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불편하고도 달달한 동거기

- 송하얀 (수유너머N)

나는 이것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물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이것은 이제 나에게 ‘너’가 되었습니다. 혼자서 살던 나의 공간을 너와 나누어야 했고, 내 멋대로 쓰던 나의 시간을 너에게 할애해야 했지요. 너는 나의 쓰임을 복잡하게 만드는 참 불편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나의 글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의 장점을 읽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먼저 사과할께요. 전 저와 함께 사는 이의 불편함에 대해 말하고자 하니까요.

원룸에 살던 때 나와 너의 동거는 시작되었지요. 난 로빈슨 크루소가 프라이데이에게 그러했듯이 너를 만나고 너의 이름을 짓는 일을 가장 먼저 합니다. 나의 것이라는 표식, 나만 온전히 그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명사를 너에게 붙였지요, 구구, 나의 고양이, 그것이 너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구구는 고양이다>라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마음을 담아서 말입니다. 공원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그러다 집에 다시 머물고 싶을 땐 머물고. 영화 속 고양이는 어느 무엇도 그리 급할 것 없다는 듯한 걸음걸이로 다시 담장을 탔지요. 영화 속 그 고양이의 자세를 마음에 담아서 이름을 구구라고 지었습니다. 나와 함께 하게 된 너의 생도, 더불어 나의 생도 그러한 자세를 취하게 되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함께 한지 3년 째의 구구>

<-함께 한지 3년 째의 구구>

500그람의 하얗고 아주 작은 고양이. 구구하고 부르면 나를 보고, 놀아달라고 배고프다고 아옹아옹 작은 소리로 울어대는 네가 귀여웠지요. 하지만 작은 원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이라서 네 목소리가 벽을 타고 다른 사람의 잠자리를 깨게 할까봐 가슴이 덜컥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한 여름 무더운 날에도 문을 열지 못하고 땀을 흘리며 극기 훈련을 하듯 계절을 보내기도 했지요.
너와 같이 동네 공원을 느긋하게 산책하리라는 내 바람은 너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앞서 꾼 꿈이었지요. 가까운 곳이라도 함께 외출할라치면 네 두 눈과 귀와 분홍 발바닥 살은 더욱더 붉어지고, 네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하지요. 나와 다른 감정의 너를 보면서 이 세계가 너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어 망막하지요. 그리고 내가 보는 세계는 다른 생명들이 느끼는 세계 속에 얼마만큼 작은 부분일까 생각하지요.

<파리를 보고 흥분할 때->

<파리를 보고 흥분할 때->

요 작은 악마. 학교에 제출할 에세이를 쓰는 밤에는 모니터 앞에서 모니터를 가리고 책을 읽을 때면 책갈피용 책 줄을 장난감 삼아 놀면서 책 읽는 걸 방해하지요. 그래서 책들의 끈이 반절만 있을 때가 많아요. 커튼 묶는 끈도 바람이 부는 날이면 구구의 장난감이 됩니다. 물론 큰 창 아래에 놓인 물건들은 엉망으로 흐트러지지요.

사실 이런 너의 습성들은 네가 내게 올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곧잘 잊고, 네게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지요. 나는 너를 배려한다고 늦은 밤 나가던 외출을 삼가게 되었고, 불규칙적이던 생활 습관을 되도록 네가 예측할 수 있도록 바꾸려 애를 썼지요. 네게만은 예측가능한 동물이 되어보고자 여전히 노력하고 있지요.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내 감정대로 물건을 놓고, 내 마음가는대로 생활을 변화시키고, 움직이지요. 그런 나를 볼 때면 네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너는 여전히 내게 신경이 많이 가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어쩌면 공동의 생활 속에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실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오늘도 의자에 앉아 자판을 치는 내 무릎 위로 네가 풀쩍 뛰어들어 나의 다리 사이에서 잠을 청하네요. 이제 몸무게가 4kg가 되는 너. 난 네가 깰까봐 움직이지 못하다가 다리가 저리고 무릎이 무거워지면 몇 번을 뒤척이지요. 넌 내가 뒤척일 때마다 내 움직임에 따라 자세를 다시 잡고 잠에 들지요. 이 무게는 이제 내가 오랫동안 감당해야할 무게가 된 셈이네요. 더불어 난 내게 부족한 온기를 너로 인해 더하게 되었지요.

<내가 앉은 좁은 의자에 저렇게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잔다>

<내가 앉은 좁은 의자에 저렇게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잔다>

 <높은 곳을 좋아해서 책장 한 칸을 저의 자리로 마련해주니 이제 곧 잘 저 녹색 커튼 사이에서 그루밍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높은 곳을 좋아해서 책장 한 칸을 저의 자리로 마련해주니 이제 곧 잘 저 녹색 커튼 사이에서 그루밍을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응답 1개

  1. 말하길

    ‘동거’의 괴로움, 그 괴로움 속에서의 존재 변이, 그 변이의 가치에 대해 생각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