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불심검문 부활, 그 속뜻은?

-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잇단 성폭력범죄는 사람을 떨게 한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범행 행태는 무섭다. ‘짐승 같은 놈들’의 범죄는 만인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고, 분노하게 한다. 국가의 최소한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정부는 여러 대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도 다르지 않다. 당장은 큰 이슈를 따라가는 것도 숨 가쁘지만, 조금만 호흡을 가다듬고 살펴보면,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건, 언론의 중계방송식 보도, 정부 등의 대책의 패턴이다. 따라서 정부나 의회 차원의 대책도 재탕, 삼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경찰이 갑자기 불심검문을 대책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불심검문은 성폭력범죄의 대책일 수 없다. 역이나 터미널, 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두세 명의 경찰관이 서서 지나는 시민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것의 효과는 기껏해야 자신이 범죄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벌금미납자들이나 기소중지자를 검거하는 게 전부다. 불심검문은 경찰관이 시민에게 몇 가지를 묻는 게 전부다. 시민은 언제든,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다.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도 있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아도,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불심검문 자체가 시민에 대한 업무협조 요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불심검문은 오히려 경찰관에게만 번거로운 일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3조에 따르면, 범죄와 연관이 있는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면, 검문하는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고,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질문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당연하게도 시민의 몫은 없고, 온통 경찰관의 몫만 있다. 다른 누구보다 경찰 자신이 불심검문이 성폭력범죄 등 강력범죄와 무관하다는 것을 잘 안다. 범죄예방도 범인검거에도 별 소용이 없다. 그런데도 왜 불심검문을 들고 나왔을까.

불심검문은 경찰이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엔 적당하다. 길거리에 경찰관들이 서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 얼핏 보면 뭔가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범죄와 연관이 있다는 의심이 없어도, 때론 입새만 보고 검문대상자를 정하거나, 실적을 맞추기 위해 마구잡이로 검문을 해도 상관없다. 일단 가시적인 효과는 얻을 수 있다.

불심검문을 하면 할수록, 불심검문 무용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경찰이 이 쓸데없는 일을 멈출 생각이 없다. 무용론에 대한 경찰의 답변은, 그러니까 경찰에게 보다 확실한 권한을 달라는 거다. 그동안 경찰은 불심검문 불응자, 또는 신원확인 거부자, 신분증 미제출자 등을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 위해 다양한 입법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경찰의 시도는 너무도 터무니없어서 매번 무산되었지만, 나주사건 등 잇단 강력사건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 수원에서 112신고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잃은 여성의 희생은 엉뚱하게도 위치추적법의 개정으로 경찰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그 여성의 희생은 경찰에게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끓는 호소에도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경찰의 대응 때문이었는데도 그랬다. 김길태 사건으로 유전자 관련법이 통과되는 등, 그동안 대표적 강력사건은 새로운 특별법을 하나씩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경찰이 원하는 불심검문을 위해, 일부러 무용론이 확산되길 바라는 거다.

불심검문을 하면, 길거리의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범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경찰관에게 검문을 당하면 괜히 위축된다. 옷매무새부터 가다듬게 된다. 예전처럼 시민은 경찰을 무서워하게 되고, 이는 경찰력의 강화, 경찰조직의 위상 강화로 곧바로 연결된다. 아무래도 지팡이 보다는 몽둥이가 위세를 갖는데는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가끔 불심검문에 대해 생각해 볼 따름이지만 경찰은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이런 경찰을 표현하는 가장 적당한 단어는 ‘호시탐탐(虎視耽耽)’이다. 하지만, 시민의 불안과 공포를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예산, 그리고 더 많은 권한을 위한 기회로만 여기는 한국의 경찰에게서 호랑이의 풍모를 찾아볼 수는 없다. 경찰은 그래서 딱하다. 경찰의 볼모가 된 시민은 더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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