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동시대반시대

발효음악가의 이유있는 저질, 야마가타트윅스터(2)

- 숨(수유너머R)


상수동 음악가의 저항 : 구루부구루마

한받은 공연이 없을 때 “구루부구루마”를 끌고 다닌다. 노란색 몸체에 모서리마다 파란 형광띠를 두른 작은 구루마에는 책과 음반이 담겨있다. 극동방송국 앞에서 시작해서 상수동 삼거리, 홍대 정문 앞을 찍고 걷고 싶은 거리에 들렀다가 KT&G상상마당 앞에서 마무리한다. 한 곳에 2-30분 머무른 후 다음 장소로 구루마를 끌고 이동한다. 음반의 가격이 정해져있지만 실제 받는 돈은 그때마다 다르다. 손님이 잘못 들어서 틀린 금액을 내도 그대로 받고, 할인도 많이 해준다. “쌀 같은 걸로 물물교환하기도 해요. 쌀하고 교환하면 그 쌀이 나한테는 몸의 양식이 되고 내 음반은 그 사람한테 가서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게 재밌어요. 촌에서 농사 지은 쌀을 가져오시거나 집에 쌀이 많다고 가지고 오시거나 하는 분들이 있어요. 많지는 않지만요.”

구루부구루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우리는 거리로 나오려는 시도를 공연부터 생각하잖아요. 길거리 공연. 거기서 조금 더 생각해본 거죠. 공연만 할 게 아니라 나가서 내가 만든 음반을 알리고 판매를 하자. 한 곳에 정착하는 게 아니라 계속 이동하는 것도 괜찮겠다, 운동도 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구루마를 떠올리게 된 거죠. 주변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들도 많이 보이고 구루마도 눈에 띄니까, 거기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두리반에 합류하면서 흐지부지됐는데 올해 1월에 시작하게 됐어요. 첫째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이게 나름 운동이 되거든요, 팔이랑 다리랑. 두 번째는 내가 만들어낸 음반과 친구의 음반들, 책들을 거리로 가지고 나와서 알리고 판매를 하기 위해서죠.”

하루 0명에서 10여명까지의 손님이 들른다. 그의 팬이나 아는 사람들이 부러 찾아오거나 우연히 발견해서 먼저 아는 척을 해주면 힘이 난다. “하루 종일 손님이 없는 날이면 감정이 하락곡선을 그려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음반을 잘 안 사고, 음악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체험하니까요. 음악을 들으시는 분들은 아주 극소수라는 것. 구루부구루마를 하면서 깨닫고 있는 거죠. 어쩌면 이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인 거고, 공연에서는 차려져있으니까 거기에 맞게 또 자유롭게 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이것은 매일의 싸움이다. 공연이라는 특정한 스케쥴이 아닌 일상에서 음악가로 살아가기 위한 싸움. “저항. 저는 계속 저항을 하고 있어요. 책임감 비슷한 생각으로 나와요. 음반을 많이 안 팔아도, 이 거리를 음악으로 채우고 싶어요. 음악인으로 살게 하는 형식이기도 하죠. 집에서 음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해요. 구루마를 꾸미기도 하고. 친구들의 음반이나 책을 위탁판매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다 포함되는 거죠. 임대료를 내고 그런 게 없으니까, 수수료도 최소한으로 받고 수익이 작가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처음에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음식하는 구루마 끌겠다, 이런 얘기도 나왔는데 제가 직접 하는 걸 보고는….(웃음)따로 훈련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단련됐다고 해야 하나. 거리위에서 계속 공연을 하니까 알게 모르게 단련되고 수련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힘들어도 이 동네를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구루마를 계속 끌고 나오는 거죠. 나와 보면 정말 속도가 장난 아니에요, 자본에 의해 변화되는 속도가. 매일매일 허물어지고 있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다 요식업 이런 거라서 참 안타깝죠.” 말하는 그의 눈빛이 머문 곳은 구루마와 마주보고 있는 상수동 삼거리의 한 공사현장이다. 도로면으로는 레코드 가게가, 안쪽으로는 살림집이 있었던 자리라는데 건물은 없고 땅고르기가 한창이다.

발효하는 음악, 발효하는 음악가

그는 지난 여름 목포, 순천, 하동, 부산에서 구루마를 끌고 다니며 춤추고 노래했다. 이름하야 경전선구루부구루마. 도착하는 도시마다 폐품을 활용해서 재활용 구루마를 즉석 제작했다.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는데 순천이 재밌었던 거 같아요. 순천만에 새벽 일찍 가서 어스름 안개 속 일출도 보고. 밤에는 순천의 밤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어서 나이트클럽에 갔어요. ‘스톰’이라는 아주 독특한 캐릭터의 남자댄서를 보고 많은 영감을 받았죠. 삼각팬티만 입고 나와서 무용하고. 그런 거는 처음 봐서 나름대로 충격이었습니다. 뭔가 전체 분위기하고 모든 것들이 상당히 감명 깊었습니다. (혹시 이후 공연에 차용하고 싶으신 거는 있어요?)아무래도 이후 공연에 영향이 있겠죠?(웃음) 순천에 가면 꼭 ‘스톰’을 보시기를”

그 중 하동은 과거와 오늘의 그가 만나는 곳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는 “인생의 절망 속에서 희망이 서광처럼 그를 찾아들었던 곳이 하동”이었다고 했다. 20대 후반 벤처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카드빚을 내서 도망 다니던 때가 있었다. 동유럽에서 집시로 떠돌며 한국에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카드빚을 갚기 위해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다니면서 일을 했다. “그 중에 하동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삶을 놨다고 해야 하나. 절망을 하면서 삶 자체를 풀어버린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유랑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죠. 섬진강과 재첩국…참 소중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자양분이 된 거죠. 그 때 아마츄어증폭기 노래가 만들어지고. 저 자신이 노래로 많이 위로를 받았던 시기였어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환타지를 만들어서 기타로 연주하고 노래할 때 뭔가 힘이 많이 되는 거 같아요. 아마도 한번 절망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인간이 신기한 게 자기가 거쳐 왔던 삶을 노래로 만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공감을 일으킬 수도 있고.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 같은 일도 생기구요.”

고통을 힘으로 변성시키는 것. 우리는 누구나 아프다. 그의 말처럼 음악이 인간의 영혼을 위한 양식이라고 한다면 그의 음악과 춤이 지닌 힘 또한 지나간 고통 속에서 나왔으리라. 그는 그 과정을 발효라는 말로 설명한다. “발효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이 변질되는 데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게 하잖아요. 경험이라는 것도 우리 안에 기억으로서 들어가 있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발효가 되었을 때, 그때 노래로서 나올 수 있죠. 발효음식이 인간의 장운동을 촉진하고 신체에 이로운 것처럼, 발효음악은 영혼의 장운동을 촉진하고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경험을 그대로 드러내면 날 것이라서 남이 섭취하기 힘드니까. 일정시간을 보낸 뒤에 그것이 흐물흐물해졌을 때 노래로 만들어가지고 사람들이 섭취할 수 있도록 주는 거죠.”

그의 발효음악론은 음악의 장운동론으로까지 나아간다. “네 가지 차원의 장운동. 영혼의 차원뿐만 아니라 음향적인 차원, 재화적인 차원, 사회적인 차원까지. 소리라는 거 자체가 진동이니까, 주변의 공기를 운동시키잖아요. 주변의 공기는 장(場)이라고, field. 그걸 운동시키면 장운동. 재화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음반을 내거나 음원을 냈을 때, 그것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시장이라는 장 속에서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동하고. 사회적인 측면은 자립음악가나 민중음악가들이 공연을 했을 때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운동. 두리반에서나 두물머리나 그런 거죠. 저도 많이 하다보니까 이렇게 잡히더라구요. (웃음)아직 체계적인 이론은 아니지만 그런 표현을 합니다.”

함께 자립하는 음악가

한받은 자신의 직업을 자립음악가라고 소개한다. “쉽게 기존의 닦여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야생의 길을 찾는 거에요. 음악가로 생존해나가면서 음악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모색하고 그 길을 개척하는, 그런 음악가를 자립음악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구루마를 끄는 것도, 조합을 만든 것도 그런 활동의 하나구요.”

한받이 참여하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120명 규모의 협동조합이다. 2011년 여름쯤에 창립을 했는데 음악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음악연주나 음향녹음기술 관련 강좌를 열기도 하고, 한예종 학생회와 공동으로 대공분실이라는 공연장을 구축해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만들고 기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도 한다. 큰 자본이 없는 음악가들이 음반을 만드는 데 대출을 해주기도 한다. 음향장비대여와 공연을 통한 수입, 매월 조합원 회비를 적립해서 만든 자금은 음반 제작과 공연에 재투자 한다. “결국 자립음악이라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연대를 해서 힘을 합쳐야 대기업의 자본이나 매스미디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 같아요.”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만의 자립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세 가지 중요한 가치가 그들의 자립을 떠받치는 근거가 된다. ‘지역․생활․민중’. ‘지역’의 가치는 음악가가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지역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악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지역적으로 분기가 되는 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석관동에는 대공분실, 문래동에는 로라이즈, 이태원에는 꽃당이라는 클럽이 있다. 홍대 앞에는 직접 운영하지는 않지만 가깝게 지내는 공중캠프 등 몇 개의 클럽이 있고 두리반식당에서도 일요일에는 가끔 공연을 한다. 이들 클럽은 지역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

‘생활’은 음악가 자신의 생활에서 비롯된 경험을 꾸미지 않고 가감없이 노래하고 음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민중’이라는 말에는 자립음악가 자신들이 그 속에 속하기도 하고,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 하는 음악을 만들자는 지향을 담았다.

“저는 음악을 세 가지로 분류해요, 이른바 3실음악. 실용음악. 실천음악. 실험음악. 실용음악은 일반적인 대중음악.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실용적인 음악. 실험음악은 노이즈나, 음악이 어디까지 음악이 될 수 있나 실험하는 음악. 실천음악은 두리반이나 투쟁의 사회적인 것들에 개입하면서 인간이 자립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드는 음악. 여기서 자립하는 것은 자본에 기대어 있는 것에서부터 벗어나 일어설 수 있는 거죠. 자립음악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실천음악의 방향이 아닌가 해요.”

민중엔터테이너, 야마가타트윅스터

한받은 한 여인의 남편,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0월 말이면 둘째 아이도 태어난다. “좀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첫째 선율이하고 서로서로 좋은 동생 오빠가 될 수 있을 거 같고…걔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을 거 같아요. 저도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구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을까.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요. 선율이가 야마가타트윅스터 노래를 좋아해요. 음악 나오면 춤도 같이 추고. 나중에 아빠를 춤 잘 추는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가족을 꾸리는 것이 자립음악가들 중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공연할 때 괜찮으면 애기도 같이 오고 아내도 같이 오고. 그런 모습으로 후배 음악가들한테 이렇게 살 수도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두려운 길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많이 두려웠죠. 몇 년 전 어떤 인터뷰에서 풍랑 속에 있는 배 같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종교적인 믿음, 낙관적인 성격과 가난을 껴안고 사는 태도가 있어 아직까지 잘 버텨온 거 같다고 한다. “특히 두리반에서의 활동들이 많은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저한테도 큰 기폭제가 됐으니까요. 아마츄어증폭기로서의 내향적인 음악에서 야마가타트윅스터의 외향적인, 사회에 발언을 하는, 관객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는, 그런 활동들에 기폭제가 된 것 같아요.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불안하지만 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민중일렉트로닉댄서 야마가타트윅스터. 그의 춤과 노래가 우리를 가장 밑바닥, 저질스러운 곳에서부터 뒤엎어주기를, 앞으로도 계속.

“저 자신도 민중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하는 것도 민중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겠죠. 계급적으로 봤을 때나. 주류의 삶은 아니니까요. 폐지를 줍지는 않지만, 구루마를 끌고 다닌다거나 그런 행위들에서 민중의 일부분이 아닌가 해요. 그 전까지의 카테고리에 담겨있는 민중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새로운 민중일수도 있겠다, 직업이 없는 대신 자립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 그런 사람. 저도 그 중 일부분으로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합니다.”

응답 5개

  1. solaris말하길

    알고 있던 거보다 더 훌륭한 분임을 알려주는 인터뷰군여.
    매력있는 음악 뒤엔 숙성된 삶이 있고, 그런 음악에서 피어난 삶이 사유와 이론, 개념을 피워내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나도 구루마 찾아 홍대 가야겠다.^^

    • 말하길

      네^^저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랬지만 글을 정리하면서도 재미지더라구요. 인터뷰이가 워낙 매력있는 분이라 작업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답니디

  2. 샛별말하길

    선율이와 함꼐 공연을 보는 것, 젠체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음악을 즐기는 모습, 구루부구루마를 끌고 다니는 자립 음악가 야마가타 정말 멋있네요… ㅎ.ㅎ 다음 달에 시간을 내서 구루부구루마를 찾고 음반을 사러 홍대에 가야겠어요 ^-^ 우왕

    • 말하길

      샛별씨 구루부구루마에서 음반사시면 싸인도 꼭 받으셔요~ 그분은 싸인도 참 다정하게 하신다능ㅋ

  3. 말하길

    어떤 체험이 일정기간 발효되고 나서야 음악이 된다. 자립은 함께 할 때 가능하다. 정말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야마가타의 내면과 사생활을 들을 수 있어서 넘 좋은 인터뷰예요.

댓글 남기기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