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활보연대 보건복지부를 점령하다.

- 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

‘제도개선위원회’의 건의

저는 이 싸움이 진행되는 도중에 활동보조인이 되었습니다.

‘활동보조인연대(준)’(앞으로 줄여 활보연대 라고 하겠습니다.) 회원들은 예전 ‘활동보조인권리찾기모임’ 당시부터, 보건복지부에 활동보조인들의 직무상 어려움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고 합니다. 보건복지부 장애활동지원제도 담당 팀장은 ‘제도개선위원회’라는 것을 만들 것이니, 그 자리에서 활동보조인들의 고충에 대해 토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합니다. 그러니까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제도개선위원회 라는 것은 활보연대의 건의로 새로 생긴 위원회입니다. 그런데, 그 제도개선위원회 구성원에 활보연대는 빠졌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제도개선위원회 구성원들이 너무 많다며 활보연대를 빠트렸습니다. 그 구성을 살펴보면, 장애인단체와 정부기관 뿐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정부기관, 중개센터, 장애인활동보조인 으로 되어 있는데, 정부기관과 장애인단체들로만 구성한 것입니다.

모든 당사자 단체가 동일한 입장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 단체들도 그러한 모양입니다. 지난 3월 29일 제도개선위원회의 구성을 위한 회의에서는 다른 장애인 단체와 활보연대의 위원회 참가 이야기가 나오자, 몇 몇 단체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무산되었었습니다.

일주일간의 릴레이 일인시위 그리고 29일의 아침

활보연대는 9월 29일 제도개선위원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접하고 일주일간 복지부 앞에서 출근시간에 맞춰 릴레이 일인시위를 하였습니다. 일인시위의 내용은 ‘보건복지부는 제도개선위원회에 활동보조인의 참여를 보장하라’입니다.

릴레이 1인시위에 이용된 판넬

릴레이 1인시위에 이용된 판넬

9월 29일 오전까지 릴레이 일인시위를 하고 오전9시에 보건복지부 앞에서 활보연대 7인이 모였습니다. 회의장소는 8층이라고 합니다. 모여서 작전을 짭니다. 가능한 많은 경우들을 생각해 봅니다.

목표는 8층 회의장 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가할 경우 8층을 점거하기로 합니다. 1층에서 제지당하면 회의가 끝나고 위원들이 나올 때까지 1층에서 시위를 하고 있기로 합니다. 무리로 보이지 않기 위해, 약간은 흩어져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경호요원이 낯이 익숙한지 연대 회원 1인을 지목하여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아가라 합니다. 약간의 주저는 있었지만, 출입증을 발급받고 8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사히 들어갑니다.

9월 28일의 회의 그 정체는?

그런데 8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회의시간이 15시로 되어있는 게시물이 있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운영관련 회의’라고 합니다. 활보연대 회원들은 약간의 어리둥절함이 있었지만, 일단 29일 10시라는 정보가 확실하다고 판단하였기에, 시간이 될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5시가 회의임을 알리는 정체불명의 게시물

15시가 회의임을 알리는 정체불명의 게시물

기다리고 있자니, 한자협 활동보조위원회 박현 위원장과 전장연 정책교육실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립니다. 연대 회원들은 박현 위원장에게 회의시간과 장소가 맞는지 물어봅니다. 그는 그 게시물을 보더니, 장애인활동지원제도 관련된 복지부 사무관에게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자신은 아는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활동보조인 제도와 관련하여 제도개선위원회 위원인 자신이 모르는 회의가 있을 수 있냐고 항의하기 시작합니다. 사무관은 제도개선위원회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달랬고, 실무를 처리하는 듯한 공무원은 공문도 보냈고 여론조사의 일환이라고 말합니다. 박현 위원장은 자신은 공문을 받은 바가 없는데, 어디로 보냈냐고 물으니 해당 공무원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쪽으로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이하 한자협)에 속하거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이하 한자연)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박현 위원장이 속한 곳은 ‘한자협’입니다. 위원장이 ‘한자협’으로는 왜 공문을 보내지 않았느냐 물으니, 공문을 보냈다는 공무원이 얼척 없는 소리를 합니다. “그 두 단체가 입장이 다른가요?”

박현 위원장을 달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

박현 위원장을 달래는 보건복지부 공무원

9월 28일 있었던 회의의 내용은 보건복지부에서 지급하는 바우처에서 센터로 지급되는 25%의 수수료를 어떻게 운용하는 가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정부측에서는 25% 수수료를 중개센터의 사무실 임대료로 쓰지 말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활동보조인들의 수가가 낮은 것에 대한 문제제기의 대책으로 중개센터로 돌아가는 비용을 줄이고, 활동보조인들의 수가를 높이려는 고민에서 나온 정부식 대책입니다. 그런데, 이 회의가 어찌 장애인활동지원 제도개선과 무관한 회의라고 할까요?

여론조사를 위해 실시한 임시회의가 비교적 정부와 마찰이 적은 단체에만 공문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찝찝하지만, 담당한다는 공무원이 장애인단체들에 대해서 이토록 무지하다는 사실에 통탄할 노릇이지만, 센터운영에 관한 회의가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과연 무관한 이야기인지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거나 박현 위원장은 난장을 적당히 부렸다 파악했는지, 회의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모이면 모두가 들어갈 수 없다.

이제 오늘의 본게임이 시작됩니다. 활보연대 회원들은 박현 위원장과 복지부 공무원들의 분란을 유관한 듯 무관한 듯 구경하고 있다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자격을 지닌 박현 위원장이 들어갈 때, 활보연대 회원들도 들어가려고 합니다. 사무관은 박현 위원장을 빨리 회의하러 들어가자 종요하다가, 활보연대 회원들도 들어가려 하니 급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사무관은 운영지원과 공무원들을 불러, 활보연대 회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저지합니다. 활보연대 회원들은 제도개선위원회 위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이유입니다. 활보연대 회원들은 단순 참관만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나, 계속해서 대치상황입니다. 이 대치상황 속에서 박현 위원장도 제도개선위원회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운영지원과 공무원들은 시설보호요청을 받았다는 이유로 활보연대 회원들을 계속해서 막아섭니다. 그들도 난감할 노릇입니다. 박현 위원장을 들여보내려 하니, 활보연대 회원들도 같이 들어갈 것 같고, 활보연대 회원들을 막자니 박현 위원장을 들여보낼 수가 없습니다.

활보연대 회원들이 주장하는 것은 ‘참관’입니다. 자신의 근로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결정될 수도 있는 회의입니다. 그런 회의 내용에 대해, 그저 알고자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한 연대 회원은 이것이 민주주의 아니냐고 항변합니다. 말단 공무원들은 윗분들 눈치 보는지 자신과 대화로 풀자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들과의 대화가 유효한 대화인지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이 ‘난리’를 수습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대치중인 회의장 입구

대치중인 회의장 입구

유머적 만담

대치가 계속되니, 운영지원과 공무원들과 회원들은 몸이 붙어 있습니다. 신체 접촉이 일어납니다. 한 회원은 운영지원과 공무원에게 일갈합니다. “당신 내 취향 아니거든요?” 순간 연대 회원들은 웃음이 터집니다. 크고 작게 상처들도 있었습니다. 한 회원은 자신의 상처를 보며 “보건과 복지가 무시당하고 있다.”며 농을 건냅니다. 이를 받아 한 회원이 푸념을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만담조의 대화가 이뤄집니다.

물리적 대치 중에 생긴 회원들의 상처

물리적 대치 중에 생긴 회원들의 상처

물리적 대치 중에 생긴 회원들의 상처 2

물리적 대치 중에 생긴 회원들의 상처 2

회의의 무산

종로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왔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시설물을 얼마만큼 부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건진 모르겠습니다. 운영지원과 공무원들도 경찰들도 시설보호를 명목으로 위압적으로 대기합니다.

회원들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릅니다. 보건복지부에게 혹은 제도개선위원회 위원들에게 하고싶은 말들을 소리높여 합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도개선위원회 회의는 무산되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연대회원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연대회원 2인과 이야기를 합니다. 나머지 회원들은 보건복지부 앞에서 음료를 마시고 헤어지기로 합니다. 활동보조를 하거나, 다른 해야 할 일들이 있는 생활인들입니다.

응답 1개

  1. 지나가다말하길

    과거 노사정 회의때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배제된 게 생각나네요. 자신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자리에 자기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참을 수 없는 일에 참지 못하는 활보연대 화이링! “당신 내 취향 아니거든!” 푸핫~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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