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멘붕 권하는 사회가 낳은 최적의 완전체 ‘갸루상’

- 황진미

요즘 <개그콘서트>에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띄는 꼭지는 <멘붕스쿨>이다. <멘붕스쿨>은 학교상담실이 배경이다. 학교상담실은 본래 ‘질풍요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제를 안고 오는 곳이고, 공교육붕괴와 조기유학 등으로 다양성의 폭이 더 넓어진 요즘에는 캐릭터의 각축장이 될 만한 곳이다.

박소영은 “애들이랑 말이 안 통한다”고 호소한다. 그녀는 용어에 약하다. 틀린 용어를 자신 있게 구사하다 선생님이 지적하면 “그거나 그거나요”하며 발끈한다. 적반하장이다.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비꼬면 청순하게 “감사합니다” 하며 받는다. 납득이(김재욱)은 영화<건축학개론>의 납득이를 패러디한 캐릭터이다. “어떡하지? 납득시켜 드려요?”라는 대사와 함께, 느끼한 “컨셉”과 “임팩트”로 어떤 여자라도 꼬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과대망상 형 로맨티스트이다. 소심남 승환이는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뒤로 빠끔히 들어와 선생과 눈도 맞추지 못하고 “아니, 아니 그게 아니구요…”라며 안절부절 말끝을 흐린다. 신경증 캐릭터이다. 상담교사는 “왜 저래, 나한테? 내가 이상한건가?”하며, 멘붕(‘멘탈 붕괴’)를 호소하지만, 여기까지는 비교적 온건한 캐릭터들이다.

유학파 김성원은 듣기평가에서 들었음직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한국어로 말하라면 “그러니까요~”라는 찌질한 목소리도 돌변하다. 조기 유학했다가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온 듯한 이 캐릭터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로 부적응을 호소한다. 그는 자신 있는 영어로 문화차이를 강변하지만, 실은 미국드라마나 시트콤, 애니메이션을 요약하여 재구성한 마임형 원맨쇼를 펼치는 중이다. 그는 유학파를 대변하는 캐릭터이자, 미국 대중문화콘텐츠의 오타쿠를 풍자하는 캐릭터이다. 연예인지망생 서태훈은 ‘발연기’의 극치를 보여준다. 연기가 안 되지만 기획사의 힘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아이돌을 풍자하는 것이기도 하고, 재능도 없으면서 연예인을 하겠다고 헛바람 든 청소년을 캐릭터화한 것이기도 한데,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똑같이 격양된 톤으로 “나~는 왕이라고~”하는 식의 대사처리가 포인트다. 둔탁하게 격양된 톤은 묘한 중독성을 지닌다.

가장 문제적인 캐릭터는 갸루상(박성호)이다. 일본의 하위문화인 ‘갸루(girl)족’의 화장을 한 갸루상은 일본식 말투로 국적이나 성 등을 묻는 선생의 질문 일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일본에서 태어나지 않았스므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므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니다. 수정란이므니다” 또는 “알에서 태어났으므니다”하는 식. “네가 양서류냐 파충류나?” 물으니 “견과류이므니다”라 답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명목 이전의 존재. 그는 “사람이 아니무니다”라는 원천부정을 통해 자신이 규정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주장한다. 흡사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보았던 분열증 캐릭터다.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는 도저한 자의식은 타자와 세계로부터 아무런 공통감각도 느낄 수 없는 극단적 소외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갸루상은 자신을 수정란, 알, 견과류 같은 분화나 발달 이전의 존재, 즉 ‘기관 없는 신체’로 등치시킨다. 무의미의 극단을 통해 논리를 파괴하고,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갸루상은 어쩌면 ‘멘붕’ 권하는 ‘스쿨’이 낳은 최적의 ‘완전체’인지도 모르겠다. 곧 아노미의 극단이자 자기 완결적 (비)존재인 갸루상은 ‘멘붕’ 시대의 최적화된 캐릭터다.

“이게 사는 건가”의 대극에 “사람이 아니므니다”가 놓여있다. 사는 게 아니므니다~

응답 1개

  1. 여하말하길

    멘붕 스쿨 다시 봐야겠어요. ^^ 전에는 웃으면서도 가슴이 아팠는데, 웃으면서 생각을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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