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미국의 경찰 – 근대국가의 건달들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들어가며

근대국가의 등장 그리고 전개와 괘를 같이 하는 경찰은 군대와 함께 근대국가에서 폭력을 담당하는 2대 조직의 하나이다. 군대가 외부의 적으로부터의 자국민 보호 내지 외적의 섬멸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외부를 향해 폭력을 행사한다면 경찰은 내부의 치안을 담당하고 범죄 예방과 처벌 등을 목표로 하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군대의 폭력이 외부의 적을 향한 노골적인 성격의 것이라면 경찰은 내부의 치안 유지와 통제라는 좀 더 미묘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군대가 국민의 대규모 동원을 통해 구성되어 국가를 방어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근대적 조직을 대표하곤 했지만 외부의 타자를 향한 폭력행사라는 점에서는 전근대적 군사조직과 목표와 폭력행사 방식에 있어서 대차가 없다. 반면에 근대국가의 조직적이고 철저한 내부 통제가 그 억압적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경찰이야말로 푸코가 “경찰-감옥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근대의 내부 퉁제과 억압 그리고 훈육을 담당하는 대표적 기관일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 경찰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미국의 내적 폭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된다.

미국의 경찰조직을 얘기하면서 먼저 지적할 점은 미국에는 시민의 일상에 직접 관여하는 국립경찰 조직이 없다는 사실이다. FBI나 세관과 이민 담당 경찰, 국립공원 경찰, 해양 경찰 등 연방정부하의 여러 경찰조직이 있지만 이들은 연방법 아래 규정된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하거나 정해진 지역 내에서만 활동하는 기관들로 일상에서 이들과 마주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주’를 권위의 정점으로 하는 일반 경찰조직인데 이들조차도 주의 직접 통제 아래 놓여있지는 않다. ‘주 경찰(state police)’과 주 산하의 카운티 경찰 혹은 보안관(county police or sheriff)’과 함께, ‘시 경찰(city police)’, ‘타운 폴리스(town police)’, ‘빌리지 폴리스(village police)’ 등의 하위 행정기구에 속한 ‘자치지역 경찰(municipal police), 그리고 대학 내의 ‘캠퍼스 경찰(campus police)’ 등과 같은 다른 종류의 경찰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수장을 선거로 뽑고 (대학 경찰은 보통 총장이 임명) 재정의 자치적으로 마련한다는 점에서 독립된 조직의 면모를 보인다. 이들의 역할과 관할구역은 주마다 또 같은 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며 주요 대학이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필자 같은 사람은 한 지역에서 이 네 종류의 경찰 모두와 접하며 살기도 한다.

미국 경찰이 이런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방자치적 조직 체계를 가지게 된 것은 원래 영국의 13개 식민지가 타협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상당부분 유지하며 연방국가를 세운 미국의 역사를 반영한 것으로 한마디로 장단점을 얘기하긴 어렵다. 중앙집권적 국가폭력에 호되게 당해온 한국의 근대사에서 지방자치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반권위적인 제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그 자체로 정당한 것,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자치란 자치를 담당하는 공동체 세력의 윤리성과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 그 집단의 편견과 폭력성이 외부의 힘에 의해 제어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강화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분권적 제도는 다양한 세력으로 이루어진 국가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으로는 유용한 역할을 했지만 역사적으로 부정적 지방세력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켜 미국의 전반적 보수화와 함께 외부를 향한 패권주의와 내부의 소수자 억압이라는 역사적 만행을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 칼럼 “꼰대들은 가라” 참조.) 경찰조직의 분권화도 이 분권과 자치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경단 – 더러운 폭력의 유산

미국 경찰의 기원은 건국 이전인 17세기 뉴욕과 보스턴 같은 인구밀집 지역의 비교적 잘 조직된 자경단에서 찾고 있다. 자경단은 영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중앙집권적 관료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지역 공동체가 젊은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자치적으로 치안을 담당한 느슨한 조직체계 일반을 지칭한다. 자경단이란 영어로는 ‘Vigilance Committee’, (자경단원은 ‘Vigilante’)라고 일컫는데 ‘watchman’이나 ‘night watch’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군사조직인 경우는 ‘militia’나 ‘minutemen’이라는 말을 쓴다.) 지역의 느슨한 자발적 치안 담당 조직들이 국가의 틀이 잡혀감에 따라 ‘주’를 중심으로 통합, 재편된 것이 현재의 미국 경찰의 모습이다.

자경단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그들의 역할은 변해왔다. 작은 공동체에서 유일한 자발적, 준공식적 치안유지 집단으로 기능하기도 했고, 영국 식민지 관리들에 대항해 주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건국이 되고 주 산하의 공식적 경찰기구가 만들어진 19세기 이후에는 공식적인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경찰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거나 때론 경찰에 대항하는 비공식적 조직으로도 작동해왔다. 그런데 이 모두를 관통하는 큰 흐름은 미국이 가진 소수자에 대한 폭력성, 특히 인종적 폭력성이 자경단을 통해 가장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형태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인종적 소수자들에게 가해진 끔직한 형태의 폭력인 ‘린칭’의 가해자들은 그 지역의 자경단원들로 자신의 공동체를 지킨다는 미명하에 아무런 제재 없이 흑인들인 때리고 찌르고 불태워 매달았던 것이다. (‘린칭’ 칼럼 참조) 경찰조직이 공식적으로 구성되기 이전에는 이들이 바로 그 지역의 사실상 “경찰”이었고 공식적 경찰조직이 구성된 이후에도 남부의 경찰은 연방의 강력한 제재가 가해지기까지 린칭을 공공연히 묵인하거나 때론 직접 행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경찰조직이 은밀히 혹은 공공연히 인종주의적 편견에 입각해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지금까지도 휘둘러 오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남부 주에서는 무장한 자경단원들이 국경을 순찰하며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잡아 고문하거나 죽이기도 하며 전통을 꿋꿋이 이어오고 있다.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남부 주에서는 무장한 자경단원들이 국경을 순찰하며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잡아 고문하거나 죽이기도 하며 전통을 꿋꿋이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대도시와 시골을 불문하고 가장 많이 사회적 약자, 특히 인종적 소수자에 대해 폭력을 휘둘러 온 집단은 경찰 조직일 것이다. 직접 행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폭력을 묵인함으로써 인종차별을 지속시켜오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권침해를 범하고 있는 집단이 경찰이라는 인권단체의 보고서도 있는데 이는 근대국가의 치안유지가 그 자체로써 가장 큰 폭력으로 작동한다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특히 흑인들이 미국 사회의 내적 타자가 되어 빈곤계층에서 벗어나지고 못한 채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 되고 범죄에 많이 연루되면서 범죄 예방 내지 소탕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에 대한 온갖 공공연한 폭력이 묵시적으로 허용되어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우리는 결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죄인으로 취급 받는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민권운동기에 경찰을 향한 흑인들의 분노가 공공연히 표출되기 시작한다. 이 때 등장하여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FBI가 ‘미국의 안위에 가장 심각한 내적 위협“이라고까지 했던 과격한 흑인운동 그룹인 ‘블랙 팬더스’(Black Panthers)가 ”경찰 감시하기“(Policing the Police)를 구호로 내걸고 경찰의 과도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흑인들을 보호하자는 명목으로 등장한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1969년 멤버의 한 명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급습한 시카고 경찰에 의해 40여 발의 총탄을 난사당하여 살해된 사건이 보여주듯이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블랙 팬더스 포스터. “앞으로 나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들을 밟고 나아가겠다”는 백인들을 향한 위협적 문구는 민권운동 시위에서 널리 불렸던 렌 챈들러(len Chandler)의 노래 “우리의 운동은 전진한다”(The Movement’s Moving)에서 따온 것인데 (http://www.youtube.com/watch?v=qYLiaL7jAIA) 이 노래는 원래 과격한 노예해방주의자 존 브라운을 기리는 노래 “John Brown’s Body”의 멜로디를 차용한 것으로 다른 가사로 “공화국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가 되어 남북전쟁 때 그리고 민권운동 당시 널리 불리었다. 두 노래 모두 후렴을 따서 “Glory, Glory, Hallelujah”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rhf04culJgE)

블랙 팬더스 포스터. “앞으로 나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들을 밟고 나아가겠다”는 백인들을 향한 위협적 문구는 민권운동 시위에서 널리 불렸던 렌 챈들러(len Chandler)의 노래 “우리의 운동은 전진한다”(The Movement’s Moving)에서 따온 것인데 (http://www.youtube.com/watch?v=qYLiaL7jAIA) 이 노래는 원래 과격한 노예해방주의자 존 브라운을 기리는 노래 “John Brown’s Body”의 멜로디를 차용한 것으로 다른 가사로 “공화국 찬가”(Battle Hymn of The Republic)가 되어 남북전쟁 때 그리고 민권운동 당시 널리 불리었다. 두 노래 모두 후렴을 따서 “Glory, Glory, Hallelujah”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rhf04culJgE)

1992년 흑인 밴드 ‘바디 카운트’가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경찰 죽이기“(Cop Killer)라는 곡을 발표한 이면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쌓여온 경찰-감옥 시스템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가 있다. 1999년에는 뉴욕시 경찰이 아마두 디알로라는 아프리카 기니아 출신 이민자를 그의 집앞에서 41여발의 총탄을 퍼부어 말 그대로 ‘사냥’한 사건이 있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American Skin (41 Shots)“라는 디알로를 기리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aQMqWAiWPMs) 그는 범죄기록도 없었고 비무장 상태였지만 사냥꾼 경찰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저 그가 총을 꺼내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는 그들의 증언하나로 무죄방면 되었다. (독일경찰이 2011년 한해에 전체 경찰이 89발의 총알을 썼는데 49발은 경고용으로 쐈다고 하니 독일경찰이 한 해 동안 쏜 총알을 한 인간에게 퍼부은 것이다.) 2006년 숀 벨이라는 흑인은 결혼 전날 친구들과 스트립클럽에서 마지막 총각생활을 즐기고 나오다 경찰이 그의 차를 향해 쏜 50여발의 총탄에 희생되었다. 물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일은 여기저기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험악한 일의 피해자는 거의 예외 없이 가난한 이들, 유색인들이며 가해자는 대부분 백인경찰이다. (미국 경찰의 폭력성을 두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독자는 유튜브에서 ‘police brutality’로 검색해 보시기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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