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미국의 경찰 – 근대국가의 건달들 (2)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감옥국가

1973년 뉴욕 주지사 넬슨 록펠러 —재벌 존 록펠러의 손자이다—가 마약사범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록펠러 마약법”을 통과시킨 것을 기점으로 1980년대에 들어서며 ’법과 질서‘라는 구호아래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범죄와의 전쟁“, 특히 레이건 때 이루어진 ”마약과의 전쟁“은 흑인들을 향한 선전포고와 다름이 없었다. 판결에 있어서 판사의 재량을 인정하지 않고 의무적으로 형량을 강요하는 규정(mandatory sentencing)과 경범이라도 3번이 되풀이 되면 중죄로 다스리는 ‘3진 아웃법’(3 Strikes Law) 등이 만들어졌고 경찰의 폭력도 비례해서 더욱 심각해졌다. 여기에 더해 1976년 사형제가 부활되면서 누명을 쓰고 공권력의 살인에 희생된 억울한 영혼들 또한 적지 않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있고 (인구의 거의 1%인 이백만 명이 넘는 수형인 수는 전세계 수형인의 1/4을 차지하며 약 백오십만인 중국이 그 다음이다), 인구당 수형인 수에서도 세계 1위라는 사실(10만 명당 715명으로 2위는 584명인 러시아)은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를 자처하는 미국이 실은 공안과 수형에 의해 유지되는 ‘경찰국가’ 내지 ‘감옥국가’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현재 수형인 수는 1970년과 비교해서 7배 이상으로 폭등했고 이들의 다수는 인종적 소수자 특히 수형인구의 40%를 차지하는 흑인들이며 약 반 정도는 마리화나 소지나 사용같은 비폭력 마약사범들이다. (“불법” 이민자들도 이 수형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흑인들 가운데 대학생보다 수형인이 더 많고 20대 흑인의 거의 1/3이 감옥에 있거나 가석방 상태에 있다는 통계가 보여주듯이 이 검은 피부의 불행한 영혼들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미국사회의 타자로 남아있다.

미국 수형인구의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1980년부터 급격히 증가한다.

미국 수형인구의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1980년부터 급격히 증가한다.

일인당 GDP와 가계소득 중간값의 변천을 보여주는 그래프. 부의 불평등한 배분과 수형인구가 198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일인당 GDP와 가계소득 중간값의 변천을 보여주는 그래프. 부의 불평등한 배분과 수형인구가 1980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경찰의 군사화

미국 경찰의 폭력성과 무차별 수감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넓은 영토와 분권적 시스템으로 인해 미국사회의 빈 곳은 그래도 많이 남아있었다. 미국사회를 더욱 억압적인 감시사회, 통제사회로 탈바꿈 시키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9-11이었다. 이제까지 식민지 하와이 이외에는 외적의 공격을 직접 경험한 바 없는 미국인들에게 중심부를 강타당한 9-11 테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충격을 자신들의 패권주의와 내부통제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간파한 부시 행정부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오도된 정책을 채택하여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광범위한 감시체제를 만들고 대규모 불법구금과 고문을 통해 내부조차 또 하나의 적대적 외부로 만들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던 경찰조직을 연방정부가 훈련과 무기, 자금지원을 통해 준군사조직으로 재무장시키고 새로 생긴 국토안전부를 정점으로 재편하게 되었다. 이제 탱크와 장갑차,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등장하고 ‘테러리스트’라는 이전과 구별되는 새로운 적을 상정하는 경찰은 군대처럼 외부의 적과 싸우는 멘탈리티를 갖게 된 것이다. 내부의 적을 색출하기 위한 감시의 눈길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어 광범위한 도청과 감청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슬람 코뮤니티에 프락치를 심고 내부밀고를 조장하며 테러리스트라는 의혹만으로 영장없는 체포와 무기한 구금을 허용하는 부시의 악랄한 정책은 진보세력의 희망이었던 오바마에 의해 정식 법률로 격상되었다. 이제 경찰이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자세에서 선제적으로 내부의 적을 찾아내고 섬멸하는 적극적 공안세력이 된 것이다. 그들은 이제 동내 깡패들의 무리에서 이제 국가와 자본의 비호를 받는 대규모 갱단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이용됨으로써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준군사화된 경찰력은 이제 걸핏하면 SWAT팀을 출동시키고—이들의 동원은 지난 20년 전의 15배다— 사소한 시위에도 중무장하고 고무총탄을 쏘아대고 가스탄, 연막탄을 터뜨리며 ‘테러리즘“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 한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뉴욕경찰과 오클랜드 경찰 등이 드러낸 폭력성이 증언하듯 그들은 수틀리면 이제까지 너무도 당연시 여겨진 기본적 자유마저 쉽사리 짓밟을 수 있다. 미국은 이제 또 하나의 ‘공안국가’로 등장한 듯이 보인다. 땅덩어리가 넓지 않고 분권적 체제가 없었으면 아마 전체주의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비무장 평화시위인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진압에 동원된 경찰

비무장 평화시위인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진압에 동원된 경찰

권력의 사유화 – ‘감옥-산업 복합체’

경찰이 사회의 안녕을 위협한다고 여겨지는 요인들을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하여 죄인이 넘쳐나면 그들을 수용할 감옥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 감옥의 건설과 유지는 암묵적으로 어려운 경제사정에서 고용을 늘이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경제대책으로 받아들여졌고 나아가 공적 영역에 속한 피고인을 수용하고 범죄자를 가두는 것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감옥-산업 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군산복합체’가 국제적 적대에 기반한 군비경쟁과 전쟁을 먹고산다면 ‘감산복합체’는 내부의 타자들을 만들고 처벌하며 수형인을 상품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연방과 주의 의회, 주지사 등을 상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감옥에 갇혀 있도록 적극적으로 로비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 한 대표적 감옥회사는 한 주와 계약을 맺으면서 항상 감옥의 90%를 채워줄 것을 요구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범죄가 꾸준히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수와 감옥이 계속 늘어나는 데는 이런 자본과 정치의 협잡과 이런 더러운 협잡에 눈감은 언론이 있는 것이다.

1980년 이래 인구증가와 감옥을 증가를 대비시킨 그래프

1980년 이래 인구증가와 감옥을 증가를 대비시킨 그래프

공권력의 사유화는 감옥산업에 그치지 않는다. 광범위한 감시체제를 운영하는 데는 많은 사기업들이 공권력에 의해 수집된 광범위한 정보를 받아 분석하거나 감시기술을 제공하고 개선하는 일을 하며 참여하고 있으며, 뉴욕경찰의 일부는 노골적으로 월스트리트를 위해 고액 알바를 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뉴욕경찰의 자격과 권한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사기업에서 돈을 받으며 그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한진이 부산 경찰을 알바로 고용해 퇴근 후에 회사경비를 맡기고 노조와 시위대를 체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공권력의 사유화는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용역 고용보다 더 노골적인 공권력의 사유화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수행하며 대규모의 사설군인을 써온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맺으며

공권력이 자본에 의존하고 자본이 공권력을 사유화하는 패턴은 국가권력-자본의 공모를 증언하는 동시에 이 공모의 밖에 놓인 사람들의 생존권과 기본권 박탈을 의미한다. 자본에 봉사하는 공권력이 ‘합법’과 ‘탈법’의 테두리를 정하고 처벌하는 권력구조의 최첨병이 바로 경찰조직이다. 점거운동 참여자들의 “우리를 체포하지 말고 월스트리트의 사기꾼 CEO들에게 수갑 채우라”는 정당한 요구가 허망하게 들리는 것은 공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와 실제 작동방식 사이의 거리에 기인한 것이리라.

푸코가 말한 ‘경찰-감옥 시스템’은 법치국가 미국에서 ‘법’에 의해 확고히 뒷받침되어 사회를 통제하고 사람들을 훈육하는 근대적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고 점점 더 정교한 형태로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 근대국가 권력은 일정 인구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차별하고 처벌하고 아감벤의 주장처럼 때론 그들을 법 밖으로 밀어내어 법이 정하는 보호로부터 차단하는데, 법의 안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차별과 억압은 편재한다. 경찰과 군대의 혼재는 안과 밖의 경계를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근대권력의 속성에 다름 아니다. 경찰은 거대한 통제시스템 속의 공안세력으로 사람들을 더욱 옥죄게 될 것이며 현재의 불안정하고 약탈적인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기존질서에 대한 정당한 도전은 “불법”과 “일탈”이라는 낙인 아래 가혹하게 짓밟힐 것이다. 백인들을 향했던 렌 챈들러의 노래를 이제 탐욕으로 새하얀 ‘1%’를 향해 불러도 좋을 듯하다.

나의 눈은 모든 도시에서, 마을에서, 주에서 불의를 목격했노라
당신들의 감옥은 검은 이들로 채워지고 당신들의 법정은 증오로 새하얗다
우리가 자유를 갈구할 때마다 누군가 속삭인다 “아직은 아냐!”라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이다

앞으로 나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들을 밟고 나아가겠다.
…..
그렇게 우리의 운동은 전진한다.

응답 5개

  1. 환경보호말하길

    경찰국가 미국에 대한 본질을 잘 알수 있는 글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삼성에 봉사하는 경찰들을 볼때 참 암담합니다.

    방금 한겨레 인터넷 방송 정 피디가 보고 있다를 봤는데, 삼성중공업 허베이스피릿호 태안반도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5주년을 맞아 피해 어민들의 삼성본사 시위를 막아선 경찰들이 삼성의 앞잡이로서 어민들의 시위를 막아서는 것을 볼때

    우리나라 경찰도 자본의 앞잡이로 나서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 Beilang말하길

      물론입니다. 일원화된 국립경찰 체계를 가진 조직이 과거엔 권력, 그리고 이제는 ‘권력-자본 연합체’에 봉사하는 집단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총기규제가 유지되고 있어 미국 경찰이 종종 행하는 험악한 짓이 일상에서는 별로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요.

      역사적으로 해방직후 미군정이 경찰조직을 재편하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그대로 뒷받침해줄 중앙집권화된 내부 폭력기관을 만들었고 이는 이후 독재정권의 의도와도 일치하며 경찰은 오랜 시간 ‘권력의 몽둥이’, ‘짭새’의 길을 걸어온 것이지요.

  2. 미셸 푸코말하길

    “이 충격을 자신들의 패권주의와 내부통제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간파한 부시 행정부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오도된 정책을 채택하여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광범위한 감시체제를 만들고 대규모 불법구금과 고문을 통해 내부조차 또 하나의 적대적 외부로 만들어버렸다.” ==> 911조차 부시 행정부나 그 상위의 역사적 전통이 유구한 조직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파다한데 글쓴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단순 음모론으로 치부하시는지…

    • Beilang말하길

      음모론들이 제기하는 몇몇 설득력 있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신봉하기에는 상당한 난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테러리즘의 징후를 포착했음에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를 무능력이나 판단착오가 아닌지를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길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보다 흥미로운 것은 음모론이 하나의 담론으로 국가와 공권력에 대한 극단적 불신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달 착륙 음모론’의 주신봉자들은 흑인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에는 눈길을 주지 않은 정부가 엄청난 재원을 우주경쟁에 퍼붓는 것에 대한 반감이 그 밑에 깔려 있었지요. “인류의 쾌거”가 아니라 백인들에 의한, 백인들을 위한,그들만의 잔치로 본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이젠 ‘가진 자’와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권력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신과 혐오가 음모론이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음모론의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3. 말하길

    후덜덜….미국의 실체가 이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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