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로체스터 팽 육일, 보고 있나!!!

- 권은혜(수유너머N)

글을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를 스쳐간 고양이가 벌써 다섯 마리나 된다. 그 중 세 마리와는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한 마리는 방생(?)하게 되었고, 한 마리는 잃어버렸고, 한 마리는 세 달쯤 전에 입양을 보냈다. 세 마리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방생한 냥이를 만났을 때는 아직 고양이와 함께 할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두 번째는 고양이를 찾아준다는 아저씨에게 24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하면서까지 찾아보려 애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세 번째 냥이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냥이들과 심하게 싸워서 어쩔 수 없이 입양을 결심했는데, 입양 간 집에서는 고양이가 자기 혼자라 그런지 얌전히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양 간 고양이의 이름은 육일이다. 육일이를 데려간 새 집사는 이름이 촌스러우면서도 정겹다며 계속 육일이라 부르고 있다 했다. 길냥이었던 육일이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2010년 10월 6일이다(그래서 육일이다).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우리 집에는 지금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코코와 고도리가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친구가 왔다. 친구는 품에 코코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맞이한 것은 나와 고도리와 코코였다. 우리 다섯은 동시에 일시정지 했다. 상황인 즉 전날 마트에서 사다먹은 초밥 통을 집 문 앞에 두었는데, 코코와 정말 똑 닮은, 개월 수도 7개월 즈음으로 덩치도 비슷한 길냥이가 초밥 통 위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는 코코가 문이 열린 틈을 타 밖으로 나와 있는 줄 알고, 그 길냥이를 자연스레 안아들고서는,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나를 타박하며 집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누가 코코고, 누가 육일이 일까.

누가 코코고, 누가 육일이 일까.

놀라웠다. 다세대 주택이라 복도가 바깥과 연결되어 있지만 3층인 집 앞까지 올라올 수 있는 길은 계단밖에 없고, 그렇게 올라온 냥이가 하필 코코와 똑같이 생겼으며, 사람에게 쉽사리 다가오지 않는 길냥이임에도 낯선 사람이 안아 올린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니. 코코랑 똑같이 생긴 사실이 가장 신기하긴 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해서 의문이었던 것은 친구의 품에 안긴 채 집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10월 6일 이후, 함께 살게 되면서 육일이의 행동거지-벽지를 할퀴어 뜯어내기, 싱크대에서 음식물쓰레기 꺼내먹기, 사람 만만하게 보기-로 추측해 보건데, 육일이는 분명 길냥이었다. 길냥이인 육일이가 모르는 사람이 자기를 안아 올리게 내버려 둔 것은 어째서 였을까. 물론 당시 육일이는 어렸고, 굶주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집에 들어온 당일, 밥 한 사발과 설사 한 판 만에 쌩쌩한 상태가 된 육일이는 집안 구석구석을 탐사했고, 며칠 뒤 신체검사에서도 건강양호 판정을 받았다. 묘(猫)와의 묘(妙)한 인연이었다. 물론 입양을 보내게 되었다는, 파국적인 관계의 결말은 이러한 운명 같은 만남이 항상 낭만적이거나 아름다운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인생의 진리를 말해준다.

하얀 장화신은 고양이가 육일이다.

하얀 장화신은 고양이가 육일이다.

160만원의 고양이, 로체스터 팽 육일

160만원의 고양이, 로체스터 팽 육일

입양간 육일이는 이런 포즈로 사진찍기도 가능할 만큼 착해졌다.

입양간 육일이는 이런 포즈로 사진찍기도 가능할 만큼 착해졌다.

2010년 10월 6일 이후 우리 집에는 육일이와 관련한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이음해 5월에는 육일이의 왼쪽 뒷다리가 부러져 수술과 입원비에 160만 원 가량이 들었다(고양이를 싫어하시는 부모님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신다.). 다리에 철심을 박은 육일이는 더욱 망각해진 힘으로 집 벽지를 할퀴어놓아, 뜯겨진 벽지의 틈으로 벽지들의 겹들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는데, 이로써 그간 이 집에 몇 차례의 도배가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코코와는 정말 야생의 맹수들처럼 싸워댔으며, 내 몸 여기저기에는 아직도 육일이의 손톱에 긁힌 상처자국이 남아있다.

코코는 식빵과 면양말을 즐겨먹는다.

코코는 식빵과 면양말을 즐겨먹는다.

고도리는 주인을 닮아 벤야민을 열공한다.(주인이 고도리를 닮은 것이 아닐까.)

고도리는 주인을 닮아 벤야민을 열공한다.(주인이 고도리를 닮은 것이 아닐까.)

왼쪽부터 코코와 육일이와 고도리

왼쪽부터 코코와 육일이와 고도리

그러고 보니 고양이와 인연을 맺은 지가 어언 육년 째다. 그간 냥들에 대한 생각역시 여러 번 바뀌었다. 길냥이에 대한 생각은 특히 더 그렇다. 고양이에 대해 알기 전에 밤길에서 만나는 길냥이들은 막연히 무서운 존재였고, 고양이들을 키우게 되면서는 불쌍하고 애처롭단 생각을 하면서 가끔은 먹이도 줬다(하지만 육일이를 만나고 ‘역시 길냥이들은 무서운 존재다’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철학과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는 불쌍하든 어쨌든 끝까지 책임져 줄 게 아니면 그들의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또 달라졌다. 어차피 병에 노출되고, 먹을 것들이 부족하고, 로드킬을 자주 당해 평균 수명이 2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길냥이들인데,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밥을 주고 깨끗한 물을 주고, 적어도 그것들을 먹는 기간 동안은 조금은 덜 힘겹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올 겨울, 일본에 갔을 때 한 공원에서 찍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그 공원을 돌아다니며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계셨다.

올 겨울, 일본에 갔을 때 한 공원에서 찍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그 공원을 돌아다니며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계셨다.

코코는 똥 냄새가 심하다. 분명 고도리랑 같은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시는데 냄새가 더 진하고 깊다. 오늘도 역시 집에 돌아와 밥을 주자마자 코코는 언제나처럼 똥을 누었고, 30 분 가량 집안에는 코코의 똥내가 가득했다. 내가 코를 움켜쥐고 똥을 치우고 다른 방으로 피신을 가도, 이놈의 똥고양이는 자기 몸단장과 장난거리 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우리 집 냥이들을 보면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집고양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해서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있다(나는 그리 좋은 집사는 아닌듯하다). 장롱에 올라가서 침대로 점프하는 버릇을 바꾸려 캣타워를 살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캣타워는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사료를 넉넉하게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료가 오면 지금 쓰고 있는 사기밥통으로 대체하기 전에 썼던, 플라스틱 밥통-플라스틱소재라 고양이들의 턱여드름을 유발한다는-을 꺼내서 물과 사료를 담아 길냥이들이 자주 오가는 곳에 두어야겠다. 2010년 10월 6일 이전 육일이와 2007년에 방생한 레이, 2010년 봄에 집나간 쌩이. 그들은 길냥이들이고, 지금 나의 마음은 그들에게 향해 있고, 우리집 코코와 고돌이가 상팔자로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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