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가지 궁상이몽

짝사랑의 힘!

- 비컵좌파

난 내 또래 사람들이 좋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어른들에게 공손한 친구, 머리를 여우꼬리처럼 묶어 내린 여자아이, 전학 와서 해맑은 웃음을 짓고 공부까지 잘 하는 남자아이, 스케치를 잘 하고 춤을 잘 췄던 친구, 차분하고 미소가 예쁘고 커피를 좋아했던 누나까지, 내가 좋아했던 이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그만큼 난 사람 볼 줄 알았다. 이들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으니까. 난 깊은 관계보다는 그들과 똑같이 성실해지고 잘 웃고 그림을 잘 그리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어느 때는 조금 아프긴 했지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하루하루의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 친구와 대결했던 짝사랑배틀에서 17 대 6 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정도로 난 사람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삶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보통 사람들처럼, 가족과, 친구와, 그리고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친구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짝사랑을 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인생은 공장 톱니바퀴처럼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느 때는 양의 기운이 음란한 기운으로 돌변하는 순간을 느끼기도 한다. 미래를 약속한 친구와의 사랑과 우정 때문에 다른 사랑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 내지는 의리, 이것이 아마 지금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게임처럼 이렇게 선택지를 제시한다. ①현상유지해라, ②짝사랑을 하라, ③사랑을 다시 시작하라, ④짝사랑은 시시하니 불장난을 저질러라. 대부분은 ①번을 고른다. 난 어떤 선택지를 고르게 될까.

“성경 공부 좀 같이 할까?”

순진했던 초등학생, 시커멓던 중학생을 거쳐 파릇파릇한 남녀공학 합반의 고등학생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붕~ 떠 있는 기분에서 시작한 내 첫사랑은 모두가 아는 짝사랑이었다. 1학년 개학 첫 날, 청소시간에 대걸레질을 했던 그 친구는 빗질을 하는 내 실내화를 막 쳐댔다. 얼굴을 들어 바라보니 싱글생글 웃고 있다. 약간 노란빛 나는 생머리를 묶은 여우꼬리 머리에 이때부터 눈길이 갔다. 친구들이 ‘아톰’이라고 부를 정도로 종아리가 있었던 그 친구는 귀엽고 사근사근해서 싫어하는 학생이나 선생이 없었다.

그 친구보다 10분 정도 일찍 등교했던 나는 교실 창밖으로 등교하는 친구를 바라보다가, 친구가 교실로 들어올 때쯤 화장실을 가는 척 그 친구와 거의 매일 인사를 했다. 오른손을 들어 ‘안녕’하는 짧은 인사였지만, 매일 반복적인 각인이 깊은 인상을 준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인사하고 화장실로 향하는 그 짧은 복도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다른 남자아이가 그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귀는 그 쪽으로 쫑긋해지는 경험이라든지, 책상 짝꿍이 되었을 때 무슨 말을 주고받아야할지 머뭇거리고 가슴만 뛰었던 느낌이라든지, 방학하고 공중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귀여운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아직 잊히지 않는 걸 보니, 그 때의 그 친구에게 응답하라고 응답하라고 소리치진 않아도 그 때로 돌아가 설레는 기분을 잠시 느끼고 싶다.

“성경 공부 좀 같이 할까?” 갑자기 몰입했던 감정이 확 깬다. 수화기 너머의 그 친구 어머니 말씀은, 딸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과 성경 공부를 하고,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딸과 교제하고 싶은 많은 친구들과 같이 공평한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친구 아버지만 빼고 어머니, 네 딸이 그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이는 내가 그 친구와 더 친해지기 위해서, 나아가 그 집안과 관계 맺기 위해서 가까운 미래에 종교적 병역거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 때는 내 상황을 가족과 상의하고 맺어질 수 없음에 눈물지으며 힘겨운 1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난 다른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짝사랑의 ‘끝’

조그맣고 가냘펐으면서 앙칼졌던 친구, 강아지를 선물로 줘서 이상하게 강아지를 닮았던 친구, 쌍꺼풀이 없고 당차고 마음이 착했던 친구, 남녀 안 가리고 친해서 편했던 친구,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친구, 비 올 때 운동장에서 비를 맞는 친구, 기계를 잘 다뤘던 친구, 귀엽고 다정한 모습의 친구… 취향이랄 게 없이 좋아했다. 그 뒤로 여자친구를 두 번 사귀게 되었으나 헤어지고 나면 바로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였다.

군 제대 후의 첫 짝사랑을 끝으로 순진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끝났던 것 같다. 대학 때 같은 동아리였던 이 친구는 외국어를 잘 했고 뭐든지 활발했다. 무엇보다 ‘오빠’ 소리가 귀에 들려왔었고, 데이트 신청을 내게 먼저 하는 매력이 있었다. 늦은 밤에 영화 보러 가기도 하고, 카페에서 둘이 공부한 적도 많다. 신기했었다. 나는 친해지면서 사랑을 느꼈지만, 이 친구는 일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친해짐과 사랑은 엇갈릴 수 있는 거로구나. 아플 때 모르게 약을 챙겨주고, 연락을 하고, 밥을 먹어도, 그냥 오빠동생 사이가 있을 수 있는 거란 걸 알았다. 결국은 덕수궁에서 서로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난 사랑을 거부당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안아줄 수 있니?’라고 말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순진한 짝사랑은 끝났다.

그 후로도 짝사랑은 많이 했다. 하지만 별 기미가 없다 싶으면 내가 먼저 길을 틀었다. 인생의 길을 정하는 시기에 어떤 사람이 나랑 어울릴까를 생각했었다. 그래서 만난 친구와 지금 같이 다닌다. 이 친구와 만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일방적 사랑의 대상이었고, 아마 대부분 내가 좋아했었는지조차 모를 거다.

마음 주기 힘든 세상

어쨌거나 지금은 짝사랑을 안 한다. 상황을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이성과 감정이 조화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서일까. 그래서인지 가끔 예전의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예전의 짝사랑들이 생각난다. 그냥 실실 웃게 되지 않는가, 머리 아프지 않게 되지 않는가. 물론 짝꿍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는다.

인간의 마음은 누가 들여다보고 검열할 수 없으므로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한 우리들은 사람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로 가로막으며 선을 지킨다. 그래서 감정적 섞임만 아니라면 육체적 섞임이 용인되기도 한다. 마음을 준다는 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일이고 그만큼 마음을 주기 힘드니까.

난 이 모두를 짝사랑이 줄어든 때문이라고 느낀다. 짝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고 복고를 다룬 영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짝사랑은 안 되니 꿈 깨고 현실을 보라고 말한다. 결혼제도를 지키라고 말한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대한민국법상으로 혼인한 나는 사회가 제시하는 게임의 선택지를 다시 찬찬히 훑어보았다. ①현상유지해라, ②짝사랑을 하라, ③사랑을 다시 시작하라, ④짝사랑은 시시하니 불장난을 저질러라.

사랑들이 교차되는 세상을 향해

게임을 거부할 수 없는 마당에, 이렇게 마음 주기 힘든 세상과, 마음 주는 것을 범죄로 여기는 세상과 조금 타협하자면, 난 ②번을 택하겠다. 고립된 각각의 사랑들이 아니라 사랑들이 교차되는 세상을 향해 잠시 후퇴해야겠다. 사람을 다시 좋아하려고 한다. 물론 부딪힐 문제는 많다. 여유가 있어야 사랑도 잘 한다. 돈이 있어야 사랑할 여유도 생긴다. 사랑 논쟁을 짝꿍과 친구들과 많이 벌여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다 보면 고립된 사랑이 열리고 가족이기주의가 풀리고 서로 마음을 교환하기 쉬워질 것 같다.

귀 사이로 흘러내린 머리칼,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 뭐든 뚝딱 만들어내는 요리솜씨, 양젖을 기가 막히게 짜 내는 손놀림, 와이셔츠를 걷고 열심히 모니터를 응시하는 모습, 갓난아기에게 ‘우르르 까꿍’을 외치는 목소리, 엉터리 영어지만 열심히 의사를 전달하는 태도… 사람과 사물에 집중하면 의외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고 좋아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사랑은 일방적이더라도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다니는 주위의 바람을 훈훈하게 만들 수 있다.

응답 3개

  1. 비컵좌파말하길

    겸손한 이기심… 지금 상태로는 힘들 것 같구요..^^;
    몸으로 보듬어주는 거… 정말 실천하고 싶네요ㅋ 그런거 자연스럽게 아무렇지않게 기분나쁘지않게 잘 하는 친구들 보면 부러워요ㅎㅎ

  2. 미리퐁말하길

    객관식 사지선다형 세대라서인지 한가지를 골라야 할것같은..
    그쵸.짝사랑 이라는게 그저 보기만해도 좋고 굳이 마음 받아라 고백해서 거절당할
    비참함 없고, 그럼에도 짝사랑도 역시 집착이 생기고 오래가면 변질되가는걸 느끼고
    그런데 결국 주위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게 짝사랑일까요? 자기 위안 인가요?^^이래서 짝사랑이 싫네요!
    비컵좌파님 얘기처럼 혼인남녀가 익숙한 싫지않은 배우자를 두고 다른이를 좋아하는 사태^^.많습니다. 정말 짝궁이랑 친구들이랑 진지할수밖에 없고 열심히 얘기해야할 필요성,에 공감하구요, 제 주윗분 얘기 덧붙이자면 1번과 3번을 동시에 하라더군요.본인은 정직한 나의 삶과 배우자의 시간을 뺏지 않기위해 필사적으로 이혼을 하셨더랬습니다. 그분의 충고인즉,겸손한 이기심의 자세를 가지라는데. 이게 말이 쉽지.시시작각 분열을 이겨낼 정신력과 지성, 정력,시간을 벌 돈, 또 뭐가 있을까요? 참,어렵죠..그래서들 안하나 봅니다. 그래선데요, 우선은 이런 훈훈한 마음들을 좀 잘 보듬어 줬음 좋겠습니다.마음으로 말고 몸으로요, 친구,주윗사람들 보지만 말고 정말 만나면 안아주고 얼굴부벼주고,뭐 이럼 안되나? 아니, 그래서 안았는데 좋더라,신체반응이 오더라 싶으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친근하면 그저 친근한데로 따뜻해서 좋고 이상하게 더듬더라 싶으면 이막빡으로 받으면 되고,뭐 그리스시대땐 동성 친구끼리 오두막 들어가서 상의 벗고 서로 어루만지며 허심탄회한 얘기 많이 나눴다는데(^^확실하지는 않구요) 아니,뭐 우린 애들만 안아야 된답니까? 성모마리아도 아니고 산타클로스도 아닌데..젠장 당장 실천해 보고 싶네요–;;

  3. 지나가다말하길

    “마지막으로 안아줄 수 있니?”에 빵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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