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5호] 등록금 ‘갚아야’ 하는 이 더러운 세상!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등록금 ‘갚아야’ 하는 이 더러운 세상!

– 등록금 채무자들의 연대를 위하여

술푸게 하는 세상

대학 등록 시즌이 돌아왔다. 이 맘 때면 신00여사는 내가 내미는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등록금 낸 만큼 뽕을 뽑아라! 아니 그 2배로 공부해라! 돈 아깝지 않게!” 대학원 진학 후 더 이상 신여사께 등록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이제는 매 달 은행이 나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낸다. “0월 0일 학자금 대출 이자 출금일입니다. 통장 잔액을 확인해 주십시오.”

신여사의 애정 어린 호통과 은행의 무미건조한 문자는 둘 다 내게 비슷한 부채감을 안겨준다. 앞으로 내가 할 공부, 아니 내 삶이 저당 잡히는 기분이랄까. 아, 정말 술푸게 하는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술푸다 문득 깨달았다. 매달 날아드는 문자에 섬뜩해 하는 지금의 나와 매 학기 신여사의 호통에도 나 몰라라 하던 내가 참 다르다는 것을. 당시 동아리 활동에 빠져있던 내게 전공 수업/토익 점수/교직 이수 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신여사가 원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쩌다 신여사에게 들킨 “씨(C)밭” 성적표 앞에서도 나는 당당했다. 비록 신여사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난 충분히 잘 살고 있었으니까. 신여사가 건네 준 등록금에 담긴 숨은 의미가 내가 잘살기를 바란 것이었다면, 그것은 명확히 그 용도로 쓰이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돈 받고 당당해지기 힘들다. 신여사가 내게 부채‘감’을 주었다면, 은행은 실제로 부채를 안겨준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채무자일 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갚을 수 있는가이다. 연체는 용납되지 않는다. 아니, 어느 샌가 나 스스로 연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전에 등록금 이자가 하루 연체된 적이 있었는데, 마치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하루 종일 문자와 메일이 날아오는 통에 식겁했었다. 심지어 학교 조교실에서도 등록금 이자 납부 확인 전화가 오더라. 그래서 이젠 이자 납부일 즈음해서는 긴장하고 잔액을 꼭 확인한다. 씁쓸하다.

씁쓸한 건 이뿐이 아니다. 요즘엔 대학 어디를 둘러봐도 예전처럼 함께 활동하고 즐기며 공부할 친구 찾기 힘들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바쁘게 살아간다. 스펙 쌓기와 아르바이트가 대세다. 한 아르바이트 알선 사이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 대학생 중 약 40%가 올해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 휴학을 한다고 하고, 등록 학생 중 약 40%는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고 한다. 분명 그들도 나처럼 등록금 부담과 매달 날아드는 문자 앞에서 짜증과 초라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린 만나서 할 얘기와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을 거 같은데… 철저하게 개인 부담이 되어버린 등록금과 공부는 우리의 만남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 등록금 갚아야 하는 이 더러운 세상!

등록금 납부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언제부턴가 우리는 대학도 장사를 한다고 쿨~ 하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젠 아무도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 ‘배움의 터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대학졸업장은 상품이다. 돈을 주고 구매한다는 점에서 분명 상품이다. 그것도 아주 비싼 상품이다. 2년 또는 4년여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 6,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품의 효과는 비구매자에게도 나타난다. 그것은 구입하든 안하든, 상품 구매/비구매의 흔적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대졸이냐 고졸이냐, 어느 대졸이냐?!’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곧바로 사회적 삶의 질과 연결되곤 한다. 직업, 연봉, 집, 차, 등등.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상품은 구매하기 전에도 또 구매한 후에도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대치동에 질비하게 늘어선 고가의 입시학원들과 노량진에 가득한 편입학원 간판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들의 동혁이형 왈 "10년 동안 물가는 채 36%가 안 올랐는데, 등록금은 116%나 올랐다니, 아니 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배움이 즐거워야지 슬퍼서야 되겠니?"

한 번의 구매 기록이 평생을 좌우하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 상품을 구매/재구매 한다. 원하는 대학에 등록만 할 수 있다면,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추가 비용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 인상률의 10배가 넘어, 불과 4년 사이에 한 학기 등록금이 80만원 넘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등록금 인상 소식에 한숨짓고 짜증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체념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정신, 즉 일찍이 신여사께서 말씀하신 ‘돈 낸 만큼 뽕을 뽑아라’ 태도 때문이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투덜대고 있기엔, 지금까지 퍼부은 부모님의 돈과 기대, 그리고 앞으로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갑자기 현실을 긍정하게 된다. 돈 낸 만큼 아니 2배 더 공부하면 된다고.

그런데 왠 걸?! 이젠 대학만 다녀서는 보란 듯이 취직하고 성공하기 어렵다. 학교 공부만 해서는 대학 들어오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대학생들은 학점도 잘 받는 것은 물론, 외국어 학원이나 자격증 교습소 등과 같은 스펙 쌓기 위한 과외 수업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 기업형(소위 신자유주의형)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 강습소/스피치 학원 등록이나 성형수술은 옵션이다. 돈이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 모두는 취업을 위해서이다. 그래도 여전히 실업률은 높다. 대학+α를 아무리 해도 취업은 하늘에 별 따기이다. 대학입학=취업이었던 시대에 비교한다면, 현재 대학의 상품 가치는 거의 똥값 수준이다. 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대학에 목마르다.

죽은 채무자들의 사회

대학 등록에 목마른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이런 심정을 정확히 파악한 대학들은, 올해 겉으로 ‘등록금 동결’을 외치면서 슬그머니 신입생과 대학원 등록금을 인상했다. 결국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등록금이 인상되었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작다. 표면적으로 등록금 동결이 선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입학의 기쁨 앞에서 등록금 인상의 압박은 한 없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은 12년 의무 교육의 기쁨이자 자식 교육의 보람이다.

이젠 다들 대학이 오랜 입시 경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그 상품 가치 또한 예전만큼 높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 대학 진학 후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대학원에 가거나 블루오션 스펙을 찾아 헤매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며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학자금 대출을 받고, 카드로 학원비를 결제하게 된다.

학자금 대출은 대표적인 모기지(mortgage)론이다. 저금리장기대출의 의미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모기지론의 모기지는 죽음을 담보, 저당 잡힘을 뜻한다.(mort:죽음 +gage:저당 잡히다) 그 어원은 심장 가까운 부위의 살 1파운드, 즉 목숨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는 ‘베니스의 상인’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원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 아니 더 나아가 담보 대출 자체를 빼놓고는 생활이 불가능한 오늘 날, 우리 역시 목숨을 저당 잡힌 채로 살고 있다. 대출 빚에 육체적·심리적으로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사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채무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비단 사채업자들만이 아니다. 대출을 주관하는 국가와 제도 내 금융자본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채무자의 심장 부위 살점을 베어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채무자들의 삶을 좌지우지하고자 한다. IMF가 돈 빌려주면서 그 국가 살림에 감나라 배나라 하는 것처럼. IMF, 국가, 금융자본 모두 돈 잘 빌리고 그 돈을 이자 쳐서 잘 갚는 인간형을 지향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에게 돈을 대출 받은 우리는 모두 비슷한 형태의 삶을 꿈꾸며, 서로 불꽃 튀게 경쟁하면서 살아간다. 다른 삶의 가능성은 모두 살해당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는 ‘베니스의 상인’에서처럼 채권자의 잔인성을 폭로하고, 채무자를 부채로부터 그리고 부채를 만드는 이 고리로부터 꺼내줄 재판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답답함을 느낀다면! 이 고리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도, 끊는 것도 우리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등록금 채무자들의 연대를 위하여

지금은 등록금 내는 시대가 아닌, 등록금 갚는 시대이다. 개인에게 고스란히 부채를 떠넘기는 시대. 등록금 취업 후 상환제도라는 등록금 후불제가 이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일단 대학에 들어간 이들은 다 안다. 대학의 가격 대비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있으며, 예전에는 흔하던 낭만조차 캠퍼스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돈의 값어치를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그러나 우리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열심히 스펙을 쌓거나, 조용히 혼자 불만을 떠올리고 있을 뿐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대학생의 약 90%가 등록금을 비싸다고 생각‘만’하고 있다고 한다. (2010.02.05 데이터 뉴스)

따라서 순순히 이자를 납부할 뿐만 아니라, 장래에 취업가능성과 인간 개조의 가능성도 열려있는 대학생들은 국가와 금융자본에게 매우 훌륭한 채무자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학생들이 개별화 파편화 되어 있을 때에만 그렇다.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다 자르고 오로지 취업을 위한 경쟁 기계로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남모르는 고통 하나쯤 안고 있는 등록금 채무자들이 만나 적극적으로 연대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추노꾼이 무서워 노망노비의 꿈조차 꾸지 못하는 건 정말 슬프지 않은가?

죠스(수유너머 R)

응답 1개

  1. 동건이형말하길

    그렇습니다. 정말 슬픕니다. 그래서 저도 매일 술푸면서 살지요. 물가는 36% 오르는데 등록금은 116% 올랐다니. 이게 웬 난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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