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가난을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부양의무자기준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 김윤영(빈곤사회연대)

지난 8월 21일부터 광화문 지하철역엔 농성장이 생겼다. 이곳에서 농성을 하는 이들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회원들이다. 공동행동에는 장애인도 있고 쪽방 주민도 있으며 홈리스야학에서 공부하는 노숙인 학생도 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라는 누군가에겐 생소할지 모르는 제도에 의해 삶이 좌우되는 사람들이 모여 편치 않은 몸, 넉넉지 않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먼지바람 속에 잠을 청한지 벌써 4주차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장애등급제를 장애인의 몸에 급수를 매기는 ‘낙인의 사슬’이라고 부르고, 부양의무제를 가난한 사람들을 옭아매는 ‘빈곤의 사슬’ 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개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대통령후보들에게 엽서를 쓰는 운동도 벌이고 시민들에게 서명도 받으며 광화문 지하에 머무르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이란?

부양의무자기준이란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이다. 우리나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소득보장체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9년도 제정되어 2000년부터 시행된 13년이 된 제도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존 생활보호법과 다르게 1)수급자격에서 근로능력에 따른 인구학적 기준을 폐지하고 2)개인의 소득에 근거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모든 이들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것이 3)전 국민의 권리로서 보장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제도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로 선정되려면 취지와는 약간 다른 판단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로는 소득인정액(소득환산률을 통해 소득으로 추정된 재산, 근로능력평가를 통한 추정소득 등을 합산)이 기준 이하여야하고 두 번째로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 또한 그 이하여야 한다. 부양의무자는 수급신청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모와 자식, 배우자, 부모나 자식의 배우자를 포괄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충족하려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는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미약해야 한다. 이낙연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비수급빈곤 가구 중 54.5%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다. 2005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수급권 탈락 사유의 약 25%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의한 것이지만 절반 이상이 ‘부양의무자’로부터 사적이전소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9년 기초생활보장권리찾기행동과 곽정숙 의원이 공동 시행한 “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청탈락가구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으로 탈락한 사례(43%)가 가장 많았다. 지난 6월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142만명이다. 그에 반해 2009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의 규모는 410만명으로 추정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넓은 사각지대를 만드는 것이 바로 부양의무자기준이다.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

이러한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매년 사람들이 죽음을 강요당해왔다. 얼마 전 거제의 이씨 할머니가 부양의무자 소득변화로 인한 수급 탈락 통보를 받은 뒤 ‘사람이 제도를 만드는데 어찌 이럴 수 있냐’는 원망을 남기고 시청 앞 화단에서 음독자살을 한 바 있었다. 2010년 가을에는 일용직 노동을 하던 한 가난한 아버지가 아들의 장애판정 이후 아들에게 수급권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가 있었다. 그의 유서에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잘 해주시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그 해 마지막 날 역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을 받지 못하던 노부부가 동반자살했고, 2011년 봄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수급을 받지 못했던 김씨 할머니가 폐결핵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지 못하다 병원 앞에서 객사했다. 청주와 남해의 시설에서 생활하던 노인 두 명이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수급탈락 통보를 받고 자살했으며, 양산의 지체장애 남성은 수급탈락 통보를 들은 뒤 비관, 집에 불을 내고 자살했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은 더 많을 것이다. 끔직한 일이다.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제도가 더 없이 미약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 안에서 수급자격 박탈 통보는 사형선고와 같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초래하는 야만

생존을 위협하는 것 외에도 부양의무자기준이 수급자 혹은 빈곤층에게 강조하는 바가 두 가지 더 있다. 한 가지는 가난의 책임을 사회와 국가가 함께 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는 패러다임을 구축한다. 이는 빈곤의 원인 역시 개인과 가족에게 돌리는 효과를 낳는다. 또 다른 한가지는 지속적으로 가족관계와 본인의 소득과 재산, 근로능력에 대해 평가받아야 하는 수급자들의 스트레스와 모욕감이다. 소득보장을 조건으로 노동에 대한 강제, 혹은 감시. 부양관계자의 노동과 소득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평가받는다는 압박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불러일으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예비범죄자화 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러한 예는 수급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혼한지 12년 된 전 부인이 제 딸의 부양의무자라고, 그 사람 소득이 증가했다고 수급자격을 박탈한다고 하더라구요. 부양관계가 없다고 했더니 주소를 주면서 부양기피사유서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정말 너무 모욕적이고…”
-자녀와 함께 사는 40대 장애남성

“제 자식이 만약에 대학 졸업해서 한 달에 200만원, 이런 직장을 갖게 된다면 큰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 가족 수급권을 빼앗으면 제 자식의 앞날은 뻔하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현재 4인 가족 수급을 받고 대학생 자녀가 있는 50대 장애남성

“부모님이 집이라도 팔아서 나를 계속 부양하라는 건데.. 비장애인이라면 40대에 부모님을 부양하잖아요. 이건 부모님이 가난해 질 때까지 등골을 빼먹으라는 소리밖에 안됩니다.”
-40대 장애인, 연금으로 생활하는 연로한 부모님이 가진 집 때문에 수급 탈락

“통화기록에 아들이 있다고 부양의무자라는 거예요. 이혼한지 20년이 넘어서 해준 것도 없는 자식인데. 아들한테 담당공무원이 전화를 해서 네가 부양의무자라고 했대요. 아들이 전화를 안 받는대요. 나를 더 미워할 것 같아요.”
-암 투병 중 수급신청을 한 50대 단신가구 여성, 20년 전 이혼한 후 관계 단절된 아들과 암 수술 전 얼굴을 보기 위해 연락 한 것이 통화기록에 있다는 이유로 수급신청을 거절당함.

이것은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담 공무원 등 계속해서 잘못된 잣대로 가난한 이들을 평가해야 하는 역할의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의 욕구에 기초해 필요를 측정하지 못하게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위 사례 중 암 투병 중인 50대 단신가구 여성(김○○)의 경우 지난 해 겨울 암 선고를 받은 뒤 20년 전 이혼했던 가정의 자녀를 찾았다. 수술 전 한번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 이후 이따금 소식을 주고 받았으나 원활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상호부조는 전혀 없었다. 수급신청을 한 뒤 그녀는 담당공무원과의 면접 조사에서 “아드님이 많이 보고싶으시겠어요”, “아드님은 어떤 일을 하나요?” 등의 질문을 하는 공무원에게 좋은 어머니로 보이고 싶었고, 잘 모르는 아들의 사정도 최대한 성심성의껏 아노라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탈락 사유가 된 뒤 김○○씨는 수치스러웠고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들은 담당공무원의 연락을 받은 뒤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담당공무원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아들은 김○○씨의 전화를 피하고 있다. 김○○씨를 상담하고 수급 탈락에 대한 이의신청을 함께 진행하던 나에게 담당 공무원은 아들이 분명히 부양기피에 대해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급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왜 김○○씨 말을 다 믿느냐”, “아들이랑 연락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김○○씨는 입원비가 없어 병원근처 쉼터에서 생활하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병원비 지출과 오랜 이의신청 기간으로 인해 한참 더 가난해지고 난 뒤에야 수급을 받을 수 있었다. 담당공무원은 김○○씨를 의심했다. 김○○씨는 담당공무원이 자신을 속였다고 믿었고 담당공무원에게 혼자서는 말도 한마디 하지 않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의 사유가 단지 부양의무자와의 통화기록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황당한가. 나쁜 제도는 사람들을 비열하게 만든다. 가난한 이들도,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도, 가난한 사람에 대한 시선도 비열하게 만든다.

얼마 전 미성년자 주식재벌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10억 이상의 주식을 가진 미성년자 백만장자 82명은 재벌 2세와 3세들로 채워져 있었다. GS그룹의 2세 장남은 531억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7세인 둘째는 200억 이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부자인 가족들은 서로를 더욱 안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가난한 가족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짐이 되어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세상이다. 기초법개정안을 제출한 이낙연 의원 등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시 2013년의 경우 9,966억원을 비롯하여 2017년까지 5년간 총 10조 6,784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도 발표했듯이 OECD 주요국의 공공부조예산은 GDP의 평균 1.16%이지만 중앙정부 예산 기준으로 한국의 경우 0.61%로 절반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GDP가 3만달러로 EU평균치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인해 증가하는 재정은 충분히 감당할 수준이며, 복지와 기초생활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필요 충족, 빈곤의 확산을 방지하고 사회적 건강과 국민의 권리 증진을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복지재정확충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빈곤은 이제 더 이상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 아니다. 정부와 사회가 부담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며,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를 통해 비수급빈곤층의 기초생활보장의 권리 실현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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