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장애등급제,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 남병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교육실장)

장애인들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역 지하도에 경찰과 싸우면서, 노숙을 하면서 24시간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또 다시 길거리로 나온 이유는 두가지, 바로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입니다.
이 두 가지 요구는 좀 특별합니다.
한국의 장애인복지는 사실 장애등급과 가구소득기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두 가지를 폐지하라는 것은 복지의 틀을 완전히 부수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투쟁하는 장애인들도 이런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장애인이 복지제도에 접근하기 위해선, 장애등급을 잘(?) 받아야 하고, 가족이 가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착순 복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사실상 별로 생활에 도움될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1급장애인이 아니면 거동이 아무리 불편해도 활동보조를 신청할 수 없고, 1급 또는 2급장애인이 아니면 아무리 빈곤해도 장애인연금을 신청할 수도 없고 보행이 불편해도 장애인콜택시 이용도 못하고, 3급 장애인 이내에 들지 않으면 감면제도도 별게 없는 상황입니다.

장애등급제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정부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1988년에 일본의 장애등급제를 모델로 도입한 것인데요, 지금은 일본에서도 장애등급은 있지만 거의 기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려진 바로는 한국만이 유일하게 장애인의 몸에 등급을 매기고 등급을 이유로 서비스를 제한하는 나라입니다.
예산이 부족하니 서비스가 더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얼핏 그럴 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여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 35만명이 넘는데 고작 22만여명에 불과한 1급장애인에게만 서비스 신청자격을 주고, 그중에서 고작 5만명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예산에 맞추어 장애인의 권리를 잘라낸 것인데, 오히려 장애등급제를 이용하여 그것이 약간이라도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 아닐까요?
장애인 대부분이 경제활동의 기회조차 없이 가난한 상태인데 장애인연금은 1급과 2급만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예산이 없으니 장애인 줄 세워놓고 앞줄만 주겠다고 하는 꼴이랑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장애등급제를 잘 보완하면 되지 않냐고요?
‘의학적 형평성’은 애초에 환상입니다. 비슷한 장애정도 비슷한 몸상태의 사람이라도 환경에 따라 욕구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는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1급 시각장애인이라도 점자와 흰지팡이와 주변환경에 익숙한 사람은 직업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반면 이러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중도에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의 경우 혼자서는 방문 밖을 나가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과 욕구를 무시한 판정체계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것입니다.

1급이 더 우선적으로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고요?
정부는 언제건 장애등급 기준을 더 엄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2010년 장애등급 하락사태가 속출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등급기준과 등급심사방식을 조금만 바꾸어도 1급장애인수를 원하는 규모로 줄이고 그에 따라 예산을 더 줄일 수 있겠지요.
‘장애등급’이라는 행정적 범주 규정이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를 규정한다면, 개인의 권리는 철저하게 예산의 논리에 잠식당하게 될 것이며, 예산에 의한 서비스 제한과 예산에 의한 권리제한이 정당하다는 환상을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요구는 장애등급을 나누지 말고, 장애인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에 따라 그것을 권리로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문제제기는 보다 근본적입니다.
장애등급이라는 것 자체가 낙인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정부는 오히려 장애등급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산의 논리로 장애인의 권리를 잘라내는 것일 뿐 아니라, 장애라는 것을 의료적인 ‘기능손상’으로 인식하는 차별의 논리를 재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장애는 사회적 관계로 이해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몇 점짜리 몸을 가진 존재로서가 아니라 어떠어떠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복지제도는 그 자체로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되면 될 일입니다.

대안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악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에 존재하는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대안을 걱정합니다. 사실 대안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야만 사실이 올바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들은 자기의 목적을 비로소 찾게 될 것입니다. 복지제도를 신청하면 장애등급을 재판정해서 등급이 하락하면 기존의 서비스까지도 중단되는 지금의 제도는 복지가 아니라 공포정치일 뿐입니다.
활동지원제도는 거동이 불편하여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되고, 장애인연금은 장애로 인해 소득활동의 기회가 박탈당한 빈곤한 장애인에게 가면 됩니다.
장애등급과 같은 의료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을 폐지할 때만 장애인의 환경과 욕구가 고려된 개인별 지원체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장애등급제의 폐지는 차별의 낙인을 없애는 것입니다.
‘기능이 손상된 몇 점짜리 몸을 가진 존재’라는 차별의 낙인을 지우고, 언제건 예산의 논리로 잘라낼 수 있는 동정과 시혜로서의 복지제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낙인과 시혜를 거부하고, 인격과 권리를 보장하라는 당당한 투쟁인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 함께 해주세요!
* 10만인 엽서쓰기 – 대통령후보, 19대국회의원 등에게 우리의 요구를 담아 엽서를 보냅시다. 인터넷 주문 http://www.i420.kr
* 트위터로 알려주세요 – 엽서인증샷, 응원 한마디 모두 좋아요. sadd@daum.net/트윗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www.sadd.or.kr
트윗 : @sadd420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내신등급, 수능등급, 입사시험등급 때문에 장애등급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능력을 등급화하듯이 장애로 인한 필요의 종류를 나누고 등급화해야할 것 같군요. 뭉뚱그려 이 사람은 1등급 사람이니까 좋은 직장, 높은 월급을 주고 저 사람은 6등 인간이니까 결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꼴과 다름없는 장애등급제, 당장 없애라!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