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공안정국2.0?

- 정정훈(수유너머N)

1.<13구역>의 상상력

그러니까 그것은 단지 영화적 상상력만은 아니었다. 근 미래의 프랑스. 파리시의 13구역이라 불리는 특정 지대가 일상적인 치안활동으로는 도저히 관리할 수 없는 높은 범죄율이 유지되자 국가는 그 구역을 높은 콘트리트 벽으로 둘러싸서 격리시킨다. 13구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중무장한 경찰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그 곳은 일종의 거대한 수용소(camp)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수용소 안에는 바깥세상의 법과 질서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국가는 13구역 주민에 대한 법적 통제나 관리를 포기하였다. 그 구역은 오로지 자의적 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치외법권의 지대가 된 것이다. 피에르 모렐 감독의 프랑스 영화 <13구역>의 이야기는 바로 이 치외법권 지대에서 펼쳐진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도시의 한 구역이 범죄자들, 혹은 잠재적 범죄자들을 구금하는 ‘감옥’처럼 보이지만 더 이상 권력은 이 폐쇄구역에 구금된 범죄자들을 사회의 규범에 맞추어 교정하려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푸코는 근대권력의 작동 방식으로서 규율을 분석한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이야 말로 사회 전체에 퍼져있는 규율권력의 일반적이 작동모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 규율은 무엇보다 범죄자, 혹은 비행자의 일탈적 행위를 사회적 규범에 따라 교정하여 정상화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13구역>은 더 이상 권력이 범죄자나 비행자의 행위에 대한 감시와 처벌의 메커니즘을 따라 교정하는 방식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권력은 골치 아픈 범죄자들을 단지 격리하고 버려둘 뿐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단지 범죄자들이나 비행자들을 격리하여 자기들끼리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끝이 아니다. 어느 날 13구역 내부에서 살해당한 경찰관이 발견되고 파리 13구역에 대한 파리시민들의 분노와 불안은 드높아진다. 당국은 이러한 시민들의 여론을 기화로 사회불안의 온상인 13구역 자체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파리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결국 13구역의 범죄자들 때문이며 파리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3구역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권력자들의 논리이다. 그러나 경찰관의 살해는 방치된 13구역을 재개발하여 개발이익을 얻으려는 권력자들의 음모였다. 범죄자들은 단지 격리되고 버려진 것이 아니라 권력의 필요에 의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2.“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주폭과의 전쟁에서 물리적 거세론까지

몇 달 전 TV 뉴스들은 일제히 주사 때문에 피해를 받는 선량한 시민들의 고통 문제를 보도한 적이 있다. 윗집에 사는 여성이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아랫집 문을 두드리고 욕설을 하거나 술에 취해 길가는 시민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곧이어 경찰은 주폭(酒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그것과 전쟁을 선포했다. 주폭의 문제점을 보도한 언론이나 주폭을 엄벌하겠다는 경찰의 논조는 우리 사회가 사소한 일탈행위에 대해서 너무나 관용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었다. 사소한 일탈행위를 관용하게 되면 이 일탈행위는 곧 심각한 범죄행위로 손쉽게 발전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곧이어 정부와 서울시는 도시 내에 음주 금지구역과 주류판매 금지구역을 확장하기로 결정하였다. 대학구내에서 음주가 금지되고 홍대나 명동과 같은 유흥 지구에서 실외주류판매 금지를 추진 중이다. 그리고 이렇게 음주를 금하려는 권력의 조처를 시민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고 수용하는 분위기이다. 안전과 쾌적한 일상을 위해 음주에 대한 엄정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소위 ‘묻지마 살인’이라고 불리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행과 살인이 자주 발생하면서 범죄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엄벌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불심검문을 강화하고 범죄자에 대해 관용 없이 엄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성범죄가 집중적으로 보도되면서 성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불안이 급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성범죄자에 대하여 화학적 거세뿐만이 아니라 물리적 거세까지 가능한 처벌 법안을 발의하려 했다. 이는 봉건적 신체형을 부활시키는 반민주적, 반인권적 작태라는 비난이 야당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었고 여당의원들도 무리수라고 평가하기는 했고, 결국 이 법안은 아직까지 상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범죄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강하게 느끼는 시민들에게는 꼭 그렇게 황당하게만 보이는 조처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성범죄는 엄정 하게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 맞고, 현재 대한민국 법원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성범죄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성범죄가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원인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지 성범죄자에 대한 보복성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재 주류 미디어와 정부의 성범죄 대응 논리는 처벌권력을 강화하고 범죄발생을 막기 위해 공권력에 의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폭과 같은 일상적 일탈행위로부터 성범죄에 이르는 심각한 범죄에 이르기 까지 우리 사회에서 범죄가 증가하고 있으며 시민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조성되고 있다는 생각을 주류 미디어와 정부는 현재 확산키고 있다. 범죄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위해서는 시민의 일상에 대한 권력의 통제와 범죄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가능한 치안권력의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호응을 얻고 있다. 사회질서를 위협하고 사회불안을 증식시키는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권이나 시민의 권리가 어느 정도 제한되더라도 국가의 치안활동이 강력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3.공안사회의 새로운 양상

치안이라는 명분으로 국가권력이 강화되는 양상은 사실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으며 MB정권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더욱 첨예하게 나타났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사실상 유언비어 살포죄로 기소한 것에서부터 2009년 용산 남일당 철거민에 대한 살인진압과 쌍용자동차 농성의 폭력진압, 그리고 현재 재개발지역들과 노동자 투쟁현장들에 대한 경찰병력의 폭력에 이르기 까지 이명박 정부는 법질서의 확립과 치안의 유지를 명분으로 국가폭력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미네르바는 경제위기에 대한 유언비어를 살포해 사회불안을 야기했다고 기소되었으며, 용산 철거민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심테러분자로 지목되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경제위기를 유발하는 집단이기주의자들로 몰렸다. 강정마을과 구럼비를 지키려는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위험한 세력으로 몰려서 경찰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소수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 대중의 삶을 끊임없이 불안정화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과 문제제기를 오히려 사회의 불안을 야기하는 행동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가폭력으로 억제하는 것이 현 정권의 통치방식이다.

노동자들과 철거민을 사회적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몰고 갔던 권력은 이제 사회전체에 이러한 위험요소들이 즐비하다고 선전하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요소를 통제하고 제거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안전은 범죄와 폭력에 의해 위험에 처해 있으며 사회의 안전을 보호하기위해서는 국가의 권력에 대한 시민적 통제는 약회되어야 하고 시민의 일상에 개입할 수 있는 국가권력과 범죄자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대응폭력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권력은 말하고 있다.

군부독재 시절 북한에 의한 국가의 위기를 강조하며 시민적 권리를 유보하거나 제한함과 동시에 국가폭력을 강화하던 통치방식이 있었다. 군부독재에 맞서는 진영에서는 그러한 통치방식이 관철되던 상황을 흔히 공안정국이라고 불렀다. 북한과 같은 외적에 의해 국가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이 시기 공안정국의 핵심이었고 이는 군부독재정권의 고유한 통치방식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실상 군부독재는 바로 이러한 공안정국에 기초하여 유지될 수 있는 체제였고 그러한 한에서 군부독재 시대 전체가 바로 공안정국에 의해 유지되는 시대, 즉 공안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안정국은 민주화 이후 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등장하는 것 같다. 다만 국가의 안보가 사회의 안전으로 바뀌었으며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이 북한에서 범죄자들과 일탈행위자들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범죄를 예방하고, 발생한 범죄를 엄벌하기 위해서는 시민적 권리의 제한을 받아들이고 시민의 일상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 강화를 용인하고 국가의 폭력사용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는 오늘날의 경향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형태의 공안사회가 도래했음을 목도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사회불안의 모든 책임을 범죄자들에게로 전가하며 국가의 치안권력을 갈수록 강화하는 현 상황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13구역>, 그러니까 그것은 단지 영화적 상상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응답 2개

  1. vaslife말하길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 미네르바가 사회불안을 조성했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몰두하겠죠. 중요한 문제는 권력강화의 기제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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