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가지 궁상이몽

그대여 안녕(부제; 이별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나의 자세)

- 독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나는 또 ‘거절’당했다. 무엇을? 그 동안 나와 당신이 ‘연애’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공유했던 행위 일체를 이제 그만두고 싶단다. 대체 그 이유가 뭔지, 무엇 때문에 내가 싫어진 건지 한 마디라도 해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리고 싶지만, 무응답 혹은 반대로 너무 솔직한 답을 들을까봐 지레 겁먹은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메인 목 뒤로 넘길 수밖에. 그래, 차갑게도 뜨겁게도 아니고 그냥 이대로 안녕이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걸. 도대체 나는 왜 차인 걸까? 답을 해 줄 사람은 이미 멀리 떠나 버렸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대답해 보자. 좀 궁상맞긴 해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이별의 순간들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난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한때는 그토록 사랑했던 이에게 대체 왜 차갑게 거절당해야 했던 걸까?

#1. 첫인상만 반짝, 실속 없는 외모

사람은 상대방의 첫인상을 0.3초 만에 호감/비호감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남달리 희고 깨끗한 피부와 그에 대비되는 뿔테 안경은 나의 지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상대로 하여금 차분해 보이는 느낌이 들게 한다. 유일한 콤플렉스인 뱃살 또한 옷으로 적당히 잘 가리면 된다. 하지만 이런 호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몇 번 만나다보면 차분함과 거리가 먼 나의 급한 성격에 혀를 내두르고, 포옹 같은 스킨십에 뱃살을 들켜버린다.

뭐, 어쩌겠는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거다. 요즘엔 남자들마저도 화장이 필수라지만, 귀찮고 불편해서 도저히 못 하겠다. 네가 원했던 건, TV에 나오는 연예인 같은 외모였던 걸까? 그렇다면 번지수 잘못 찾았다. 그래, 점점 가까워지면서 네가 몰랐던 나의 진짜 얼굴이 보이는 거겠지. 그렇다고 그런 문제로 이별을 통보하기엔 뭔가 부족하지 않나? 그럼 또 다른 나의 문제는 뭐였을까?

#2. 독특한 취향, 유니크와 키치의 경계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메이저보다는 마이너를 좋아하는 내 취미는 홍대 앞 소규모 라이브 홀에서 열리는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거나 신촌의 먼지 냄새 나는 헌책방에서 책에 파묻혀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죽는 사이라도 취향은 다를 수 있는 법이라 나는 처음부터 그곳에 함께 다닐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살짝 호기심을 보이는 너를 무작정 그곳에 데리고 간 것은 내 잘못이었다.

그곳은 종로 낙원상가에 있는 오래된 영화관이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상영되지 않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혼자서 영화를 보던 그 극장에서 한번쯤은 함께 영화를 보고 싶었다. ‘어차피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하는 영화는 집에서 다운받아 보면 된다’며 흔쾌히 따라왔지만, 팝콘도, 탄산음료도, 팔걸이가 올라가는 편안한 커플석도 없는 영화관에 앉아 있는 걸 불편해하는 너의 표정을 나는 좀 더 빨리 눈치 챘어야 했다.

나는 단지 나를 사랑한다던 너와 함께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싶었다. 그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렇다고 이런 나의 취향을 네게 억지로 강요한 적은 없다. 어디까지나 네가 먼저 호기심을 보였고, 가보고 싶다고 했을 뿐.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너는 ‘남들이 잘 모르는 이상한 곳’만 찾아 골라다니는 나를 피곤해 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결국 보통 사람들과 다른 취향을 가진 내 탓이다.

#3. 작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꿈

내 꿈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사는 거다. ‘억’ 소리 나는 아파트도 싫고, 비싼 차도 필요 없다. 작은 집에서 작은 텃밭 지으며 살 거다. 이런 이야길 하면 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다면 서울 근처에서 살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 시골로 내려가면 땅 파먹고 살 거냐?”고 묻는 네게 차근차근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런 허무맹랑한 꿈은 버리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하라고 충고해주었지.

나는 그저 사랑하는 옆지기와 함께 아이도 낳고 친구들과 함께 재미나게 살고 싶다. 만행에서 밥상모임 하는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오면 늘 하던 것처럼 밥도 해먹고 때론 밤 새워 인생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고 살 거다. 아이도 여럿 생겼을 테니, 나중에는 서로 애들도 봐주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만한 재주가 있으면 학원에 보낼 필요도 없을 거고…. 하지만 이런 나의 꿈을 들은 너는 그때 결정적으로 나와 헤어질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들은 내가 보통 사람들과 사는 방식, 삶의 목표가 너무 다르다고 했다. 나의 이런 답 없는 연애사를 들은 사람 중에서는 ‘그럼 너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랑 연애하면 되잖아’라면서 청년귀농모임 같은 데 가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일부러 짝을 찾으려는 불순한(?) 의도로 그런 모임에 나가서 짝을 찾는 것은 미팅, 소개팅, 맞선, 또는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해 짝을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그럼 이건 내 탓이 아닌데? 이별은 누구 탓이 아니다. 너와 나는 달랐을 뿐.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여태껏 해온 것처럼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계속해나갈 듯싶다. 또,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짠!’ 하고 모든 조건을 갖춘 천생연분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 또한 결코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하던 대로, 조바심 내면서 억지로 흉내 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멋진 짝을 만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나를, 내 삶의 방식을 거절한 그대들이여, 잘 살아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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