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회게 하셨습니까?

- 기픈옹달(수유너머 R)

꽃게는 맥주로 쪄야 제 맛!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는가 싶으면 동내 어귀에 게장수가 등장한다. 트럭 가득 게를 싣고 파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이었던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친구가 자기 동네에서는 와인에 꽃게를 쪄먹는다고 가르쳐 주었다. 와인 먹은 삼겹살 따위는 들어보았지만 와인 먹은 꽃게라니! 꽃게탕 따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신비의 조리법은 충격 그 자체였다.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당연히 ‘먹고 싶다…’ 뿐. 그러나 꽃게 몇 마리 먹겠다고 와인을 살 수는 없는 일. 침만 꼴깍 삼키고 있을 때 그 친구가 전해주는 기쁜 소식 하나. 와인이 없으면 맥주로 쪄도 좋단다.

바로 며칠 뒤, 시장에서 꽃게를 사다가 직접 시도해 보기로 했다. 누가 그랬던가. 이 꽃게를 처음 먹은 사람이야 말로 인류 가운데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하긴 이 딱딱하고 괴상한 생물을 먹을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 그러니 나 역시 용기를 내련다. 겨우 게 한 마리 쪄 먹는데 용기까지 필요하냐고 핀잔줄지 모르나, 맥주를 붓고 가스 불을 켜기 전까지 혹시라도 술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처음에는 적절한 시간을 찾지 못해 고생이었다. 물보다 쉽게 끓고 금방 줄어든다는 사실을 모르고 너무 오래 끓여 냄비를 태운 적도 있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찾아낸 비밀(?)의 조리법을 공개하면 이렇다.

1) 꽃게를 깨끗이 씻는다. 살아 있는 놈은 수돗물로 적당히 힘을 빼놓자. 냄비 속에서 소동 벌이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2) 찜 솥을 준비하고 씻어놓은 꽃게를 통째로 넣는다. 찌는 것이니 가능한 포개지지 않도록 하자. 빈 곳에는 생새우를 넣어도 좋다.
3) 맥주를 꽃게 위에 붓는다. 집에서 먹을 경우엔 3~5마리를 찌는데 맥주캔 500cc면 충분하다. 다만 쪄 먹는 것이므로 잠기지 않도록 할 것.
4) 약 12~15분 정도 찐 뒤에 먹으면 끄읕. 냄비가 작고 꽃게가 적으면 10분 정도도 무난하다.

그냥 물로 쪄 먹으면 될 텐데 굳이 맥주로 찌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맥주로 쪄 먹는 것이 더 맛있으니까! 수증기로 찔 경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게살의 신선함이 반감되기 쉽다. 반면 술, 그러니까 알코올을 이용하면 쉽게 기화되기 때문에 빨리 찔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훨씬 탄탄하고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맥주의 향이 더 담백하게 하는 효과도 있고. 가끔 술로 찌는 것이라 먹고 취하지 않느냐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 알코올이 모두 날아간 뒤니 걱정 마시길.

회게-! 모여라 꽃게 식탁으로~!

이 비전秘典을 체득한 이후, 꽃게 철이면 맥주에 꽃게를 쪄먹곤 했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 되기에 처가에서도 이 비법을 시전, 대성공을 거둔 바 있다. 올해도 이 비전을 펼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차, 연구실 주방에서 매월 둘째, 넷째 주 목요밥상을 푸짐하게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10월 11일 둘째 주, 전어 구이로 한바탕 축제를 벌인 여세를 몰아 꽃게찜의 비전을 펼쳐 보일 기회를 얻기로 했다. 결행일은 10월 25일 넷째 주! 모여서 게를 먹자는 취지로 회會-게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싱싱한 꽃게만 있어도 푸짐한 식탁이기에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한 끼 식사가 꽃게만으로는 부족할까봐 토란국과 꽃게죽을 끓이기로 했다. 이미 주방에는 꽃게 한 박스와 대하 한 봉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필요한 것은 찜에 쓸 맥주 뿐. 맥주를 사러 마트에 들린 김에 정종 한 병도 사왔다. 술로 꽃게를 쪄 먹는데 술이 빠지면 심심하지 않겠는가.

찜통이 좀 작아서 총 3번에 걸쳐 꽃게를 쪘다. 15분 정도씩 걸렸으니까 한 50분 정도 걸린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배불리 잘 먹었다. 게살을 발라내는 것이 귀찮아 고작 한 마리 분의 게살을 넣었던 게살죽도 꽤 맛있었다. 순식간에 동날 정도였으니. 한편 주인공은 분명 게였는데 게보다 새우가 더 인기를 끄는 주객전도의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크기가 작아 더 일찍 익은 새우는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너도나도 새우를 찾아 주방을 기웃거렸으나 어떻게 하겠는가. 고작 한 봉지뿐이었으니. 때를 놓쳐 그날 새우를 못 먹은 분께는 심심한 위로를.

찬바람이 불어서 일까? 따뜻하게 데운 정종 한 잔도 반가웠다. 토란국을 끓인 것은 물론, 정종 주전자를 들고 식탁을 오가며 따듯한 정종을 권해주신 숨님께 감사를 전해야겠다. 한편 주방에서 함께 부엌데기 노릇을 하며 죽 간을 봐주거나 함께 수다를 떨며 심심함을 떨쳐내 주신 미리퐁님과 토라진님께도 감사를. 게다가 회게 공지를 보고 찾아오셨다며 즐거이 식사 자리를 함께 해주신 분도 계셨으니 결과는 대성공. 매우 푸짐한 식탁이었다.

이 글을 보고 침만 꼴깍 삼키며 함께 자리 못해 아쉽기만 한 분께 드리는 반가운 소식 하나가 있다. 회게 같이 풍성한 목요밥상은 11월에도 계속 된다는 말씀. 이번에는 만두 빚기란다. 시원한 만둣국과 찐만두가 기다리고 있으니 11월 8일 연구실 저녁 밥상으로 오시랍! 그러고 보니 그날이 수능 날이던데… 매서운 찬바람 부는 날에 만둣국은 생각만 해도 좋지 않은가!

응답 1개

  1. 미리퐁말하길

    아니 부엌데기라니^^우리 우아한 마담들에게 ~~
    현식샘. 덕분에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배후엔 샘의 노력이 있었군요.
    목요밥상 체험으로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이 뭔지 좀 알게 됐다능..
    목요밥상 취지에서 조금 벗어난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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