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딸, 세상으로 보내는 나의 편지

- 세실

이혜승은 고3 딸. 그러나 고3답지(?) 않다. 내가 봐도 여유가 있고 SNS 이용이 하도 활발하여 공부 안 하는 아이로 소문났다. 아이는 고3답지 않아도 고3 엄마답게 나는 속이 끓는다. 진지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인터뷰 과제가 주어졌다. 혹시나 하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는데 흔쾌히 “O.K.” 했다. 의외였다. 제 오빠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기 때문이다. 사실 1분 1초가 아깝다고 보면 이 또한 고3답지 않다. 금요일.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딸애와 마주 앉았다. 자신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커다란 푸 인형을 안고 있는 아이에게 먼저 인터뷰에 바로 응한 이유가 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학교에서 안철수 나오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유명해지면 인터뷰를 하겠지, 그럼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엄마가 딱 말해서.”라고 답했다. 아이는 훌륭한 사람, 유명한 사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좋아요

–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요?
= 올바르게 살고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
– 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내가 죽어도 안 잊혀지고 싶어서. 몇 년도에 내가 살았다는 점을 찍고 싶어. 어떤 글을 봤는데 사람은 죽은 그날에 죽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잊혀졌을 때가 정말 죽은 거라고 했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로마 황제는 사후의 명성에 연연해하지 말랬는데. 죽고 나면 자기를 칭찬하든 욕하든 알지도 못하는데 왜 신경을 써요?
= 모른다고 나쁘게 살아? 수업 시간에 맨날 이 글의 주제는,인생무상. 그러는데 난 그 말이 참 싫어.
-불교에선 모든 게 무상하다고 해.
= 그렇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야지.

하고 싶은 일을 할래요

– 어떤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야. 어떤 사람이되고 싶은데
= 대부분 회사원이나 주부가 되잖아. 그건 재미없어 보여서. 똑같은 일만 하고 할 일이 많아 다른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재미있지 않아서 억지로 하고.
– 엄말 보니 억지로 한다고?
= 엄마가, 나는 이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니, 그러잖아.
-그럼 넌 (해보니)설거지 재미있니, 하고 싶니?
괜히 열을 내자 “아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한다. 이 때 세탁기가 마지막 헹굼이라는 신호음을 울리자 한동안 듣고 있다가 내가 말했다.
-세탁기는 일하는 게 재미있나 봐. 저렇게 밝게 울려주잖아. 그러고 보니 기계는 똑같은 일만 해도 참 좋아하네. 전화 오면 전화기가 얼마나 신나게 노래하니? 컴퓨터도 시작할 때마다 즐겁게 노래하고 알람 시계도 시간 알려주는 게 뭐 그리 재미있다고 ‘under the sea under the sea~’(영화 <인어공주>에 나오는 노래)얼마나 우렁차게 불러? 밥솥도 전원만 켜면 찾아줘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듯이 정말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쿠쿠입니다.’ 하고.
=‘under the sea’ 너무 부르다 망가졌잖아.
-망가질 때까지는 즐겁게 불렀잖아. 그래서 넌 억지로 하지 않고 재미없지 않은 거 뭐 하고 싶은데, 뭐하며 살고 싶은데?
= 날고 싶은데… 안 되면 행글라이더나 낙하산으로라도. 이런 건 시간 있어야 할 수 있잖아. 만화 그리기 하고, 당구, 축구도 잘하고 싶고 태권도 배워 힘 세지고 싶고. 초등학교 때처럼 달리기와 운동을 잘하게 되었으면 좋겠어. 나무도 많이 심고, 환경 좋아지게. 기부도 많이 하고 가난한 친구 도와주고. 게임도 하고 친구랑 많이 놀고 싶어.
-기부할 돈은 어떻게 벌 건데?
= 만화 그려서. 그냥 웃기는 만화 말고 사람들한테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는 만화. 나는 잘못하는 사람 막 욕해줄 거야.
– (깜짝 놀라)욕을 막 쓴다고? ‘17+1’ 같은 거? 가이 나오고?
=아니. 말로 욕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뇌물 바치고 숨기려는 사람을 욕해서 스스로 깨닫게 하는 거야. 나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그리는 게 아니고 만화 그리는 게 좋아서 그리는데 그 만화 덕분에 사회가 좋아지고 한 사람이라도 나아지면 좋으니까. 그래서 돈을 벌면 기부하는 거지.
-그럼 희망하는 직업은 만화가야?
= 만화가하고 미술 작가.
-넌 뭐할 때 가장 좋아, 만화 그릴 때?
=아니. 그 때마다 다른데. 하고 싶은 거 할 때.

아이는 어떨 땐 자는 게, 어떨 땐 맛있는 거 먹는 게, 어떨 땐 친구랑 노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작가라고 언제나 글 쓸 때가 가장 좋을까. 김연아는 항상 스케이트 탈 때가 제일 좋았을까? 가수도 노래고 뭐고 자는 게 소원일 때가 있을 테고 엄마라고 아이랑 있을 때가 언제나 가장 좋지는 않으니까.

-존경하는 사람은,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 하는 사람 있어?
= <목욕의 신> 그린 하일권 작가. 그 사람 만화 보고 나서 그 사람처럼 그리겠다고 생각했어. 내용이 재미있으면서 교훈도 있고.
-음, 좀 이상하다.
= 왜? 엄마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부모님입니다.’ 이럴 줄 알았어?
-존경하는 사람 그러면 시바이쩌, 헬렌 켈러 뭐 이런 사람 댈 줄 알았거든. 펄펄 살아있는 사람을 대서.
세탁기가 빨래 다 했다고 노래한 지 오래라 잠깐 휴식.

이런 엄마가 되어 주었으면

– 학교에서 힘든 건 없어?
= 약간 왕따의 심정을 알 것 같아. 친한 애가 아무도 같이 안 올라왔고 이상한 애가 많은데 걔들하고는 친하고 싶지 않아서. 예지와 원령이와 셋이 다니는데 걔들은 공부만 신경 써서 그런지 좀 차가운 것 같아. 작년 애들만큼 아주 친하지는 않아.
-너는 어떤 일이 제일 힘들어?
= 뭐든 억지로 할 때. 배 아플 때. 배 아플 때가 가장 힘들어. 지금처럼.
너무 아파서 조퇴나 결석까지 가끔 하는 딸애의 복통을 낫게 해주는 게 엄마인 나의 가장 큰 숙제다. 배 아프다 소리 하지 않는 아이를 보는 게 나의 소원이고.
-가장 슬펐을 때는 언제였어?
= 엄마 아빠가 싸웠을 때. 엄마가 울고, 나가서 늦게까지 안 들어오고 그럴 때.
-엄마에게 서운했던 적은?
= 아프다고 하는데 ‘또 아프냐, 왜 또 아파? 그냥 약이나 먹고 (학교나 학원에)가.’ 라고 했을 때, 너무 아파서 약 가지러도 못 가겠는데 안 갖다 줄 때.
– 어떨 때 엄마가 싫었는지까지 궁금하다
=별 거 아닌 일로 갑자기 화낼 때. 오빠가 잘못했는데 오빠 말에, 오빤 말을 너무 잘하니까 설득 당해서 나보고 뭐라 할 때. 내가 엄말 좋아하면, 엄말 껴안거나 같이 자자고 하면 저리 가라고 하며 싫어할 때. 아빠랑 싸운 다음 오빠와 나한테 나쁘게 대할 때. ‘너희들은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지?’ 이런 생각도 안 해본 말 할 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싶었어.

딸이 끝없이 늘어놓기에 ‘그럼, 엄마가 고마웠을 때는?’ 했더니 한참 동안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이럴 수가! 기다리다 못해 ‘초1때 학교 교실 뒤 게시판에 붙어있던 엄마에게 쓴 편지에서는 여섯 살 때 목에 걸린 사탕을 손가락으로 빼내줘서 죽을 뻔한 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더니 그것조차 생각 안 났단 말이지?’ 라고 말하며 괘씸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고도 어떤 엄마가 되면 좋겠느냐고 또 물어보았으니 참 뒤끝 없는 엄마다.
= 착하게 말하고 재미있게 해주고. 엄마가 말 많이 할 때가 좋아. 아빠랑 싸우지 말고. 잘못해도 혼내지 말고. 혼내면 역효과야. 웃으며 말해야지.
-우와~ 책상이 정말 지저분하네. 멋지다. 이래?
= 웃는 얼굴로 책상이 지저분하구나, 하면 되지. 어질러진 건 말할 필요가 없어. 정말 많이 어질러졌으면 내가 치울 거니까. 그리고 치워도 금방 또 어질러져.
-네 생활 습관을 바꿔야지. 금방 어질러지지 않게. 쓰고 나서 제 자리에 두면 될 걸 넌 책상 위에 계속 늘어놓잖아. 엄마가 부엌에서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니? 냄비, 밥솥, 칼, 도마까지 쓰고 나서 그 자리에 그대로 늘어놓으면.
= 엄마, 그리고 자주 웃어. 엄마한테도 좋고 모두한테 좋으니까.
평소 결혼을 안 한다고 했지만 슬쩍 물어보니 이번에도 혼자 편하게 살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엄마 아빠 싸우는 거 보고 안 하기로 했다는 말을 또 덧붙이며.
-결혼 안 하면 너처럼 예쁜 딸도 없잖아.
= 난 내 자식도 키우기 싫은데 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니?
= (느릿느릿하게) 저랑 엄마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사는 게 훗날의 희망사항인 모양이다.

내가 가장 슬펐을 때

인터뷰를 마치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불쑥 아이가 말했다.
=가장 슬펐을 때, 생각났어. 중1때 이은지가 나 왕따 시키려고 했을 때. 날 애들에게 나쁘게 말했어. 잘 놀던 애가 인사해도 모른 척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 기분 나쁘지.
= 그랬어. 나는 키만 늦게 자란 게 아니라 정신도 늦게 자랐나 봐. 내가 멍청해서 당했어. 잘 속으니까 우습게 보고. 그 일 아니었으면 난 지금보다 훨씬 솔직하고 남 의심 안 하고 밝았을 거야. 그 때 이후로 친구를 잘 못 사귀는 것 같아. 정말 친한 애한테는 잘 대하는데 그렇지 않은 애한테는 못 그래.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애가 있다는 게 충격이었어.(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냈다)
–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말할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해결되는 듯하다가 안 되는 식이라서. 간단하게 말하기는 했어.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 때 난 대수롭잖게 여겼다. 학교를 아주 즐겁게 다니고 있어서. 몇 발 늦었지만 진심을 다해 말했다.)
-많이 힘들었겠네. 정말 속상했겠다.
=지금도 선민이, 혜린이 만나면 서로 눈 피해야 하는 게 너무 싫어.
-네가 먼저 말하면 안 돼? 그 때는 어릴 때였잖아.
=그러고 싶지 않아. 걔들도 날 싫어하는 거잖아.
급격히 어두워지고 굳어진 아이 얼굴을 보고 하고 싶은 대로 실컷 말하게 놔두었다. 그런 다음 허락을 받고 인터뷰를 끝냈다.

인터뷰는 끝났지만 마지막에 본 아이의 얼굴이 걸렸다. 아이가 가장 슬프고 힘들었다는 때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 도움이 못 되어 미안했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정리 정돈 좀 하라고, 시간을 아끼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고 몰아대기만 했지 아이의 여린 마음을 살피지 못해서. 아이는 여섯 살 때 엄마가 웃는 얼굴 하면 웃음꽃 같다고 말했다-그 때도 화 잘 내던 엄마가 웃어서 그렇게 좋았던가 싶으니 찬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한 편지에서는 “자폐아 엄마는 아이보다 꼭 하루만 더 살기 바란다며? 나는 영화 <말아톤> 보고 나서 나 죽으면 엄마가 슬퍼할까 봐 내가 엄마보다 하루만 더 살기 바랐어.” 라고 한 아이. 예쁜 마음을 가진 아이의 가슴에 지는 그늘을 놓치지 않도록 내가 더 예민해져야겠다.
아이는 그 일이 없었다면 더 밝고 솔직하고 친구도 잘 사귀는 애가 되었을 거라지만 그 일이 한 번은 이수해야 하는 인생 수업일 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괜히 남을 헐뜯는 애도 있고 사람의 마음이란 철석같이 굳기보다는 작은 일에도 쉬 흔들리는 연약한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까. 더하여 우정도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지켜나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완전한 수업이 될 텐데.

부모의 아이, 아이의 부모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금까지 아이에게 보인 어른스럽지 못한 내 모습에 많이 부끄러웠다. 부모로서도 얼마나 못할 짓을 했던가. 어릴 때는 조심해놓고 정작 철이 들어가는 아이들 보는 데서 자주 싸웠다. 낙제 부모다. 으르렁, 왁왁 소리 지르며 싸울 때 숨 죽이고 있던 아이들 마음이 어땠을까. 곰돌이 푸를 끌어안고 울 때 딸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슬펐을까. 그 후로 어버이날이나 생일날 건네주는 아이들의 편지에는 언제나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가 들어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뭐해 줄까 하는 아빠의 문자에 딸애는“선물 필요 없어요. 아빠 엄마만 싸우지 않으면 돼요.”라고 답했고.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싸우는 엄마 아빠를 보고 자신은 결혼을 안 하겠다는 딸을 보며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 나도 밥상 머리에서 부모가 싸우는 광경을 더러 보았다. 어머니와 할머니, 아버지와 할머니가 큰 소리로 싸우는 모습에 간이 쪼그라들 듯 무서워 떨었다. 그 순간이 지나면 한없이 슬펐고.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집을 떠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을 꾸었지 결혼 안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내 아이에겐 그 때보다 더 나쁜 환경을 제공했나 보다.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아직 어린 데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생각이 바뀔 수 있으므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또, 누구나 부모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부러워서 결혼한 건 아닐 테니까. 반대의 경우도 많지 않을까? 나만은 반드시 행복한 가정을 이루리라 결심하고 한 경우가.
그런데 행복한 가정은 걸어놓은 가족 사진처럼 웃는 모습만 있을까? 설마. 행복한 가정에도 여느 가정처럼 다양한 모습이 있을 것이다. 꽉 찬 여유, 넘치는 기쁨, 터지는 웃음 뿐 아니라 외로움과 쓸쓸함도 있고 나른한 권태로움 속에 몰래 흘리는 눈물도 있을 것이다. 다 함께 있으되 즐거움과 성취감, 뿌듯한 충족감 같은 밝은 기운이 도드라졌을 때 행복하다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순도 100의 행복이란 없다. 슬픔의 의미를 몰라 행복하지 못했던 동화 속 공주처럼 없는 게 없으면 없음이 모자라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을 테니까. 아이에게 말해주어야겠다. 엄마 아빠는 원수라서가 아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거라고. 원래 행복한 가정에는 온갖 것이 다 있는 법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아이의 속마음을 좀 알게 되었다. 고3답지 않아 보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니며 나름대로 계획이 있다는 것도. 누군들 제 인생에 관심 없으랴. 고3 엄마다운 초조함을 버리고 느긋하게 아이를 믿어보고 싶다.

부모는 활이고 자식은 화살이라는 말을 한다. 부모가 최고의 목표를 겨냥하여 화살을 쏘면 자식이란 화살은 높게 멀리 날아간다고. 나는 그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식은 부모 하는 대로 된다는 환상을 갖게 하니까. 자식이 그리 수동적인 존재인가, 부모가 활을 높이 쏘면 높이 날아가고 낮게 쏘면 낮게 날아가는. 그럼 힘에 부쳐 활을 높이 올리지 못하고 세게 당길 수도 없는 부모의 자식은 어찌 된단 말인가. 화살이라면 H.W.롱펠로우의 시 ‘화살과 노래’ 에 나오는 화살이 마음에 든다. 하늘을 우러러 화살을 쏘고 쏜 화살을 찾으러 갔으나 간 곳을 모르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고향의 참나무 밑동에서 아직 꺾이지 않은 화살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인데 그 화살이 자식 같다. 내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듯하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어딘가에서 꼭 발견될 화살. 많은 곳을 다닌 그 화살은 어떤 모양새일지.

어느 외국 작가는 딸을 ‘세상으로 보내는 나의 편지’라고 했다. 딸이 편지라면 나의 자질과 품성과 딸에게 퍼부은 나의 모든 잘못된 말과 행동까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지일까? 아마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다운로드 받은 정보처럼 그대로일 리도 없다. 나에게 물려받은 건 편지지일 뿐 그 위에 씌어질 본문에는 자신의 고유한 삶의 무늬가 한껏 수놓아지리라. 딸이 편지라면 나는 예쁘고 쓰기 좋은 편지지가 되고 싶다. 운동장만한 편지지가 된다면 더 많은 경험을 펼쳐놓을 수 있겠지. 먼 훗날 이 세상 어딘가에서 만났을 때 딸이 긴 여행에도 상하지 않은 화살이거나 받아서 기분 좋은, 즐거운 편지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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