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꽃돌이는 동네냥 – 새 식구 꽃돌이가 동네냥이 되기까지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우리 집 식구는 넷이다. 종으로 따지면 사람이 셋 고양이가 하나다. 누구는 고양이를 식구라고 부르는 것이 재미있단다. 그런데 정말 식구食口가 맞다. 비록 밥상은 함께 하지 않지만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거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아들내미 아침 챙겨주는 일과 고양이 밥 주는 일이다.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꼬박꼬박 챙겨 먹여야 하는 이 식구의 이름은 ‘꽃돌이’다.

꽃돌이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길냥이로 떠돌던 것을 어떤 분이 거두셨고, 그분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신 것을 보고 내가 데려왔다. 출신도 성분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이 녀석에게 우리 가족은 꽃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실 나는 더 멋진 이름을 지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가 꽃돌이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아들 녀석이 ‘꽃돌이~ 꽃돌이~’라며 입에 달고 불러버려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꽃다운 꽃돌이. 나름 한 미모 한다우~

지난 설 때의 일이었다. 사흘간 집을 비운다고 걱정이 많았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꽃돌이가 혼자 집을 지키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사흘간 먹을 식량과 물, 그리고 여유있게 화장실 모래를 준비해놓았다. 그런데 웬걸, 명절을 쇠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 꽃돌이가 보이지 않는 것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걱정하며 찾아보았더니 아래 층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그 추운 날씨에 꼬박 사흘을 밖에서 보낸 모양이었다. 쿰쿰한 냄새도 나는 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말있었다. 게다가 충격이 컸는지 집에 들어와 한동안 벌벌 떨었다. 아마도 시골로 내려가는 정신없는 틈에 집 밖으로 뛰쳐나갔나 보다. 그것도 모르고 집 문을 닫아놓고 사흘간 집을 비웠으니…

다른 고양이들처럼 꽃돌이도 바깥 세상에 궁금한 일이 많았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우다다 달려와 창문 틈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한참이나 하고는 했다. 가끔은 현관 문을 열고 닫는 순간을 노려서 밖으로 나가보기도 했다. 곧 잡혀 돌어와야 했지만. 사흘간의 노숙생활에도 바깥을 향한 꽃돌이의 호기심은 멈출 줄 몰랐다. 노숙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충격이 컸는지 가족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기 바빴다. 도도한 꽃돌이도 사흘간의 노숙은 무서운 일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뿐이었다. 호시탐탐 바깥으로 나가려는 바람에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면 꽃돌이를 신경 써야 했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한 변수가 있었다. 바로 샘이가 현관문을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현관문을 여는 게 재미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냅다 현관문을 열어놓는 게 일이었다. 그러면 그 틈에 꽃돌이는 탈출을 즐기고… 잦은 탈출에 꽃돌이의 활동반경도 넓어졌다. 처음에는 집 앞 계단 주변에 불과했던 것이 나중에는 아랫집, 1층 마당에까지 이르고 옥상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날은 담을 건너 이웃집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도저히 잡을 수 없이 멀리 도망가 버리면 꽃돌이의 사료통을 흔들어 유인하거나 맛난 간식으로 불러들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결국 한창 봄이 되었을 무렵에는 외출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저녁이었다. 야행성 동물답게 밤이 되면 훨씬 멀리 나가는 게 아닌가. 게다가 어두워지면 녀석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체 어디 있는 지를 알 수 있어야지. 그래서 잠깐 외출은 허락하되 저녁에는 반드시 집으로 데리고 오기로 했다.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고. 출퇴근 외출냥이가 된 것이다.

...으..응?? - 얼마전 잠시 숨님네 집에 탁묘차 들렀을 때. 숨님이 찰칵!

여름이 되자 또 다른 일이 문제였다. 집 창문이 크지 않은 터라 더위를 피하려면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는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 여름의 열대아는 지독하지 않았던가. 밤에도 현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낼 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꽃돌이는 꿈에 그리던 야간 외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집 좋은 것은 아는지 더운 날이면 현관 앞에서, 날씨가 그래도 견딜만 하면 집에 들어와 잠을 청했다. 물론 밤새 어딘가 한바탕 놀고 돌아오는 듯 했지만.

반려묘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출냥이를 키우는 것은 금기시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외출이 가출이 되어 영영 집을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동네의 길고양이들과 싸움이 붙어 다치거나 영역다툼에서 밀려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다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생각지 못한 다양한 문제가 있다. 꽃돌이도 하루는 아래 층에 내려갔다 끈끈이 쥐덫에 걸려 고생한 적도 있다.

새벽에 비가 내려 축축한 어느 날이었다. 아침밥을 먹고 인사를 하더니 여느날 처럼 훌쩍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날은 국지성 폭우가 내리는 날이었다. 한바탕 빗줄기를 뿌려댄 뒤엔 집을 나선 꽃돌이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웬걸, 아무리 불러도 기척이 없는 게 아닌가. 그동안 그래도 안심하며 꽃돌이를 외출냥이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이름을 부르면 잽싸게 알아차리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녀석이 어디 갔는지 우산을 쓰고 동네 골목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오후에도, 연구실에서 돌아온 밤에도, 혹시나 소음이 적은 새벽녘에도 골목을 돌아다니며 불러봤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얼굴을 못보니 불과 몇 개월이었지만 한 가족으로 살아온 시간에 꽤 정들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버스를 탔는데 꽃돌이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 적도 있었다. 막막한 마음에 무사하기만 바랐다. 출가후 나흘 째 되는 날,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 습관처럼 꽃돌이를 불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희미하게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낯익은 소리였다. 그날 찻길을 건너 건너편 골목에서 꽃돌이를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는 상황이었지만 어디 있었는지 비는 맞지 않고 돌아다닌 듯했다. 돌아온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걱정하며 빗줄기를 뚫고 찾아 돌아다니던 가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결국 이틀의 근신 기간을 주고 외출을 금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돌아온 꽃돌이는 여느 날처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다만 낮잠 시간과 밤에 잠자는 시간, 아침과 저녁 식사 시간은 꼬박꼬박 지키면서.

뭘 보냥~!!! 요즘은 저렇게 누워 있는 일이 많다

외출을 금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벌써 바깥 공기의 자유를 한껏 누린 녀석에게 그것은 난데없는 폭력이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꽃돌이는 이곳저곳 매일같이 마실을 나갔다 돌아오곤 했다. 다만 3박 4일의 가출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제부턴가 가족과 함께 외출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아들 샘이와 골목에 나가 놀려고 하면 어느새 자기도 집밖을 나와서는 골목 중간에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구경하고 있다. 요즘엔 연구실에 나오는 길에 골목 어귀까지 배웅을 나서기도 한다.

최근에는 외출냥으로서의 생활에 걱정을 더는 일도 생겼다. 꽃돌이보다 덩치가 훨씬 큰, 겉보기로는 2배 이상 큰 검은 동네 터줏대감 길냥이(로 추정되는 녀석)와 함께 담장을 오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꽃돌이는 생각보다 사교성이 좋았다. 잘못하면 한방 얻어 맞았을 텐데… 게다가 최근에는 골목 대장인 또 다른 외출냥 ‘아나’와 한층 친해진 모습을 목격했하기도 했다.

아나는 골목 끝쪽에 위치한 집에 사는 흰색 고양이로 적어도 7살은 넘는다. 아나는 꽤 오래전부터 외출냥이었다. 6년전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와 살았을 때에도 외출냥이로 자주 얼굴을 마주쳤다. 아들 샘이를 낳고, 샘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에 골목에서 샘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녀석도 바로 아나였다. 그러고 보니 아나 덕에 꽃돌이를 입양할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아나를 보고 두려워하기는 커녕 반가워하는 샘이는 보며 고양이와 잘 지내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나와 꽃돌이가 이제 제법 어울리는 친구가 된 것이다. 아나네 식구의 말을 들어보면 가끔은 꽃돌이가 아나를 찾아 아나가 사는 빌라 안까지 들어온단다. 벌써 아나네에서는 아나의 남자 친구로 알려졌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동네 형, 몸집 큰 길냥이와 친해지더니 동네를 주름잡는 터줏대감 큰 누님, 아나와 친분을 트다니!! 꽃돌이가 듬직하기만 하다. 동네 주민住民이 아닌 주묘住猫로서 꽤 활발한 활동을 하는 셈이다.

완전히 동네냥이 된 꽃돌군은 이젠 가끔은 낯선 집 담장에서 얼굴을 내민다. 어제도 연구실에 가려고 집에서 나오는 데 골목 중간에 어느 집 담장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는 게 아닌가. 대체 그 집에는 어떻게 들어갔으며, 거기서는 뭘 하고 노는지 모르겠지만 별 탈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집에 돌아오면 자랑스럽게 ‘냐~아~‘하면서 잘 다녀왔다고 인사하니 말이다.

꽃돌이는 잠꾸레기~

가끔은 집에 들어가는 길을 동행하기도 한다. 오늘만 하더라도 11시 넘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는 데 어디선가 ‘냐~아~’ 하면서 후다닥 뛰어온다. 마치 내가 집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는 듯. 제가 앞장서 달려가 현관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집에 들어간다. 혹시라도 밤에 집에 들어왔는데 꽃돌이가 집에 없다면 여지 없다. 어디서 신 나게 놀다가 뒤늦게 현관문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달라며 밖에서 우는 것이다. 마치 ‘나도 같이 집에 들어갑시다~’라고 말하듯.

부쩍 늘어난 꽃돌이의 사생활을 다 뒤쫓아 알아볼 수는 없다. 오늘도 어딘가에 나가서 신나게 놀고 또 다른 동네냥이들과 산책을 즐기기도 했겠지. 아니면 어느 집 옥상에 올라가 햇볕을 쬐거나, 새로운 길을 탐사하고 돌아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꽃돌이의 밤은 피곤하다. 늦은 시간 이 글을 쓰는 지금, 꽃돌이는 나보다 훨씬 일찌감치 자는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몸을 길게 쭈욱 뻗고 아주 편안 자세로. 거리의 아이, 꽃돌이는 그렇게 단잠을 잔다.

응답 1개

  1. 콩콩말하길

    냐~하는데 왜 꽃돌이 흉내를 내는 기픈옹달의 얼굴이 보이고 육성이 들릴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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