 미국과 영국에 알려진다. 1976년 말리는 총격을 당한다. 극심한 정치대립을 겪던 자메이카에서 좌파총리가 초청한 말리의 공연을 막으려는 백색테러였다. 총상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른 말리는 8만 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한다. 이후 2년간 해외도피생활을 한 말리는 자메이카로 돌아와 ‘평화콘서트’ 무대에서 양당 지도자의 손을 잡고 화합을 이끌어낸다. 레게음악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세계적인 뮤지션이 된 말리는 월드투어에 나선다. 1979년 짐바브웨란 곡으로 짐바브웨 독립을 촉구한 말리는 1980년 짐바브웨 독립선언식에 자비로 공연을 열어 수 십 만 명의 관중들 앞에서 노래한다. 그러나 1981년 말리는 36세의 나이에 전신에 퍼진 흑색종으로 사망한다.

말리의 음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고, 미국 등에서는 백인추종자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미국흑인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영화는 이 점을 안타깝게 언급하지만, 말리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공감되고 어떻게 소비되었는지를 짚어내지 못한다. 말리의 음악은 제3세계인들에게 저항의 아이콘이다. 실제로 2008년 한국의 촛불집회나 2011년 중동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그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게바라의 도상이 그러하듯, 저항의 팬시 상품인양 소비되는 측면도 있다. 영화 <말리>는 당시의 자료화면과 지인들의 인터뷰를 엮으며, 말리의 음악세계와 사생활등을 촘촘히 담으려 한다. 그러나 지극히 평면적인 접근과 편집으로 인해, 말리의 음악에 대한 심층적인 평가를 담아내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영화 내내 말리의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특히 여름엔 레게가 어울리지 않은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