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술값

- 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

나의 주요 활동보조 업무 중 하나는 ‘컵 홀더’가 되는 일이다. 동건씨가 처음 시설에 나왔을 때 보였던 외출욕은 사그라든지 오래다. 어쩌면 애초부터 외출욕이 그리 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혹은 선택하는 외출지란 한정되어 있었고, 그 반복됨에 내가 먼저 지루함을 느꼈고, 그도 아마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의 외출 장소는 그가 다니는 야학 근처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술집들로 한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종종 그가 다니는 야학을 ‘땡땡이’치고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다. 장애인 접근성도 문제였지만, 한번은 술집 사장이 더 이상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여러 조건에서 걸러져 선택된 술집을 동건씨는 참으로 좋아하였다.

그는 몇 회 이상의 술집 출입 경력이 있어야만 발급되는 ‘스페셜 멤버쉽 카드’도 발급 받았다. 그 카드 발급 이후, 멤버쉽 회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 바로 할인혜택을 입으며, 그의 술집 출입은 탄력을 받았다. 그는 값 비싼 과일주를 아주 좋아하였다. 매번 그의 술값은 한번에 사오만원을 웃돌았고, 매주 이삼회 정도 술집을 들렀던 것 같다.

나는 종종 그에게 올해의 활동보조 목표를 ‘이용자 통장잔고 0원 달성’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의 외출활보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그의 지출은 잦아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통장잔고가 적어지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의 통장잔고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내가 활동보조를 아주 열심히 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술값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문화를 향유함에는 언제나 비용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내가 활동보조를 열심히 하였다는 증거 혹은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말은 아니었다. 동건씨는 자립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신의 집이 없는 상황에서 소속 센터의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한시적으로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 또한 그러하겠지만, 주거의 불안정은 상시적으로 그를 괴롭히는 문제다. 그럼에도 그렇게 돈을 많이 써서야 당신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겠냐는 비판 혹은 충고가 그 말속에는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그에 대한 비난이 강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그의 처지가 미래를 기획할 수 없는 처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많이 말했지만, 동건씨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홀로 집에 있을 때, 전화 거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고, 활동보조가 하루만 오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는 처지였다. 그가 혼자 집을 얻어 생활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을 때, 치밀한 계획성이 필요했다.

동건씨가 혼자 살고 있고, 활동보조인이 있을 때, 행여나 활동보조인이 마음만 나쁘게 먹으면, 동건씨가 고립되는 것은 쉬운 일로 보였다. 이런 우려사항들을 아담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아담은 그래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이야기할 때 지역사회의 네트워크가 중요하며, 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 종종 그 사람이 잘 살고 있는지 들러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판단하기로는 동건씨는 아직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다른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교적이지도 않아보였다. 이런 생각들에까지 이르니, 동건씨가 지금 즐기지 않으면 언제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그의 절제를 설득하는 내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언제는 정말로 어떻게 할거냐며 심각하게 물은 적이 있었는데, 동건씨는 술 사먹고 돈 떨어지면 자살하겠다고 까지 말했다. 그는 나를 침묵하게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가 돈을 아낀다.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도 슬슬 경제적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술을 마시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렇게 방탕해서 괜찮을까? 그런데, 아마도 방탕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방탕해서는 괜찮지 않다는 교훈 혹은 자각은 방탕 이후에나 오는 것은 아닐까. 동건씨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성공의 경험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실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응답 1개

  1. 콩콩말하길

    마지막 구절에 이백퍼센트 공감합니다~
    실패도 제 힘으로 오롯이 감당했을 때 자립이 가능한 거겠지요. 그걸 바라봐주지 못하고 조바심치는 것이 보호하는 자의 시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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