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편집진들의 소개

- 편집자

고손

안녕하세요. 고손이라고 합니다.

저는 높은 빙점과 낮은 비등점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이 마주치는 모든 일에 쉽게 끓고 얼기를 반복하다 보면 금세 너덜너덜해지고 맙니다. 덕분에 습관적으로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성격을 이기는 습관의 힘이란 게 어떤 것인가를 요 몇 년간 자기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이는 중이네요.

그러나 자기보존을 위한 평정심 유지가 목적이라 해도 행동하지 않고, 반응하지 않고, 불필요할 정도로 쿨한 인간으로 사는 건 솔직히 저 스스로부터 답답한 상태입니다. 결국, 제 태도는 자기검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요.

그리하여 너덜너덜해지더라도 용기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겠다는 뻔뻔한 목적을 갖고 편집실에 들어와 뻔뻔하게 한 자리 지키게 되었습니다. 진부한 끝맺음말이지만 진심으로,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주노정

“도를 아십니까?”

(위클리)수유너머와 함께한 지난 몇 개월 동안 몸과 마음이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일단 머리가 많이 길었습니다. 누가 사자머리라고 하더군요. 사실 예전 같았으면 금방 잘랐을 머리입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엄청 봤기 때문이죠. 또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요즘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며, 뭐라고 말하던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생각만 해오던 ‘스스로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말을 체득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저는 충분히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홀로 자유롭다고 해서 타자와의 관계에 무신경하거나 무감각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제가 공부하는 <장자> 식으로 말하자면 저를 둘러 싼 모든 것들에 ‘엄청’ 신경 씀과 동시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척’하는 사람이 싫습니다. 삶에 대한 ‘자존감’이 넘치는 척 하는 사람 말입니다. 요즘말로 ‘허세’라고 하고, 그 중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들을 일러 ‘꼰대’라고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을 앞에 두고 별 의미도, 배려도 없는 말만 늘어놓습니다. 자기 말만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인지 그 말이 꽤나 폭력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이 살기 어려운 지경으로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는지 그 자신은 모릅니다. 말해줘도 모릅니다. 말이 좀 추상적인가요?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구원을 받든, 도를 구하든 스스로의 삶에서 직접 찾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힐링’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 득도한 ‘도사님’들이 나타 쉽게 한마디씩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저는 짜증을 냅니다. “제발,‘척’ 좀 하지 마세요!” 저는 구원받은(척하는) 그들도 싫습니다. 그 사람이나 저나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일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싫어한다고 해서 ‘적’으로까지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주변에 스스로의 ‘적’과 닮아가는 사람들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적’이 ‘자기’인지 ‘자기’가 ‘적’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나 할까요? 저 스스로도 끊임없이 돌아볼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쉬운 여자입니다. 덜컥덜컥 잘도 시작하지요. 겁도 없고 대책도 없어요. 스물여섯에 아무 연고도 없이 시작한 서울 생활이 그랬고 한 생명을 책임져야하는 고양이와의 동거도 그랬습니다. 사랑을 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시작은 쉽지만 쿨하지는 못해요. 새로운 것을 시작하면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즐겁고 상쾌하지만은 않더라구요. 생각보다 못난 내 모습에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가만히 응시하다보면 그 다음 길이 보였던 것 같아요. 이십대 이후로 좌충우돌 지나온 길은 그렇게 이어져왔네요.

지금은 그 길이 수유너머와 만나고 있습니다. 위클리도 그 길 위에서 만난 갈래길이고요.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다 아는 척, 점잖은 척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네요. 쉬운 여자도 그냥 되는 게 아닌가봐요. 밑장부터 까고, 우선은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누고 싶은 질문들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울퉁불퉁해도, 그렇게요, 우선은 시작부터.

일환

제가 위클리 편집진에 들어온 계기는 여러 가지 물고 물리는 복잡한 관계 때문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안 되니까 나름 의미를 부여하자면, 저는 위클리에서 ‘소통’이라는 것에 무게를 두고 활동하고자 합니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솔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솔함이란 무엇일까요? 전에 연극을 통해 발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그때 연극 연습도중에 제가 가장 많이 지적 받은 것은 대사가 관객의 귀로 꽂히는 게 아니라 공중에 공허하게 흩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성이 작아서, 발음이 부정확한 문제가 아니라 제가 극의 상황에 완전히 동의하지 못하고, 단지 대사를 외워서 내뱉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긴가민가했지만 속는 셈치고, 극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대사 하나 하나에 대해 스스로 동의하는 과정을 거쳐봤습니다. 그리곤 다시 리허설을 가졌는데 신기하게도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전처럼 제가 연기할 때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짓지 않고, 제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오호라, 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발성의 크기나 발음의 정확성 여부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극적 상황에 대해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동의했는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소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소통이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들에 대해, 혹은 우리가 함께 놓여있는 상황에 대해 마음을 열고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했을 때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위클리 편집진으로서 독자와 ‘소통’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획기적인 아이템을 발굴하려고 머리를 짜내거나 다른 매체에서 다루지 않은 핫(?)한 아이템을 찾는 데 골몰하기보다 내가 진정으로 고민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안을 기획해야 그 글들이 독자의 귀에 꽂힐 수 있습니다. 독자를 주목하게 하는 힘은 진솔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태도로 위클리에서 활동해보고 싶습니다.

백납

작년부터 했습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편집진이라고 합니다. 그냥 새롭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하지는 않았다고 하는게 더 좋겠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자기소개를 하겠답니다. 뭔가 순서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소개를 쓰고 있습니다. 일주일의 절반정도의 저녁에는 위클리를 업데이트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한달에 한번쯤은 말을 지어내는 수고를 합니다. 수유너머R에서 몇몇 강독과 몇몇 세미나에 참석합니다. 조만간에 실직할 예정입니다. 곧 주거지를 이동할 예정입니다. 이정도가 요즈음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응답 2개

  1. 니짱말하길

    작년부터했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님이짱.

  2. […] | 동시대반시대 | 편집진들의 소개_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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