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최전선

떡볶이 아주머니의 집짓기

- 까칠녀되기


<집 짓기>

아파트 입구에 집을 짓는다.
오후 두 시부터. 소요되는 시간은 20분이면 족하다. 파란색 비닐 지붕의 집, 뒤에는 짐을 싣고 온 작은 트럭을 대기시켜 놓았다.
아줌마가 가지고 온 짐은 단촐하다. 떡볶이 양념과 호떡 반죽과 오뎅, 튀김 만두, 종이컵, 기름, 핫도그 등등. 끈으로 묶은 비닐을 펼치고 옆 비닐을 마저 내리면 작은 포장마차. 또 다른 아줌마의 집이자 일터가 완성된다.
완성된 일터에서 준비 작업까지는 40분 남짓 걸린다. 그동안 아줌마가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 손님도 있다. 아줌마는 다리가 아플 때에는 앉아 있기도 하신다. 아주 잠깐이다. 내가 아줌마가 앉아 있는 것을 본 것은 손에 꼽는다. 손수건으로 안경 속 땀과 이마의 땀을 타이밍에 맞춰 훔친다. 음식에 떨어지면 안 되니까.

단발 파마머리에 안경을 쓰고, 밝은 목소리에 유머도 있는 아줌마는 무개념으로 행동하는 손님들 앞에서는 짧게 말한다. 그들은 아줌마에게도 상냥함이나 재미난 유머와는 절대 만날 수 없다. 아줌마는 거기에 신경 쓰시지 않는다. 그냥 가지고 온 재료를 능력껏 조합하여 맛난 먹거리로 만들어서 떨어질 때까지 파실 뿐이다. 어떤 사람이 아줌마에게 밤 몇 시까지 문을 여냐고 물어본다. 다 팔릴 때까지라고 하신다. 아줌마는 그냥 손에 잡히는 만큼만 재료를 준비해서 손에서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일한다. 확실히 작년보다 손님은 줄었다. 동네 장사라 해도 경기를 타는 건 다르지 않다.

손님은 순서대로 몰려오지는 않는다. 순식간에 돌풍처럼 확 몰려와서 떡볶이와 호떡과 순대를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 시킨다. 그 복잡스런 순간에도 아줌마는 정확하게, 먼저 온 손님을 구별하고 주문 받은 메뉴를 잘 기억한다. 그 상황에도 절도 있는 손놀림으로 꾹꾹 눌러서 정성스럽게 접시에 담는다. 정확한 양으로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옆 아이 것과 다르다며 싸우는 꼬마 손님이 생긴다. 떡 하나에도 양보는 없단다. 갈수록 더 그렇단다. 아이들은 점점 되바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신다.
잘못해서 한 귀퉁이라도 탄 호떡을 아줌마는 가차 없이 버린다. 나무젓가락에는 아이 입에 들어 갈만큼의 크기의 작은 오뎅을 꽂아 놓았다. 전국 어디에도 여기 같은 맞춤형 오뎅은 없지 않을까 싶다. 순대를 팔 때에는 꼭 양과 내장이 필요한지를 꼼꼼히 묻는다. 좋은 곳에서 받아오는 순대를 잘 쪄서 판다. 쫄깃거리는 데다가 비린 맛이 없어서 순대는 인기가 많다. 녹색 플라스틱 접시에 비닐을 씌워서 담기에 설거지는 따로 필요 없다.

<언제부터일까>

아줌마가 동네에 온 것은 꽤 오래된 전의 일이다. 그냥 오래전이라고 하신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바로 건너편 골목에 다른 떡볶이 포장마차가 있었지만 불황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줌마가 살아난 비결을 내 나름으로 추측해 보았다. 다른 곳과 비교하여 터무니없이 싼 가격,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아파트 입구라는 좋은 목에 있는 것 그것들이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순대 1인분의 가격을 15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린 것은 작년 후반기였을 것이다. 아주머니도 잘 기억 못하신다. 요새 2000원짜리 순대(요새는 대개가 2500원을 받는다.)가 어딨냐마는 사람들은 양이 많네 적네 잔소리를 해댄다고 한다. 내가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양과 가격에 대해 궁시렁거리는 손님이 있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한 장사이기에 가격을 올리는 것이 가족들의 용돈을 올리고 내리는 것만큼이나 아줌마에겐 신중한 일이었을 텐데 그런 마음을 사람들이 알 리가 없다.

비슷한 시기에 300원짜리 컵볶이를 500원으로 올리고 나서도 아줌마는 같은 맘고생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500원어치 컵볶이를 가져가면서 “왜 이렇게 적어.”라고 툴툴거리는 사람을 보면 내가 봐도 어이가 없다. 그럴 때 아주머니는 그 뒤에 대고 작은 주문처럼 외친다. “누워 있는 애가 서 있는 애 맘을 어떻게 알아!” 아주머니만의 말이다. 컵 가격까지 하면 1000원 넘게 받아야 남을 장사인데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가족 같은 이 동네 사람들을 위해 더 눌러 담아주는 아줌마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투박한 말이다.
아까는 어떤 아줌마가 와서 여기에 이사 왔을 때가 3년 전인데 그때 다른 이웃 아줌마의 소개로 이 집 순대를 사 먹게 되었다면서 여전히 맛있다고 한다. 단골들이 만들어주는 요런 맛으로 여기서 버티시는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계산을 해 보면 수지타산이 맞는다고는 할 수 없단다. 남는 건지, 모자라는 건지, 그냥그냥 하루 살아가는 정도란다.
‘내 밥벌이만 하면 된다’고 하신다. 언제 그만두게 될 지도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냥 할 때까지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단다. 나의 이런 소소한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당당하고 위엄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아주머니는 일터 안에 차려진 음식을 그렇다고 해서 소홀히 한다거나 비위생적이거나 양을 더 줄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재료들은 언제나 잘 정돈되어 있으며, 포장마차 주위는 정갈한 느낌마저 준다. 언제나 가장 깔끔한 기름을 사용하여 핫도그를 튀기고 호떡을 만들며 빠른 시간에 1인분 떡볶이 접시에 파 네 개와 떡 18개를 정확히 샘해서 담을 수 있다. 음식을 담는 아주머니의 손길은 리드미컬하며, 정확하다. 포장마차엔 언제나 손님이 있다.
나는 아주머니께 일하시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자세히 여쭤봐도 되겠냐고 묻는다. 단박에 거절하신다.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그런 건 안한다고 하신다. “안 해요, 난 그런 건 안 해.” 자신의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느껴진다.
떡볶이 개수 이야기를 하실 때에 ‘시장조사도 철저히 하셨네요.’하며 거들어 보았다. “시장조사는 무슨 시장조사. 그냥 오다가다 다른 집 것 안 봐!” 왠지 모르게 아주머니의 일에 이래저래 설명을 가져다 붙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저번에 텔레비전에 나온 김기덕 감독을 아시냐고 여쭤보려다 말문이 막혔다. 그 감독과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다. ‘자기만의 방식’이 맞다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또 이 말을 꺼냈다가 더 아주 어려운 말만 골라서 한다고 야단맞을까봐 말이 입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저>

2년 넘게 다닌 떡볶이 포장마차다. 용기를 내서 아주머니를 소재로 글을 써 보겠다는 부탁을 하러 다시 가게에 들렀다. 더 이상 말씀드리기가 주저되어 떡볶이를 시켜먹고는 또 오뎅을 먹으며 길게 앉았다 갔다. 아주머니는 말없이 떡을 몇 개 더 넣어 주고 오뎅 국물을 가득 주셨다. “난 그냥 내 일을 할 뿐이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하루하루의 일과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살아간다.” 손님이 오고가는 사이에 아주머니와 나 사이에는 어색함과 토막토막의 이야기만 남았다. 글 써 보겠다는 이야기를 괜히 했다는 후회도 같이 남았다.
컵볶이를 종이컵 값도 안 남는 가격으로 헐하게 팔고, 1000원어치 떡볶이지만 2500원 값어치로 팔면서도 멈추지 않는 아주머니. 아마 아주머니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밥벌이하고 배고픈 이들의 배를 채워주겠다고 시작했던 일. 자주 신어 닳아버렸지만 정들어서 버릴 수 없는 신발처럼 되었을 것이다.
아줌마는 언제부터인가부터 이 아파트의 붙박이가 되어 버렸다. 앞의 야쿠르트 아줌마와 가끔씩 수다를 떨며, 옆 생선 아저씨와도 가끔 음료수를 마시며, 이 동네 사람이 다 되어 버렸다. 가끔 포장마차 앞 의자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주머니의 포장마차가 집으로 완성되지 않고, 그냥 비닐과 끈에 묶여 있을 때에 허전하다. 무슨 일인가하고 기다려진다.
벌써 순대는 떨어졌다. 떡볶이를 사러 오는 한 학생이 다가온다. 학생이 혼자 먹을 거니 조금 달라고 하자 “아니 이것도 못 먹어.” 하며 아주머니만의 색깔과 맛을 입힌 달달하고 알싸한 떡볶이를, 그득그득 담아 주신다. 이 세상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응답 3개

  1. 까칠녀되기말하길

    아주머니가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셔서
    거의 스토커처럼 밀착했습니다.
    도인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 콩콩말하길

      인터뷰없이, 오랫동안 바라보고 관찰해서 좋은 글을 쓰시다니용!!!
      부럽네요~

  2. 천국의자유말하길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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