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재난 앞의 인간군상을 그린 <컨테이전>은 우파적인 영화?

- 황진미

초호화 캐스팅으로 재난 앞의 인간 군상을 표현한 영화 <컨테이전>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저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다. 감염학적으로 봤을 땐 말이다. 영화 <컨테이전>은 감염학의 끔찍한 진실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영화이다. 흔히 감염이라 하면,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항생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했지만, 항생제와 백신이 개발된 이후부터는 인류가 미생물을 정복해온 역사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가 항생제와 백신으로 퇴치한 질병은 천연두 하나 뿐 이다. 감염은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으며, 사실은 점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균은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얻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나 항바이러스제의 개발은 미미한 수준이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등으로 생태계가 교란되는 가운데, 대량사육과 항생제 남용 등으로 변종 미생물의 출현은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게다가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환경과 전 지구적인 교통량의 증가로 감염병은 일단 발생하면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누군가 특정한 목적으로 생물학적 테러를 가할 가능성까지 있으니, 신종전염병의 창궐은 매우 현실적인 재난의 시나리오가 되었다. 에이즈, 사스, 조류독감, 인간광우병 등 근 30년 사이에 새로 출현한 감염병들이 이러한 상황을 예시한다. 요컨대 지금 상황에서 동물을 숙주로 삼던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켜 인류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면, 만약 그것의 치사율과 전염력이 매우 높다고 하면, 전 지구적인 감염의 확산을 도저히 막을 수 없으며, 도시기능마비와 인터넷과 SNS를 통한 음모론의 확산까지 더해져,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컨테이전>은 이러한 인식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영화이다. 공포를 과장하지도 않고, 감정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매우 건조하게 인류가 처한 실제상황을 면밀하게 보여주면서, 재난에 처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중플롯의 방식으로 조명한다. 그 다양한 군상들을 표현하기 위해 톱스타들이 총출동하였다. 여배우만 해도 기네스펠트로, 케이트 윈슬렛, 마리앙 꼬띠아르가 동시에 출연하고, 남자배우로 맷데이먼과 주드 로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오션스 일레븐>등을 찍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기에 가능한 초호화 캐스팅이다.

1. 사람에서 사람으로 급속히 번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영화가 시작되면, 공항임을 알리는 소음과 기네스펠트로가 가볍게 기침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Day 2′ 라는 자막이 뜬다. 시작하자마자 뭐가 둘째 날인가 싶은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기네스펠트로의 짧은 전화통화를 들려주고, 공항직원과의 스쳐지나가는 일상적인 접촉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 손과 손, 손과 기구, 기구와 손. 그렇게 다른 이들과 접촉한 손은 수시로 자신의 얼굴을 만진다. 손에서 묻어 온 미생물은 입과 코를 통해 인체로 들어간다. 영화는 짧은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홍콩, 런던, 미니에폴리스, 도쿄 등이 얼마나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며, 그곳의 사람들이 얼마나 상시적으로 서로 접촉하며 살아가는지를 훑으면서 최초 감염자들의 발병모습을 보여준다.
기네스 펠트로는 홍콩에 출장을 가서 연회와 카지노장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시카고에 잠시 경유하여 옛 애인을 만나고, 미니에폴리스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틀 후 고열과 두통, 호흡곤란과 연하곤란, 의식불명과 경련 발작의 증세를 보이고 사망한다. 부검을 해보니,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뇌염이다. 다음날 어린 아들도 급사한다.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질병관리본부(CDC)의 치버 박사는 케이트 윈슬렛을 미니에폴리스로 파견하여 현지조사와 감염자 격리 임무를 맡기고,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다.
케이트 윈슬렛은 기네스 펠트로와 접촉한 사람을 찾아내 격리시키지만, 전염성이 매우 높은 탓에 이미 많은 감염자들이 발생하였다. 미네소타 주 보건부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체육관에 격리 병동을 설치하지만, 곳곳의 반대에 부딪혀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치버 박사를 찾아온 국토안전부 관료와 CIA와 해군소장은 홍콩에서 동일한 환자가 발생했음을 알리면서, 생물학적 테러의 가능성은 없는지 묻는다.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 연구에 매달리지만, 백신 개발의 전단계인 바이러스 배양에 계속 실패한다. 질병관리본부는 관리위험을 들어 민간연구소의 바이러스 연구를 모두 폐기하라고 지시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서스만 박사가 바이러스 배양에 성공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원은 백신을 빨리 공급하기 위해 원숭이가 아닌 자기 몸에 주사하여 임상시험을 하는 위험을 감수한다.

2.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전파되는 음모론과 도시기능 마비

한편 미국에 첫 환자가 발생하기도 전에, 일본의 버스에서 사망한 환자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집단발병의 신호탄임을 예측한 주드 로는 블로그에 이 내용을 기재해 유명논객이 된다. 주드 로는 치버 박사와 서스만 박사의 주변을 캐며 바이러스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인터넷을 통해 퍼뜨린다. 그는 개나리가 효과가 있지만 질병관리본부와 세계보건기구가 이를 알리지 않으며, 이는 제약자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뻔한 음모론이지만, 이런 음모론이 널리 유포되는 이유는 정부가 재난의 규모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 데에 있다. 정부는 전국적인 사망자와 감염자 숫자조차 알리지 않고 파악 중이라며 대충 얼버무리고, 손 씻기와 사람들 간의 접촉을 피하라는 지침만 강조한다. 설상가상으로 치버 박사는 시카고에 사는 부인에게 전화로 시카고를 몰래 빠져나오라고 미리 알려주었는데, 부인은 다시 친구에게 말하고, 친구는 다시 다른 친구에게 몰래 말해 소문이 나고, 소문은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주드 로는 방송에서 치버 박사가 부인에게만 먼저 대피하라고 알렸다는 내용이 인터넷에 있다고 폭로하여, 치버 박사와 질병관리본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주드 로는 자신이 감염되었지만 개나리로 치료되었다는 거짓말로 450만 달러를 벌어들여 사기혐의로 기소되지만, 보석금을 내고 유유히 빠져나온다.
미니에폴리스에서 조사 작업과 환자 격리를 위해 일하던 케이트 윈슬렛도 감염된다. 치버박사는 케이트 윈슬렛을 빼 내오려 하지만, 특별수송기는 하원의원의 몫이다. 케이트 윈슬렛은 자신이 설치한 체육관 격리병동에서 죽는다. 미니에 폴리스는 도시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보급물품마저 끊겨 약탈과 방화가 횡횡한다. 도시는 군에 의해 봉쇄되어 빠져나갈 수도 없다.

3. 누가 먼저 백신을 맞을 것인가?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홍콩으로 급파된 마리앙 꼬띠아르는 카지노 등지에서 최초의 접촉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추적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홍콩 외곽의 농촌지역에까지 감염이 확대되어간다. 미국에서 바이러스 배양이 성공하여, 백신 생산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자 홍콩의 관리는 그녀를 인질로 잡아 농촌지역에 억류시킨다. 백신이 생산되더라도, 생산량이 세계적인 수요를 다 충당할 수 없어서 아시아 변방은 오랫동안 기다려야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를 인질 삼아 더 빨리 백신을 공급받으려는 것이다. 그녀는 인질로 잡혀갔지만, 재난의 공포에 질린 농촌 사람들의 눈망울을 보고 기꺼이 응한다. 마침내 스위스에서 백신을 가지고 그녀를 구출하러 오지만, 백신은 가짜였다. 구출된 그녀는 가짜 백신이었다는 말을 듣고, 시골마을로 다시 돌아간다.
미국에서는 백신을 일반시민들 중 누구에게 먼저 맞힐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 생일에 따른 추첨이 진행되고, 치버 박사는 자신과 부인용으로 우선적으로 확보된 두 개의 백신 중 자신의 것을 청소부의 아들에게 양보한다. 평소 치버 박사를 존경했던 청소부였지만, 치버 박사가 부인에게만 시카고를 빠져나가라고 알려주는 것을 보고 크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영화는 백신이 공급되면서, 사람들 간의 격리를 위해 벌어졌던 틈들이 자연스러운 접촉으로 되살아나는 모습을 비추면서, 영화의 시작과 함께 제시되었던 ‘Day 2’의 비밀을 밝힌다. ‘Day 1’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홍콩 외곽의 시골마을에서 울창한 삼림이 베어지고, 살 곳을 잃은 박쥐가 돼지농장에 날아든다. 박쥐의 똥을 돼지가 먹고, 박쥐에게서 온 바이러스가 돼지의 몸에서 변종이 일어나, 그 돼지고기를 만진 요리사의 손에 묻고, 그 손과 악수를 한 기네스 펠트로의 손으로 옮아간 것이다. 이후는 카지노와 대중교통, 공황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 영화는 앞에 언급하였던 바대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전 지구적으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꼼꼼히 짚어 보여준다. 또한 재난 앞에서 여러 사람들의 군상을 보여주면서, 윤리적인 문제들을 성찰케 한다.

4.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

영화는 고향마을에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 연구원을 인질로 잡은 중국인들과, 그들에게 가짜 백신을 주고 인질을 빼 온 서구인 중 누가 더 부도덕한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시골마을로 돌아가는 연구원을 통해 대답을 들려준다. 중국인들의 행위는 불가피했지만, 진짜 백신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자신들은 진짜 백신을 맞으면서) 중국인들에게 가짜 백신을 진짜라고 속여서 줌으로써 지금까지의 방역조치들을 풀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게하여 감염의 위험을 높이는 행위가 더 부도덕하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는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자인 치버 박사가 부인에게만 도시를 탈출하라고 말한 행위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그것은 희생양을 찾으려는 여론의 폭력성 때문이지 가족을 먼저 대피시키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으로 이해될만한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 하지만 그 인지상정을 쉽게 용납한다면 권력과 고급정보를 지닌 사람들의 가족들만 우선적으로 구제되는 불평등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영화는 자기 몸에 백신을 시험한 연구원이 치버 박사에게 “당신이 청문회에 불려가는 동안 나는 찬사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까지 넣어 치버 박사의 행위를 비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또한 마지막에 치버 박사가 청소부의 아이에게 자기 백신을 양보하는 모습과 부인에게 백신을 주며 “내 구명정에 탄 사람들을 돌보는 것일 뿐”이라 말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특권의식에 찌든 사람이 아니라 단지 정이 많고, 자기 주변사람을 잘 챙기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을 확인시킨다.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주변사람을 먼저 챙기는 것은 휴머니즘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판단을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치버 박사를 비난하며 한껏 정의의 사도인양 떠들어대던 주드 로의 거만한 태도와 그의 허구성을 통해, 개인 미디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의 행위는 자신의 몸에 백신을 시험하는 연구원이나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다 순직하는 케이트 윈슬렛의 숭고함에 대비되어, 더욱 얄팍하게 그려진다. 심지어 주드 로가 자신을 찾아온 임신한 여자친구를 외면하는 장면과 케이트 윈슬렛이 죽어가면서도 옆 병상의 환자에게 자신의 방한복을 건네려는 장면을 앞뒤로 붙여놓아 극적인 대비를 꾀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전문가 집단과 관료계급의 정직성과 성실함에 큰 신뢰와 찬사를 보내는 반면, 시민사회와 일반시민, 인터넷 여론 등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재난에 앞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체육관에 격리병동을 만들려는 케이트 윈슬렛에게 예산운운하며 딴죽을 거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재난이 현실화되자 간호사들은 파업을 하고, 수녀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격리병동의 간호를 맡는 모습은 노동계와 시민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민들은 때로 폭도로 변하거나 무책임한 인터넷 여론에 호도되어 피켓시위를 벌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대단히 우파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괴물>이나 <연가시> 등 한국 재난영화에서 국가는 무력하거나 폭력적으로 그려지고, 재난을 해결하려는 일반시민들의 각성과 연대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그래서 일까. <컨테이젼>은 초호화 캐스팅과 세련된 만듦새에 비해 한국에서 완전히 홀대받았다. 한국관객들에게 정치적인 정서가 맞지 않았던 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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